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갑질 횡포에 ‘을’만 당해… “억울하면 법대로 해라” 배짱

대형 건설사, ‘위험한 계약’ 종용하며 계약금만 챙긴 후 책임 전가

두산중공업, 사업자 선정 놓고 은밀한 이중계약으로 하청업체 막대한 피해

우리은행, 지점장 사기로 부도 맞은 중소기업에 ‘나 몰라라’ 방치

하청업체들 “법 테두리 교묘하게 피해 하청업체 착취 악행” 분통

정부가 대기업의 슈퍼갑질에 대해 특별감독에 나서기로 해 재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가운데 하청업체에 대한 갑질횡포로 상당한 피해를 입히고도 “억울한 것이 있으면 법대로 하라”고 배짱을 부린다는 주장이 제기돼 눈길을 끈다.

피해업체들은 대기업을 상대로 하청업체가 소송을 하는 것은 변호사 비용도 만만치 않을 뿐만 아니라 계약서 등 관련 서류도 하청업체에 불리하게 작성돼 있어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하청업체 입장에서는 대기업의 여러 보복조치가 두려워 함부로 소송을 제기할 수도 없어 소규모 하청업체 관계자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주변에 하소연만 할 뿐이다.

갑질을 일삼는 대기업들은 법적으로 교묘하게 빠져나갈 통로를 만들어 놓고 갑질을 하기 때문에 피해업체들이 피해를 주장할 경우 절차상으로든 법적으로든 문제될 게 전혀 없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반복할 뿐 피해구제에 대한 논의시도는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정부, 기업 슈퍼갑질 특별감독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한달 간 광주와 부산을 거쳐 대구 인천 대전 등 현장 방문을 다니며 기업의 갑질 실태를 직접 조사했다.

경제검찰 수장의 이 같은 행보는 재계로부터 크게 주목받았다. 더구나 정 위원이 대기업의 갑질에 대해 집중적으로 현장의 소리를 청취한데 대해 재계 안팎에서는 일부 기업이 갑질 횡포와 관련해 공정위 등 사정당국의 조사를 받게 될 것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정 위원장은 지난 2월 26일부터 여러 지역을 돌며 중소기업 대표 100여명을 직접 만나 고충을 직접 청취했다. 광주에서 전기·전자 부품업종 간담회를 시작으로 △건설업종 간담회(부산, 3월4일) △자동차 부품업종 간담회(대구, 11일) △기계·금속·화학업종 간담회(인천, 18일) 등에 이어 24일 대전에서 벤처업종을 끝으로 총 5번의 지역별 중소업체 간담회를 열었다.

한 달 간 현장에서 애로·건의사항을 들은 정 위원장은 기업의 갑질 횡포가 생각보다 매우 심각한 수준임을 알고 경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위원장은 “중소기업들이 공통적으로 가장 심각하게 건의한 건 대기업들의 보복이었다”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중소업체 대표들에게 “단 한 차례 보복행위만 있어도 바로 관계 기관에 입찰참가 제한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한 ‘원 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했다”며 “억울한 일을 당했거나 피해를 입었다면 주저하지 말고 신고와 제보를 하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아직 중소업체들은 적극적으로 신고하기를 꺼리는 분위기다. 공정위가 든든한 우산이 돼 뒷감당이 없을 것이란 확신을 아직 갖지 못해서다.

공정위는 지난해 3월 중소업체들이 대기업의 보복이 두려워 불공정행위 등 신고를 하지 못하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익명제보센터’를 만들었다. 1년간 하도급법·유통업법 위반 혐의로 제보된 건수는 총 74건으로 공정위가 당초 예상한 100건 이상보다 낮았다. 공정위는 이중 21건(43억원)의 미지급 대금 문제를 해결했다.

정 위원장은 중소업체들이 하도급 대금 미지급 등 대기업들의 갑질이 여전하다는 현장의 얘기도 들었다.

