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브렉시트로 인해 아베노믹스가 큰 타격을 받은 가운데, 일본 금융당국은 추가 양적완화를 시사하며 그 여파로 일본계 금융사들이 국내 금융시장에서의 거점 확장을 꾀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출처=연합뉴스)
日 대부업체 한국 진출 따른 수익 일본으로…국내 자본 잠식 가능성

브렉시트로 엔고 현상, 일본 추가 금리인하 진행…日 대부 업체들 한국 진출 확대할 듯

국내 일본계 대부업체 총 29개, 지난해 총 대부잔액 국내 대부업체 잔액의 60%가량 차지

대출 조건 국내 업체보다 유리한 일본계 대부업체, 저축은행에 한국 소비자들 몰려

한국에서 나온 수익 일정 부분 일본으로 흘러들어가…국내 자본 잠식 우려 목소리도

최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로 인해 세계 각국의 금융시장에 혼란이 일고 있다. 이에 국내 경제에 미칠 악영향에 대한 다양한 예측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일본계 금융사들이 국내 금융시장에서의 거점 확장을 꾀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브렉시트로 인해 일본 엔화가 상승함에 따라 일본 경제의 불확실성 증가와 추가 금리인하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일본계 대부업체들의 국내 금융시장 진출과 투자, 자본확충이 더욱 심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브렉시트 이후 일본계 대부업체들의 한국 금융시장 진출 움직임과 그 파장을 짚어봤다.

블렉시트로 일본 경제 불확실성 증가, 대부업체들 한국으로 눈길

지난달 24일 브렉시트가 가결된 직후 세계 경제가 출렁이고 영국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며 전통적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는 금과 달러화 그리고 일본 엔화가 동반강세를 보였다.

이날 일본 도쿄 주식시장의 닛케이 평균주가는 종가 기준 전날보다 7.92% 폭락한 1286.33엔으로 마감했는데, 이는 지난 2014년 10월 21일 이후 최저치로 엔달러 환율이 100엔선 밑으로 하락한 것은 2013년 11월 이후 처음이다.

때문에 일본 아베 정부가 지난 3년여 동안 추진해 온 아베노믹스의 핵심인 엔화가치 절하 정책이 이번 브렉시트로 인해 한순간에 원점으로 돌아왔다.

특히 현재 도요타와 혼다, 닛산 등 일본의 대표 자동차 업체 50여사가 영국에서 생산공장을 운영하고 있고, 총 1380여개의 일본계 회사가 영국에 진출해 있는 만큼 이번 브렉시트 쇼크의 최대 피해국이 일본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이에 아베 신조 총리는 긴급대책회의를 열고 “일본 은행과의 협조로 외환 시장을 포함한 금융 시장의 움직임에 어느 때보다 주의를 기울여 달라”며 외환시장 개입과 추가 양적완화, 경기부양 자금 확대 등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일본 교도통신에 따르면 아소 다로 재무상은 지난달 25일 일본은행 및 금융청 간부들과 임시회의를 통해 일본은행이 엔화 매도를 통한 외화 공급량을 확대하며, 급격한 엔고 억제를 위해 보다 적극적인 시장 개입도 불사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기존부터 엔화가 강세일 때 추가적 금리 인하를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어 일본 금융당국의 추가 금리인하와 확장적 통화정책이 전망되고 있다.

블렉시트로 인해 일본 경제의 불확실성 증가와 추가 금리인하의 명분이 생긴 가운데 일각에서는 일본계 대부업체들의 국내 금융시장 진출과 투자, 자본확충이 더욱 심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국에서 고금리 이자 장사, 대부업체 진출 늘어날 듯

지난 1999년 외환위기 직후 국내 시장에 진출하기 시작한 일본계 대부업체는 담보형식이 아닌 주로 소득이나 직업군에서 불리한 서민들에게 개인 신용대출의 형태로 고금리 대출장사를 해오며 몸집을 불려갔다.

2000년대 들어 일본 금융당국이 사채업 규제를 강화하고 이자제한법을 만들어 최고이자율을 20%로 고정했고, 이에 일본 대부업체들은 규제가 비교적 느슨하고 최고이자율이 높았던 한국 시장으로 방향을 돌렸다.

