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시는 분 따라 천국과 지옥 오가

오너가, 인맥ㆍ추천 통해 비공개로 채용

회장과의 궁합부터 가족ㆍ친지 전과기록도 조사

운전 외 특수 임무 수행도…근무조건 천차만별

이해욱 사장식 갑질 다반사…직업에 긍지 갖기도

최근 대림산업 이해욱 부회장의 수행기사 갑질 논란, 몽고식품 김만식 회장의 수행기사 폭행 논란으로 가장 가까운 곳에서 회장님을 수행하는 ‘수행기사’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드라마 속 수행기사는 비자금 전달부터 중요한 비밀을 폭로하는 ‘핵심 키’ 역할을 한다. 가장 가까이에서 임원진을 보좌하는 만큼 그룹의 핵심에도 깊숙이 맞닿아 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수행기사들은 어떤 ‘대장’을 만나느냐에 따라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고 말했다. 대장이란 수행기사들이 자신이 수행하는 회장님, 사장님을 일컫는 업계 속어이다. 일반 직장인들 또한 어떤 상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영향을 받지만, 하루 온 종일 ‘회장님’을 모셔야 하는 수행기사들은 모시는 분이 곧 일자리의 질을 결정하는 셈이다.

‘잘 풀리면’ 대기업 부장 못지 않은 대우

수행기사 채용은 흔히 세 가지 루트로 나뉠 수 있다. 취업 사이트를 통한 취업과 중개업체를 통한 취업, 마지막으로 인맥을 통한 취업이다.

잡코리아, 사람인과 같은 취업 사이트를 통한 취업은 일반 구직자처럼 정해진 조건을 보고 이력서를 접수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조건이 꽤 괜찮은 자리의 경우 많게는 1:100의 경쟁률을 보인다. 일단 기업 총무팀이 1차적으로 서류를 심사하는데 경력이 많을수록 서류 통과는 유리하다. 현재 5년째 모 대기업 임원의 수행기사로 일하고 있는 김 모씨는 “취업 준비생들이 스펙을 쌓는 것처럼 수행기사들 또한 그에 상응하는 경력이 있어야 한다. 1종 보통면허보단 2종 대형 면허를 선호하는 건 당연하다. 아예 경력이 없는 초보자의 경우 법인대리운전으로 경력을 쌓을 것을 추천한다”고 밝혔다.

대기업의 경우 수행기사 또한 취업준비생 못지않은 험난한 단계를 통과해야 한다. 서류 통과 후에도 총무팀 면접, 임원 면접, 마지막으로 회장님 앞에서 시운전까지 해야만 수행기사 면접을 통과하게 된다. 다대잡, 아우토반과 같은 중개 업체를 통해 일자리를 얻을 수도 있다. 이때에는 연봉의 일부 금액을 중개 업체에 수수료로 내야 한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대기업 회장님인 오너가의 경우, 웹사이트를 통한 공개 모집은 이뤄지지 않는다. 오너가 수행기사 구직은 인맥과 추천을 통해 알음알음 이뤄진다.

면접 과정에서 수행기사들은 다양한 자질을 시험받는다. 가장 가까이에서 회장님을 모시는 일인 만큼 입이 무거워야 하는 것은 필수다. 대기업의 경우 채용 과정에서 수행기사의 생년월일은 물론 태어난 시각까지 요구한다. 수행기사와 ‘회장님’의 궁합을 보는 것이다. 수행기사 육촌까지 가족관계를 조사해 전과자나 물의를 일으킨 사람이 있나 없나 판단하는 경우도 있다.

채용 후에는 업무 수행 시 알게 되는 여러 가지 기밀 사안에 대해 발설하지 않을 것을 요구하는 계약서를 쓰기도 한다. 통상적인 근로계약서는 물론, 사생활이나 업무 기밀을 외부에 퍼트리지 말 것을 요구하는 계약서를 한 통 더 작성하는 것이다. 특히 대기업일수록 수행기사가 업무 시작 전 ‘사인’해야 하는 계약서의 수는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근무 기간은 제각각이다. 파견직으로 입사한 후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돌려주는 건 상당히 좋은 조건의 자리이다. 대부분은 2년으로 계약을 맺는다. 국내 대기업 H사는 수행기사가 업무를 잘하건 못하건 간에 무조건 근무 기간을 2년으로 정해 놨다.

업무 능력이 탁월해 대기업 정규직으로 전환된 ‘운 좋은’ 케이스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정규직으로 전환된 수행기사들은 대기업 과장급에 해당하는 대우를 받는다. 연봉도 오르고 자녀 학자금까지 받을 수 있다. 차장급까지 승진도 가능하다. 오너가 수행기사는 그보다 높은 부장급의 대우를 받는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회장님의 마음에 쏙 들었을 때 이야기이다.

이해욱 사장 갑질은 ‘새발의 피’?

수행기사가 단순히 운전 역할만을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대기업 운전기사는 회장님, 사장님을 모시는 수행기사지만 자택에서 ‘사모님’을 모시는 사택기사도 존재한다. 사택기사의 업무는 수행기사보다 더 다양하다. 사모님의 개인 일정, 자녀들의 등하교까지 책임진다. 또 정원에 물 주기, 사장님 댁 애견에게 사료 주기 등 살림 업무까지 도맡기도 한다. 그야말로 전천후로 일하는 셈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수행기사보단 통상적으로 연봉이 낮다. 이는 아직까지 안살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낮기 때문으로 보인다.

수행기사들은 자신들의 직업이야말로 운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야말로 ‘복불복’인 것이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대기업 임원 수행기사는 업계에 발을 들여 놓은 후 세 번의 이직을 했다. 그는 두 번째 직장에서 고된 경험을 했다. “새벽 네 시 오십 분에 집을 나와 다음날 새벽 세 시에 퇴근했습니다.” 시간외 수당은 당연히 없었다. 차고지가 집에서 먼 지방인 탓에 도로에서 하루를 맞이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그는 지난 1년 간 어떻게 그 직장에서 버텼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 직장의 경우, 사장님의 인격적 대우와 시간외 수당 지급으로 만족하며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대림산업 이해욱 부회장의 수행기사 폭언 사건이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대부분의 수행기사들은 이를 그렇게 놀랍지 않은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 부회장 외에도 수행기사들을 괴롭히는 ‘회장님’들은 상당히 많다. 오히려 이해욱 부회장의 경우 오너가라는 이유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게 피해를 입은 수행기사 입장에선 다행이라는 평가였다. 수행기사를 향한 갑질은 묻히는 경우가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현직 중소기업 사장 수행기사는 “우리가 가장 가까이에서 회장님 및 임원진을 보좌하는 만큼, 회사를 뒤흔들만한 비밀도 많이 알고 있다. 그만큼 인간적으로 잘 대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수행기사 채용을 주선하는 업계 관계자는 취재 자체에 부정적 뉘앙스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 관계자는 “이러한 (갑질)사건이 보도될수록 수행기사 지원자가 줄어들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다”고 밝혔다.

고충도 많지만 대부분의 수행기사들은 우리나라 경제를 움직이는 분들을 보좌하는 직업으로 긍지를 갖고 일하고 있었다. 현직 수행기사로 일하고 있는 조 모씨는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분들을 모시는 만큼 수행기사들도 열심히 일하고 있다. 사장님, 회장님들 또한 기사들의 노고를 이해하고 잘 대해 줬으면 한다”는 바람을 밝혔다.

이명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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