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 행방 모르는 중소화주, 발 묶인 수출업체 ‘비상’… 외국 선사만 웃는다

법정관리로 멈춰버린 한진해운 선박… ‘물류대란’ 파장

전자 대기업, 스마트폰은 영향 없지만 가전은 수송 차질

국적 선사 선호했던 중소 화주들, ‘믿는 도끼에 발등’

외국 선사들 한진해운 화물 수요 흡수할 듯

우리 나라 수출입 물량의 99%는 선박을 통해 전세계로 향한다. 수출형 국가인 우리 나라에서 해운은 기간산업으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

중국의 중추절 및 국경절, 미국의 블랙프라이데이 및 핼러윈데이 등 세계적으로 굵직굵직한 연휴를 앞둔 시기엔 물량이 폭주한다. 이는 선사들이 운임을 올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기도 하다. 그런데 이 시기를 앞두고 한진해운발 ‘물류 대란’이 발생했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바다 한 복판에서 발길이 묶여버린 것이다.

“내가 보낸 화물이 하필 한진해운 배에 실려 있나”

세계 7위, 국내 최대 선사였던 한진해운이 결국 법정관리를 피하지 못하게 됐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1일 오후 7시부터 한진해운에 대한 회생절차 개시 결정을 내렸다. 법원이 제시한 한진해운의 회생계획안 제출 기한은 오는 11월 25일까지다. 한진해운의 법률상 관리인은 석태수 현 대표이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 절차를 밟으면서 물류길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이미 한진해운은 외국에서는 선박 가압류를 당하기도 했다. 그동안 한진해운이 내지 못한 용선료를 받기 위해 외국 선주사들이 한진해운 선박을 대신 압류하는 것이다.

한진해운의 선박 운항 중단은 곧 화주들의 고민으로 이어졌다. 제조업체들은 중국의 공장들이 쉬는 중추절과 국경절로 이어지는 연휴 전 대량 물량을 보내곤 한다. 다행히도 이 시기는 절묘하게 피해갈 수 있었다. 하지만 미국의 최대 쇼핑 축제로 불리는 ‘블랙프라이데이(11월 마지막주)’ 를 대비한 제품들이 미국행 선박에 몸을 실어야 하나 한진해운 사태로 선박을 잡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LG전자 조성진 H&A 사업본부장은 지난 2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국제가전전시회에서 “한진해운을 대신할 업체를 찾고 있는데 물류 업체가 한정돼 있다 보니 물류비가 오르는 것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반면 삼성전자와 LG전자와 같은 휴대폰 제조 업체들은 큰 손해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워낙 빠르게 변하는 휴대폰 시장의 유행에 맞추기 위해 비교적 속도가 빠른 항공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휴대폰 제조 업체 관계자는 “수송에 한 달이 걸리는 선박 운송의 경우 현지에 도착하면 이미 휴대폰 유행이 지나 있다”고 밝혔다.

대체 선사를 찾기가 어려운 것은 중소기업도 마찬가지다. 국내 화주들의 경우, 얼라이언스로 인해 기항지가 외국 선사와 국내 선사 간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선사를 선호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국내 화주들의 보수적인 성향과 함께 일반적으로 화물 수송 시 발생하는 문제를 외국 선사보단 국내 선사들이 더 신속하게 처리해줬기 때문이다.

화주들은 선사들과 직접 계약하지 않는다. 이들은 포워딩(국제물류주선업체)에게 선적을 의뢰하고 포워딩 업체들이 선사와 직접 접촉한다. 화주들이 선사를 직접 지정하지 않은 경우엔 포워딩이 적합한 선사를 임의로 찾은 후 화주에겐 선적일과 하역일만을 공지해 준다. 이 때문에 자신의 화물이 한진해운에 실렸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 당황하는 화주들의 항의 전화가 포워딩 업체로 빗발치고 있다.

한진해운 사태로 인해 피해를 본 중소기업들의 실태를 조사하고 있는 한국무역협회 관계자는 “중소 화주의 경우 자신이 보낸 화물이 억류된 한진해운 선박에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 진퇴양난에 놓인 경우가 많다. 이 분들은 당장 거래에 차질이 생기는 것을 넘어서 바이어를 잃을 위기에 놓였다고 말한다”고 밝혔다.

포워딩 업체 또한 쏟아지는 화주들의 문의 전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포워딩 업체 관계자는 “내 화물이 왜 한진해운 선박에 실린 것이냐는 항의 전화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과거엔 서비스가 좋다는 이유로 국적선사를 선호했던 화주들이지만 현재는 확연히 달라진 상황에 포워딩 업체들도 당황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우선 금융당국은 한진해운의 협력업체와 중소 화주를 상대로 경영 안정 특별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당국의 조사 결과 한진해운과 상거래 관계가 있는 협력업체는 총 457곳, 채무액은 640억원으로 집계됐다. 또 금융위는 중소 화주가 수출 차질로 인한 경영 손실을 볼 수 있다고 보고 전면적인 실태 조사에 나선다.

