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거래소 “ELS 구원투수” vs 증권사 “사업성ㆍ수익성 도움 안 돼”

올해 상반기 예정됐던 손실제한형 ETN 상장… “연내 상장도 불투명”

손실제한형 ETN, 증권사에 진입장벽 부담되고 필요성 높지 않아

거래소-증권사 선결과제, ‘ETN 활성화’ 목소리

‘손실제한형 ETN(상장지수증권)’의 상장이 또 미뤄질 조짐이다. 금융당국의 ETN 상장 규정에 대한 개정의 움직임이 여전히 논의단계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당초 금융당국과 한국거래소는 늦어도 올 상반기까지 이를 상장한다는 계획이었지만, 지난 2월과 6월에도 이 상품의 상장이 미뤄졌다.

최근 한국거래소가 개최한 손실제한형 ETN 추진 태스크포스(TF) 회의에서도 구체적 상장 시기가 결정되지 않았고 실무적 이야기가 오고 간 것으로 전해졌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금융당국이 이달 말 발표할 ‘파생상품 시장 활성화 방안’에 손실제한형 ETN을 포함시킬 가능성이 낮아졌고, 연내 상장도 불투명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금융당국과 거래소는 손실제한형 ETN의 상장이 연기된 것에 대해 규정 개선과 시스템 마련 절차 상 시행착오가 걸릴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일각에서는 증권사 입장에서 사업성ㆍ수익성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상품의 특징으로 인해 ‘증권사 눈치 보기’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손실제한형 ETN은 ELS(주가연계증권)를 장내화한 상품으로 업계에서는 이를 ‘ELS의 구원투수’로 부르고 있다. 그동안 증권사들이 ‘저금리 시대 고수익 창출’이라며 ELS 판매를 무리하게 진행해왔고 올해 초 홍콩H지수가 폭락하면서 4조원 규모의 ELS가 원금손실구간(녹인, Knock-In)에 진입해 대규모 손실 우려를 낳았다. 급기야 최근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로 인한 글로벌 금융시장의 동요마저 겹치며 주요 9개 증권사들의 2분기 영업이익이 크게 추락했다.

이에 지난 2014년 최경수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ELS의 손실우려를 낮추고 중위험ㆍ중수익 투자 활성화 등을 위한 방안으로 ‘ELS 장내화’와 ‘공모·지수형 ELS 상품의 표준화’를 제시한 것을 시작으로 손실제한형 ETN 상품의 필요성이 제기돼왔다.

손실제한형 ETN은 고수익을 추구하지 않지만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하고 100% 원금손실이 가능한 ELS보다 투자 위험성을 줄일 수 있다는 점, 그리고 ELS의 환매 제한과 장외 매매수수료 부담을 극복할 수 있다는 장점도 갖추고 있다.

금융당국과 거래소는 손실제한형 ETN의 상장으로 인해 ELS 장내화가 실현된다면 실시간 거래 지표 산출에 따른 수시 매매가 가능해 유동성을 높이고, 1% 내외의 선취 판매수수료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이 상품은 투자자들이 손실과 이익 구간을 보다 쉽게 판단할 수 있도록 기초지수는 한가지로만 적용될 예정이다. 또 원자재나 증권지수, 환율 등의 가격을 따라가는 대부분의 지수추종 형식 ETN과 달리 수익률 상하단이 ‘±30%’로 제한돼 있고 원금손실구간이 없어 보다 안정적 투자 전략을 짤 수 있다.

이에 지난 5월 금융당국과 거래소는 ‘펀드상품 혁신 방안’에서 “환금성과 가격 투명성이 확보된 ETN이 ELS의 대체 투자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유도하고 간접투자도 활성화해야 한다”며 “ELS보다 투자자가 이해하기 쉬우면서 손실이 일정범위 내에서 제한되는 구조를 가진 ETN이 출시될 수 있도록 상장요건을 정비한다”고 발표했다. 동시에 손실제한형 ETN의 올해 상반기 내 상장 움직임이 더욱 활기를 띠었다.

그러나 펀드상품 혁신 방안이 발표된 지 3개월이 넘도록 손실제한형 ETN의 상장은 실현되지 못한 상태다. 상장이 가장 유력한 시기였던 지난 6월에도 말일이 다 돼서야 “빠르면 올해 말 도입 가능”이라는 소식과 함께 ‘11월 상장설’이 제기됐다.