이들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지난 2009년 국내 대부업 시장점유율을 약 절반 가량으로 늘렸고, 이후 저축은행으로 까지 일본계 회사들이 규모를 확장해 대표적 일본계 저축은행인 JT친애저축은행과 SBI저축은행은 지난해 각각 1조 3000억원과 3조 8000억원의 자산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 일본계 대부업체들이 국내 금융시장으로의 진출을 가속화한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일본에서 적은 자본을 들여와 사채 금리가 일본보다 비교적 높은 국내에서 고금리 이자 장사가 가능했다. 특히 아베노믹스 이후 일본 내 초저금리 시대가 도래하며 대부업체들이 자산운용과 수익확보에 애를 먹자 이들은 대부업 법정 최고금리가 30%가 넘었던 국내 시장에 더욱 집중했다.

때문에 국내외 일부 전문가와 대부업 관계자들은 과거 일본 내 금융시장 혼란과 저금리 흐름이 이번 브렉시트로 인한 일본의 상황과 흡사하고, 동시에 일본계 대부업체들의 한국 금융시장 진출과 거점 확장을 위한 조건과 명분이 마련됐다고 설명한다.

와타나베 유이치(渡辺雄一) 일본 아시아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주간한국>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단기적·부분적일지는 확정하기 어렵지만, 한국과 비교해 낮은 일본의 사채금리와 영국의 유럽연합 이탈로 인해 일본 내 불확실성이 고조돼 일본계 대부업체들의 한국 금융시장 러시가 한층 활성화될지도 모른다”며 “장기적으로 일본은 금리를 더욱 낮추려 할 것이고, 일본의 이런 움직임이 한국 경제의 입장에서는 마이너스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와타나베 연구원은 한국의 가계부채 증가와 한국은행의 이번 달 추가 금리인하 결정이 이런 현상을 더욱 부채질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가계부채 증가로 인해 1금융권 대출을 받고 싶더라도 대출심사 자격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는 금융소비자들의 수가 줄어들게 된다. 특히 업계 내에서도 금리인하에 따른 자산운용의 어려움으로 인해 기존보다 대출조건이 더욱 까다로워진다면, 결국 소비자들은 대부업 시장으로 몰릴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무코야마 히데히코(向山英彦) 일본종합연구소 한국경제분석 전문연구원도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후 일본계 비은행권회사(대부업체)는 한국에서의 업무를 확대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며 최근 은행과 제휴한 대형 대부업체들이 일본 내에서 적극적으로 사업을 추진하지 않는 점 그리고 아베노믹스 이후 중견 대부업체들이 한국 시장을 매력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근거로 들었다.

무코야마 연구원은 “일본 내 가계채무의 증가로 신용평가가 좀 더 까다로워졌기 때문에 이들도 국내에서 국외로 사업을 확장하는 것이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국내 전문가들의 의견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한 금융권 전문 연구원에 따르면 엔고에 따른 일본 금융당국의 추가금리 인하 방침이 실현되고, 일본 대부업체들이 국내 신용도를 측정하고 원화가치와 금리를 비교해 조달원가를 줄일 수 있다고 판단하는 등 다양한 조건이 맞물린다면 국내 시장으로의 진출이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일본 대부업체들이 국내 시장으로의 진출과 거점 확대는 브렉시트로 인한 영향이 단기간에 그치거나 국내 금융당국의 대부업체에 대한 법정 최고 대출금리 인하, 서민금융상품 활성화 등의 움직임이 정책적으로 이뤄진다면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소지가 있다.

그러나 일부 금융업계에서는 일본계 대부업체들에게 현재 상황이 국내에 진출하기 위한 좋은 조건이 마련된 시기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금융당국의 대부업 법정 최고금리 인하와 서민금융상품 지원도 그들의 국내 시장 진출과 투자확대에 큰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OK저축은행 관계자는 “최근 국내 대부업체 규모가 줄고 있고, 일본 내 규제는 여전히 심하며 대출금리가 낮다 보니 국내 시장으로의 진출과 투자확대가 일본 업체들 입장에서는 고려해볼 수 있는 일”이라며 “감사원 보고서 공시만 보더라도 알 수 있는데 일본계 대부업체 한 회사는 일본에서 끌어오는 돈 단 3%만으로 한국에서 내는 수익은 상당하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올해 초 금융감독원의 발표에 따르면 국내 일본계 대부업체들은 총 29개사로 지난해 9월 기준 이들의 총 대부잔액은 6조 5000억원에 달했다. 이는 국내에서 운영하고 있는 전체 대부업체 총 잔액의 60%가량을 차지하는 수치다.

