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 약속 잘 지키고 있다지만… 뒤에선 울상 짓는 중소기업

동대문 수호신 자처한 두산, 남대문 살리기 나선 신세계

신라아이파크ㆍ한화갤러리아, 향후 중소기업 매장 확대 나설 것

관세청, 매장 일정 비율 중소기업에게 할당

하루아침에 면세점 면허 잃으면 중소기업 ‘더 큰 피해’

면세점 과잉 경쟁으로 중소기업 부담 커져

지난 연말부터 서울 시내에는 신규 면세점들이 곳곳 문을 열었다. 유통 분야에 참여하고 있는 대기업들의 ‘자존심 싸움’으로 번지며 면세점 입찰 허가를 따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대기업들은 유치 과정에서 중소기업의 입점과 주변 상권 활성화를 강조했다. 면세점 입찰권을 따내는 것이 자신들의 이익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오너가를 중심으로 남대문, 동대문 등 인근 재래시장과의 연계를 통해 상권을 되살려 보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신규 면세점이 개장한 지 길게는 8개월, 짧게는 3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아직까지 주변 상권과의 시너지 효과가 나오기에는 이른 시점이지만 대기업들은 입찰 과정에서 약속한 것을 지키는 분위기다. 중소기업 입점 역시 일정한 공간을 할당해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속내는 마냥 편치만은 않다. 갑자기 상실된 면허로 인해 입점 매장을 잃을 경우, 중소기업에게 오는 타격은 더 크다. 곳곳에 들어서는 면세점들의 과잉 경쟁 또한 중소기업에겐 부담이 되고 있다.

면세점이 지역상권에 미치는 영향은

지난해 치열했던 서울 시내 면세점 입찰 시, 각 기업들은 면세점 입찰을 통해 중소기업과 주변 상권과의 ‘상생’을 강조했다.

특히 동대문과 남대문에 입지를 두고 있는 두산그룹과 신세계그룹의 신규 면세점은 지역 상권 살리기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계획을 피력했다.

동대문에 위치한 두산그룹의 ‘두타면세점’은 입찰 당시부터 동대문 상권의 부활을 강조했다.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은 면세점 지원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박 회장은 이를 위해 동대문 미래창조재단을 출범하며 동대문 지역 발전을 위한 청사진을 제시했다. 박서원 두산 유통 전략 담당 전무와 함께 두타면세점 사업을 전면적으로 이끌고 있는 동현수 두산 사장 역시 “동대문 상권 부활을 돕고 동대문을 서울 시내 대표적 관광 허브로 키워 국가 경제에 기여하는 면세점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또 상생 차원에서 전체 영업 면적의 40%를 국산품에 할당한다고 밝혔다.

역시 남대문에 새로 문을 연 신세계면세점 명동점은 남대문 상권과의 상생을 강조한 바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면세점 오픈에 맞춰 ‘남대문시장 글로벌 명품시장 조성 프로젝트’를 지원해왔다. 명동에 비해 관광객 방문이 점차 줄고 있는 남대문을 살리기 위한 프로젝트다. 명동을 찾는 해외 관광객 수는 2010년 543만명에서 2014년 927만명까지 급증했지만, 남대문 시장의 방문율은 같은 기간 45.5%에서 27.8%로 급감하며 관련 특수를 누리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6월부터 신세계백화점은 남대문시장상인회, 중기청, 서울시, 중구청과 손잡고 야시장 개발, k-푸드 스트리트 구축, 다양한 한류 이벤트 등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두타면세점과 신세계면세점 명동점 외에도 다른 면세점들 또한 주변 상권 활성화를 내걸었다. 심사에 탈락했지만 SK네트웍스 역시 워커힐면세점 재수성과 함께 동대문에 신규 면세점 입지를 지정함으로써 동대문 상권 살리기에도 나선다는 계획을 밝혔었다.

면세점 입점으로 인해 주변 상권이 살아난다는 통계가 나오기에는 이른 시기다. 남대문시장 관계자는 “아직까지 관광객 증가를 평가하기에는 이른 상황”이라 설명했다. 그렇다면 현장에서의 체감 수치는 어떠할까. 남대문시장 관계자는 “면세점 개장에 맞춰 초반엔 개인 단위로 방문한 해외 관광객들이 조금 늘어난 것처럼 보였지만 최근에는 사드 배치 때문인지 주춤해진 것 같다”고 상황을 전했다.