이에 대해 정 위원장은 “불공정 하도급 관행 문제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며 “현장의 불만들에 대해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직권조사를 통해 법적 대응을 강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위원장은 앞선 간담회에서 업종별 하도급대금 미지급 조사를 다음 달에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원 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는 하도급법 제19조에서 금지하고 있는 보복행위 중 상대적으로 피해금액과 파급효과가 큰 심각한 보복 행위에 대해 바로 관계기관에 입찰참가 제한을 요청하는 제도로 올해 초부터 시행하고 있다.

교묘한 거래에 하청업체만 피해

건설 대기업 H사와 관련해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한 하청업체가 있다. 피해업체는 영남지역 연고의 A사다.

A사에 따르면 H사는 하청업체 A사가 납입한 계약금 8억원을 고스란히 챙긴 뒤 H사에도 계약파기의 결정적 책임이 있다며 계약금 반환을 요구하자 “법대로 소송해서 찾아가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A사가 작성한 진정서 내용을 살펴보면 A사는 2013년 7월경 H사가 소유한 부산지역 부동산을 놓고 매매 계약을 채결했다. 이 과정에서 H사 측은 A사가 해당 부동산을 매입하는데 필요한 자금을 원활하게 대출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자금대출에 문제가 절대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말로 안심시키기도 했다.

H사라는 대기업이 약속한 내용이었기 때문에 A사 측은 그 말을 그대로 믿고 H사가 요구한 대로 계약서 작성 전 미리 2억원을 입금했다. 돈을 보낸 후 대출이 원활하게 추진되지 않아 불안해진 A사는 H사 측에 문제를 논의했으나 H사는 “전혀 걱정할 것 없고 약속한대로 대출이 나올 수 있도록 해 줄테니 계약서를 정식으로 작성하자”고 종용했다. 이에 A사는 H사 측의 말만 믿고 그대로 계약서에 서명했다.

계약금 1차 지급, 1차 지급이 될 때까지만 해도 H사 측은 대출이 잘 추진되어 갈 것 같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A사를 안심시켰다. 그러나 계약금 8억원이 모두 건너간 이후 H사의 태도는 갑자기 돌변했다. 대출건이 잘 안 될 것 같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A사에 전달한 것이다. 이에 A사는 “이렇게 되면 부동산 매매계약을 성사시키기 어렵게 되는 것 아니냐”고 따졌다. 이에 H사는 “계약은 계약이니 매입잔금을 계약서에 명시된 날까지 납입하지 못할 경우 계약은 파기되는 것으로 알겠다”며 그동안 A사의 모든 편의를 봐줄 듯 하던 태도와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였다.

이에 대해 A사 관계자는 “H사 및 임직원(경영지원실 지원팀)의 비도덕적인 행위로 무지하고 선량한 소기업을 상대로 14년 방치한 건물을 감언이설로 속이고, 기망해 대출이 불가한 것을 뻔히 알면서 120억원이 대출된다고 우리를 속였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H사는 ‘갑’의 지위에서 잔금을 계약서상 입금날자에 입금할 수 없는 상황이 된데 대출을 장담하며 도와주겠다고 한 자신들의 책임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잔금납입일이 며칠 지났다고 일방적으로 계약 파기 후 계약금을 몰취하는 것은 부도덕 그 자체”라고 비난했다.

H사 측은 이에 대해 “우리가 대출을 책임져주겠다는 약속을 한 적은 없다. 우리가 금융기관도 아닌데 그런 약속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해당 건은 절차대로 진행했고 H사 담당자들도 이 계약 건과 관련해 A사의 편의를 많이 봐 주었으나 결과적으로 계약이행을 못했고 이에 대해 절차대로 조치를 취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중계약 갑질로 영세업체 막대한 피해

두산중공업의 하청업체에 대한 갑질이 도를 넘어선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피해업체는 부동산분양 사업자인 B사다. 이 회사 관계자에 따르면 2015년 9월경 박모씨가 용인에 있는 두산중공업이 건설한 두산위브 아파트를 매입형 분양대행을 할 수 있도록 해 줄테니 30억원을 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B사 관계자인 K씨는 1124세대 분양하는 조건으로 박씨에게 20억원, 박씨를 소개한 사람에게 10억을 주기로 하고 50억원을 KB신탁에 공탁을 걸고 (주)B라는 법인으로 시행사인 C사와 계약을 했다.

