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사망’ 관련 제조ㆍ유통ㆍ판매 기업 검찰 수사망에

옥시 전 대표, 구속영장 청구…제조사 SK케미칼 관계자 검찰 소환

롯데마트ㆍ홈플러스, 애경, GS리테일 등 유통ㆍ판매 업체 수사 대상

옥시 판촉 행사로 비난 받은 대형마트, 불매운동 동참

정부 조사 결과 따라 검찰 소환 기업 확대될 듯

지난 2011년 발생한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의 본격적 수사가 이뤄지고 있다.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옥시를 시작으로 롯데마트, 홈플러스가 수사 대상이 됐다. 옥시의 경우 신현우 전 대표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뒤늦게나마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 수사가 이뤄지면서 피해자들이 제대로 된 사과를 받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불매 운동 또한 무서운 기세로 번지고 있다. 옥시 제품의 경우 시민단체는 물론 마트, 편의점, 온라인 쇼핑몰 등 유통 업계가 똘똘 뭉쳐 그 어느 때보다 강한 불매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한편 정부의 조사 결과에 따라 수사 대상 기업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가 애경, GS리테일이 판매한 가습기 살균제에 함유된 화학 물질이 폐 손상과 인과 관계가 있다고 파악한다면 관련 기업들 역시 책임을 면하기는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유통사 이어 제조사도 검찰 소환

유통사에게 집중됐던 수사망은 제조사를 겨냥하기 시작했다. 지난 10일,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이철희 형사2부장)은 SK케미칼 직원 정모씨와 김모씨 등 2명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해 조사했다. 올 1월 검찰이 가습기 살균제 사건 수사에 착수한 이래 SK케미칼 관계자가 검찰에 출석한 것은 처음이다.

SK케미칼은 40명이 넘는 사망자(정부 집계 기준)를 낸 ‘가습기 살균제’에 함유된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을 옥시,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에 공급한 업체다. SK케미칼 측은 이 원료가 가습기 살균제에 사용될 것이라는 걸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은 SK케미칼이 PHMG의 흡입 독성을 사전에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SK케미칼은 가습기 살균제 원료 도매업체인 CDI에 PHMG를 공급하며 “호흡기로 흡입하면 위험할 수 있다”는 내용의 물질안전보건자료(MSDS)를 첨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2003년 PHMG를 호주에 수출할 때도 현지 정부에 흡입 독성을 경고하는 보고서를 제출한 바 있다.

그동안 SK케미칼은 공식 사과에 나선 유통업체들과는 달리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이번 검찰 수사로 SK케미칼이 어떤 입장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검찰은 또 조만간 롯데마트와 홈플러스 관계자도 소환해 조사할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옥시의 경우, 관련 임원들이 구속영장을 청구 받았다. 지난 11일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업무상 과실치사 및 과실치상 혐의로 옥시의 신현우 전 대표와 전 연구소장 김모씨, 전 선임연구원 최모씨에게 구속 영장을 청구했다. 이로써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이 발생한 지 약 5년 만에 관련자에 대한 구속 결정이 내려지게 됐다.

피해자 가족들과 환경 단체는 올해 초부터 꾸준히 관련 기업들에 대한 고소를 진행해 왔다. SK케미칼 최창원 대표이사 등 전ㆍ현직 임직원 14명은 지난 3월 환경보건시민센터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에 의해 검찰에 고발당했다. 환경보건시민센터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 모임은 SK케미칼 외에도 가장 많은 피해자를 낸 ‘옥시싹싹’의 판매사 옥시레킷벤키저 전 현직 임원 30여명을 고소했다. 롯데마트, 홈플러스, 애경과 함께 살균제 원료를 공급한 덴마크 케톡스사 역시 고발 대상이었다. ‘이마트 PB 이플러스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한 혐의로 신세계 이마트 임원 50명 또한 고발당했다. 언론의 집중적 포화를 받고 있는 옥시 외에도 가습기 살균제를 유통한 GS리테일, 코스트코, 다이소아성산업의 전 현직 임원들 역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이로써 지난 2012년부터 2016년 3월까지 총 19개 기업의 등기임원과 대표이사 256명이 고발 대상이 됐다.

그 어느 때보다 화력 센 옥시 불매운동

환경부 측은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폐손상 피해를 본 것으로 확인된 피해자 규모를 221명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중 옥시 제품의 피해자가 177명으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환경보건시민센터 측은 2016년 4월 4일 신고 기준으로 그보다 훨씬 더 많은 1528명이 피해자라고 잠정 계산하고 있다.

