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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 폐쇄 이후, 대기업 '상생' 행보는

개성공단 중단, 입주기업 ‘한숨’… ‘상생’ 약속한 대기업, 아직 유효한가

패션 대기업, “기존과 같이 계속 거래할 것”

롯데백화점, 입주 기업 돕기 바자회로 구설수 올라

남몰래 손해배상 요청하는 대기업들로 눈물 흘려

현대아산, 국내 건설로 눈 돌리며 남북경협 재개만 기다려

지난 2월, 개성공단의 시간이 멈췄다. 북한의 핵실험 여파로 정부가 개성공단 중단 결정이라는 강수를 띄운 것이다.

강경한 대북 정책을 위한 선택이라고 하나 입주 기업들은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갑작스레 결정된 공단 가동 중단으로 대기업들과의 거래가 끊어질 것을 걱정해야 하고, 근로자들 또한 하루 아침에 일자리를 잃게 됐다. 입주 기업들의 한숨은 깊어가고 있다.

중단 결정이 워낙 빠르게 내려졌기 때문에 입주 기업들과 거래하던 대기업들은 ‘상생’을 내세웠다. 거래를 이어감과 동시에 성금 전달, 각종 바자회로 입주 기업을 향한 온정의 손길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 훈훈할 수만은 없다. 개성 대기업의 ‘상생 약속’이 이어지고 지금 이 시점에도 이어지고 있는지 점검해 봤다.

대기업에겐 미미한 물량, 입주기업에겐 ‘전부’

지난 2월, 정부의 개성공단 가동 중단 직후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과 거래를 이어오던 대기업들은 거래를 고수하겠다는 입장을 취했다.

특히 패션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는 대기업들의 결정에 눈길이 쏠렸다.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에 따르면 개성공단에 입주해 있는 124개 기업 중 섬유기업이 가장 많은 58%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이와 거래하고 있는 패션 대기업들은 생산에 차질을 입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가동 중단 결정이 내려진 지난 2월 15일, 삼성물산, LF, 코오롱 등 패션 대기업들은 그대로 거래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지난 2013년, 개성공단 임시 중단 시 패션 대기업들이 바로 거래를 끊어 여론의 질타를 입은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개성공단 가동 중단이 두 달째를 향해 가는 4월 초, 일단 패션 대기업들은 지난 2월과 같은 입장을 고수한다는 입장이다.

삼성물산은 전체 물량의 5% 미만을 개성공단 입주 기업과 거래하고 있다. 남성복 로가디스에서 바지 라인을 납품받아 왔다. 공장 가동이 중단된 지 두 달이 흘렀지만 삼성물산은 지난 2월에 약속한 상생 기조를 이어간다는 방침을 밝혔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입주 기업 중 개성 말고도 다른 곳에 공장을 둔 기업들도 있어 거래를 이어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타격은 있다. 당장은 괜찮으나 내년 물량으로 예정된 원단 확보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아예 손해가 없다고 할 순 없지만 저희보다 어려운 입장에 처한 중소기업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상생 기조를 이어간다는 입장이다”라고 밝혔다.

LF는 전체 물량의 1%를 개성공단 입주 업체 3곳을 통해 납품 받고 있다. 주 품목은 남성복 바지와 등산복 셔츠 등이다. LF 역시 입주 기업과의 거래를 계속해 나간다는 입장이다. LF 관계자는 “거래해 왔던 입주 기업들은 개성공단뿐만이 아니라 해외에도 공장 라인을 가동하고 있어 이를 통해 납품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입주 기업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현재 거래를 계속 유지하겠다는 설명이었다.

코오롱에프엔씨는 전체 물량의 10% 미만을 개성공단 입주 업체들과 거래하고 있다. 전체 물량으로 보면 생산량에 큰 차질을 줄 정도는 아니지만 일단은 입주 기업들과의 거래를 이어가는 종전의 방식에서 큰 변화는 없다.

그러나 언제까지 아름다운 상생이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가동 중단으로 인한 대금 미지불과 거래 중단 문제가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개성공단기업협회는 지난 3월 11일, 패션 대기업 형지의 계열사인 형지엘리트가 결제 기일이 지난 결제 대금에 대해 불가항력적인 사유로 개성에 놓고 온 원부자재 가치와 상계 후 차액에 대한 배상을 통보했다고 밝혔다. 개성공단기업협회에 따르면 원부자재에 대해 부동산 담보까지 설정한 상황에서 형지엘리트가 미루고 있는 결제 대금은 16억원에 달한다. 개성공단기업협회는 “패션그룹 형지의 자회사인 형지엘리트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도산위기에 빠진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을 위해 최소한의 배려를 해 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형지엘리트는 비대위 주장과 달리 1개 업체에는 납품대금을 지급했고, 나머지 3개 업체와는 총 10억원 규모의 대금 지급에 대해 논의하고 있지만 협력업체들이 원부자재 손실에 대한 논의 없이 무조건적인 거래 대금 지급만 주장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형지엘리트는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이 입은 물질적ㆍ정신적 피해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하지만 입주기업에 귀속된 원부자재를 회수하지 못한 피해가 개성공단 협력업체에 지급할 임가공비보다 훨씬 더 많다”고 강조했다.

