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3ㆍ4세 격돌…“관건은 명품 유치”

대기업 오너가 자존심 싸움… 신라-현대산업계발, 신세계, 두산 승기잡아

정부 재허가 움직임으로 신규 면세점들 ‘긴장 중’

이부진 명품 입점 여부 눈길… 두산ㆍ한화 젊은 세대 ‘면세점으로 데뷔’

지난해부터 시작된 면세점 전쟁에서 대기업 오너들이 자존심 싸움을 벌이고 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 불리는 면세점 사업권을 획득하기 위해 각 기업들은 오너가를 전면에 내세우며 경쟁에 나섰다. 그 결과 신라호텔-현대산업개발, 신세계, 두산이 승기를 쥔듯했다.

하지만 면세점 업계는 올해 또 한 번의 소용돌이를 겪을 전망이다. 재허가에 실패한 롯데와 SK가 우선 기대감을 가져볼 만하다. 서울 시내 면세점 추가 지정 가능성을 정부가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서울 시내 면세점 사업자로 지정된 기업들조차 안심할 수 없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실적이 그다지 좋지 않기 때문이다. 좀처럼 입점해 주지 않는 콧대 높은 명품들 또한 골칫거리다.

이부진 “문제는 명품” , 정몽규 “불모지 개척이 전문”

지난달 25일, 이부진 신라호텔 사장과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이 나란히 서울 용산 신라 아이파크 면세점 개장식에 참석했다. 취재 열기는 뜨거웠다. 당초 매장 전체를 둘러볼 예정이었던 이부진 사장은 기자들의 열띤 취재 요청에 한 매장에 잠시 감금(?)되기도 했다.

용산 신라아이파크 면세점은 ‘삼성가’와 ‘범 현대가’가 의기투합해 서울 시내 면세점 입찰권을 따내 오픈 전부터 큰 관심을 끌었다. 지난해 연말 부분 개장을 통해 영업을 시작했고 3월 말부터 전면 개장에 들어갔다.

이부진 사장은 전면에서 면세점 입찰을 이끌었다. 지난해 심사 발표 전 “잘 되면 여러분 덕, 안 되면 내 탓”이라는 발언은 큰 화제를 불러모았다. 면세점을 앞세운 이 사장의 행보는 삼성 오너가를 넘어 대기업 오너가들 중 가장 두드러진 활약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단 호텔신라는 30년 가까운 면세점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다. 지난 1986년 서울점을 시작으로 인천공항, 김포공항 면세점을 운영 중이다. 국내 면세점 시장 점유율은 롯데와 호텔신라가 양분하는 구조로 지난해 기준으로 롯데가 50%, 호텔신라가 약 30%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롯데 월드타워점이 재허가에 실패하면서 호텔신라의 강세가 두드러질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걸림돌은 여전히 남아 있다. 야심 차게 문을 연 용산 아이파크 면세점이지만 아직까지 3대 명품이라 불리는 샤넬, 에르메스, 루이비통이 입점하지 않았다. 이 사장은 이면세점 개장식에서 이에 대해“잘 되고 있다”고 말을 아꼈다. 여기에 정부가 최근 추가로 서울 시내 면세점을 지정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명품 업체들이 입점을 꺼린다는 설도 돈다. 서울 시내 여러 면세점이 비슷한 시기에 문을 열면서 유커(중국인 관광객)를 비롯한 손님들이 흩어질 가능성도 있다.

현대산업개발의 경우, 불경기인 건설 시장 타개를 위해 신규 영역으로 꼽히는 유통 영역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있다. 현대산업개발은 용산에 위치한 현대아이파크몰 운영으로 유통 시장에 진출했다. 하지만 면세점 운영에 대한 노하우를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 약점이다.

유통업 노하우는 부족하지만 정몽규 회장의 그동안 행보를 비춰봤을 때 곧 성과를 내지 않겠냐는 예상도 많다. 정 회장은 지난 1998년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에게 경영권을 승계하는 과정에서 아버지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과 함께 몸담았던 현대차를 떠났다. 정 회장은 사업 진출 초기만 해도 자동차 사업만 하던 사람이 건설업을 한다는 게 쉽지 않을 것이란 평가를 들었다. 하지만 건설 불경기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 1479억원을 올리며 업계 최고 영업이익률을 달성했다. 새로운 사업 분야에서 성공을 맛 본 적이 있는 정 회장이 호텔신라와의 협업을 통해 유통 시장에선 어떤 활약을 보일지 주목된다.

