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금 회피 ‘꼼수’ 지적… 생보사 “억울, 약관 어긴 적 없어”

소멸시효 경과 자살보험금 지급 못해 언론ㆍ소비자 비난 봇물

생보사 “대법원 판결 기다릴 뿐 자살보험금 지급 회피 아냐”

자살보험금 지급 ‘당연시’ 되면 여러 부작용 발생할 수 있어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자살보험금 지급’과 관련해 생명보험사들이 뭇매를 맞고 있다. 정치권과 금융당국이 생보사들에 자살보험금 지급을 미루고 있다며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언론과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생보사들이 자살보험금을 주지 않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며 이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더욱 확산시키고 있다.

반면 생보사들은 억울하면서도 떳떳하다는 입장이다. 일부 생보사들은 소멸시효가 경과돼 논란이 될 수 있는 자살보험금 지급 여부에 대해 대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을 뿐, 지급을 회피하기 위한 의도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무엇보다 그동안 논란이 돼왔던 자살보험금에 대한 종지부를 앞두고, 향후 대법원의 자살보험금에 대한 판단에 따라 이를 둘러싼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민병두 의원이 최근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회사별 자살보험금 지급현황’에 따르면 지난달 말까지 14개 보험사가 지급한 자살보험금은 약 1104억원으로 총 2629억원 중 42%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빅3 생보사’ 삼성과 교보, 한화를 포함한 7개사의 경우 지급하기로 한 자살보험금 1515억원 가운데 무려 86% 이상인 1310억원을 지급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 과거 국내 보험사들은 관행 상 자살을 재해로 인정하지 않아 이로 인한 보험금이 청구됐을 때 주계약의 일반사망보험금만 지급했을 뿐, 재해특약 약관상 자살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5월 13일 대법원은 2010년 4월 이전에 판매한 보험 상품의 자살보험금 지급을 둘러싼 생보사와 소비자 간 소송에서 ‘특약 책임개시일로부터 2년이 경과된 후 가입자가 자살할 경우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재해특약 약관을 이행하라며 소비자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대법원의 판결이 나오자 금융감독원은 생보사 임원들을 소집해 보험사별로 자살보험금 지급계획서를 받아 지급을 이행하도록 촉구했다. 특히 같은 달 23일에는 ‘자살보험금 지급 관련 금감원의 입장 및 향후 처리 계획’을 통해 보험사들이 보험 청구권 소멸시효와 관계없이 자살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밝혔고, 자살보험금 지급률이 저조한 보험사에 대해서는 현장검사 실시와 기타 제재를 예고하며 지급이행을 강력히 권고했다.

9개 중소형 생보사가 소멸시효와 상관없이 자살보험금을 전액 지급하겠다고 밝혔지만, 일부 생보사로부터 ‘소멸시효’를 두고 잡음이 일기 시작했다. 자살로 사망보험금을 청구했을 때 자살보험금을 받지 못한 상황에서 2년이 지났다면, 소멸시효로 인해 보험금 지급 의무가 없다는 주장이었다. 상법상 2014년 개정 이전의 보험금 청구권 소멸시효는 2년으로 보험계약자가 이 기간 내에 보험금 청구를 하지 않으면 보험사의 보험금 지급 의무가 소멸한다.

금융당국은 재해사망 특약의 자살보험금의 경우 소멸시효가 지났더라도 전액을 지급하라며 강경한 입장을 취했지만, 일부 생보사에서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 지급에 관한 소송을 제기하며 이에 대한 판결이 다시 대법원으로 넘어갔다. 보험사들은 소멸시효에 대한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나온 뒤 자살보험금 지급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주장이다.

이에 금융당국은 법보다 약관을 지켜야 한다며 보험사를 더욱 압박하고 나서고 있고, 민병두 의원에 의해 자살보험금 지급현황이 공개되며 생보사들을 향한 여론은 더욱 싸늘해지고 있다. 일부 언론사에서는 생보사들이 대법원 판결을 무시한 채 자살보험금 지급을 회피하는 꼼수를 부린다며 강하게 비판하거나, 심지어 보험사와 감독기관과의 유착관계를 의심하는 추측성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특히 보도를 접한 소비자들은 가입할 때와 보험금 지급 때 바뀌는 보험사들의 태도가 이번 일을 통해 다시 나타나고 있다며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반면 생보사들은 자살보험금 미지급에 대한 보도와 비난의 목소리가 여전히 보험사들의 입장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은 채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대법원의 판결과 금융당국의 권고를 존중하지만, 자살보험금 지급에 대한 약관 상 문제가 있었던 시기의 가입자 중 소멸시효가 지난 건에 대해서만 대법원의 최종판결을 기다리는 것일 뿐 약관상 보험금 지급은 문제없이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국내 빅3 생명보험사 관계자는 “대법원에서 자살보험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기 때문에 소멸시효가 지나지 않은 건은 보험금 지급을 대부분 완료시킨 상태”라며 “다만 그동안 자살보험금 지급과 관련해 소송이 몇 차례 있었고, 대법원의 5월 판결이 있기 전에는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의 경우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판결도 있었기 때문에 최종판결을 기다리는 것 뿐”이라고 밝혔다.

다른 빅3 생보사 관계자 역시 소멸시효가 지난 건에 보험금 지급을 하지 않는 방침은 자살보험금을 포함한 재해특약뿐만 아니라 다른 계약에도 해당하기 때문에 사법부의 결정에 맡길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특히 자살보험금 지급에 대한 그동안의 선례와는 다른 판결이 나와 충분히 논란이 될 수 있고, 자살보험금 지급에 대한 정식적 가이드라인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에 확실한 판결이 나오면 지급을 이행하겠다고 해명했다.

