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 넓히는 한화, 화학 받은 롯데… 얼마나 시너지 낼까, 역풍은?

삼성 방산 계열사 받은 한화, 두산DST 인수도 나서

한화, 방산 계열사 몸집 늘려 ‘성장 중’

노사 갈등 겪으며 주춤하기도

삼성SDI, 케미칼 독립으로 롯데 갈 준비 마쳐

재작년부터 시작된 삼성의 계열사 매각으로 한화와 롯데는 방산과 화학 분야를 확장할 수 있게 됐다.

글로벌 방산 기업 10위권 진입을 목표로 삼고 있는 한화는 삼성의 방산 계열사 인수에 이어 두산DST도 품에 안게 됐다. 이로써 한화의 방산 계열사는 총 4곳으로 늘어났다. 인수를 통해 방산 부문 사업 범위를 넓혔으며 계열사간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롯데 또한 삼성의 화학 계열사를 받으며 화학 사업을 넓혀갈 준비를 시작하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계열사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출혈을 겪기도 했다. 한화는 노조의 반발로 인해 직장폐쇄 사태까지 감행하는 악수를 둬야 했다. 갑작스레 소속이 바뀐 임직원들이 새로운 회사와 얼마만큼의 시너지를 내느냐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화 김승연, ‘한국의 록히드마틴이 목표’

한화그룹은 삼성의 화학, 방산 계열사인 한화종합화학, 한화토탈, 한화테크윈, 한화탈레스 등 4사를 1조9000억원에 인수했다. 이는 외환위기 이후 단행된 대기업 간 최대 규모의 빅딜이었다.

주목할 점은 한화의 방산사업 투자다. 한화는 삼성 계열사 인수를 통해 방산사업 확장에 나선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이 방산에 가진 애착은 크다. 그룹 성장에 기반이 된 사업이기 때문이다.

이번 인수 전 한화는 ㈜한화/ 방산 계열사를 통해 방산사업을 해왔다. 한화는 1974년 방산부문에 진출한 후 유도무기, 탄약, 무인체계, 우주산업에 주력했다. 유도무기체계에서는 ㈜한화/방산부문이 업체주관사업으로 개발한 ‘천무’가 육군 주력 화력무기체계로 쓰이고 있다.

지난해 삼성 방산 계열사 인수를 통해 방산 부문 외형을 넓힌 한화는 한화테크윈을 통해 K9자주포, K10탄약운반장갑차와 같은 포병장비 및 포병장비 정비 사업, 항공기 엔진 사업에도 뛰어들게 됐다. 동시에 한화탈레스 인수를 계기로 지휘통제, 전술통신체계, 감시 및 정찰체계로 사업 영역을 넓힐 수 있게 됐다.

한화의 통 큰 투자는 삼성 빅딜에서 그치지 않았다. 한화테크윈은 두산DST 인수를 통해 방산 외형을 한 단계 더 넓힌다. 지난달 30일, ㈜두산과 매각 주관사인 크레디트스위스(CS)는 두산DST의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한화테크윈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한화테크윈은 본입찰에서 6950억원을 제시한 바 있다. 방위산업체인 두산DST는 현재 ㈜두산 100% 자회사인 DIP홀딩스가 지분 51%, 미래에셋자산운용과 IMM인베스트먼트가 49%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두산 관계자는 “이번 두산DST 매각은 경기 회복기에 대비해 두산의 경쟁력 강화 여력을 선제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며 “계약서 협의를 거쳐 빠른 시간 내에 본 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두산DST 인수 후 한화는 동ㆍ대공무기체계, 발사대 체계, 항법장치까지 사업영역을 확장할 수 있다. 외형 또한 연 매출 4조원대로 불어난다. 한화테크윈 신현우 대표는 “두산DST 인수는 글로벌 방산업체로 도약하기 위한 중장기 전략의 일환”이라며 “이번 인수를 통해 분야별 사업경쟁력을 강화하고 효율성을 제고해 해외시장을 개척하겠다”고 말했다. 박강호 대신증권 연구원은 “한화테크윈은 한화탈레스를 포함한 사업영역을 기반으로 두산DST의 항법장치, 대공ㆍ유도무기체계 부문을 추가하면서 종합 항공분야의 포트폴리오를 구축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1952년 설립된 ‘한국화학’을 모체로 둔 한화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외형적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태양광과 방산 등 일찌감치 주력 분야를 정해 성과를 내 왔다. 특히 방산 부문에 대한 막대한 투자가 연일 눈길을 끌고 있다.

