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기획으로 간 스포츠단 ‘흔들’

라이온즈 등 스포츠단 모두 제일기획으로 이동

제일기획 매각 추진의 걸림돌은 ‘스포츠단’?

임대기 사장, “야구단 자생력 갖춰야”

지난해 열린 한국시리즈 3차전에선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과 두산그룹 박용만 회장이 나란히 관람석에 모습을 드러냈다. 마지막에 웃은 사람은 두산 박용만 회장이었다. 이 날 경기에선 두산 베어스가 5:1의 스코어로 이겼다.

모기업 회장님들이 참석한 경기뿐만 아니라 두산 베어스는 삼성 라이온즈의 한국 시리즈 5연패를 저지하는 것에도 성공하면서 지난해 우승팀 자리에 올랐다. 5년 연속 한국 시리즈에 진출했던 ‘강팀’ 삼성 라이온즈는 주력 선수들의 도박 스캔들 파문으로 인한 이탈과 함께 아쉬운 결과를 맞아야만 했다.

삼성 라이온즈는 올해부터 달라진 환경에서 시리즈를 시작하게 됐다. 대구 시민 야구장 시대를 마감하고 삼성라이온즈파크로 홈 구장을 옮긴 것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모기업 삼성그룹의 지원이 예전 같지 않다. 일각에서는 이재용 부회장의 실용주의 행보가 삼성 라이온즈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한다.

제일기획 매각 추진, 그렇다면 라이온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소문난 야구광이다.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관람석에서 그를 종종 찾아볼 수 있었다. 부친 이건희 회장 역시 야구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 라이온즈의 주식 2.5%를 소유하고 있다. 병석에 있는 와중에도 ‘이승엽 선수가 홈런을 치자 이건희 회장이 눈을 번쩍 떴다’라는 보도가 나올 정도다.

부친 때부터 남다른 애착을 가진 야구단이지만 이재용 회장의 실용주의 행보에 삼성 라이온즈가 예외가 될 순 없었다.

삼성 라이온즈의 대주주는 올해 1월, 삼성전자에서 제일기획으로 변경됐다. 현재 제일기획은 삼성 라이온즈 지분의 64.5%를 갖고 있는 대주주이다. 삼성그룹은 야구단 삼성 라이온즈 외에도 수원삼성축구단, 삼성썬더스 농구단, 삼성블루밍스 여자농구단, 삼성블루팡스 배구단을 지난해부터 차차 제일기획 쪽으로 이관했다. 삼성그룹의 스포츠단을 제일기획이 모두 운영하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이 제일기획이 매각 대상에 올랐다. 삼성그룹은 프랑스 광고회사 퍼블리시스에 제일기획을 매각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매각설은 올 2월 불거졌다. 제일기획 역시 매각 보도가 나자마자 공시를 통해 ‘주요 주주가 글로벌 에이전시와 다각적 협력방안을 논의하고 있으나 결정된 사안은 없다’고 밝혔다. 매각 협상이 이뤄지고 있음은 사실로 인정한 것이다.

퍼블리시스라는 구체적인 매각 주체까지 보도됐지만 제일기획 매각은 지지부진한 듯하다. 지난 4월, 퍼블리시스의 최고 경영자가 공식 석상에서 ‘제일기획 인수 협상이 정체돼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특히 제일기획 매각에는 현재 제일기획 산하에 있는 국내 스포츠단이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외국 광고회사가 국내 스포츠단을 가져갈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건희 회장이 병석에 누운 지 2년의 시간이 흘렀다. 이제 삼성그룹은 ‘이재용 시대’를 준비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 시작은 끊임없는 매각이다. 삼성그룹은 방산, 화학 계열사를 롯데와 한화에 넘긴 후 전자와 금융, 바이오를 축으로 하는 재정비에 나서고 있다. 부동산 자산 또한 매각 대상이다. 이미 태평로 삼성생명 사옥을 매각해 ‘태평로 시대’를 마감했다. 제일기획의 경우, 지난 1분기 영업이익 224억원, 매출액 6593억원을 올렸다고 지난달 21일 공시한 바 있다. 전년 동기 영업이익이 33.74% 감소하며 주춤했지만 제일기획은 국내 광고사 1위인 ‘알짜배기’ 기업이다. 실적이 꾸준하던 제일기획 역시 매각 대상이 되는 마당에 수많은 돈을 쏟아 부어야 하는 야구단에만 ‘실용주의’ 바람이 피해간다는 건 오히려 이상하다는 것이다.