반면 면세점이 타깃층으로 잡는 고객층과 시장의 고객층이 달라 반사이익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의견도 있었다. 동대문에 위치한 평화시장 관계자는 “면세점에 오는 고객들과는 고객층이 다르다. 면세점 개장 후 특별히 손님이 늘어나거나 줄어든 것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두타면세점 인근에 위치한 동대문종합시장 관계자는 “패션 도매업자들이 많이 오는 곳이기 때문에 면세점 고객층과는 겹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매장 내 일정 부분은 중소기업에게 할당해야

대기업들은 면세점 입찰 과정에서 매장에 중소기업 입점을 적극 독려해 중소기업을 지원할 것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때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신규 면세점들은 일정 공간을 할당해 중소기업 전문관을 만들고 있다. 신라아이파크면세점은 지난 2월 말, 7층에 지방 특산물과 전통식품, 중소기업 상품 등 140여개 브랜드 제품을 판매하는 ‘상생협력관’을 열었다. 상생협력관에서는 김치, 청국장, 도토리묵 등 60여가지 한식 상품과 한국식품명인협회 명인들의 한과와 장류 등 전통 식품을 살 수 있다. 중소기업유통센터에선 버선, 한복방향제 등 전통 상품과 중소기업 히트 상품을 구입할 수 있다.

신라아이파크면세점은 서울에 쇼룸을 내기 어려웠던 지자체와 중소기업이 해외 바이어를 초청해 상품을 소개할 수 있도록 상생협력관을 ‘안테나숍’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또 해외에 소개될 기회가 없었던 지방 특산물과 농수산품, 중소기업 상품을 지속적으로 발굴해 100여개 브랜드를 더 입점시킬 계획이다.

여의도에 위치한 한화의 갤러리아면세점63에는 정책매장인 ‘아임쇼핑’이 개설됐다. 중소기업유통센터가 개설한 이 매장에는 중소기업의 우주 가전ㆍ생활ㆍ주방용품을 중심으로 구성됐는데 총 45개 중소기업 320여개 제품이 전시·판매될 예정이다. 죽 제조기, 멀티 믹서기 등 홈쇼핑 히트 상품과 무선 고데기, 개인용 가습기 등 아이디어 상품 및 아동·성인 패션잡화 등을 선보인다.

면세점 매출액에서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매출은 크지는 않다. 지난 4일, 관세청에 따르면 국내 면세점의 전체 매출액 9조1984억원 중 중소중견기업 제품 매출액은 1조11802억원으로 12.8%를 차지했다. 비중은 크진 않지만 차차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5월 들어서는 전체 매출 4조7571억원 가운데 13.3% (6345억원)로 상승했다.

한편 정부는 중소중견기업제품 전용매장 설치 의무화를 추진 중이다. 관세청은 그 동안 시내 면세점에 설치가 의무화된 ‘국산품 전용매장’을 ‘중소·중견기업제품 전용매장’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현재 고시 개정이 진행 중으로, 다음 달 중순께 최종 확정될 예정이다.

추진 중인 안에 따르면 대기업 면세점은 매장 면적의 20%, 중소중견기업 면세점은 10% 이상을 중소중견기업제품 매장으로 운영해야 한다. 이는 국산 화장품 등의 인기로 국산품 전용매장 의무화가 무색해진 상황에서 중소중견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방안으로 보인다. 이미 국산 화장품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등은 중국인 관광객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또한 국산품 전용매장 규정이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위반된다는 유럽연합(EU) 등의 문제 제기도 반영된 결정으로 알려졌다.

관세청 관계자는 “중소중견기업 매장 의무화는 중소기업 제품이 더 많이 판매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라며 “최소한의 면적 규정을 둠으로써 전용매장을 유지하고 꾸준히 상생노력이 이뤄지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역시 면세점의 국산 용품 매장 할당에 대해 반가운 기색을 드러내고 있다. 대기업 면세점 입점은 중소기업에겐 쉬운 일이 아니다. 면적 규정으로 인해 일정한 부분을 강제로 할당받을 수 있다는 것은 중소기업들에겐 희소식일 수밖에 없다.

‘우후죽순’ 면세점, 중소기업에겐 마냥 좋은 일 아냐

면세점 입찰 당시 대기업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중소기업과의 상생을 앞다퉈 약속했다. 하지만 중소기업들의 속내는 마냥 편하진 않다.

최근 대대적인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롯데그룹은 면세점 입점 비리 의혹을 받기도 했다. 오너가인 신영자 이사장이 배임 수재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로 구속됐다. 신 이사장은 네이처리퍼블릭을 비롯한 롯데면세점 입점 업체들로부터 매장 관리에 편의를 봐 달라는 청탁과 함께 30억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중소기업들 입장에선 대기업 면세점에 발을 들여놓기가 힘든데 입점과 관련해 쏟아지는 로비 소식은 사기마저 꺾고 있다.