K씨는 “박씨는 두산그룹의 박용만 회장과 호형호제라고 했고 그래서 H상무라는 사람이 본인의 지시를 거역할 수 없다고 말해 귀가 솔깃했다”며 “우리에게는 분양만 잘하면 된다고 해서 우리는 분양할 인원을 200명 세팅하여 용인 현장으로 투입했다. 그리고 2달 정도 현장의 가격을 형성하고 주위 부동산이 흐려놓은 가격을 바로 잡아서 분양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려고 몇세대 소유권 이전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문제가 생긴 것은 뭔가 잘 될 것 같던 때 발생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박씨가 두산에서 정산해 줄 돈이 없으니 분양을 중단하라고 한 것이다. 지금 분양해도 분양 수수료도 줄 수가 없고 2016년 4월경에 분양대행 수수료를 정산해 줄 수 있으니 지금 분양을 하지 말고 분양팀들을 빼라고 요구한 것이다. 그리고 다른 조건으로 다시 재계약을 해야 한다고 억지를 부렸다. B사 입장에서는 결국 버티지 못하고 분양팀을 철수 시킬 수밖에 없었다.

이후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두산의 Y차장이라는 인물이 “현재 되어 있는 계약은 파기를 하고 재계약을 해 줄테니 12월에 계약기간이 종료되는 80여 세대를 당장 분양하라”고 요구해왔다.

B사는 재계약을 하고 현재 계약을 파기해야 한다고 밝혔으나 두산 측은 그렇게는 못해준다고 못 박았다.

이에 박씨는 본인이 H상무에게 말해서 해결해준다고 하고 한 달을 시간을 끌었고 결국 B사는 계약이 파기되고 말았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더 황당한 사건이 B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을 중간에서 처리해주겠다던 박씨가 두산과 직접 계약을 해서 분양을 한다는 것이었다.

B사 관계자는 “처음에 박씨가 Y차장이 다른 업체로부터 뒷돈을 받은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Y차장은 자기 말을 잘 듣고 H상무는 박씨가 직접 큰 뒷돈을 줬기 때문에 본인 말을 잘 들을 수밖에 없다고 말해 그대로 믿었다”며 “그러면서 일 하는데 협조를 잘 해줄 것이라고 해서 그 말만 믿고 일만 열심히 했지만 알고 보니 박씨의 농간과 두산의 횡포에 현장을 빼앗기고 쫓겨나기만 했다”고 울분을 토했다.

우리은행, 지점장 사기 피해 방치

우리은행은 지점장의 사기로 부도를 맞은 중소기업들의 처지를 방치해 논란이 일고 있다.

유명 캐릭터 ‘헬로키티’를 국내에 유통했던 지원콘텐츠는 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우리은행을 규탄하는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이날 간담회에는 지원콘텐츠를 비롯해 관련 피해자 100여 명이 참석했다.

피해자들은 “국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이 국민들의 혈세가 투입된 공기업 우리은행의 사기행위로 말미암아 파탄에 빠져있다”며 “겉으로는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을 떠들고 있지만, 한쪽에선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이 죽겠다고 호소해도 무시하면서 ‘법대로’를 주장하고 있다”고 우리은행을 비난했다.

지원콘텐츠는 지난 2011년 어음 할인을 해주겠다는 우리은행 학동지점 지점장과 부지점장의 말을 믿고 어음을 줬다가 입금 시일까지 자금을 받지 못하고 어음도 돌려받지 못했다. 이 때문에 ‘헬로키티’로 매년 수백억 원의 매출을 올리며 코스닥 상장까지 눈 앞에 두고 있던 지원콘텐츠는 같은 해 11월 부도를 맞았다. 이에 따라 주주, 협력업체 등 700여명 연쇄 피해를 입었다.

지원콘텐츠는 2011년 경찰에 우리은행을 고소했고, 이후 우리은행 학동점 지점장과 부지점장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및 사기 혐의로 실형을 선고 받았다. 대법원은 지난해 12월 이들의 상고마저 기각했다. 그러나 우리은행은 아직까지 아무런 피해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윤지환기자 musasi@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