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미래전략실 해체 주목…기업 중요 결정 좌우, 대체 기구 나오나

이재용, ‘미전실 해체 발언’ 즉흥적인가 계획적인가

수십 곳의 계열사, 컨트롤타워 없이 아우르기 쉽지 않아

SK ‘수펙스’, 롯데 ‘정책본부’ 검찰수사 핵심으로

지주회사 통해 신성장 동력 이끌기도

이름만 바꾸는 ‘무늬만 해체’ 가능성도

삼성그룹의 ‘미래전략실’은 삼성과 관련된 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그룹의 중요한 결정을 도맡고 있기 때문이다.

이재용 부회장의 ‘미래전략실 해체 검토’ 발언으로 각 대기업의 컨트롤타워들도 덩달아 주목 받고 있다. 삼성의 미전실 외에도 SK의 ‘수펙스추구협의회’, 롯데그룹의 ‘정책본부’ 등이 있다. 지주회사가 컨트롤타워의 역할을 하는 LG와 같은 모델도 있다. 반면 별도의 컨트롤타워가 없는 현대자동차그룹과 같은 기업도 있다.

미전실 해체는 이건희 시대의 종언

지난 6일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1차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미래 전략실 해체 발언으로 삼성그룹의 컨트롤타워가 주목을 받았다.

미래전략실은 삼성그룹 이병철 창업주의 비서실에서 출발했다. 현재 전략팀, 기획팀, 인사지원팀, 법무팀, 커뮤니케이션팀, 경영진단팀, 금융일류화지원팀으로 구성돼 있다. 약 200명의 임직원이 근무하고 있으며 각 계열사에서 파견되는 형태로 구성돼 있다.

미래전략실은 1990년대 중반부터 그룹 구조조정 본부, 전략기획실, 미래전략실이라는 명칭의 변화를 겪으며 명맥을 이어 왔다. 그룹 전체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는 만큼 막강한 권력을 가졌던 임원들이 거쳐간 곳이다. 삼성그룹의 ‘2인자’로 꼽혔던 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 또한 전략기획실장 출신이다. 삼성 오너가의 차명 상속과도 연관돼 홍역을 치렀으며 지난 2008년 대선 비자금과 관련됐다는 이유로 한 차례 해체를 겪기도 했었다. 만약 이 부회장의 발언대로 미래전략실이 해체 수순을 걷는다면 두 번째 조직 와해를 겪는 셈이다.

그동안 삼성그룹 계열사 간 중요한 결정을 조율해 온 만큼 이 부회장의 미래전략실 해체시사 발언은 큰 주목을 받았다. 청문회 이튿날 수요사장단 회의 출근길에서 이준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커뮤니케이션팀장(부사장)은 이 부회장의 미래전략실 해체 발언이 계획된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아니다’라고 답했다. 또 향후 계획에 대해선 ‘조만간 설명할 자리가 있을 것’이라 답했다.

이번 이 부회장의 발언이 그 동안 이 부회장이 보여온 ‘실용주의’와 맞닿는다는 의견도 있다. ‘미래전략실 해체’ 발언이 즉각적으로 나온 것이 아닌 계획됐다는 해석이다. 그러나 이 발언은 삼성그룹의 계획이 아닌 이 부회장의 머리 속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상 이건희 시대를 상징했던 미래전략실을 해체하고 그동안 이 부회장이 추진해 온 활발한 매각 행보를 강화해 ‘이재용의 삼성’을 만드는 밑그림의 하나라는 것이다.

‘압수수색’의 중심 된 컨트롤타워

이번 최순실 게이트로 폭탄을 맞은 건 삼성그룹뿐만이 아니다. 롯데와 SK 역시 서울 시내면세점 선정과 관련해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롯데와 SK는 미르ㆍK스포츠재단 설립에 후원금을 냈는데 일종의 ‘대가성’이 아니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압수수색의 중심이 된 곳은 SK의 ‘수펙스추구협의회’와 롯데의 정책본부다. 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만큼 면세점 입점과 관련된 핵심 자료가 있을 것이라고 판단됐기 때문이다.

SK그룹의 수펙스추구협의회는 관계사들의 의사 결정을 전문가들의 조언을 통해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 정보, 통신, 반도체 전문가들로 이뤄진 ICT위원회를 비롯해 에너지화학위원회, 정부 전문가 및 시민단체와 언론 관계자 등과의 의사소통을 담당하는 커뮤니케이션위원회, 그룹의 사회 환원을 논의하는 사회공헌위원회 등 총 7개의 위원회로 구성돼 있다. 김창근 SK이노베이션 회장이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을 맡고 있다. 전문 경영인이 다수 참여하며 최태원 회장을 비롯한 오너가는 의사 결정에 관여하지 않고 있다. 각 계열사에서 파견된 직원 120명이 근무하고 있으며 1년이 지나면 재편하는 형식을 따르고 있다.

수펙스추구협의회의 근원은 스웨덴의 발렌베리 가문의 경영 결정 방식을 참고했다는 설이 있다. SK그룹은 ‘한국의 발렌베리’를 표방해 왔다. 외부 전문가를 포함한 각종 사업의 전문가를 포진해 둔 만큼 계열사가 복잡한 사업 결정을 내릴 때 수펙스추구협의회의 의견을 듣고 결정을 내리고 있다. SK그룹 관계자는 “최종 결정은 이사회가 하는 것이지만 중요 사업에 대한 결정을 내릴 때 수펙스 전문가들의 의견을 참고하곤 한다”고 밝혔다.

