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삼성 이재용 나서라”vs “삼성중공업 지원 안해”, 상황 양호 판단

산업은행, 삼성중공업 지원에 삼성그룹 나서줄 것 요구

삼성그룹, ‘지원 필요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 아냐’

삼성전자 주주 반발 가능성도 있어

‘에코십’ 발주 바람 불면 조선업 살아날까

세계 1위의 기술력을 자랑하며 국내 경제를 이끄는 원동력으로 칭송 받았던 조선업이 하루 아침에 ‘미운오리새끼’ 신세가 됐다.

세계적인 조선업 불황에 우리나라 조선소들도 비켜가지 못했다. 대우조선해양의 부채 비율은 이미 7000%를 돌파했다.

삼성중공업 등 조선 빅3는 자구안을 제출했다. 그런데 산업은행은 삼성중공업의 경우 삼성그룹, 이재용 부회장이 직접 나서 지원하라고 압박한다. 하지만 삼성그룹은 삼성중공업 지원에 나설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조선업 불황의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현금 보유 및 자산도 건실하며 부채 비율도 낮기 때문이다. 삼성중공업 스스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는 것이다.

대우조선해양과 함께 묶이는 것 또한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일각에선 향후 저유황 연료를 사용해야 하는 ‘에코십’ 발주가 늘어난다면 국내 조선 업계가 살아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적 전망도 나오고 있다.

수주절벽 몰린 조선업계들, ‘울상’

대대적인 해운 및 조선 불황으로 인해 세계 1위의 명성을 자랑했던 국내 조선업체들이 위기를 겪고 있다.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은 산업은행에 자구책을 제출하며 회생을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9월 5000억원 상당의 현대자동차 지분을 매각해 2조원이 넘는 자산을 처분했다. 이 밖에도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을 포함한 전 계열사 임원들이 급여를 반납하고 각종 경비 절약과 시설 투자 축소를 통해 5000억원 이상을 절감한다고 밝혔다.

조선 3사 중 가장 상황이 심각한 것으로 알려진 대우조선해양은 지난 20일 임원진 및 조직 추가 축소 개편, 희망퇴직을 통한 추가 인력 감축, 임금 동결 및 삭감, 순차적 도크(선박건조대)의 잠정 폐쇄, 비핵심 자산 매각 강화 등이 포함된 자구안을 제출했다. 지난해에는 부동산 등 비핵심 자산을 전량 매각해 7500억원을 조달하고 향후 3년간 인적 쇄신, 직접경비 및 자재비 절감, 공정 준수를 통한 지연배상금 축소 등으로 1조1000억원 이상의 손익 개선을 달성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재계 1위 삼성그룹의 계열사인 삼성중공업 역시 자구안 제출을 요구받았다. 지난 18일, 삼성중공업은 채권단으로부터 추가 자구 계획을 제출했다. 산업은행은 자구책 내용에 대해 “삼성중공업의 자구안 제출 여부 및 내용은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중공업이 제출한 이번 자구 계획에는 순차적 도크 폐쇄 등을 통한 생산력 감축 등이 포함된 것을 보인다. 앞서 삼성중공업은 최근 보유 중이던 두산엔진 지분을 처분해 약 373억 규모의 현금을 마련했다. 거제삼성호텔도 매물로 내놨는데 이를 통해 3000억원대의 유동성을 확보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그룹 계열사에 대해 강도 높은 정리를 시행하는 중이다. 주력 계열사를 제외하고는 과감히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조선업 불황으로 인해 저조한 경영 실적을 기록한 삼성중공업의 경우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지 시선이 쏠렸다. 삼성중공업의 올 1분기 실적은 매출액은 전년대비 3.1% 감소한 2조5301억원, 영업이익은 전년대비 76.8% 감소한 61억원으로 저조한 성적표를 내놨다.

설상가상으로 수주 실적 또한 바닥났다. 삼성중공업은 지난해 10월 이후 수주를 1건도 따내지 못했다. 예정됐던 프로젝트까지 취소되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지난해 셸(Shell)사로부터 지난해 체결한 47억달러 규모의 부유식 LNG생산설비(FLNG) 3척 건조 계약에 대한 해지 통보를 받았다. 지난해 10월에는 시추업체 퍼시픽 드릴링이 5억1750만달러짜리 드릴십 인수를 거부했다.

상황은 좋지 않지만 삼성그룹은 삼성중공업을 그대로 안고 간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혔다. 매각설 및 합병설이 돌았을 때 이재용 부회장이 직접 삼성중공업 거제 조선소를 방문해 소문을 일축시켰다. 매각 명단에 삼성중공업의 이름은 오르지 않았다는 의미다.

삼성그룹, “삼성중공업, 지원 필요한 수준 아냐”

그런데 채권단은 삼성중공업이 제출한 자구책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그 속내를 살펴보면 삼성그룹이 삼성중공업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바라는 듯하다.

