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당부터 맥주집까지… 잠잠하던 대기업 골목상권 침투, 더 다양해져

CJㆍ이랜드ㆍ신세계푸드, 한식뷔페로 한식 상권 장악

‘정용진 맥주집’ 등 수제맥주 프렌차이즈 연이어 출시

동반위,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 통해 대기업 상생 주문

동반위 권고 강제성 없어… IT 기업 골목상권 침해 가능성도

무분별한 문어발식 사업 확장으로 대기업들은 과거 여론의 뭇매를 맞은 바 있다. 이른바 골목상권까지 대기업의 침투가 이뤄지면서 동네 빵집들이 문을 닫았고, 재래시장 또한 존폐위기를 겪기도 했다. 이러한 홍역을 치른 후 대형마트의 의무 휴업과 빵집 프렌차이즈의 입점 위치 제한 법안이 탄생하기도 했다.

한동안 잠잠했던 골목상권 침해 논란이 이제 다른 업종에서 시작되고 있다. 새로운 외식 트렌드로 자리잡은 한식뷔페와 수제 맥주집이 대표적이다. 동반성장위원회가 진출 자제를 요청하고 있으나 이와 무색하게 계속 몸집을 키우고 있다.

한편 네이버와 카카오 등 공격적 사업 확장에 나서는 IT 거대 기업들 또한 새로운 골목상권 침해 가능성을 안고 있다. 지난 2010년 초보다 더 한 거대 공룡들이 골목상권 침투를 눈 앞에 두고 있다.

CJ ‘한식당’ 들른 후 ‘정용진 맥주집’에서 한 잔 할까

유통업계의 새로운 외식 트렌드로 자리 잡은 한식뷔페가 최근 유통 대기업들의 신규 진출 영역으로 떠올랐다. 현재 국내 대기업이 운영 중인 한식뷔페만 해도 이랜드의 ‘자연별곡’, 신세계푸드의 ‘올반’, CJ푸드빌의 ‘계절밥상’이 있다. 아모제푸드도 최근 한식뷔페 ‘솜씨’의 문을 열었다.

CJ푸드빌의 계절밥상은 지난 2013년 판교에 문을 연 이후 현재 전국의 37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전국 농가와의 협업을 통해 상생을 중시한다는 목적을 두고 탄생했다. 신선한 식재료를 바탕으로 가성비가 높아 소비자들의 좋은 평가를 듣고 있다.

롯데리아 역시 한식뷔페 ‘별미가’를 지난해 하반기 개점 목표로 준비한 바 있다. 그러나 지난해 국정감사 기간, 골목상권 침해라는 지적을 받았고 롯데리아는 한식뷔페 개점을 전면 백지화했다. 당시 국감에서 백재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롯데그룹이 한식뷔페에 진출할 시 롯데백화점, 롯데마트 등을 통해 마음만 먹으면 일시에 골목 상권을 장악할 수 있다”고 지적하자 노일식 대표는 “롯데그룹을 통한 국내 한식뷔페 진출 계획은 없다”고 설명했다.

대기업의 외식사업 진출은 한식뷔페뿐 만이 아니다. 신세계를 비롯해 유통 및 식품 대기업들은 수제맥주까지 손을 뻗었다. 신세계푸드는 반포에 수제맥주 전문점 ‘데블스도어’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 2014년 11월 문을 연 데블스도어는 올해 부산과 하남에도 매장 두 개를 더 열 예정이다. ‘정용진 맥주집’으로 유명한 데블스도어는 국내에서 접하기 어려운 해외 수제 맥주를 공수해 맥주 마니아들의 발길을 잡아 끌고 있다.

롯데주류는 잠실에서 클라우드 비어스테이션을 운영하고 있다. 파리바게트 등을 운영하고 있는 SPC의 자회사 삼립식품은 독일식 펍인 그릭슈바인을 운영하고 있다. 육가공기업 진주햄은 수제맥주회사 카브루를 지난해 인수했다. 비어버거, 봉구버거 등 중소 업체들의 프렌차이즈가 이끌던 수제맥주 시장에 대기업들이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다.

대기업들의 프렌차이즈 신설은 기존 자영업자들의 반발을 불러오고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백재현 의원이 한국외식업중앙회에서 받은 ‘대기업 한식뷔페 출점에 따른 외식업 영향조사’에 따르면 서울ㆍ경기지역에서 한식뷔페가 개장한 이후 주변 5㎞ 이내 음식점 45.2%의 매출이 줄었고, 이들의 매출 감소율은 평균 15.7%에 달했다. 자료에 따르면 한식뷔페로부터 1㎞이내 음식점의 52.2%, 1㎞ 이상~5㎞ 이내 음식점 39.3%의 매출이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한식뷔페와 고객층이 겹치는 한식당(51.4%)의 타격이 가장 컸다. 이어 일식(43.1%), 서양식(39.4%), 중식(35.2%) 등이 손해를 입은 것으로 집계됐다.