면세점 면허의 기간 또한 중소기업들을 불안하게 하는 요인이었다. 롯데그룹의 월드타워면세점이 재허가에 실패하자 월드타워점에 입점해 있던 면세점들은 큰 반발에 나섰다. 면세점 입점 협력 중소〮중견기업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는 지난 1월, 기자회견을 열고 “면세점 재승인 심사에서 아무런 이유와 설명 없이 기존 사업자를 탈락시키는 바람에 면세점에서 영업하던 중소ㆍ중견 기업과 종사자들의 생존권이 위기에 놓였다”며 “면세점 특허 기간을 5년으로 제한하는 관세법을 폐기하라”고 촉구했다. 박소진 비대위 대표는 “2014년 10월 월드타워점 개점 때 입점한 70여 입점업체들의 매장 인테리어, 집기 등 투자비용 45억원이 감가상각 기간 3.8년이 남았는데도 월드타워점 폐점으로 날아가게 됐고, 상품 재고에 따른 피해액도 총 500여억원에 이른다”고 발언했다.

중소기업을 포함해 업계의 반발이 커지자 정부는 면세점 직원들의 고용 안정성, 면세점에 대한 투자 위축을 고려해 5년이었던 면허를 10년으로 연장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에 따라 면세점 입점 업체들은 다소 안정된 상태에서 영업을 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영업권을 상실한 면세점에 입점해 있던 중소기업들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대기업 프랜차이즈들과는 달리 매장을 하나 잃게 되면 매출액에서도 큰 타격을 입고, 하루 아침에 판매 직원들의 일자리도 없어지는 상황에 처하기 때문이다.

롯데그룹 월드타워점 사태의 경우, 롯데는 영업권 상실로 인한 중소기업들의 피해를 보상해 주겠단 입장이다. 롯데그룹은 월드타워점 폐점 후 입점 중소 기업들에게 손해를 보전해 주겠다는 뜻을 전달했다. 또 연말, 국세청이 서울 시내 면세점을 추가 지정하기로 하면서 만약 월드타워점이 다시 한 번 영업 승인을 받는다면 입점해 있던 중소 및 중견 기업과 거래를 이어갈 것이라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현실은 그다지 쉽지만은 않다. 영업권 상실로 대기업이 ‘상생’을 강조하며 보상을 비롯해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겠다곤 했지만 중소기업 입장에선 실제로는 원하는 것을 다 받아내긴 어려운 실정. 이는 중소, 중견기업이 하나의 면세점과 거래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롯데그룹의 경우 폐점한 월드타워점뿐만이 아니라 소공동 본점, 코엑스점 등 다양한 점포를 갖고 있다. 호텔신라, 신세계 또한 마찬가지다. 면세점에 입점해 있는 익명의 중소기업 대표는 “하나의 매장이 영업권을 잃어도 다른 매장들과 거래를 지속하고 있는 중소기업 입장에선 타 점포와의 거래에 혹여 지장이 갈까봐 대기업에게 보상을 요구하는 게 현실적으로 힘든 실정”이라 꼬집었다.

일부 중소ㆍ중견 기업들은 최근 유통 업계에 부는 면세점 과잉 경쟁 때문에 속앓이를 하고 있다. 일부 면세점들은 입찰권을 따내기 위해 경매가를 과잉으로 제시한 후 그곳에서 발생한 손해를 중소 및 중견기업에게 높은 수수료로 전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기업 면세점들과의 관계에서 절대적으로 ‘을’일 수 밖에 없는 중소기업들은 높은 수수료를 감수하며 면세점 입점에 목을 매고 있는 상황이다.

면세점 입점이 끝은 아니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우후죽순처럼 늘어난 면세점 매장 때문에 생각보다 매출액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는 하소연을 하기도 했다. 그는 “올해 문을 연 한 면세점은 손님이 없어 파리만 날리는 실정이다”라고 토로했다. 무리를 해 면세점에 입점했지만 명품 브랜드들마저 외면 받는데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떨어지는 중소기업 제품들은 더 팔리지 않는다는 설명이었다. 또 “대기업들이 너무 졸속으로 면세점의 문을 연 게 아닌가 싶다. 단체 관광객 확보나 대형 브랜드 유치를 통해 입점 중소기업들에게도 이익이 돌아가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 안타까울 뿐”이라 밝혔다.

이명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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