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과 골리앗 싸움… SK플래닛 도마 위

스타트업 ‘오큐파이’, 지적 재산권 침해로 SK플래닛 고소

SK플래닛, “특허심판원 결과 따라 진행할 것”

좋은 아이디어도 대기업이 따라 하면 ‘속수무책’

모바일 내비게이션 ‘카카오내비(구 김기사)’를 저작권 침해 혐의로 고소한 SK플래닛이 이번엔 스타트업의 지적 재산권을 침해했다는 의혹을 받게 됐다.

소프트웨어 개발 전문 스타트업인 ‘오큐파이’의 신정우 대표는 지난 2013년 등록한 상표 ‘쉐이크 어 위시’를 SK플래닛의 오픈마켓 11번가가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신 대표는 여러 차례에 거쳐 SK플래닛 측에 입장 설명을 요구했지만 제대로 된 대답을 듣지 못했고 결국 형사고소까지 가게 됐다. 스타트업이 대기업을 상대로 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추적했다.

저작권 침해 제기하자 “앞으로 자주 보게 될 것”

소프트웨어 개발 스타트업인 오큐파이(대표 신정우)는 지난 3월, SK플래닛을 ‘지적 재산권 침해 혐의’로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점에 형사고소했다.

신 대표가 SK플래닛을 상대로 소송전을 불사하게 된 건 ‘쉐이크 어 위시(Shake a Wish)’라는 상표 때문이다. 신 대표는 오큐파이의 마케팅에 사용할 ‘쉐이크 어 위시’라는 상표를 지난 2013년 저작권 등록했다. 그런데 지난해 말, SK플래닛이 운영하는 온라인 오픈마켓 11번가가 이 상표를 무단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오큐파이는 올해 1월 4일 SK플래닛 측에 내용증명을 보냈으나 SK플래닛은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이후 1월 27일, 2차 내용증명을 보냈는데 이후 SK플래닛이 답신 대신 ‘쉐이크 어 위시’라는 상표를 ‘쉐이크 어 드림’으로 슬쩍 바꿔 사용한 것을 알게 됐다.

오큐파이는 2월 12일 3차 내용증명을 발송해 적절한 대응을 하지 않을 경우, 법적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통보했고 SK플래닛 측이 대리인인 변리사를 보내 신 대표와 만남을 가졌다. 오큐파이 측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변리사는 “(SK플래닛은) 대기업의 특성상 현재 부서간 책임 떠넘기기를 하고 있으며, 협상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게다가 “자신의 수임료의 일부를 떼어 줄 테니 이쯤에서 끝내는 것이 어떠냐”, “그렇지 않으면, 많이 귀찮아질 것”, “자주 보게 될 것”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했다.

신 대표가 처음부터 고소를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원만한 해결을 하려 했지만 SK플래닛 측의 안이한 대응 방식에 결국 형사 고소라는 방법을 택하게 됐다. 오큐파이 측이 SK플래닛의 저작권 침해를 알게 된 지난 연말부터 올해 4월까지 신 대표가 SK플래닛 관계자를 만난 적은 한 번도 없다. SK플래닛 측 변리사를 만난 것이 유일한 접촉인데 그마저도 대리인의 무례한 언행으로 마음이 상했다고 신 대표는 말했다. 신 대표는 “규모가 큰 대기업이기 때문에 즉각적으로 대응이 어렵다는 것은 어느 정도 감안했으나 내용 증명을 여러 차례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몰래 상표권을 바꿔 놓는다든지, SK플래닛 측 변리사의 무례한 언행까지 더 이상 사태를 두고 보기 어려워 고소를 감행하게 됐다”고 밝혔다.

SK플래닛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SK플래닛은 메이크어위시 재단과 협력해 기부의 일환으로 ‘쉐이크어위시’를 진행해 왔다. 소비자가 11번가 앱에 접속해 스마트폰을 흔든 횟수를 기부금으로 환산해 11번가가 ‘난치병 어린이들의 소원 들어주기’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이때 협력을 맺은 ‘메이크어위시’ 재단의 이름을 딴 ‘쉐이크어위시’라는 프로그램 명을 사용한 것이다. SK플래닛 측은 “지적 재산권의 경우 상표권을 등록한 업종에서만 효력을 발휘한다. SK플래닛은 이를 상표로 사용했다기보단 메이크어위시 재단과 협의해 슬로건을 노출한 것”이라 설명했다. 이번 고소에 대해 SK플래닛 측에 문의하자 “현재 특허심판원에 지적 재산권 침해가 맞는지 확인 중이다. 결과가 나오면 그에 합당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 밝혔다. 그 결과에 따라 향후 대응책이 달라진다는 뜻이었다.

이에 대해 오큐파이 신정우 대표는 “특허심판원의 결정은 소송 시 참고 사항일 뿐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SK플래닛은 내비게이션 티맵 저작권과 관련해 모바일 내비게이션 ‘카카오내비(구 김기사)’를 서비스하는 록앤롤을 지적재산권 침해 혐의로 고소한 바 있다. 이 소송은 현재 진행 중이다. 과거 록앤롤이 운영하던 김기사는 현재 카카오에 편입돼 카카오내비로 서비스되고 있다.

스타트업에게 저작권 침해 소송을 당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SK플래닛이 자사의 지도 데이터베이스 저작권에는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정작 본인들은 스타트업의 지적 재산권을 침해했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에 대해 SK플래닛 측은 “ ‘김기사’는 당사와의 계약이 종료된 후에도 지도 데이터를 무단 사용한 혐의로 인해 고소했다. 이는 양사간 이해관계가 없었던 이번 오큐파이 저작권 침해와는 다른 경우다”라고 선을 그었다.

대부분의 대기업과 스타트업들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국내 대기업들은 사회 공헌의 일환으로 스타트업 지원에 나서고 있다. ‘상생’이라는 명목 하에 스타트업에게 지원금을 투자하거나 스타트업 창업을 도와주는 액셀러레이터 운영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그런데 좋은 의도로 시작한 스타트업 지원이 도리어 아이디어를 빼앗는 부작용을 낫기도 한다. 스타트업 관계자는 “지원을 해준다는 명목 하에 아직 등록되지 않은 스타트업의 아이디어를 공개적인 프레젠테이션 형식으로 발표하는 건 상당히 위험한 것”이라 경고하기도 했다. 굵직굵직한 사업 아이템은 물론, 문구나 로고 등 작은 아이템까지 만천하에 공개되기 때문이다.

설사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갖고 사업을 시작하더라도 대기업이 막강한 자본과 영향력을 갖고 시장 진출을 한다면 원조인데도 불구하고 후발주자에게 밀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좋은 아이디어가 생기면 맨 처음부터 대기업에게 가지고 가는 게 가장 성공할 수 있는 길’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겨우겨우 자금 유치를 통해 세상에 아이디어를 내놓더라도 곧 대기업이 비슷한 아이템을 내놓으면 시장 경쟁에서 밀리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는 카카오택시와 리모택시 사례다. 앱택시 시장에서 활발한 영업을 펼치던 리모택시는 카카오택시 출범 후 투자자들을 찾지 못해 사업을 접어야 했다. 애초부터 대기업과 스타트업이 똑같은 아이디어를 갖고 경쟁하는 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일 뿐이란 것이다.

이명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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