이들은 주로 차입금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국내 업체에 비해 자금조달 여건에 있어서도 유리했다. 일본 내에서 5~8% 대의 낮은 금리로 자금을 들여와 한국에서는 30%에 육박하는 고금리로 이자 장사를 했다.

심지어 지난달 금융위원회가 입법예고한 ‘대부업 등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이 일본계 대부업체들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금융업계에서는 최근 금융소비자들이 일본계 대부업체를 구분하기 시작했고, 국내에 팽배한 반일감정이라는 화살이 이곳에 향할 것이라는 우려도 일본계 업체들의 국내 진출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대부업체 법정 최고금리 인하를 했을지라도 기존 34.9%에서 27.9%로 줄인 것으로 일본 내 대출금리로 봤을 때는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며 “일본계 대부업체나 저축은행사들의 동향을 보면 전혀 위축된 점 없이 오히려 공격적 마케팅을 하거나 일부 회사는 국내차입을 확대해 대출영업을 늘리려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반일감정이라는 점도 일부 소비자들은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겠지만, 어차피 대출을 하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이라면 회사가 어느 나라 소속이건 이자가 1%라도 더 낮은 쪽을 택하기 마련이기 때문에 일본계 대부업체들이 더 싼 이자 상품을 만들면 그만”이라며 “브렉시트로 일본 시장이 혼란스럽다면 일본계 업체들 입장에서 한국 시장도 노려볼 만하다”고 설명했다.

日 업체들 부인에도 수익 일본으로… ”국내 자본 유출 아니냐”

이에 일본계 금융사 측은 브렉시트로 인한 일본 자본의 한국 시장 진출과 투자에 대해 정해진 바가 없고 아직은 알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 일본계 금융사 관계자는 현재까지 일본 본사와 한국 계열사 사이 오고 간 수익 자금이 없고, 최근 일본 대부업계에서 한국 시장에 진출하는 데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그는 “일본도 브렉시트로 인해 그렇지만, 한국 금융시장도 예측가능성이 전보다 많이 낮아졌기 때문에 성장 가능성을 판단하기 힘들고, 투자의 필요성을 그렇게 크게 느끼지 못한다”며 “일본의 대출 이자가 한국보다 낮다고 해도 큰 차이를 보이고 있지 않고, 최근 한국에서 P2P대출이라는 대안상품 관련 시장이 떠오르고 있어 규모 확대보다 국내 대부업체 간 경쟁에 집중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 다른 일본계 금융사인 SBI저축은행 측은 일본과 한국 사이 오고 가는 자본이 현재 전혀 없다며 국내 시장 진출과 투자확대 가능성에 대해 부정했다.

SBI저축은행 관계자는 “모회사인 SBI홀딩스가 글로벌 금융그룹이기 때문에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20여개 나라에 진출해 있고, SBI저축은행을 사이에 두고 본사측과 한국 사이 오고 가는 자본이 없었다”며 “돈의 흐름은 순수 국내 수신만으로 충당하기 때문에 브렉시트 등으로 인해 국내 투자확대나 추가 진출할 가능성은 없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 대표적 일본계 금융사 관계자들이 일본과 한국 사이 오고 가는 돈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국내에서 생긴 이익을 자기자본으로 쌓아놓고 있을 뿐 각각 사모펀드와 주식회사 형태로 운용수익은 일본 측에 배당금으로 넘어갈 수 있다. 때문에 이들 일본계 회사는 수익이 난다면 그것이 본국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존재한다.

물론 여신전문업, 그리고 대부업과 저축은행업체들은 한국에서 나온 수익이 국내에서의 재투자가 없거나 소규모로 이뤄진 채로 일본에 흘러 들어가고 있어 일본계 대부업체와 저축은행으로 인한 국내 자본잠식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와타나베 연구원은 “일본계 대부업체들의 한국에 진출하며 생길 수 있는 금융 시스템이 한국의 자본 유출을 늘려 다른 영향도 더해진다면 과거 금융위기와 비슷한 상황이 재연될 가능성도 부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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