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기술력·외교력’ 수주활동… 탄핵정국에 가로막힌 韓, 극복방법 있나

아베 총리, 사업수주 위해 말레이시아·싱가포르 총리와 정상회담 개최

日, JR규슈 등 국영철도사 통해 현지 지원하며 수주 경쟁력 확보

대통령 부재로 인한 외교적 전략 기대할 수 없어… 전략실패 및 예산낭비 우려도


무려 15조원에 달하는 대형 건설 프로젝트인 ‘말레이시아-싱가포르 고속철도사업’의 수주전쟁이 과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동시에 이 사업에 뛰어든 한국철도시설공단을 비롯한 현대로템, kt 등 협력사들도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가장 강력한 경쟁상대인 일본은 신칸센을 앞세운 기술력뿐만 아니라, 총리와 기타 고위 관리들이 직접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총리와 만나 외교 관계를 다지며 사업수주를 위한 유리한 위치에 서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탄핵정국으로 국가 원수를 통한 외교 전략을 펼칠 수 없는 상태로 홍보 부족 등 각종 딜레마에 가로막혀 있다. 한국철도시설공단은 반드시 해당 사업을 수주한다는 목표지만, 기술력만으로는 2% 부족한 상황에 있어 향후 전략실패 및 예산낭비의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나집 라자크 말레이시아 총리와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는 지난 13일(현지시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총리관저에서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를 잇는 고속철도사업 협정에 서명했다.

양국 정부는 오는 2026년 고속철도의 첫 운행을 목표로 내년 후반 국제 입찰을 통해 선로 등의 토목공사와 철도운영사 그리고 차량 및 신호시스템 제조사 등을 정한다. 이어 2019년에는 고속철도사업 수주 업체를 최종 선정, 착공에 들어갈 예정이다.

본래 해당 사업은 일괄 시공업자가 모든 서비스를 발주하는 턴키(Turn-Key) 방식이었지만, 지난 7월 궤도·시스템, 노반·건축, 운영 등 3개 분야로의 분리 발주가 확정됐다.

이 고속철도사업은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와 싱가포르 간 약 350km 구간을 규모로 편도 이동시간 90분에 총 8개의 역(말레이시아 7개역·싱가포르 1개역)이 세워질 예정이다.

양국은 건설비용에 대해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았지만, 총 사업비는 15조원이 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형 프로젝트를 위해 이미 우리나라를 비롯한 일본과 중국, 유럽 각국은 치열한 ‘수주 전쟁’을 펼치고 있다.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간 고속철도사업에 일본 측은 각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일본 언론은 최근 ‘10년 후 동남아에서 신칸센(新幹線)이 달린다’라며 해당 사업의 수주전에 대한 자신감을 표했다.

일본은 JR히가시니혼을 중심으로 미쓰비시 중공업, 히타치 제작소, 스미토모 상사 등이 일본 기업연합을 결성해 이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미 이번 사업을 위해 자국의 대표 고속철도인 신칸센 방식을 도입하겠다고 예고했다.

일본은 신칸센 방식이 정확하고 안전한 운행 및 대량수송이 가능하다는 장점뿐만 아니라 에너지 절약 성능도 갖춘 일본의 대표적 기술이라고 홍보하며 사업 관계자들의 주목을 끌고 있다. 특히 국교성은 최초로 신칸센 기술을 해외로 수출해 성공한 대만 철도의 사례를 들며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간 고속철도사업을 새로운 성공 사례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또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앞세운 외교 및 말레이시아에 대한 각종 지원 등 자국의 철도 인프라 수출을 위한 민관의 전방위적 전략을 짜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일본은 지난 2013년 12월 말레이시아와의 정상회담을 개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나집 총리와 양국 간 우호 관계를 약속하며 향후 토목사업에 대해 이야기했다.

같은 달 12일 아베 총리는 인도에 방문, 나렌드라 모디 총리와의 정상회담을 통해 뭄바이와 아메다바드 간 고속철도사업에 신칸센 방식 도입을 채택하기로 합의했다.

총 7개 노선 4600km에 이르는 인도의 고속철도사업에서 500km 구간의 사업권을 따낸 아베 총리는 동남아 외교에 한껏 자신감이 붙은 상태에서 말레이시아와의 사업 논의를 통해 확실한 눈도장을 찍을 수 있었다.

