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붙은 ‘복합 쇼핑몰’ 경쟁에 소상공인 반발… 필요한 건 ‘상생’

유통 대기업의 신규 먹거리로 성장

롯데, 최대 매장ㆍ규모로 복합쇼핑몰 운영

신세계, 하남 스타필드로 ‘쇼핑 테마파크’ 시장 진출

상암ㆍ부천, 복합쇼핑몰 건설 두고 ‘첨예한 갈등’

바쁜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여가 시간을 보내는 것에도 익숙하지 않다. 노는 것에 서툴러 어쩌다 주어지는 여가에도 무엇을 할지 몰라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현대인들에게 최근 등장한 ‘복합 쇼핑몰’은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은 존재다. 눈만 돌리면 먹거리, 볼거리가 곳곳에 넘치고 있어 별다른 고민 없이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복합 쇼핑몰을 통해 다양한 문화 체험을 즐기는 새로운 소비형태를 일컫는 ‘몰링(malling)’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만일 당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복합 쇼핑몰이 들어온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환영의 뜻을 내비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작은 옷 가게, 소규모의 식당, 동네 슈퍼를 운영하고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복합 쇼핑몰이 생계를 위협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유통 기업들의 신규 먹거리 ‘복합 쇼핑몰’

유통 대기업들은 복합 쇼핑몰 조성에 열을 올리고 있다. 오는 9월, 신세계는 경기도 하남에 쇼핑 테마파크 ‘스타필드 하남’의 문을 연다. 신세계 측은 스타필드 하남에 대해 쇼핑과 레저, 엔터테인먼트를 한 곳에서 즐길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쇼핑몰이라 설명하고 있다. 국내 최초의 원데이 쇼핑, 레저, 힐링의 복합 체류형 공간으로서, 건축물 규모 면에서도 연면적 45만9498㎡(13만8900평, 지하4층~지상4층), 부지면적 11만7990㎡(3만6000평), 동시주차 가능대수 6,200대에 달하는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신세계그룹은 쇼핑 테마파크라는 개발 콘셉트에 맞게 쇼핑과 레저, 엔터테인먼트가 결합된 다양한 콘텐츠를 구비한 새로운 개념의 쇼핑 플랫폼을 완성한다는 전략 하에 신세계백화점과 이마트 트레이더스를 중심으로 국내 최대 규모인 총 300개가 넘는 매장으로 조성할 계획을 밝혔다.

국내 최대 복합쇼핑몰은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코엑스몰’이다. 현재 코엑스몰의 운영 주체는 한국무역협회다. 무역협회는 코엑스몰 임대위탁 후보자를 모집 중인데 여기에 현대백화점, 신세계프라퍼티 등 4사가 도전장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백화점은 현재 그룹의 위기 상황을 고려해 제안서를 제출하지 않고 있다. 무역협회는 그동안 코엑스몰의 지분 100%를 갖고 직접 운영해 왔으나 지난 5월 코엑스몰㈜의 법인을 청산하고 유통전문회사에 경영을 맡기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코엑스몰은 향후 발전 가능성이 기대되는 삼성동에 위치한 유일한 복합쇼핑몰로 국내 최초의 복합 쇼핑몰이라는 특수성과 함께 유통 기업들에겐 놓치기 힘든 카드다. 향후 현대차그룹의 삼성동 글로벌 비즈니스 센터 건립 등으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일단 코엑스몰 운영권 경쟁 구도는 현대백화점과 신세계의 양강 체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유통업계는 복합쇼핑몰을 신성장동력으로 보고 있다. 신세계는 올해 9월 문을 여는 하남, 내년에 문을 여는 고양 외에 안성, 청라, 송도에 복합쇼핑몰 개점을 추진하고 있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복합쇼핑몰을 운영하는 롯데는 아울렛을 포함해 총 17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경영권 분쟁에서 촉발된 비자금 관련 검찰 수사를 받고 있지만 롯데그룹은 아울렛을 포함한 복합 쇼핑몰 규모를 적극적으로 늘려갈 것을 올 초 밝힌 바 있다. 다소 후발주자로 분류되는 현대백화점 역시 송도, 동대문, 판교에 아울렛의 문을 잇달아 열었다.

이는 최근 매출액 정체를 겪어 온 유통업계의 고민 해결 방법이다. 온라인 쇼핑의 증가로 마트와 백화점 매출액 성장이 한계치에 도달하면서 복합쇼핑몰이 새로운 돌파구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복합 쇼핑몰 경쟁은 향후 계속될 것으로 보는데 비슷비슷한 복합 쇼핑몰 사이에서 각 기업만의 특징을 발굴해내는 것이 과제가 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하지만 ‘복합쇼핑몰’에 대한 정의는 아직까지 애매모호하다. 신세계가 오는 9월 문을 여는 스타필드 하남은 신세계그룹 측에선 ‘쇼핑 테마파크’라고 부른다.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쇼핑을 포함해 엔터테인먼트까지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복합쇼핑몰에 속할 수도 있지만 더 다양한 경험을 고객들에게 제공한다는 점에서 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쇼핑 테마파크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부에선 복합 쇼핑몰에 프리미엄 아울렛을 포함하기도 하고, 별도의 매장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상암과 부천 소상공인들이 시위에 나선 이유는

