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수, 제대로 써야” vs “불공정한 처사”

10대 그룹 사내유보금 550조원 육박, 삼성 독보적 1위

기업들 곳간 채우고, 경영권 방어에 쓰여… ‘환수’ 주장

‘쌓아둔 돈’ 아니고 인건비 등에 쓰여…이중과세 논란도

국내 대기업들의 사내유보금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재벌 사내유보금 환수 운동본부’가 10대 재벌기업의 작년 연결재무제표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하면서 첫 불을 지폈다. 단체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작년 말을 기준으로 10대 재벌(삼성, 현대차, SK, LG, 롯데, 포스코, GS, 한화 현대중공업, 한진) 상장계열사들의 사내유보금은 총 549조6000억원이었다. 전년보다 45조7000억원(9.1%)이 늘어난 금액이다. 30대 그룹의 총 사내유보금은 753조6000억원으로 작년보다 43조3000억이 증가했다.

사내유보금 9.1% 성장 때 GDP는 2.6%

사내유보금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기업은 재계1위 삼성그룹이다. 삼성의 16개 계열사의 사내유보를 합친 금액은 총 215조3000억원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18조6000억원(9.4%)이 증가했다. 삼성그룹의 뒤를 11개 상장계열사를 두고 있는 현대차그룹이 따랐다. 총 사내유보금은 112조6000억원. 전년 대비10조5000억원(10.2%)이 뛰었다.

사내유보금 규모 3위는 SK가 차지했다. 16개 계열사의 총 사내유보금액은 12조6000억원이 늘어난 65조6300억원으로, 전년과 비교해 큰 폭(23.7%)으로 올랐다. 이어 LG그룹(44조620억, 4.1% 증가), 롯데그룹(28조7500억, 2.9% 증가) 순으로 많았다. 삼성, 현대차, SK, LG, 롯데 등 5대 기업이 보유한 사내유보금만 422조1700억원이고 1년 새 44조1800억원이 증가했다.

10대 그룹으로 넓혀 봐도 사내유보금의 증가세라는 큰 그림은 비슷하다. 조선과 해운업의 위기 풍랑을 맞고 있는 현대중공업(1조3000억원 감소)과 한진그룹(1100억원 감소)을 제외한 포스코(3482억원 증가), GS그룹(797억원 증가), 한화그룹(1조8800억원 증가) 모두 사내유보금이 불어났다.

10대 재벌의 사내유보금은 1년 새 503조9000억 원에서 549조6326억 원으로 45조7326억 원 (9.1%) 증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삼성ㆍ현대차ㆍSK 3대 재벌의 증가액이 41조6229억 원으로 전체 증가액의 약 91%를 차지했다.

진보 성향의 13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재벌 사내유보금 환수 운동본부(이하 운동본부)는 지난달 21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우리나라 GDP가 2.6% 상승할 동안 10대 재벌의 사내유보금은 9.1% 늘어났다”면서 “작년 가계부채가 1207조원으로 1년새 11% 넘게 증가하는 등 서민들의 주머니는 쪼그라드는데, 재벌들은 이익금을 곳간에 쌓아두기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운동본부의 주장은 간단하다. 재벌 사내유보금을 사회적으로 환수해 노동자ㆍ서민의 생존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계나 진보 성향의 시민단체 등에서 자주 주장하는 논리다. 실제로 명동 세종호텔 앞에서 부당해고에 대한 시위를 벌이고 있는 노동자들은 스피커를 통해 “기업들은 몇 백조의 사내유보금을 곳간에 쌓아두고… 직원들은 비정규직, 인턴으로 고용하고…자신들의 손자, 손녀에게 기업을 물려줄 생각만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이미 말이 많았던 사내유보금을 환수한다는 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사내유보금의 정의와 쓰임새, 정체성을 두고 기업 측과 운동본부 측의 의견이 갈리기 때문이다.

노동계, 재계 의견 갈려

기업들은 국민들이 사내유보금을 재벌의 ‘쌈짓돈’쯤으로 여기는 것은 ‘사내유보금’이라는 용어로 인한 오해라고 설명한다. 사내유보금은 현금뿐만이 아니라 토지, 공장, 기계설비 형태의 자산이라는 것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밝힌 지난해 말 기준 30대 그룹 사내유보금 중 현금 자산은 총 사내유보금의 6분의 1수준인 118조원이다. 재계 측은 이 현금 자산은 인건비나 임대료, 설비 투자, 원재료 구입, 차입금 상환 등에 쓰이기 때문에 ‘남아 도는 돈’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임순광 비정규교수노조 위원장은 “‘현금’이 아니라고 기업은 주장하고 있지만, 사내유보금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1년 단기금융상품'은 현금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동계 및 야당 측은 사내유보금 모두를 환수하라는 게 아니라 그 중 일부라도 떼어내 새로운 일자리 창출에 힘쓰라는 입장이다. 그간 정부로부터 여러 특혜를 받았고 국민들이 탄탄한 내수시장을 형성시켜준 덕분에 대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었으므로 이를 조금이라도 돌려 주라는 말이다. 2014년 당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대표는 대기업이 보유 중인 사내유보금의 1%만 풀어도 월 200만원을 주는 청년 일자리 30만개를 새롭게 창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법인세 인상의 움직임이 나오는 이유도 결국 같은 맥락이다.

운동본부 측은 사내유보금의 쓰임이 비정규직, 최저임금, 청년실업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쓰이지 않고 오히려 재벌들의 ‘경영권 방어’에 사용된다고 주장한다. 사내유보금의 상당수가 금융자산이나 현금자산 외에도 순환출자 지배구조를 이루는 관계기업의 투자지분 형태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운동본부 측은 “10대 재벌의 총수 소유지분은 평균 0.87%, 총수 및 총수일가 소유지분을 다 합친다고 해도 평균 3.2%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총수일가가 그룹에 대해 실제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분을 뜻하는 ‘내부지분’은 결국 기업 계열사의 순환출자를 통해 형성된 지분”이라고 주장했다.

노동계는 기업이 순이익의 80% 이상을 투자, 배당, 임금 인상 등에 쓰지 않으면 기준미달 금액의 10%를 법인세로 추가 징수하는 ‘기업소득환류세제’ 강화를 주장한다. 현재 기업은 이익의 일정액에서 투자, 임금 증가, 배당에 사용하지 않은 금액의 10%를 세금으로 내야 하는데 그럼에도 기업들의 사내유보금은 계속해서 불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총선 승리로 목소리 지분율이 커진 더민주당과 국민의당도 기업소득환류세제를 손 보는 데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사내유보금에 세금을 매기는 것 자체가 ‘이중과세’라는 주장을 펼친다. 이미 높은 세율(22%)의 법인세를 내고 있고, 준(準)조세까지 내는 상황에서. 자칫 기업의 숨통을 죄어 불황 때 유동성 위기를 불러올 수 있음을 지적한다. 한 재계 관계자는 “사내유보금에 손을 댄다는 것은 기업의 자율경영과 사유재산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반발했고. 전경련 측도 “사내유보금 과세가 내수를 증대시키기는커녕 장기적으로 기업투자를 위축시키고 소비확대에도 별 효과가 없을 수 있다”고 밝혔다.



오보람 인턴기자 boram3428@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