롯데그룹은 ‘정책본부’가 컨트롤 타워 역할을 맡고 있다. 롯데그룹의 실세로 불리고 있는 소진세 롯데그룹 정책본부 대외협력단장(사장), 황각규 롯데그룹 정책본부 운영실장, 그리고 지난 8월 세상을 떠난 고 이인원 롯데그룹 부회장까지 정책본부에 몸을 담고 있었다.

지난 2004년 10월 설립된 정책본부는 비서실, 대외협력단, 운영실, 개선실, 인사실, 비전전략실, 인사실의 7개 부서로 이뤄져 있다. 임원 20명을 포함해 총 300여명이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책본부는 각 계열사 간 시너지 조성과 유통으로 집중된 롯데의 사업 구조를 화학 등으로 확대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정책본부는 축소 개편의 길을 걷게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월, 신동빈 회장이 직접 발표한 롯데그룹 경영 혁신안에는 정책 본부에 대한 축소 개편안이 포함됐다. 롯데는 정책본부 축소 개편과 함께 계열사의 책임 경영을 강화한다고 밝혔다.

롯데는 이와 관련해 외부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한 후 각 계열사들이 스스로 판단을 내리는 ‘독립 경영’의 형태를 갖춰 나갈 것이라 설명했다.

지난 최순실 국정농단 1차 청문회에서는 삼성의 미전실뿐만 아니라 한화의 컨트롤타워도 언급됐다. 지난 6일 청문회에 참석한 주진형 전 한화증권 대표는 금춘수 한화그룹 경영기획실장에게 “한화와 삼성 간의 빅딜에 대해 부정적인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쓰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금춘수 사장이 몸담고 있는 경영기획실이 바로 한화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고 있다.

경영기획실은 한화그룹에 인수 합병에 관여하고 있다. 오너가인 김동원 한화생명 상무가 전략기획실 디지털팀장으로 일하며 경영 수업을 받기도 했다.

포스코의 가치경영센터는 조직의 재무 전략과 전반적인 경영 사항을 결정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 중이다. 올해 2월, 가치경영실에서 가치경영센터로 명칭을 바꿨고, 기존 재무투자본부 내 재무실을 가치경영센터에 편입시켰다. 포스코 가치경영실은 포스코의 비주력 계열사 매각을 주도해 왔다.

컨트롤타워 없애는 일, 현실상 쉽지 않아

LG그룹의 경우 지주회사인 ㈜LG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고 있다. 오너가인 구본준 부회장이 신성장사업추진단장을 맡아 그룹의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LG그룹의 유력 후계자로 꼽히는 4세 구광모 상무 역시 ㈜LG 시너지팀에서 근무하고 있다. LG그룹은 지난 2003년 지주회사 출범으로 지배 구조를 정리한 후 신성장동력 발굴과 각 계열사 간 협업 등을 지주회사에게 맡기고 있다.

삼성그룹이 정말 미전실을 해체할 가능성도 있을까. 현실적으로는 어렵다는 것이 재계의 평가다. 전자, 건설, 패션, 유통, 바이오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삼성그룹의 계열사 간 사업을 조정하려면 현재의 미래전략실과 같은 조직이 필요할 것이라는 것이다.

경제개혁연대는 논평을 통해 “그룹을 해체하지 않는 한 컨트롤타워 없이 국내 계열사만 59개에 이르는 거대 기업집단의 경영을 총괄 조정하는 것은 불가능한 현실이고 이것이 끊임없이 존폐 위기에 몰리면서도 미래전략실이 존치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라 밝혔다. 이 때문에 이 부회장이 청문회에서 해체 검토 발언을 했을지라도 이름만 바꾸는 식의 ‘무늬만 해체’를 택할 가능성이 높다.

중앙대학교 경영학부 위정현 교수는 “정치적 논제와 경제적 효율성을 구분해야 한다. 컨트롤타워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있긴 하지만 기업의 시스템 상 대기업의 컨트롤타워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삼성의 미래전략실 해체가 타 기업에게 미치는 영향은 있을까? 위 교수는 “컨트롤타워의 위상은 잠시 위축될 것으로 본다. 전반적인 분위기 상 기능을 약화시키거나 이름을 바꿀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만약 삼성그룹의 미래전략실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면 그 역할을 삼성전자 지주회사가 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물론 대기업의 지주회사가 꼭 컨트롤타워의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SK의 경우 ㈜SK가 있지만 수펙스추구협의회라는 조직을 별도 운영하고 있으며 한화 역시 ㈜한화가 실질적 지주회사 역할을 하지만 경영기획실이 중요한 결정에 깊숙이 관여해 있다.

대기업 관계자는 “계열사들이 굵직굵직한 사업을 계획할 때 지주회사에게 사업 방향성을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지주회사는 계열사의 지분을 보유하고는 있지만 전문성에 있어선 떨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또 “그렇기 때문에 전문가들이 함께하는 컨트롤타워를 운영함으로써 사업의 밑그림을 그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명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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