과거에도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해는 비난을 받았다. 재래시장이 주변 대형마트로 인해 매출액에 타격을 입으면서 현재 대형마트들은 월 2회 주말 의무 휴업을 하고 있다. 빵집 또한 대기업의 무분별한 진출로 홍역을 겪은 업종이다. 이로 인해 신세계 등이 검찰 수사를 받기도 했다. 2012년 대기업 프렌차이즈의 연이은 빵집 진출로 동네 빵집들이 문을 닫는 것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자 중소 빵집 500m 내에는 대기업 프렌차이즈가 입점하지 못하는 법이 신설되기도 했다. 지난 2월, 동반위는 빵집을 중소기업 적합 업종으로 재지정하고 다만 판교, 동탄 등 현재 개발 중이거나 개발 예정인 신도시에선 대기업 프랜차이즈가 자유롭게 문을 열 수 있도록 예외를 뒀다.

대기업, “규칙 지키며 영업 하고 있다”

한동안 잠잠한 듯이 보였던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해는 결국 빵집에서 한식뷔페로 업종만 변했을 뿐 근본적인 해결은 되지 않았다.

동반성장위원회는 보고서를 통해 지난 2006년, 중소기업 고유업종 제도 폐지 후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업 영역에 대한 무분별한 진출이 확대됐으며 이로 인해 중소기업의 경영 여건이 악화되며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다고 지적했다. 특히 글로벌 금융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는 과정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수익 불균형이 심화됐다. 이러한 이유로 중소기업이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에 대한 사업 영역 보호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를 위해 지난 2010년 동반성장위원회가 출범하면서 ‘중소기업 적합 업종’을 추진하기로 했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대기업들의 문어발식 업종 확장은 중소 상권 붕괴를 유발할 수 있어 큰 문제를 불러왔다. 동반위도 이를 경계하고 있다. 앞서 새로운 골목상권 침해의 예로 제시한 한식뷔페의 경우, 중소기업 적합 업종 대상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이는 강제성을 갖지는 않는다. 동반위는 권고 등을 통해 대기업들에게 시장 진출을 자제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동반위는 한식, 중식, 서양식 및 7개 업종을 ‘음식업’으로 지정해 대기업의 진출을 자제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권고가 무색하게끔 한식뷔페 지점수는 점차 늘어가고 있다. 동반위 관계자는 이에 대해 “현재 검토 중이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골목상권 침해라고 비판을 받는 대기업 입장에서도 억울하다는 항변이 나오고 있다. 동반위는 지난 2013년부터 대기업이 외식 업종에 진출할 경우, 수도권 및 광역시에서 교통시설 출구로부터 100m 이내, 그 외 지역은 교통시설 출구로부터 반경 200m 이내, 연면적 2만 제곱미터 이상 건물에서 출점이 가능하도록 제한해 놨다. 대기업들은 이러한 조건을 지키면서 영업장의 문을 열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프렌차이즈를 운영하는 유통 대기업 관계자는 “대기업의 프렌차이즈와 일반 식당들의 경우 물리적으로 같은 공간이 있지도 않을 뿐더러 분리된 상권으로 보는 것이 맞다”고 밝혔다. 대기업의 프렌차이즈가 일반 식당들에게 미치는 불이익 또한 정확한 자료로 입증된 것이 없어 근거가 부족하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IT 기업 확장으로 ‘신 골목상권 침해’ 논란 커져

‘신 골목상권 침해’ 또한 문제다. 특히 네이버, 카카오 등 IT 기업들의 O2O(Online to Offline) 사업 확장으로 기존 영역에 IT 기업 진출이 활발해지고 있다.

대표적 업종은 미용실이다. 카카오는 올 상반기 내로 스마트폰으로 미용실을 미리 예약하고 결제까지 끝마치는 ‘카카오 헤어샵’을 출시한다. 최근 뷰티 콘텐츠 강화에 나서고 있는 네이버 역시 모바일로 미용실을 예약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뚜껑이 열리기 전이지만 IT 기업들의 기존 사업장 진출은 상상 이상의 파급력을 지닐 것으로 보인다. 모바일을 토대로 고객과 미용실을 연결하는 중간 역할을 한다면 기존 업장들의 성공과 폐업을 결정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구체화된 것은 없지만 대리운전 서비스인 ‘카카오 드라이버’처럼 중간 수수료 이견 차이로 기존 업계의 반발을 가져올 가능성도 존재한다.

동반위가 지정한 중소기업 적합 업종에 이ㆍ미용업은 아직까지 해당하지 않는다. 다만 기존 유통 대기업들의 의무로 여겨졌던 상생이 IT 기업들에게도 해당하게 됐다. 특히 카카오가 대기업 집단으로 지정되면서 강해진 힘만큼 그에 맞는 사회적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현재 자제와 권고를 통해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해를 막곤 있지만 이 권고가 얼만큼의 효과를 가져올지는 미지수다. 대형마트의 임시 휴업이 재래시장 활성화에 그다지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평가를 듣고 있는 와중에 좀 더 근본적인 골목상권 살리기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명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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