이후 거래소가 지난달 말부터 이번달 2일까지의 개최를 추진한 손실제한형 ETN 추진 TF 회의마저 연기될 것이라는 언론보도가 나오며 “연내 상장도 불투명하다”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물론 이 보도와는 다르게 TF 회의는 거래소와 ETN 발행증권사 관계자 등이 참가한 가운데 차질 없이 개최됐다. 회의에서는 손실제한형 ETN 상품 구조에 대한 논의 등이 진행됐지만, 이번에도 구체적 상장 시기를 정하지는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거래소 관계자는 “회의에서는 손실제한형 ETN 규정과 상장할 상품의 구체적 형태 그리고 향후 상장이 된다면 어떤 내부 시스템을 반영할 것인지 실무적 이야기가 오고 갔다”며 “손실제한형 ETN이 기존 상품들과 성격이 많이 다르기 때문에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손실제한형 ETN 상장이 미뤄지는 원인을 두고 상품 규정 개선과 내부시스템 구축의 어려움을 꼽고 있다. 실제로 거래소 관계자는 “손실제한형 ETN이 상장 후 IT시스템 구축과 함께 상장요건과 매매제도, 지수허용범위 조정 등 복잡한 점들이 많다”며 “손실제한형 ETN에 대해 어떤 지표를 가지고 시장을 관리할지, 가격평가는 어떻게 할지, 발행사들이 준비할 것들은 뭔지 증권사들과 함께 금융위와의 협의도 필요해서 시간이 걸리고 있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손실제한형 ETN으로 발생할 수 있는 금융당국과 거래소 그리고 증권사간 ‘불편한 이해관계’ 역시 상장이 차일피일 미뤄지는 원인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아무리 거래소가 손실제한형 ETN의 상장을 주요 사업으로 추진하고, 금융당국도 이를 지지한다 할지라도 상장 전후 증권사들 사이에서의 잡음 발생이 우려돼 논의가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사실 손실제한형 ETN은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일 수 있지만, 대부분의 증권사 입장에서는 필요성이 높은 상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ETN의 진입장벽은 다소 높은 편으로 증권사들은 이를 발행하기 위해 상당한 부담을 안게 된다. ETN을 발행하기 위해서는 종합투자인가를 보유하고 상장예비심사 신청일로부터 최근 3년간 장외파생상품 투자매매인가를 유지해야 한다. 또 자기자본 1조원 이상과 영업용 순자본비율 200% 이상 그리고 복수의 신용평가사로부터 받은 신용평가등급이 AA- 이상이어야 하는 등 까다로운 조건이 있다.

때문에 다른 문제를 낳을 수 있다. 보통 ELS의 경우 금융투자협회 소속 국내 23개의 증권사가 모두가 상품을 내놓고 있지만, 손실제한형 ETN이 상장되면 이 진입장벽을 넘은 일부 증권사만이 발행 수혜를 입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현재 ETN을 발행하는 증권사는 삼성증권과 NH투자증권, 미래에셋증권, 한국투자증권, 현대증권, 신한금융투자, 미래에셋대우 등 7곳이다. 최근 대신증권이 내년 ETN 시장 참여를 발표하며 ETN 발행 증권사 수는 8곳으로 늘어날 전망이고 하나금융투자도 ETN 발행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ETN 진입장벽을 넘을 수 있는 증권사가 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

손실제한형 ETN이 사업성이 떨어져 수익적 측면에서도 증권사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도 이 ‘불편한 이해관계’를 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사실 ETN의 거래량이 ELS나 ETF(상장지수펀드)보다 그리 많지 않고, 그동안 투자자들에게 많은 반응이 있었던 상품이 아니기 때문에 수익을 내야 하는 증권사 입장에서는 손실제한형 ETN에 큰 관심을 둘 수 없다”며 “그러나 손실제한형 ETN 상장이 금융당국과 거래소에서 진행하는 사업으로 증권사 입장에서는 우선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주간한국>의 취재에 응한 대부분의 증권사 관계자들은 손실제한형 ETN에 대한 시각에 대해 밝히는 것에 조심스러워 했다. 단지 썩 내키지는 않지만 금융당국의 판단과 거래소와의 협의된 내용을 따르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고, ETN 발행 증권사들이 이 상품의 상장에 참여한다면 동참하는 것이 업계 내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는 입장이다.

반면 거래소 측은 손실제한형 ETN이 소위 ‘대박 상품’은 아니지만, 안정적 수익을 확보할 수 있는 장점으로 인해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증권사들도 다수 있다는 설명이다.

거래소 관계자는 “한 언론보도와는 다르게 손실제한형 ETN은 거래형 상품이 아닌, 투자형 상품으로 손실이 제한돼서 이전에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손실을 방어하면서 적정한 수익률을 획득하는 장점이 있다”며 “손실제한형 ETN을 반신반의하는 증권사들도 있겠지만, 나중에 안정형 투자자들로부터 큰 반응을 얻을 것으로 보는 업계 관계자들도 상당하다”고 밝혔다.

이어 “증권사들은 ELS의 수수료와 높은 판매량 그리고 투자금 손실 가능성으로 인해 ETN보다 선호할 수 있고, 손실제한형 ETN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낮을 수도 있다”며 “그러나 증권사들도 굳이 돈을 들여가며 손실제한형 ETN 시장에 참여하려는 것에는 향후 이 상품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손실제한형 ETN의 상장 시기가 더욱 미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고, 이 상품을 둘러싼 거래소와 일부 증권사의 엇갈리는 상황에서 금융당국과 거래소 측이 ETN 상품에 대한 투자 홍보와 거래 활성화를 선결 과제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ETN 미발행 증권사 한 관계자는 “대부분의 일반투자자들이 앞서 ETN 자체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기 때문에 손실제한형 ETN을 선뜻 내놓기도 그리고 받아들이기도 고민이 될 것”이라며 “어느 한 쪽의 눈치 보기로 몰아갈 것이 아닌, 이 상품이 ELS를 대체하고 투자자들의 상품 선택의 폭을 넓히기 위한 것이라면 우선 ETN부터 투자자들 사이에서 활성화되도록 정책 방향을 잡는 게 우선일 것”이라고 밝혔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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