한국무역협회 역시 조사에 들어갔다. 무역협회는 한진해운의 법정 관리로 수출 화물이 억류되는 피해를 입었거나 혹은 이러한 피해가 예상되는 업체들에 대해 ‘수출화물 물류 애로 신고센터’에서 접수를 받고 있다. 무역협회는 지난 6일 오전 9시 기준으로 119건의 피해 접수 사례가 신고됐다고 밝혔다. 피해 규모는 약 4000만달러 가량이다.

한진해운 몰락으로 머스크만 웃는다?

한진해운뿐만이 아니라 세계 선사들은 지난 2008년부터 끊임없는 위기를 겪어 왔다. 물량은 늘지 않지만 날로 늘어나는 선복 공급량으로 인해 운임 하락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해운업계에서는 2008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를 계기로 시작된 해운업계의 불황의 중심에 덴마크선사 머스크라인이 있다고 말한다. 전 세계 노선에서 높은 점유율과 초대형 선박 투입으로 세계 1위 선사 자리에 오른 머스크는 운임 하락을 부추겼다는 평을 듣고 있다.

머스크는 현대상선을 자신들의 얼라이언스 2M에 합류시키며 눈길을 끌었다. 2M은 머스크와 선복량 기준 세계 2위 선사 스위스의 MSC가 결성한 얼라이언스다. 상대적으로 아시아-유럽에선 높은 점유율을 갖고 있지만 미주 노선에서는 타 얼라이언스에 점유율이 밀린다는 평을 들어 왔다. 때문에 미주 노선에서 강세를 보여온 우리 나라 선사를 영입해 머스크가 미주 노선 강화를 꾀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왔다.

한때는 머스크가 현대상선을 인수하는 것이 아니냐는 설이 나오기도 했다. 머스크는 지난 1999년에는 사프마린과 미국의 시랜드를, 2005년에는 당시 세계 3위였던 네덜란드 피엔오 네들로이드를 인수 합병해 몸집을 불렸다. 중소 선사 인수를 통해 취약했던 아프리카, 북미, 대서양 항로의 점유율을 높인 선례가 이번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우려였다.

한편, 한진해운 사태로 해상 운임은 오름세를 나타내고 있다. 9월 첫째 주 기준으로 상하이발 유럽행 운임은 전주 대비 TEU당 254달러 상승했다. 상하이발 북미행 운임 역시 북미 동안행이 FEU당 757달러 상승한 2441달러를 기록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에 따르면 한진해운은 북미항로에선 7.4%의 점유율, 유럽항로에선 4%를 차지하고 있다. 한진해운의 서비스가 중단되면서 선박 공급량이 줄자 운임이 상승하는 효과를 준 것으로 보인다. 물론 현재 해운 시장은 선박의 대형화로 공급이 넘쳐나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는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 KMI는 진단했다. 그러나 운임 상승은 화주들에겐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특히 중소 화주들의 경우는 운임 상승으로 인해 향후 수출 업무에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대상선은 한진해운 사태 이후 물류 운송에 차질이 생기면서 이를 보완하기 위해 대체 선박을 투입했다. 현대상선은 4000TEU(20피트 컨테이너를 4000개 실을 수 있는 크기)급 선박 4척을 투입하며 첫 번째 선박은 9일 부산을 출발해 광양을 찍고 미국 로스앤젤레스(LA)로 향한다. 하지만 현대상선의 투입 선박으로 물류 수요를 다 대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일각에서는 한진해운의 물량이 외국 선사로 흘러 들어갈 것이라고 본다. 이를 틈타 외국 선사들이 미주 노선 강화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해운 전문 저널 ‘로이즈리스트’는 머스크와 MSC가 태평양 노선을 개설한다고 밝혔다. 머스크는 부산과 로스앤젤레스를 기항하는 신규 노선을 개설한 후 4000TEU급 선박 6척을 투입할 예정이다.

외국 선사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면서 자연스레 한진해운의 수요를 끌어들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발 빠른 외국선사들은 한진해운의 운항 중단으로 생긴 미주 노선의 공석을 채우기 위해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화주들은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해운 구조조정을 주도한 정부와 한진해운 경영진은 서로 책임을 미루기에 바쁘다. 정부는 한진해운 측이 화주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주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고, 한진해운을 경영했던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은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상황이다. 갈 길을 잃은 한진해운 선박처럼 지금 한진해운을 둘러싼 상황은 답답하기만 하다.

이명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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