유통 대기업이 복합 쇼핑몰에 대해 ‘장밋빛 전망’을 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중소 상공인들은 복합 쇼핑몰에 대한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조사에 따르면 복합쇼핑몰 출점 3년 후 점포당 매출이 대형쇼핑몰 입점 전보다 46.5%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암DMC의 롯데복합쇼핑몰 건설은 건설 반대 비상대책위원회까지 출범하는 등, 지역 소상공인들과 갈등을 거듭하고 있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상암 롯데복합쇼핑몰은 지난해 5월 이미 완공됐어야 했다. 그러나 지역 소상공인들의 반대로 인해 첫 삽을 뜨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시는 롯데와 지역 소상공인 사이에서 중재에 나서고 있다. 서울시 경제진흥실 소상공인지원과는 상권 영향 분석을 통해 상암동 롯데복합쇼핑몰의 건설로 주변 5km 이내까지 소상공인들의 피해 범위가 확산될 것이며 매출 감소 또한 30% 이상이라 밝힌 바 있다.

상암동은 복합쇼핑몰 건설 추진 이전에도 상암 월드컵경기장 주변에 위치한 여러 대규모의 프렌차이즈들로 인해 지역 상권이 큰 위협을 받았다. 하지만 이번 초대형 복합쇼핑몰은 그 규모만큼 이전과는 상상할 수 없는 피해를 가져올 것이라고 지역 상인들은 근심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지역상인 및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상암동DMC 롯데복합쇼핑몰 강행반대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해 롯데와 협상을 벌여 왔다. 비대위 측은 이미 건설이 확정된 상황에서 완전한 반대는 어렵다고 보고 세 곳의 부지 중 한 곳의 부지를 복합쇼핑몰, 나머지 두 곳의 부지는 병원이나 호텔 등 부대시설이 들어오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했다. 이 제안을 가다듬어 서울시 측이 두 부지를 복합쇼핑몰, 한 부지를 부대 시설로 건설하자는 중재안을 내놨으나 롯데 측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상암동DMC 롯데복합쇼핑몰 강행반대 비대위 서정래 회장은 “서울시가 롯데복합쇼핑몰을 승인했던 시기엔 지역상권 붕괴에 대한 사회적 여론이 형성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대기업의 복합쇼핑몰로 인해 주변 상권이 망가지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상당히 많다”고 지적했다. 또 “롯데그룹이 대기업으로서 지역 상권에 진출하려면 주변 소상공인과의 상생도 생각해야 하나 전혀 그런 태도를 보이지 않아 아쉽다”고 밝혔다.

부천 상동 영상단지에 들어설 신세계그룹의 초대형복합쇼핑몰 건설 또한 반대에 부딪혔다. 부천시는 영상단지 부지 일부(7만6000 제곱미터)를 신세계그룹에 매각한 후 2019년까지 약 1조원을 들여 초대형복합쇼핑몰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신세계는 이 부지에 대형 창고형 할인매장인 이마트 트레이더스, 신세계백화점, 워터랜드를 갖춘 초대형 복합 쇼핑몰을 세울 계획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 복합쇼핑몰이 부천 지역 중소상인과 시민단체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난 5월 19일, 인천과 부천의 중소상인 및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부천 상동영상문화단지에 복합 쇼핑몰을 건설하려는 계획을 철회하라”고 부천시와 부천시 의회, 신세계그룹에 촉구했다. 이들은 “초대형 쇼핑몰이 들어서면 부천과 인접한 부평은 물론 김포·고양·시흥 등의 중소 영세상인들이 생계에 위협을 받게 된다”며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중동 나들목에 하루 5000여대의 차량이 증가해 교통체증과 대기오염을 일으켜 주거환경을 크게 악화시킨다”고 주장했다.

정치권 또한 부천시와 지역 소상공인들의 갈등을 중재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신세계복합쇼핑몰 건설에 대한 부천시민연대회의의 질의에 “초대형 쇼핑몰이 들어서면 골목상권이 파괴되고 중소 상인과 자영업자에게 큰 피해가 예상된다”고 답변했다. 이에 대해 신세계 관계자는 “아직 건설을 시작한 것도 아니고 부지 매각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다. 개발사업자로 선정만 된 상태이기 때문에 이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밝혔다.

복합쇼핑몰을 둘러싼 지역 갈등은 비단 상암과 부천만의 사례는 아니다. 전라북도 군산 역시 롯데 아울렛 건설을 둘러싸고 지자체와 건설 반대 비상대책위원회의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이미 광주, 이천, 대전 등에서도 이와 유사한 논란이 발생했다. 그렇지 않아도 유통 대기업의 대형마트, 프렌차이즈 가게들로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는 소상공인들에게 복합쇼핑몰의 출연은 무시무시한 ‘끝판왕’의 등장이라 볼 수 있다.

‘복합쇼핑몰’을 둘러싼 이해 관계는 다양하다. 주변 부동산 관계자들과 지역 주민들은 집값 상승을 이유로 복합쇼핑몰 입점을 환영한다. 특히 부동산 가격 상승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시ㆍ구 관계자와 부동산업자들은 갈등을 빚는 와중에도 복합쇼핑몰 건설을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지역 상권의 황폐화를 불러올 수 있단 점에서 대기업의 상생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누군가에겐 집값이 오르는 일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생존권 위협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명지 기자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