2심도 SKT 승리…공적 책임 논란대리기사협·참여연대, 즉각 상고 의사 밝혀소비자 관련 통신사 공적 책임 가릴 중요 판결

전국대리기사협회가 SK텔레콤의 '불통 사건'과 관련해 항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전국대리기사협회
휴대 전화를 통해 손님과 연결돼 하루 일당 벌이에 나서는 대리전화 기사들에게 휴대 전화는 생계를 이어 나가기 위한 필수품이다.

그런데 지난 2014년 3월의 어느 봄날, 가장 '콜'이 많았던 퇴근 시간부터 자정까지, 휴대 전화가 불통을 일으키는 바람에 영업을 하지 못한 사건이 발생했다. 원인은 SK텔레콤의 관리 소홀이었다. 이 때문에 SKT 가입자는 물론, SKT 가입자와 통화를 해야 하는 대리기사들 또한 영업에 지장을 입었다.

이 사건이 벌어진 지 2년이 지났다. 그 동안 대리기사들과 시민단체는 SKT를 상대로 소송을 이어갔다. 하지만 2년에 걸친 두 차례의 판결 모두 법원은 SKT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 "SKT 과실 인정하면 통신비 전체 오를 수 있어"

2014년 3월 20일, 오후 여섯 시부터 자정까지 여섯 시간 동안 SK텔레콤의 560만 가입자들의 전화기가 '불통'이 돼 버렸다. 이는 SKT가 가입자 확인 모듈 서버(Home Location Register) 관리에 소홀했기 때문에 발생한 사태였다. 이로 인해 560만명의 SKT 가입자는 물론, 이들과 통화를 해야 하는 타 통신사 가입자들 또한 발을 동동 굴러야만 했다.

이 중에서도 대리운전기사, 퀵서비스 기사, 콜택시, 음식 배달업 등 휴대 전화를 통해 생계를 꾸려나가는 업종의 소비자들은 더 큰 피해를 입어야만 했다. 사단법인 전국대리기사협회 김종용 회장은 당시 상황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그날은 주말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목요일이었고 날씨가 좋아 손님도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날이었다. 대리기사들의 경우 퇴근 시간부터 자정까지가 가장 '콜'이 많은 시간이다. 오후 여섯 시부터 자정까지 휴대전화가 '불통'이 된 탓에 대리기사들은 전화를 통해 손님과 연결을 해야 하는데 하루 동안 영업을 하지 못한 셈"이라 밝혔다.

대리기사들이 모두 SKT 가입자는 아니지만 만약 손님이나 동료 기사가 SKT를 사용할 경우 통화를 할 수 없다. 직접적 손해를 입은 기사부터 간접적 손해를 입은 기사까지 그 피해규모는 생각보다 컸다.

이러한 피해를 입은 대리기사들은 시민단체와 연계해 소송을 접수했다. 그러나 지난 2월 17일, 2심 선고에서 항소법원은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ㆍ전국대리기사협회ㆍ한국대리운전협동조합 및 원고에게 패소 판결을 내렸다.

원고 측은 즉각 상고의 뜻을 밝혔다. 특히 이번 2심 결과는 지난 1심 결과 때보다 더 납득하기 힘들다는 게 원고 측의 설명이다. 지난 1심에서 재판부는 원고들이 입은 손해는 '특별 손해'라는 이유로 패소 판결을 내렸다. 특별손해란 채무자가 그 사정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때의 배상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즉 SKT 측이 불통 사태로 인해 피해자들에게 손해가 생길 것을 미리 예상했었어야 하는데 이번 경우는 그러한 사항에 해당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원고 측은 이번 2심 결과에 대해 1심보다 더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이동통신 사업의 특성상 통신장애는 피할 수 없는데, 그 때마다 이용자들의 실제 손해를 모두 배상할 책임을 지운다면 이동통신 사업자에게 과도한 위험부담을 지우는 셈이 되고, 결국 이는 전체적인 요금인상으로 이어져 전체 고객의 불이익을 초래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 측은 "SKT는 2014년 순이익만 약 1조 8000억원에 달하여 이러한 손해를 배상하고도 남을 충분한 여력이 있어 요금이 인상되는 빌미가 될 수는 없다. 오히려 SKT가 이용자들의 실제 손해를 모두 배상해서 손해액이 크게 된다면 기본 설비 관리의 중요성을 깨닫고 시설과 서비스 품질 관리를 더욱 철저히 하게 될 것"이라 반박했다.

또 재판부는 '원고들의 주장처럼 통신장애를 겪은 이용자의 일실수입을 고려하여 배상액을 산정해야 한다면 똑같은 통신장애에 대하여 무직자나 저소득자에 비해 고소득자가 많은 금액을 배상 받게 되어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대해 대리기사 협회 측은 '억울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김종용 회장은 "대리기사가 무직자나 저소득자에 비해 수입이 있다는 이유로 이러한 판결을 내린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밝혔다. 참여연대 심현덕 간사는 "대리기사들을 고소득자들로 분류한 판결 자체가 아이러니"라 밝혔다.

게다가 SKT 측은 불통 사건 발생 다음날인 지난 2014년 3월 21일, 직접 생계형 가입자에 대해 피해 보상을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SKT 하성민 사장은 기자회견에서 통신 장애로 생계에 지장을 받은 이용자들의 보상에 대해 "기업 형태로 영업하시는 분들(택배 및 콜택시)에 대해 기업사업부문에서 제휴사 등에 방문해 피해 사례를 확인 중이며 이 부분에 대한 별도 조치를 시행할 것"이라 언급한 바 있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원고들의 주장에 의하더라도 원, 피고(SKT)사이에 개별적인 합의가 있었다는 것은 아니므로, 설령 피고가 아직 확정되지도 않은 사항을 발표해서 일시적으로 여론의 비난을 모면하려 한 것을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피고에게 위 약속에 대한 법적 책임을 지우기는 어렵다'라고 판시했다. 참여연대는 이에 대해 "거짓 대국민사과를 하고 피해자와 국민을 심대하게 기만한 SKT를 꾸짖어야 할 재판부가 오히려 SKT를 두둔하기 위해 무리한 논리를 계속 동원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번 사건, 통화 장애 판결의 선례 될 수도

이번 결과에 대해 SKT 관계자는 "법원에서 통신사업자의 특성을 판단해 결과를 내린 것으로 보며 이번 결과에 대해 환영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원고 측이 즉각 항소 의사를 밝힌 만큼 신중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전국대리기사협회·한국대리운전협동조합 및 원고 일동은 지난 3월 2일 대법원에 상고장을 제출했다. 이번 상고심에는 2심에 참가했던 대리기사 8명, 일반가입자 10명을 포함해 원고 18명 전원이 참여했다. 18명 모두 정신적 손해배상 10만원을 청구했고, 대리기사 8명은 통신 불통으로 인하여 수입을 잃었으므로 휴업손해 10만원을 더 청구했다.

대리기사협회와 참여연대 등이 재판을 끝까지 이어가려는 건 단순히 손해배상을 받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이번 재판 결과가 어떠한 방향으로 마무리되느냐에 따라 향후 통신 장애 발생 시 소비자들이 그에 맞는 적합한 보상을 받을 수 있을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참여연대 심현덕 간사는 "통신은 공공 영역의 성격을 갖는다. 사회 보편 서비스에 해당되는 만큼 이에 대한 공적 책임을 가져야 한다"고 밝혔다. 심 간사는 전 국민이 사용하는 영역인 만큼 통신사업자들이 그에 걸맞은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하고, 이 때문에 이번 재판에서 꼭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내놨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