삼성중공업의 최대 주주는 삼성전자로 17.62%의 지분을 갖고 있다. 뒤를 이어 삼성생명이 3.38%, 삼성전기가 2.39%, 삼성SDI가 0.42%, 삼성물산이 0.13%, 제일기획이 0.13%의 지분을 갖고 있다. 삼성그룹 계열사가 24.07%의 지분을 갖고 있는 셈이다.

삼성그룹 계열사가 다수의 지분을 갖고 있는 만큼 채권단은 삼성그룹 및 이재용 부회장이 직접 지원에 나설 것을 종용하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해 위기에 빠진 계열사 삼성엔지니어링 지원에 나선 적이 있다. 지난해 상장폐지 직전까지 갔던 삼성엔지니어링은 이재용 부회장이 실권주가 생기면 인수하겠다며 3000억원 규모의 현금을 마련하는 노력을 보이며 그룹의 지원 약속을 받아냈었다.

하지만 삼성그룹은 삼성중공업의 문제는 삼성중공업이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우선 삼성그룹이 지원에 나서지 않는 것은 삼성중공업의 경영난이 그다지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 3월 말 기준으로 삼성중공업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1조886억원이며 부채비율도 254%에 불과하다. 대우조선해양의 부채 비율이 지난달 7300%를 넘는 것에 비하면 아직까진 양호한 수준이다.

섣불리 지원에 나설 경우 삼성전자 주주들이 반발에 나설 가능성도 농후하다. 경제개혁연대는 지난 25일 논평을 통해 삼성그룹 계열사들이 삼성중공업 지원에 나서는 것은 옳지 않다고 밝혔다. 경제개혁연대는 “금융감독당국이 ‘부실경영 책임’ 또는 ‘자구노력’이라는 명분으로 삼성중공업의 주주계열사들에게 지원을 강요하는 것은 법제도 및 원칙에 어긋나는 ‘관치금융’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지적한다”고 밝혔다. 다만 경제개혁연대는 책임의 주체를 오너가에게 돌렸다. 경제개혁연대는 “지금 이재용 부회장이 해야 할 일은, 삼성중공업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최종적인 의사결정 권한이 자신에게 있으며 그에 따른 궁극적 책임을 결코 회피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시장과 국민에게 분명히 전달하는 것”이라 설명했다.

조선업 미래, 의외로 밝을 수도

정부는 해운 및 조선업 구조조정 전 강도 높은 자구안을 제출할 것을 기업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에는 이미 빨간 불이 켜졌다. 조선사들 역시 최악의 위기를 겪고 있다.

삼성중공업과 현대중공업은 조금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7000%가 넘는 부채비율을 보이는 대우조선해양과 같이 묶일 처지는 아니라는 것. 현대중공업의 지난달 말 기준 부채비율은 100% 내외로 대우조선해양에 비하면 양사 모두 양호한 수준이다.

조선 빅3는 지난해 해양플랜트 납기 지연이라는 공통된 악재 속에 8조5000여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이 중 5조5000억원은 대우조선이 낸 것이다.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은 나란히 1조5000억원대 영업손실을 나타냈다. 양사의 적자 규모를 합쳐도 대우조선의 영업손실 규모에 훨씬 못 미친다. 삼성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과의 강제 합병설에 민감하게 반응한 데에는 이와 같은 이유가 있다.

조선업의 미래가 너무 비관적으로만 예상된다는 의견도 있다. 지난 9일, 하나금융투자 박무현 애널리스트는 보고서를 통해 조선업 수주 전망에서 가장 중요한 국제해사기구(IMO)의 규제가 빠져있다고 지적했다.

오는 2020년이면 선박의 연료가 저유황, 혹은 MGO로 교체된다. 특히 그리스 선주들을 비롯한 유럽계 선주들이 2020년부터 선박 연료에서 황 함유량을 제한할 것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선박 교체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IMO는 선박 연료에 저유황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강한 단속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는데 IMO의 규제가 강하면 강해질수록 우리나라 조선사들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중국 및 일본 조선소들은 우리나라처럼 에코십을 만들 숙련된 인력이 부족하다. 현재는 불황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향후 다가올 조선업의 미래는 오히려 긍정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현재 조선업이 역대 최대 불황을 겪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특히 조선업의 불황으로 국내 조선사들이 눈을 돌린 해양플랜트 산업까지 침체 위기를 겪으며 진퇴양난에 빠졌다. 한때 ‘빅4’로 분류되던 STX조선해양 역시 법정관리를 눈앞에 두고 있다. STX조선해양을 시작으로 대형 조선사에 이어 중소형 조선사까지 위기가 번져가지 않을까라는 우려도 돌고 있다. ‘최대 위기’를 맞이한 국내 조선사들이 제출한 자구안이 향후 얼마나 효력을 거둘 수 있을지 조선업계는 그 어느 때보다 ‘잔인한 5월’을 보내고 있다.

이명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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