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체제 위한 지주사 전환… 최순실 게이트 넘고 삼성물산 안을까

삼성전자, ‘주주가치 제고 위해 지주회사 전환 고려’

인적 분할 형태 택해, 6개월 시간 걸려

삼성물산, 삼성전자 지주회사와 한 가족 될까

경제민주화ㆍ최순실 게이트 의혹 뛰어넘어야

‘최순실 게이트’ 연루로 뒤숭숭한 삼성그룹이 지주회사 전환의 청사진을 그렸다. 그동안 삼성전자를 분할해 지주회사로 전환한다는 가설이 증권가를 중심으로 제기됐으나 그룹 차원에서 공식적 언급을 한 것은 처음이다.

지주회사 전환에 대한 기대감을 안고 지난 8일 삼성전자의 주식은 사상 처음으로 180만원을 넘어서면서 최고가 기록을 또 갈아 치웠다.

삼성그룹은 삼성전자 지주회사와 삼성물산의 합병에 대해선 일단 부인했다. 삼성물산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대주주로 있어 향후 승계에 핵심 역할을 할 것이라 예측됐던 계열사다.

한편 삼성그룹은 지난해 이뤄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대해 의혹의 시선을 받고 있다. 비선실세 최순실 모녀에 대한 지원과 연관이 있지 않냐는 추측이다.

예상대로 삼성전자 분할 후, ‘지주회사’

삼성전자는 지난달 29일 이사회를 열어 주주환원 정책을 포함한 전반적인 주주가치 제고 방안을 발표했다. 이 방안에는 삼성전자의 지주회사 전환 가능성이 포함됐다.

삼성전자는 지주회사 전환 가능성과 해외 증시 상장의 기대효과 등 주주 가치를 최적화하기 위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사업구조를 간결화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 왔으며, 기업의 최적 구조를 결정하는 데 있어 전략, 운영, 재무, 법률, 세제, 회계 측면에서 다양하고 중요한 사안들에 대한 검토가 필요해 여러 단계에 걸친 장기간 검토 과정이 요구될 수 있다”면서 “외부전문가들에게 자문을 의뢰하고 있으며 검토에 최소 6개월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삼성은 “중립적인 입장에서 기업의 최적 구조를 검토 중이며, 구체적인 방안은 추후 확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삼성그룹이 삼성전자를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나눈 후 지배구조를 정리할 것이라는 증권가의 예측이 있어왔다. 삼성그룹이 삼성전자의 지주회사 추진 전환을 공식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삼성그룹이 ‘삼성그룹 홀딩스(지주회사)’ 설립을 위해 삼성전자를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나눈 후 지주회사를 삼성물산과 합병하는 방안은 설득력이 있는 시나리오였다. 지난해 통합 삼성물산 출범으로 이재용 부회장은 17%의 지분을 가진 대주주 자리에 올랐다. 삼성물산은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한 오너 일가의 지분이 40%를 넘으므로 사실상의 지주사 역할을 하게 될것이라는 전망이 높았다.

우선 삼성전자는 “삼성전자 지주회사와 삼성물산의 합병을 검토할 계획은 현재로서는 전혀 없다”고 밝혔다. 이상훈 삼성전자 사장(CFO)은 “현재로서는 삼성전자 지주회사 전환 여부만 검토한다”며 “중립적 입장에서 지주회사 전환이 어떤 영향을 주는지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은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삼성전자의 분할을 제안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앨리엇은 삼성전자와 제일모직의 합병 당시 반대 의사를 밝히며 가장 큰 걸림돌로 여겨졌었다.

엘리엇의 계열사인 블레이크 캐피탈&포터캐피탈은 국내 홍보회사를 통해 “블레이크 캐피탈과 포터 캐피탈은 삼성전자가 제시한 개략적인 ‘주주가치 제고 방안’이 향후 회사에 건설적인 첫 걸음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앞으로 기업 지배구조 검토 후 보다 의미 있는 변화를 기대하며, 삼성과 협력해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삼성물산 역할, 여전히 주목

삼성전자의 지주회사 전환을 위한 시간은 6개월 정도 걸릴 것으로 보인다. NH투자증권 이세철 애널리스트는 “향후 삼성전자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신규사업인 자동차 전장 사업을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최근 전장업체 하만을 인수해 자동차 전장 사업의 확대 행보를 보이고 있다. 전장사업과 커넥티드 기술 개발로 메모리, OLED 등 부품 사업과의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분할 형태는 인적 분할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인적 분할은 기존 주주들이 합병 전 회사의 주식 분배율에 따라 합병 회사의 주식을 나눠 갖는 방식을 말한다.