한화맨 된 삼성맨, 파업으로 직장폐쇄까지

하지만 한화의 인수가 순조로웠던 것만은 아니다. 삼성에서 한화로 자리를 옮긴 화학 및 방산 계열사들은 노사 갈등으로 인해 지난해 직장폐쇄까지 가는 극한의 상황을 겪기도 했다.

시작은 사명 변경에서부터 시작된다. 지난해 6월, 삼성테크윈에서 한화테크윈으로 사명을 바꾸고 공식적으로 출범을 알렸지만 출범식 당일 노조의 물리적 반대로 건물 외부 로고를 바꾸는 작업에 애를 먹었다. 노조는 ‘금속노조 삼성테크윈 지부’라는 이름을 아직까지 사용하고 있다.

그후 노조는 고용안정 보장, 노조활동 인정, 조합원 징계 철회를 사측에 요구했다. 특히 위로금 지급에서부터 노사는 의견차를 보였다. 한화테크윈 직원들은 삼성에서 한화로 적을 옮기면서 1인당 평균 4000만원의 위로금(계속근로장려금)을 지급받았다. 1년 이상 회사에 근무하고 회사 정상화에 협조하는 단서가 붙었다. 하지만 한화테크윈 노조는 이에 대해 노사 협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결정된 것이라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화테크윈 노조는 그 후에도 한화 직원들의 사업장 출입 등을 방해해 논란을 일으켰다. 이에 대해 사측이 노조위원장 해고를 포함해 60여명 노조원에게 징계를 내리자 상급단체인 금속노조가 불법 탄압이라 주장했다.

한화종합화학 역시 진통을 겪었다. 지난해 4월부터 한화종합화학 울산공장 노조와 사측은 임금협상의 의견차를 좁히지 못했으며 급기야 10월부터는 전면파업에 들어갔다. 여기에 사측이 시설 보호와 안전 우려를 명목으로 직장폐쇄 카드를 꺼내 들면서 노조와 사측 간의 갈등은 최고조에 달했다. 노조가 파업 철회 의사를 밝히면서 11월 초 직장폐쇄도 철회됐다. 잇따른 한화 계열사들의 노사 갈등은 ‘빅딜’ 과정에서 생기는 의견 차이가 신규 사업 확장에 미칠 악영향을 보여줬다. 3월 이뤄진 한화 주주총회에서도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를 통해 방산과 화학에서 외형을 넓혔지만 한화는 내부 갈등을 다스려야 한다는 과제를 여전히 안고 있다.

노조에게 헹가래 받은 삼성정밀화학 사장

반면 노조와의 화합으로 눈길을 끈 ‘빅딜’ 사례도 있다. 삼성에서 롯데로 소속이 바뀌게 된 삼성정밀화학 노사가 훈훈한 풍경을 연출했다. 지난달 29일, 삼성정밀화학 마지막 주주총회에서 노조원 50여명은 2011년부터 삼성정밀화학을 이끌어 온 성인회 전 사장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고 헹가래를 쳐줬다.

이는 ‘빅딜’ 전부터 직원들과의 소통을 주선했던 사측의 노력에 의해 가능했다. 2014년 삼성의 방산 및 화학 계열사들이 한화로 적을 옮기면서 남아 있는 삼성 화학 계열사 또한 다른 그룹에 매각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직원들 또한 매각설을 듣고 불안에 떨어야 했다.