무엇보다 금융당국과 소비자 사이에서는 보험사들이 약관대로 자살보험금 지급을 이행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생보사들은 절대로 약관을 어긴 적이 없어 떳떳하다는 주장이다.

그는 “일부 언론보도에서는 생보사들이 약관을 어기고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 지급에 대해 회피하거나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한다고 하지만, 소멸시효가 지난 계약의 보험금 지급은 자살보험금뿐만 아니라 다른 계약의 약관상에도 문제가 된다”며 “생보사들의 자살보험금 지급이 절반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소멸시효 문제로 해결되지 않았거나 연락이 닿지 않는 등 소재파악이 불분명한 일부 계약자들로 인해 빚어진 결과로 나머지 고객들에는 자살보험금을 제대로 지급했는데 어떻게 이것을 약관을 어겼다라고 할 수 있는지 억울한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사실 자살보험금 지급과 관련된 약관 오류 문제는 보험사뿐만 아니라 금융당국에도 그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 과거부터 있어 왔다. 지난 2001년부터 2010년 4월 이전까지 생보사들이 판매한 보험 상품의 재해특약 약관에는 ‘계약의 책임개시일 부터 2년이 지난 후에 자살한 경우에는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 한다’는 내용이 제시돼 있었다. 이는 생명보험표준약관에 따른 일반 보험금 약관과 동일했으며, 금융당국에서 이 약관의 오류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제재가 없었기에 대부분의 보험사들이 이를 채택해 보험을 판매해왔다.

소멸시효와 상관없이 자살보험금 지급을 이행하고 있다는 외국계 생보사 한 관계자는 “자살보험금 관련 약관 상 오류가 있었던 시기 문제가 커졌고, 보험사뿐만 아니라 이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던 금융당국 모두에 책임이 있던 게 사실”이라며 “뒤늦게나마 금융당국으로부터 약관상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어 이를 지체 없이 수정했고, 모든 생보사가 늦어도 2010년까지는 전부다 이 약관과 관련된 오류를 고쳤다”고 설명했다.

이어 “약관상 오류를 개정한 뒤 자살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명령까지 성실히 따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여론이 생보사에게만 책임을 돌리려는 시선이 안타까울 뿐”이라고 밝혔다.

생보사들은 대법원의 판결이 늦어질수록 불리한 입장에 있었다. 보험금 지급이 늦어질수록 이에 대한 지연이자가 생기기 때문에 대법원의 판결이 보험사들의 손을 들어주지 못한다면 이들이 지급해야하는 보험금은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자살보험금을 둘러싼 여론의 뭇매로 인해 언론과 소비자들 사이에서 억측들까지 떠돌며 생보사들의 이미지를 악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내 중소생보사 한 관계자는 “생보사들이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며 자살보험금 지급을 유보하고 있는 것에 대해 계약자들의 소멸시효가 지나도록 시간을 끄는 것이라고 의심하는 분도 계시지만, 향후 대법원 판결은 이미 소멸시효가 지난 건들에 대한 보험금 지급 여부”라며 “한 언론에서 자살보험금 지급률이 저조하다는 것을 두고 생보사들과 금융당국과의 유착관계를 의심하는 추측성 기사를 보도했지만, 감독기관에서는 오히려 소멸시효에 상관없이 자살보험금을 지급하라며 압박 아닌 압박을 하고 있는데 유착이 있다면 이런 모양새나 나올 수 있는가”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만약 이번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소멸시효가 지난 계약자에게도 자살보험금을 지급하도록 결론이 나게 된다면, 이로 인해 생길 수 있는 다양한 부작용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생보사 관계자는 “판결을 떠나 자살보험금 지급의 정당성은 꾸준히 문제가 돼왔고, 앞으로 자살보험금 지급이 당연시된다면 자살을 정당화시킬 위험이 있다”며 “생활고나 우울증 등의 사연으로 자살하는 사람들의 사정을 개인적으로는 딱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이들에게 보험금을 지급하는 게 당연시된다면 오히려 나중에는 보험사가 자살률을 올리는 데 기여했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향후 보험 가입 인수의 기준이 까다로워질 수 있고, 현재 자살보험금 지급 면책기간 2년은 더욱 길어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일본의 경우 계약자가 보험금을 목적으로 자살하지 않고, 우울증 등 심신미약의 이유로 목숨을 끊었을 때 자살보험금을 지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 내 대부분의 보험사가 자살을 목적으로 둔 보험가입을 방지하기 위해 자살보험금 지급의 면책기간을 3년으로 두고 있다. 특히 보험금을 목적으로 자살하지 않았다는 것을 조사하기 위한 과정과 보험가입 인수 절차 역시 까다롭기 때문에 보험사와 보험 소비자 간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생보사 관계자는 “자살보험금 지급이 당연시됐지만 면책기간 조정마저 하지 못하게 한다면, 보험사마다 이에 대한 방안으로 보험료 인상을 계획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행 유병자 가입 인수의 경우 의사의 질병 소견서를 받거나 방문검사 등을 통해 보다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었지만, 자살보험금을 타기 위한 가입을 예방하기 위해 소비자의 채무와 심신건강, 직업, 보증인 보유 상태 등 현재 생보사 가입에 불필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심사 과정도 거치게 될 수 있어 민원 역시 증가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민철 기자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