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시 카우’ 계열사 활약으로 그룹 재건

현대엘리베이터, 계열사 맏형으로…해외 진출, 쉰들러 소송 남아

현대아산, 남북경협 중단으로 탄산수 시장 진출

현정은 회장, 경영권은 굳건…현대그룹 재건 과제

현대그룹이 현대상선을 보낸 후 자산 2조7000억원 규모의 중견 기업으로 내려앉았다. 경영악화로 주요 계열사 매각 후 현대그룹은 현대엘리베이터와 현대아산을 중심으로 다시 도약해야 하는 상황이다.

현대그룹의 재건이라는 막중한 과제를 안고 있는 현정은 회장이 위기를 어떻게 돌파할지 살펴봤다.

현대아산이 탄산수 시장에 진출한 이유는

현대그룹이 그룹의 주요 계열사였던 현대상선을 떠나 보냈다. 현대상선은 지난 5일 신주 상장을 완료한 후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의 자회사로 새 출발했다.

현대상선을 보내면서 현대그룹은 자산 2조7000억원 규모의 중견 기업이 됐다. 남은 계열사는 현대엘리베이터와 현대아산을 포함해 현대유엔아이, 현대경제연구원, 현대투자네트워크, 반얀트리클럽앤스파서울, 블룸비스타가 있다. 한 때 재계 서열 1위였지만 잇따른 위기를 겪으며 중견기업으로 규모가 축소됐다.

현대그룹은 올해 들어 현대상선의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자산 매각을 해왔다. 이 과정에서 알짜배기 계열사였던 현대증권을 KB금융지주에 매각했다. 현정은 회장도 사재 출연에 나서는 등 고강도 자구책 마련에 나섰으나 결국 현대상선은 산업은행의 자회사로 현대그룹의 품을 떠나게 됐다.

현대상선은 현대그룹 매출의 70%를 책임지는 계열사였다. 현대그룹 입장에선 새로운 캐시카우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현대그룹은 현대엘리베이터를 통한 재건을 꿈꾸고 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 무빙워크를 비롯한 승강기 사업과 물류자동화시스템, 주차시스템 구축 사업을 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액 1조4487억원, 영업이익 1565억원을 기록했다. 남아있는 계열사 중 가장 큰 규모다.

매출액 전망은 좋은 편이다. 지난 4일 금융정보제공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증권사들은 현대엘리베이터의 3분기 순이익을 236억원, 전년 동기 대비 76.1%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매출액은 4540억원, 영업이익은 467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9.6%, 16.8% 증가할 것으로 봤다. 현대엘리베이터는 꾸준한 흑자 성적표를 내놨었다. 이는 국내시장에서의 탄탄한 점유율이 뒷받침됐기 때문에 가능했다. 전체 업계에서 45%의 점유율을 차지해 국내 1위 자리에 올라 있다.

국내 시장에선 높은 점유율을 가진 것과는 달리 현대엘리베이터의 해외 시장 진출은 약점으로 지적받아 왔다. 이를 위해 현대엘리베이터는 지난 4월 세계화 전략을 선포한 후 유럽 시장의 교두보인 터키에 현지 법인을 설립했다. 지난달 20일 현대엘리베이터는 터키 이스탄불에 위치한 STFA 그룹 본사에서 열린 양사간 조인트 벤처 계약 체결식에서 법인 설립에 동의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STFA 그룹 산하 HMF Asansor의 지분 51%를 인수해 경영권을 확보한 후 ‘현대 엘리베이터 터키’로 출범시킨다. 터키법인 설립으로 현대엘리베이터의 현지법인은 중국(상해/연태), 브라질, 미국, 인도, 말레이시아,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9곳으로 확대됐으며, 아시아, 중동, 미주, 유럽 & CIS, 아프리카에서 총 59개 해외 네트워크를 운영한다.