박석민의 NC 이적이 의미하는 것은

현재 대부분의 국내 야구단은 적자 형태로 운영된다. 고가의 중계료, 광고 수익으로 구단을 꾸려 나갈 수 있는 미국 메이저리그와는 달리 모기업의 지원에 기댈 수 밖에 없는 국내 야구단은 이익을 내기가 쉽지 않다. 지난해 삼성 라이온즈의 영업 손실은 무려 146억원이었다. 계열사 매각과 부동산 정리까지 나서고 있는 삼성그룹 입장에서 적자를 내는 야구 구단에 대한 지원을 차차 줄일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올해 초 임대기 제일기획 사장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삼성 라이온즈에 대해 “우승이다, 아니다보다는 유망주 육성과 자생력을 기르는 게 더 큰 목표”라 발언했다. 야구단에게 ‘자생력’을 강조했다는 건 그만큼 투자 비용을 줄이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는 것이다.

삼성 라이온즈는 지난해 FA(자유계약) 신분이었던 내야수 박석민을 잡지 않았다. 박석민은 4년 최대 96억원에 NC다이노스로 이적했다.‘삼성 예비 프랜차이즈’로 여겨졌던 박석민의 이적은 삼성 야구팬들에겐 큰 충격이었다. 그 동안 FA를 놓치는 법이 거의 없었던 삼성 프런트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것은 그만큼 야구단에 들어가는 비용 투자를 줄이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적자’에도 불구하고 국내 대기업이 야구단 지원을 통해 스포츠 마케팅에 나서는 것은 모기업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고취시키기 위해서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은 구속과 수감을 반복한 후 야구단 ‘한화 이글스’에 대한 전폭적 지원을 통해 이미지 쇄신에 나섰다. 롯데 신동빈 회장 역시 지난해 형 신동주 일본 롯데홀딩스 전 부회장과 경영권 분쟁이 일어난 후 사직 야구장을 찾아 롯데 자이언츠 선수들을 격려했다.

지난해 원정 도박 의혹으로 삼성 라이온즈 소속의 투수 윤성환, 안지만, 임창용(당시 삼성 라이온즈 소속이었으나 현재 기아 타이거즈로 이적)이 수사를 받았다. 이러한 ‘도박 의혹’은 삼성 라이온즈는 물론 국내 KBO리그 전체에 이미지 타격을 줬다. 야구단이 도박 스캔들에 연루된다면 긍정적 이미지 쇄신은커녕 부정적 영향만 주게 된다. 삼성그룹이 야구단에 대한 지원을 줄이는 데에는 이와 같은 배경도 있지 않을까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삼성 라이온즈는 정규 시리즈 5연패, 한국 시리즈 4연패로 그 동안 ‘삼성 왕조’를 건설해 왔다. 지난해 한국 시리즈에서 두산 베어스에게 밀려 준우승했지만 여전히 전통적인 강팀이다. 2016년 5월 12일 기준으로 삼성 라이온즈의 순위는 10개 구단 중 공동 5위이다. 아직 정규리그가 개막한 지 한 달이 겨우 넘은 시점이라 성적을 판단하는 것은 이르지만, 예전과는 조금 달라진 경기력을 확인할 수 있다. 이재용 부회장의 실용주의 행보가 삼성 라이온즈의 향후 성적엔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이명지 기자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