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향한 검찰 칼 끝, ‘악재’ 어디까지 번지나

롯데그룹, 비자금 조성 혐의로 압수수색 당해

신영자, 정운호 비리 연루로 검찰 소환 앞둬

경영권 분쟁 겨우 진정됐는데… ‘산 너머 산’

호텔롯데 상장 및 면세점 재허가 불투명

재계 5위 롯데그룹이 창립 이래 최대 위기에 처했다. 검찰은 지난 10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자택을 비롯한 본사 및 주요 계열사 17곳을 압수수색 했다. 검찰은 롯데그룹 계열사 간 수상한 자금 흐름을 포착하고 주요 임원들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를 내리는 등 강도 높은 조사를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앞서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또한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회장의 롯데면세점 입점 비리에 휘말린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그룹을 둘러싼 사정기관의 압박은 점점 강해지고 있다.

상장은 미뤄지고, 면세점 재허가는 ‘첩첩산중’

지난해 연말, 호텔롯데는 잠실 월드타워 면세점의 재허가를 받지 못했다. 잠실 롯데타워 준공 후 본격적인 ‘잠실 랜드마크’를 열어갈 계획을 세웠던 롯데로선 무척 아쉬운 상황이었다. 잠실 월드타워점은 지난해 매출 6112억원을 기록해 전년비 24% 성장함으로써 국내 면세점 중 가장 높은 매출 인상치를 기록한 바 있다. 향후 잠실 롯데타워 준공 후에는 매년 10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올 것으로 예측되는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이다. 이 때문에 롯데는 영업 연장을 두 차례나 신청하면서 월드타워점의 문을 닫는 것을 최대한 막아왔다. 하지만 오는 6월 30일이면 문을 닫아야 한다.

이런 와중에 관세청이 서울 시내 면세점 추가 지정을 발표했다. 롯데에겐 기사회생의 기회였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신영자 이사장의 비리 연루 의혹이 터져나왔다. 이로 인해 호텔롯데의 상장 역시 미뤄졌다. 당초 호텔롯데의 공모예정가는 9만7000원~12만원(액면가 5000원), 공모예정금액은 약 4조6,419억원~5조7,426억원 규모였으며 6월 중 상장을 추진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신 이사장이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회장의 로비에 연루된 것으로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이와 같은 불안한 상황을 반영하는 쪽으로 상장 내용이 바뀌었다. 공모 예정가는 8만5000원~11만원, 공모예정금액은 약 4조677억원~5조2641억원 규모가 될 전망이다. 7월 중 유가증권 시장에 상장할 계획이다.

신 이사장은 1973년 호텔롯데 부사장으로 롯데그룹 경영에 참가한 후 롯데백화점 총괄부사장, 롯데면세점 사장, 롯데쇼핑 사장 등을 거친 뒤 2012년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하면서 사실상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현재 신 이사장이 보유한 계열사 지분은 롯데쇼핑 0.74%, 롯데제과 2.52%, 롯데칠성음료 2.66%(의결권 있는 주식), 롯데알미늄 0.13%로 나타난다. 이 때문에 동주-동빈 형제 간 경영권 분쟁에서도 신영자 이사장이 형제 중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에 대해 관심이 쏠려 왔다. 초반만 해도 장남 신동주 전 부회장의 편에 선 것 같았던 신영자 이사장은 경영권 분쟁 중반부턴 신동빈 회장과 뜻을 같이 해 왔다. 신동빈 회장과의 우호적 관계 덕분인지 신 이사장은 지난 3월 열린 롯데쇼핑 이사회에서도 신동빈 회장, 이인원 롯데쇼핑 대표이사와 함께 사내이사로 재선임될 수 있었다.

신 이사장의 비리 연루에 대해 재계에서는 신동빈 회장이 이를 계기로 신격호 총괄회장의 측근들을 정리한 후 새로운 ‘뉴 롯데’를 만드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는 관측을 하곤 했다. 일종의 전화위복을 노린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난 10일, 신영자 이사장 비리건과는 별개로 롯데그룹 또한 검찰의 수사망에 오르게 됐다.

7월로 연기됐던 호텔롯데 상장, ‘미지수’

롯데그룹 입장에서 연말 면세점 재허가를 따 내는 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따라서 재계는 신동빈 회장이 신영자 이사장과의 ‘거리두기’를 통해 신 이사장의 비리가 그룹과 큰 영향이 없는 개인의 부도덕함이라 주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하지만 롯데는 신 이사장 비리 연루보다 더 큰 산을 만나게 됐다. 지난 10일, 서울중앙지검 특수4부(부장검사 조재빈)와 첨단범죄수사1부(부장검사 손영배)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서울 종로구 평창동 자택, 롯데그룹 본사 26층 집무실과 롯데그룹 계열사 7곳 등 총 17곳에 검사와 수사관 등 200여명을 보내 동시다발적인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검찰은 올 초부터 롯데그룹의 수상한 자금 흐름을 포착해 왔다. 검찰 관계자는 “롯데 계열사 간 자산거래 과정에서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가 있어 압수수색을 집행했다”며 “주요 임원의 횡령·배임 사건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검찰은 검사와 수사관 등 200여명을 이들 장소에 보내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회계장부, 자산거래 내역 자료 등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그룹의 2인자로 통하는 정책본부장 이모 부회장 등 핵심 임원 여러 명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는 이명박 정부 시절 제2 롯데월드 인허가를 비롯해 부산 롯데월드 부지 불법 용도 변경, 맥주 사업 진출 등 각종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예상치 못한 검찰의 압수수색에 롯데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신 이사장이 검찰 소환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이번엔 신동빈 회장까지 비자금 의혹을 받게 되자 그야말로 ‘패닉 상태’인 것이다. 특히 검찰 측은 경영권 분쟁에서 드러난 롯데의 불투명한 지배구조를 활용해 롯데가 국내에서 거둔 이익을 일본으로 보냄으로서 ‘국부 유출’에 버금가는 사태를 초래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롯데를 둘러싼 악재는 한둘이 아니다. 롯데홈쇼핑 전 대표의 비리 여파로 황금시간대 영업 정지 처분, 가습기 살균제 판매 혐의로 롯데마트 전 대표를 포함한 관련자들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서울 시내 면세점 입찰을 비롯해 당장 7월로 연기된 호텔롯데 상장 일정 또한 미궁에 빠지게 됐다. 롯데는 국내 계열사들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호텔롯데 상장을 통해 지배구조를 정리함으로써 일본기업 이미지를 버리려 했다. 그러나 이번 검찰 수사로 인해 상장 계획이 7월보다 더 미뤄질지, 혹은 상장 조건이 더 낮춰진 상태로 진행될지 진퇴양난에 처하게 됐다.

이명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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