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킹 옛말…보수 줄고, 자리 불안

애널리스트 숫자 감소에 업무 스트레스 심각

매수 보고서에 투자자 신뢰 잃어… 위상 ‘흔들’

‘로보어드바이저’ 등장, 애널리스트 대체할까

몇 년 전 한 증권사를 나온 전직 애널리스트 A씨는 요즘 같은 업계에 종사했던 옛 동료나 선후배를 만나면 “부럽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고 했다. ‘연봉킹’의 대명사라 불리던 애널리스트들이 스스로 자리를 박차고 나온 ‘전직’을 부러워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A씨는 애널리스트들이 칭송받던 과거의 영광은 사그라들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애널리스트들의 설 자리가 점점 더 좁아지는 것으로 보인다.

애널리스트 숫자 계속 감소 중

국내 주요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의 숫자는 점차 감소하고 있다. CEO스코어에 따르면 NH증권은 2015년 애널리스트가 93명에서 76명으로 18.3% 줄었고 현대증권은 54명에서 47명으로 13% 감소했다. 한국투자증권의 경우 2014년 66명이었던 애널리스트가 지난해 58명으로 줄었고 미래에셋은 31명에서 28명으로 감원됐다. 대우증권은 82명에서 79명으로, 메리츠종금증권은 27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1명 줄었다. 37개 증권사에서 총 81명의 애널리스트들이 사라졌다. 숫자만 보면 언뜻 감소폭이 큰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문제는 이같은 애널리스트 감원 현상이 몇 년 전부터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는 데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내 증권사 애널리스트 숫자는 2010년 1286명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다. 2011년 1155명을 기록해 큰 폭으로 감소하더니 다음해인 2012년에는 1212명으로 소폭 상승했다. 그러나 이후 2013년 1115명, 2014년 986명으로 줄었다.

전문가들은 애널리스트 감원의 이유로 ‘고연봉’을 꼽는다. 앞서 언급한 A씨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식시장에 대한 불신과 경기침체가 겹쳐 거래 물량 자체가 줄었는데 비해 애널리스트들은 고연봉을 챙기니 구조조정 명단 상위에 랭크됐다”고 주장했다. 애널리스트들이 호황을 누리던 시절에는 연봉이 일인당 수억원에 달했다. 증권사 측에서는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여기에 애널리스트가 직접적인 수익을 내는 창구가 아니라는 인식도 한몫 했다.

애널리스트들은 증권사 측 비용 줄이기의 방법으로 감원과 함께 감봉의 바람도 맞았다. A씨는 “애널리스트들의 연봉이 예전만 못하다”면서 “물론 일반 봉급자보다 더 버는 것은 사실이지만 영화에나 나올 법한 ‘젊은 부자’를 생각하면 안 된다. 그건 일부 잘나가는 애널리스트 이야기”라고 했다. 오히려 애널리스트들은 감원으로 인해 일할 사람이 적은데도 업무량은 같으니 일에 파묻혀 살 수밖에 없어,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고 했다. 하지만 언제 ‘찍퇴’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조금도 게을리할 수 없다.

A씨는 “현재 애널리스트들의 업무량이 엄청난 것으로 안다”면서 “원래 일이 많기도 한데다 줄어든 인원으로 밤까지 일을 하니 한 후배는 차라리 소규모 회사로 옮기고 싶다더라”고 전했다.

그러나 이렇듯 스트레스와 압박감을 이겨내며 일을 해도 정작 보고서를 내면 질이 낮다는 지적을 받는다. 애널리스트들의 보고서가 온통 매수일색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애널리스트 입장에서는 기업에게 박한 점수를 주기 힘들 수밖에 없다며 항변한다.

평가 대상이 되는 기업이 증권사 회원인 경우가 많은데다 박한 점수를 줬다가는 자칫 해당 기업으로부터 정보 제공을 받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애널리스트들은 실제로는 매도 의견을 갖고 있어도 보고서에서는 ‘보유’로 에두른다. 지난해 동안 국내 증권사가 매수 의견을 낸 보고서가 1% 이하인 점을 봐도 애널리스트들의 보고서가 ‘매수 일변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기 ‘시들’… 신뢰회복 필수

때문에 투자자들의 애널리스트 보고서에 대한 불신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주식투자를 17년 간 했다는 오모(57)씨도 애널리스트 분석을 믿지 않은 지 오래라고 했다. 오씨는 “원래 애널리스트들은 매도보다는 매수 의견이 잦은데, 국내의 경우에는 그 비율 크기가 훨씬 크다”면서 “투자하기 위험한 회사도 매수 의견을 내니 어떻게 믿고 투자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이어 그는 “내츄럴엔도텍 사태(건강식품 백수오가 이엽우피소로 밝혀진 ‘가짜 백수오사건’) 직전에도 애널리스트들이 목표가를 상향조정 하는 등 긍정적인 의견을 보여 많은 투자자들이 손해를 입었다”면서 “투자자들로부터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소신 있고 자유로운 의견을 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처럼 감원, 연봉삭감, 업무과다에 명성마저 옛날 같지 않으니 애널리스트를 꿈꾸던 지망생들의 숫자도 예전만 못하다. 서울의 한 명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B씨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쭉 애널리스트가 되기를 희망했지만 곧 이를 접었다고 했다.

B씨는 “의사, 변호사보다도 높은 연봉을 받고 증권가를 누비는 젊은 애널리스트들을 선망했다”면서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위세가 꺾이더니 주위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떨어지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소개로 알게 된 애널리스트들이 과도한 업무에 치이는데다 위상마저 떨어져 자괴감에 빠지는 모습을 보면서 (애널리스트가 되겠다는) 생각을 접었다”고 말했다.

로보어드바이저가 등장하면서 가까운 미래에 인공지능이 애널리스트들의 자리를 상당 부분 대체할 수 있을 거란 전망도 나온다. 로보어드바이저란 로봇(robot)과 투자전문가를 뜻하는 어드바이저(adviser)를 합친 말로, 고도화된 알고리즘과 빅데이터를 통해 모바일 기기나 PC로 포트폴리오 관리를 수행하는 온라인 자산관리 서비스를 말한다. 쉽게 말해 인공지능이 탑재된 로봇 투자전문가다.

알파고가 바둑기사 이세돌과의 대국에서 이긴 후부터 인공지능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가 커졌고, 이후 로보어드바이저 상품에 가입하는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로보어드바이저의 최대 장점은 철저하게 데이터에 기반해 주식을 거래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가치 판단’이 들어가지 않으니 객관적으로 치고 빠질 때를 판단한다. 게다가 수수료도 낮고, 온라인으로 이뤄지니 사람과 대면해야 하는 불편함도 없다.

앞서 언급한 전직 애널리스트 A씨는 “아직은 로봇보다 인간 애널리스트가 한 수 위라는 믿음이 있다”라면서도 “그러나 20년 후, 30년 후는 모른다. 언젠가 펀드매니저나 애널리스트들의 자리를 로봇이 위협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경계했다.



오보람 인턴기자 boram3428@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