비난 여론이 일자 형지엘리트는 협력 대금을 다시 지급하는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형지엘리트가 임가공비 지급을 미뤄온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생긴지 이틀 만에 형지는 최병오 회장이 전날 계열사 사장단 회의를 열고 개성공단 사태로 어려움을 겪는 협력업체에 대한 지원과 상생경영을 주문했다고 설명했다. 최 회장은 “개성공단 사태를 국가 안보 차원으로 받아들인다”며 “협력업체의 어려움을 돕는 것은 물론 국내 의류·봉제산업의 상생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대승적 차원에서 협력업체의 임가공 거래대금을 우선 지급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전반적으로 상생을 강조하는 분위기지만 개성공단 중단이 ‘임시’가 아닌 ‘무기한 폐쇄’가 되면서 형지와 같은 사례가 더 발생할 가능성은 커지고 있다. 실제로 개성공단 가동 중단으로 인해 생산을 맡긴 제품을 찾지 못해 소비자들의 크고 작은 피해도 발생했다. 마포구, 성북구 등 서울 시내 일부 중학교에선 입학한 지 한 달이 지나도록 신입생들이 체육복을 사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학생들의 체육복이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이 만드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패션 대기업들의 전체 생산 물량에서 개성공단 입주 기업이 맡고 있는 물량의 비율은 1~10%. 대기업들은 이에 대해 미미한 분량이라 개성공단 중단에도 공급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중소기업 입장에서 보자면 절대로 미미한 분량이 아니다. 대부분이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업체인 입주 기업들은 사실상 대기업의 거래에 따라 존폐가 달려있기 때문이다.

대기업들은 기존 입주 기업들과 거래를 끊지 않겠다는 입장을 나타낸 바 있다. 물량이 크지 않고 해외 공장을 통해 조달할 수 있는 입주 기업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외에 생산 라인을 두고 있는 입주 기업은 그다지 많지 않다. 때문에 입주 기업들은 당장은 대기업들이 거래를 지속하더라도 향후 물량을 채우지 못할 경우에는 거래가 끊길 수도 있다는 걱정을 하고 있다. 대기업 또한 언제까지 아량을 베풀 순 없기 때문이다. 개성공단에 입주해 있는 기업 관계자는 “재투자를 통해 해외에 생산라인을 구축해야 하지만 자본금 여력이 없는 회사가 대부분이다”라고 어려운 상황을 설명했다.

물론 모든 대기업이 거래를 이어가는 건 아니다. 일부 대기업들은 이미 제품 생산에 차질이 생기자 보상을 요청한 곳도 있다. 개성공단에 입주해 있는 또 다른 기업 관계자는 “몇 군데에선 이미 이의 제기를 해 온 것도 있다. 하지만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는 건 우리 같은 중소 기업 입장에선 대기업의 비위를 거스르면 거래가 영원히 끊어지는 걸 가장 두려워하기 때문”이라 밝혔다. 결국 개성공단의 상생 아래에도 갑과 을의 보이지 않는 눈치보기가 있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 중소기업청 관계자는 “만약 대기업이 일방적으로 거래를 끊는다면 중소기업들이 관련 기관에 제보를 할 수 있다. 이에 관해 모니터링을 하고 있으나 크게 문제가 된 사안은 없다고 파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개성공단 바자회는 ‘양날의 검’

패션 대기업 외에도 유통 기업들 또한 상생을 내세우며 여러 지원책을 제시했다. 특히 일부 유통 기업에서는 개성공단 바자회를 통해 개성공단 입주 기업을 지원하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롯데백화점은 지난 2월 19일부터 25일까지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을 돕기 위한 바자회를 개최했다. 롯데백화점에 따르면 이 행사는 당초 목표보다 10% 높은 매출을 올렸으며 같은 행사장에서 지난해 같은 기간 열린 기획전 매출과 비교해도 10% 이상 매출액이 높았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개성공단 폐쇄가 화제가 되면서 입주기업들을 도우려는 행사에 많은 소비자가 관심을 보였다”고 말했다. 매출액이 예상보다 높자 롯데백화점은 2차로 바자회를 다시 열기도 했다.