성인회 전 사장은 2011년 부임 당시부터 노조와의 화합 경영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매각 결정 후에도 노사가 ‘공동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롯데그룹으로 가는 과정을 함께 준비했다. 이 과정에서 사측과 노조의 의견차를 줄일 수 있었고 삼성정밀화학은 롯데로 가는 길을 한화 화학 및 방산 계열사들보다 편하게 갈 수 있었다. 매각이 결정된 후에도 삼성정밀화학 노사공동 비상대책위원회는 성명서를 통해 “(빅딜이) 선택과 집중을 통해 기업의 생존을 확보하고 모두의 공멸을 피하기 위한 삼성의 불가피한 결정이었다는 점을 이해하기로 했다”면서 “이번 롯데케미칼의 지분 인수를 적극 지지하고 환영한다”는 이례적인 공식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번 M&A는 롯데 창사 최대의 규모로 이뤄졌다. 롯데는 합병 당시 삼성 계열사 인수를 통해 유통과 화학을 그룹의 양대 축으로 키우겠다는 각오를 다진 바 있다. 롯데는 지난해 10월, 삼성정밀화학, 삼성BP화학 등 삼성 화학 계열사 2곳과 삼성SDI 케미칼 부문을 인수했다. 당시 인수 배경에 대해 롯데 측은 신동빈 회장은 석유화학 분야에 각별한 애정을 가져왔기 때문이라 밝혔다. 이는 신 회장이 지난 1990년 한국 롯데 경영에 처음 참여한 회사가 롯데케미칼(당시 호남 석유화학)이었기 때문이라는 게 롯데 측의 설명이다. 2000년대 들어 신동빈 회장은 롯데대산유화와 케이피케미칼을 인수해 롯데를 석유화학 산업의 강자로 올려놨다. 2009년 호남석유화학과 롯데대산유화의 합병, 2012년에는 호남석유화학과 케이피케미칼을 합병해 롯데케미칼을 출범시켰다.

삼성정밀화학의 전신은 지난 1964년 한국비료공업주식회사다. 지난 1966년, 한국비료의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당시 이병철 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잠시 물러난 바 있다. 그 후 94년 삼성정밀화학으로 사명을 변경한 후 삼성 측의 화학 계열사 정리 방침에 따라 롯데의 품으로 가게 됐다.

아직 삼성-롯데 간 빅딜은 진행 중이다. 올 초 삼성SDI는 케미칼 부분을 롯데로 넘기기 위해 케미칼 부분을 ‘SDI 케미칼’로 독립했다. SDI케미칼은 삼성SDI 100% 자회사로 운영되다가 지분 매각과 기업 결합, 승인절차를 거쳐 5월 1일 롯데케미칼에 지분 90%를 넘긴다.

일단 롯데로 간 삼성 화학 계열사들의 실적 전망은 밝다. 하이투자증권은 3월 30일 롯데정밀화학의 올해 영업이익 잠정치는 작년(26억원)보다 2340% 증가한 623억원으로 전망된다며 투자의견 ‘매수’와 목표주가 5만2000원을 유지했다. 이동욱 연구원은 “롯데정밀화학은 작년 플랜트 전반의 대정기보수 진행, 새출발 격려금 지급, 양극화물질 적자 등으로 약 500억원 수준의 영업이익 훼손이 있었다”며 “올해부터 큰 폭의 일회성 비용이 사라진다”고 말했다.

과거 대기업간의 빅딜은 정부 주도로 이뤄졌다. 특히 지난 1997년 외환위기 시절, 우리 정부는 효율성 강화를 명목으로 빅딜을 주도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대기업 간 빅딜은 기업의 자율적 판단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이는 양사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가능했다. 특히 경제 침체로 사업 영역 집중이 필수가 된 시점에서 향후 대기업 간의 자율적 빅딜은 활발해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인수가 끝은 아니다. 한화와 롯데는 인수를 통해 키운 몸집을 얼마나 잘 활용할 것인지 과제를 안게 됐다. 진정한 빅딜 단행은 지금부터가 시작인 것이다.

이명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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