삼성물산의 역할에는 물음표가 붙었다. 당초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지주회사와의 합병을 통해 지주회사의 역할을 이어나갈 것으로 예상됐다. 일단 삼성그룹은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의 합병은 없다고 못 박았다.

그러나 증권가에서는 여전히 삼성전자 지주회사와 삼성물산의 합병에 대해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상훈 삼성전자 사장 역시 삼성물산과의 합병 부인에 대해 ‘현재로서는’ 이라는 조건을 달기도 했다.

삼성물산은 향후 기업 가치를 높여야 한다. 우선 삼성그룹이 5대 신수종 사업으로 꼽은 바이오 분야의 몸집을 키우고 있다.

지난 11월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약 10조원 규모로 상장됐다. 이와 관련해 일부 언론이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상장과 관련해 특혜를 받았다고 보도한 바 있다. 3년 연속 적자로 주식시장 상장 요건을 채우지 못했으나 공교롭게 올해 초 금융당국이 관련 기준을 제외했다는 지적이었다.

이에 대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15년 11월 4일 한국거래소의 상장규정 개정에 따라 적자기업도 상장이 가능해졌으며, 적법한 절차에 따라 상장을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으로 중복이 지적된 건설 부문에 대한 정리도 필요하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한 증권가 애널리스트들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중복된 사업 부문을 통합함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이유로 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물산은 해외 및 국내 건설, 제일모직의 경우 리조트를 포함한 국내 건설 사업을 도맡고 있다. 때문에 겹치는 사업 부문을 정리해야 합병 시너지 효과를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삼성은 통합 삼성물산의 중복된 인력을 털어내기 위해 건설부문에서 올해 1650명의 인력 감축을 실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올 3분기 실적을 영업이익 1530억원, 매출 2조 9770억원, 수주실적 6조 6300억원으로 잠정 밝혔다. 그러나 해외 건설 경기가 침체되면서 이에 대한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계속되고 있다.

이보다 더 큰 걸림돌은 20대 국회에 발의된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이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지난 7월 기업의 분할이나 분할합병 시 기업이 원래 보유하고 있던 자사주에 분할신주를 배정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의 상법개정안을 발의했다.

만약 이 법안이 통과된다면 삼성전자 자사주 12.8%를 활용한 지주사 전환은 불가능해진다. 20대 국회는 여소야대로 삼성그룹에겐 상황이 그리 좋지 않다.

삼성그룹이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되면서 통합 삼성물산 출범 과정에서 혜택을 입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커지는 것 또한 부담이 되고 있다.

청문회 출석한 이재용, “최씨 모녀 지원, 대가성은 없었다”

한편 지난 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국회 국정조사 특위 1차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삼성그룹은 최순실ㆍ정유라 모녀에 대한 지원이 대가성이 아니었나는 혐의를 받고 있다. 총 9명의 재벌 총수가 증인으로 출석했지만 줄곧 이 부회장에게 질문이 집중됐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7월과 올해 2월, 박근혜 대통령과 독대한 사실을 인정했지만 그 자리에서는 삼성물산 합병이나 기부금 출연 얘기를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합병을 앞두고 삼성물산 주식을 일부러 떨어트렸다는 의혹과 제일모직 가치를 올리고 삼성물산 가치를 낮춰 합병 비율을 유리하게 이끈 게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서는 “미비한 것도, 고쳐나갈 것도 많지만 이렇게까지 의심을 하시는 것은 조금 그렇다”고 말했다.

이날 청문회에서는 윤석근 일성신약 대표가 출석해 “삼성물산은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할 것이라는 걸 미리 알고 있었다”는 취지의 증언을 했다. 윤 대표는 “국민연금에서 합병에 찬성하라는 압력을 받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국민연금에서는 직접적으로 없었으나 삼성물산에서는 설득이 있었다”고 밝혔다. 윤 대표는 국민연금에서 반대하면 어쩌냐고 반문했고 곧 ‘국민연금은 다 됐다(찬성했다)’라는 발언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윤 대표는 당시 대화 상대가 김신 삼성물산 사장이라 밝혔다.

국민연금 문형표 이사장은 국민연금이 지난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찬성건과 관련해 청와대로부터 어떠한 협조 요청을 받은 일이 없다고 해명했다.

이러한 해명에도 불구하고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국민연금이 개입했다는 의혹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달 15일로 선고가 예정돼 있던 삼성물산 합병 무효 청구 소송의 변론 기일은 내년 3월 20일로 미뤄졌다. 재판부는 박영수 특검팀의 수사 결과를 지켜본 후 재판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명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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