대북사업 중단으로 위기에 몰린 현대아산은 탄산수 사업에 진출했다. 현대아산은 미국 생수 크라스탈 가이저의 국내 공급 계약을 체결하고 8월부터 온라인 시장을 통해 출시한다. 현대아산에 따르면 크라스탈 가이저는 미국에서 탄탄한 수요층을 확보한 브랜드로 온라인 생수 시장 1ㆍ2위를 다툰다.

남북 경제협력 사업을 해 오던 현대아산은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지난 8년간 1조원 넘는 매출 손실을 기록했다. 현대아산은 지난 2010년 천안함 피격후 이명박 정부가 내린 5ㆍ24 경제제재 조치 이후로 개성공단에 신규 투자를 금지 당했으며 북한 핵 실험 이후 개성공단 체류 인원이 제한을 받으며 숙박 사업에서도 수익을 거두기 힘들어졌다. 관광 사업도 마찬가지다. 지난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 이후 금강산 관광 또한 중단했고, 같은 해 12월 북한의 조치로 개성관광 역시 중단된 바 있다. 최근엔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로 남북관계가 한층 더 경직돼 남북경협 재개는 더 힘들어졌다.

하지만 마냥 손을 놓을 순 없는 법. 현대아산은 국내 건설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아파트, 오피스텔 등 건설 사업을 비롯해 MICE(국제회의, 관광, 컨벤션, 전시) 사업으로 수익을 올리고 있다. 이번 생수업계 진출 역시 남북경협 사업이 중단된 상태에서 현대아산이 찾아낸 새로운 먹거리이다. 다만 생수업계 시장이 작고 그 동안 현대아산이 해 왔던 사업과는 거리가 멀어서 얼마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지는 지켜봐야 한다.

해외로 눈 돌린 현대엘리베이터, 남은 과제는

현정은 회장과 현대그룹의 현대상선 지분은 지난달 15일 대주주 감자를 거치며 종전의 20% 대에서 3.6%로 줄어들었다.

현대상선과의 인연은 끊어졌지만 현 회장의 현대그룹 지배 구조는 공고하다. 현 회장은 현대엘리베이터의 지분 8.65%를 보유한 대주주이다. 현 회장의 자녀인 장녀 정지이 현대유엔아이 전무는 0.32%, 차녀 정영이씨는 0.02%를 갖고 있다. 현대엘리베이터의 대주주는 지분 8.47%를 가진 현대글로벌이다. 현 회장은 현대글로벌의 지분 91.30%를 가진 대주주로 지배구조에는 별 영향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상선과 현대그룹의 인연이 끊어짐에 따라 현정은 회장의 자녀들 역시 현대상선 직함을 뗐다. 정지이 현대유엔아이 전무는 겸직하던 현대상선 글로벌경영실장에서 물러났으며 차녀 정영이 전 현대상선 차장 역시 현대유엔아이로 적을 옮겼다.

현 회장은 현대그룹의 재건이라는 막중한 과제를 안고 있다. 그런 면에서 현대그룹의 ‘캐시카우’ 역할을 할 계열사의 활약이 중요하다.

계열사 내 맏형 역할을 하게 된 현대엘리베이터지만 한 가지 넘어야 할 고비가 남아 있다. 바로 현대엘리베이터의 17%의 지분을 갖고 있는 스위스의 쉰들러홀딩아게가 경영진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이다.

쉰들러는 2006년 현대엘리베이터가 넥스젠캐피탈, NH농협과 맺은 총 17건의 파생상품 계약이 부당하다는 점을 주장하며 2014년 소송을 제기했다. 쉰들러가 문제 삼은 것은 파생상품 계약으로 인한 손실을 현대엘리베이터가 모두 보장해야 한다는 조건이다. 쉰들러 측은 이를 현 회장을 비롯한 대주주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 보고 배상을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송 결과는 8월 내로 나온다. 2년 간 별 진척이 없었던 소송이 갑작스레 이뤄진 것은 대주주 감자를 계기로 현대엘리베이터의 현대상선 지분이 줄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소송이 현대엘리베이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되고 있다.

이명지 기자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