신동빈ㆍ최태원, “재허가에 기대 걸어볼까”

이 와중에 면세점 특허 기간 연장과 함께 정부가 서울 시내 면세점 추가 지정 시기를 4월말로 발표하면서 롯데와 SK의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2013년, 정부는 관세법을 개정해 특허 기간을 10년에서 5년으로 단축했다. 이에 따라 롯데 월드타워점과 SK 워커힐 면세점은 신생 업체들과 함께 경쟁을 벌어야 했고 결국 재허가를 받지 못해 문을 닫게 됐다.

그러나 이 법안은 매출액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문을 닫아야 하고 직원의 고용 승계 등 여러 논란을 불러왔다. 이로 인해 정부는 이른바 ‘5년 시한부’인 면세점 특허 기한을 10년으로 늘린 후 기간 만료 되면 특허 갱신을 허용하는 쪽으로 정책을 수정했다.

지난해 시내 면세점 재입찰 심사에서 탈락한 롯데 월드타워점과 SK 워커힐점은 두 그룹 입장에서도 아쉬운 카드다. 롯데 월드타워점은 소공동점과 함께 롯데의 면세점 사업을 이끌었으며 SK의 경우 워커힐점 재허가에 실패하면서 23년만에 면세 사업에서 손을 떼게 됐다. 공교롭게도 두 그룹의 수장인 롯데 신동빈과 SK 최태원은 지난해 내내 경영권 분쟁과 사생활 논란으로 연일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롯데그룹은 신동빈 회장이 경영권 분쟁의 최종 승자가 되면서 안팎을 챙기고 있다. 호텔롯데 매출액의 80% 이상을 면세점 사업에서 충당하는 롯데로서는 재허가를 받지 못한 월드타워점이 아쉽기만 하다. 여기다 상장을 준비 중인 호텔롯데가 높은 시가 총액을 받기 위해서 면세점 재허가에 기대를 걸어볼만 하다는 게 중론이다.

오너가들이 전면에 나서서 면세점 유치에 열을 올렸던 것과는 달리 SK 최태원 회장은 면세점 유치 과정에서 쉽사리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에 대해 SK네트웍스 측은 지난해 열린 면세점 유치 기자간담회에서 “회장님은 계열사(SK네트웍스)가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전면에서 지원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최 회장은 지난해 여러 부침을 겪었다. 광복절 특사로 사면된 후 가정사 고백으로 논란을 겪기도 했다. 여기서 터진 면세점 재허가 실패로 리더십에 흠집이 났다는 평가를 듣기도 했다. 재허가 실패 후 ‘눈물의 재고처리’까지 해야 했던 SK 워커힐 면세점이 다시 부활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박서원ㆍ김동선, 경영능력 검증 잣대 올라

두산과 한화는 면세점 사업 지휘를 젊은 세대에게 맡기고 있다. 지난해 두산 동대문 두타면세점 신규 지정으로 유통업에 재진출한 두산은 박용만 회장의 장남 박서원 전무를 전면에 투입했다.

광고업에서 역량을 쌓아온 박 전무는 그 동안 두산 밖에서 개인 사업에 몰두했다. 2014년 두산 계열사인 광고회사 오리콤의 부사장으로 두산에 몸을 담은 뒤 지난해 연말 인사에서는 유통사업부문 전무로 선임됐다.

역시 시내면세점 신규 입찰에 성공한 한화 또한 3세대에게 면세점 설계를 맡겼다. 김승연 회장의 삼남인 김동선 한화건설 과장은 한화갤러리아 면세점 테스크포스팀 과장으로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두 젊은 오너가 자제들의 경우 향후 면세점 사업을 그룹의 알짜배기로 자리잡게 하는 게 큰 과제로 여겨진다. 일단은 명품 유치가 관건이다. 서울시내 면세점 추가설까지 나온 시점에서 경쟁력을 키우려면 하루 빨리 명품 브랜드 입점을 서둘러야 한다는 게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이명지 기자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