그러나 이 바자회에 개성에서 생산되지 않은 물건들이 껴 있어 논란을 불러오기도 했다. ‘메이드 인 개성’ 이 아닌 ‘메이드 인 베트남, 차이나’ 상품들이 곳곳에 눈에 띈 것이다. 이는 롯데백화점이 개성공단 입주 기업이 아닌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에게 하청을 주는 대기업과 함께 바자회 행사를 준비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에게 하청을 주는 대기업 제품의 재고까지 팔다 보니 이러한 일이 발생한 것이다.

논란이 생기자 롯데백화점은 2차 바자회 때는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과 직접 교류해 2차 바자회를 준비했다. 이를 통해 참가 기업 또한 상당한 이익을 얻었다는 게 관계자의 전언이다. 또 2차 바자회의 경우 유통기업에게 돌아가는 수수료 또한 낮게 측정해 입주 기업들을 배려했다.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에게 이러한 바자회는 득이자 실이다. 입주 기업들은 대부분 생산을 전문으로 하는 OEM 기업들로 유통에는 노하우를 갖고 있지 않다. 만약 롯데백화점과 같은 대기업이 유통에 필요한 장소나 인력을 제공해 준다면 입주 기업들 입장에선 환영할 만하다. 실제로 서울시가 주최한 개성공단 기업 돕기 바자회의 경우 장소제공부터 판매 인력까지 합리적으로 제공해 입주 기업들이 많은 이익을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입주 기업들이 개성공단의 갑작스런 중단으로 재고품을 많이 갖고 있지 않고, 만약 판매에 필요한 인력이나 장소 제공, 고가의 수수료를 유통 기업이 요구할 경우 더 큰 어려움에 처할 수도 있다는 단점도 안고 있다. 특히 이미 공단 가동이 중단된 시점에서 팔 수 있는 물건이 많지 않다는 점은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하고 있다. 바자회를 마련해 줘도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개성공단 입주 기업 관계자는 “지방 자치단체를 비롯해 다른 유통 대기업에서도 바자회 문의 전화가 많이 오고는 있으나 물량이 없어 선뜻 바자회에 응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희망의 끈 아직 놓지 않은 현대아산

국내 대기업 중 유일하게 남북경제협력 사업을 주력으로 두고 있는 현대아산은 신규 사업발굴에 분주하다. 하지만 남북경협 재개에 대한 희망은 버리지 않은 상태다.

남북경협 사업이 중단되면서 현대아산은 건설 및 마이스(MICE)로 잠시 시선을 돌렸다. 현대아산은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2008년부터 국내 건설 시장에 뛰어들었다. LH 공공주택 건설을 포함해 충남도청 등 많은 공공기관들이 이전한 홍성에 빌앤더스 오피스텔, 서부트럭터미널 지하차도 건설이 현대아산의 국내 건설 대표작이다.

MICE 사업에도 참가하고 있다. MICE 사업은 금강산 관광 중단으로 현대아산이 기존에 인력들을 연관성 있는 사업에 연결하기 위해 시작됐다. 지난해 열린 유엔글로벌콤팩트(UNGC) 코리아 지도자 정상회의를 진행했으며 이외에도 다양한 학술대회 및 컨퍼런스를 운영했다.

면세점도 운영하고 있다. 이미 현대아산은 개성과 금강산에서 면세점을 운영한 경험이 있다. 이러한 경험을 살려 지난 2011년부터 양양 국제공항 면세점과 카페리선 위동훼리의 중국-인천 노선에서 선상면세점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국내 건설 시장에서 현대아산의 영향력은 크지 않다. 지난 2015년 기준으로 국내 건설사 중 현대아산의 도급 순위는 103위이다. 현대아산 관계자는 “관광과 건설 등 기존에 해 오던 분야에서 연계해 국내 사업을 펼치고 있다. 남북 경협 사업이 중단됐지만 향후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분야에서 수익을 창출해 나갈 것”이라 설명했다.

현대아산의 건설 및 MICE 사업은 장고 끝에 탄생했다. 기존 현대아산 인력들이 새롭게 골몰할 수 있는 사업 분야가 필요했고, 무기한으로 중단된 남북 경협 사업이 언제 재개될지 미지수인데 마냥 기다릴 순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아산의 남북 경협 사업에 대한 의지는 강하다. 국내에서 건설 및 MICE, 면세점 사업을 펼치는 것 역시 수익 확보 측면도 있지만 향후 남북 경협 사업이 재개되면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한 것이다. 현대아산 관계자는 “향후 금강산 관광 등이 다시 시작되면 국내 건설 및 면세 사업에서 쌓은 노하우를 통해 남북경협 사업을 더 효과적으로 벌일 수 있을 것”이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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