특히 가장 많은 피해자를 낸 옥시의 경우, 불매운동 속도가 무섭게 번져가고 있다.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것과 동시에 옥시가 검찰 수사에 오르기 전에는 논란에 대해 ‘묵묵부답’하며 피해왔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전국유통상인연합회, 청년유니온, 청년광장, 참여연대 등 각종 시민 단체를 비롯해 인천, 경남, 전북, 대전 등 각 지방에 위치한 시민단체들까지 불매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이렇게 불매운동이 번져가는 와중에 대형 마트들이 옥시 제품을 1+1 판촉 행사를 통해 판매한 것이 알려져 큰 비난을 받기도 했다. 특히 롯데마트와 홈플러스는 문제가 된 가습기 살균제를 PB(자체 제작 상품)로 판매한 이력까지 갖고 있는 상황에서 비난을 면하기 어려웠다.

여론의 비난 후 대형마트들 또한 옥시 불매 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롯데마트는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마무리될 때까지 최소한의 옥시 제품만 남겨둔 후 물건을 철수시키는 것으로 방침을 정했다. 온라인 쇼핑몰 티몬과 쿠팡 역시 옥시 제품에 대한 판매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편의점 업계도 불매 운동에 동참했다. GS25는 지난 9일 “고객이 인지하지 못하고 옥시 제품을 구매하는 것을 막기 위해 옥시 제품에 대한 신규 발주를 중단한다”며 “점포에 남아있는 옥시 상품도 옥시 본사로 반품 절차를 거쳐 사실상 철수한다”고 밝혔다. 편의점 업체로서는 처음으로 옥시 제품 완전 철수를 결정했다는 게 GS25측의 설명이다.

이러한 옥시의 불매운동 여파로 인해 경쟁 업체들의 반사이익이 상승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유통되고 있는 옥시 제품은 섬유유연제 ‘쉐리’, 제습제 ‘물먹는 하마’, 제모 용품 ‘비트’ 등이 있다. 대표적 경쟁 업체는 욕실 및 주방 용품을 주로 생산하는 LG생활건강이 있다. 이러한 반사 이익 기대 심리는 경쟁 업체의 주가에 반영되기도 했다.

한편 옥시는 지난 12일 검찰의 조사 결과, 실험 과정을 생략한 채 영세업체의 말만 믿고 독성 물질이 함유된 가습기 살균제를 시판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10억∼20억원대에 불과한 가습기 살균제 시장 규모에 비춰 3억원 안팎인 흡입 독성실험 비용이 부담이 됐기 때문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조사 결과 따라 검찰 수사 확대 가능성 높아져

검찰의 수사망이 더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현재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수사 대상에 오른 기업은 옥시를 비롯해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이다. 그러나 환경보건시민센터와 피해자 모임이 함께 고소한 애경, 이마트, GS리테일도 수사망을 피해가기는 힘들 것이라는 지적이다.

검찰의 수사가 옥시 등에 집중된 데에는 가습기 살균제에 사용된 성분과 관계가 있다. 정부는 지난 2012년, 클로로메칠이소치아졸리논(CMIT)과 메칠이소치아졸리논(MIT)은 폐 손상과 인과관계가 확인되지 않는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는 질병관리본부의 동물흡입실험 결과에서 CMIT와 MIT 성분은 폐 손상과 직접적 인과관계가 없다고 나왔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CMIT와 MIT가 함유된 애경, 이마트, GS리테일의 유통 제품들은 검찰의 수사 대상에서 비껴 났었다.

하지만 최근 정부가 재조사를 시작함에 따라 검찰의 수사망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10일, 정연만 환경부 차관은 “(CMITㆍMIT 성분과 관련해) 증거가 나온다면 검찰이 수사를 안 할 이유가 없다”며 “CMIT 계열 살균제를 사용해 사망한 피해자가 있는 만큼 추가적인 역학조사를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환경부는 보건복지부 등과 함께 피해 인정 범위 확대를 위한 연구와 판정 기준 마련을 추진하고 있다.

만약 CMIT와 MIT 성분의 인과관계가 확인된다면 현재 수사망에 오른 기업 외에도 환경보건시민센터가 고소한 다른 기업들의 관계자들 역시 검찰 소환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5년 만에 비로소 수사가 시작된 시점에서 관련 기업들에 대한 조사가 어느 정도 범위로 이뤄질지 주목된다.

이명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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