일본 정부는 올해 초에도 미무라 아키오 일본상공회의소 회장을 말레이시아에 보내 나집 총리와 고속철도사업 관련 회담을 갖게 하는 한편, 신칸센의 우수성 증명과 철도 기술교류 그리고 현지 인재육성 지원 등을 강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미무라 회장은 “장기적인 시야에서 비용대비 효과를 판단하기 바란다”고 호소했고, 이에 나집 총리는 “일본의 기술과 실적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며 “말레이시아와 일본은 오랜 우호관계를 맺고 있고, 아베 신조 총리와는 친구로서 신뢰관계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지난 13일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양국의 협정 체결 후 아베 총리는 양국 정상을 일본에 초청해 고속도로사업 수주를 위한 적극적 세일즈 외교를 펼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은 말레이시아 지원을 통한 홍보에도 신경 쓰고 있다. 일본의 국영철도사 JR규슈는 지난 3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대학과 기술협력에 대한 협의를 맺었다. 쿠알라룸푸르 대학은 말레이시아 정부기관 ‘마라 공단’의 산하로 철도학부 창설을 목표로 하고 있다.

JR규슈는 이달 초 5일간 쿠알라룸푸르 대학의 기계공학 전문 강사들을 규슈에 초청해 연수를 실시, 앞으로도 철도 안전운행 및 시설 유지·관리, 고객 서비스 방법 등의 노하우를 전수해 나갈 예정이다. 또 현지에 JR규슈 기술자를 파견해 철도운행에 관한 프로그램 개발 및 인재육성에도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는 입장이다.

JR규슈의 아오야기 도시히코 사장은 일본 산케이신문을 통해 “쿠알라룸푸르 대학의 철도 기초교육을 위해 도움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또 이번달 초 JR히가시니혼은 싱가포르에 ‘Japan Rail Cafe’라는 철도테마 카페를 개설해 일본 여행과 신칸센의 기술력 등을 소개하고 있다.

산케이신문 등은 최근 보도에서 JR규슈와 쿠알라룸푸르 대학과의 교류 및 JR히가시니혼의 테마 카페가 고속철도사업 수주전의 승산을 높이기 위한 외교적 노력의 하나라고 분석했다.

특히 아베 총리의 이런 세일즈 외교 행보가 지난해 12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와 반동을 잇는 고속철도사업 수주전에서 중국에 고배를 마신 후 주변국과의 경쟁에서 다시는 지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고 평가했다.

中, ‘신속·가격경쟁력’ 앞세워 vs 韓, 1명이 운영하는 현지 홍보관

국내에서도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간 고속철도사업을 수주하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한국철도시설공단은 지난해 6월 해당 사업에 대한 수주 추진단을 구성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홍보관 개관했고, 인력을 파견하는 등 현지 활동을 서서히 전개해 왔다. 이어 지난 2월에는 한국사업단의 사무소를 열고, 10여명의 전문 인력을 배치했다.

한국사업단은 수주전략과 사업모델 개발을 실행하고 사업단 전체 회원사인 현대로템과 kt, LS산전, 한국철도기술연구원 등의 지원 참여를 돕기로 했다.

한국사업단 운영위원회 위원장인 강영일 한국철도시설공단 이사장은 “현지사무소를 통해 발주처 동향을 상시 모니터링하고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도록 수주활동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해당 고속철도사업 수주활동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한국사업단 워크숍을 개최했다. 지난 15월부터 이틀간 열린 이 워크숍에서는 말레이시아-싱가포르 간 고속철도사업 수주전략 마련 및 금융모델 공유, 향후 추진계획을 수립하는 일에 대해 논의했다.

일각에서는 일본과 중국 등 다른 국가와의 수주 전쟁에서 한국철도시설공단 등 한국사업단은 그렇게 유리한 위치에 놓은 상황이 아니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 사업단의 기술력 측면과 해외 철도시설 수주 실적은 다른 국가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지만, 기술력 완비에 외교 전략까지 펼치고 있는 일본 등 경쟁 국가에 비해 다소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다.

일본은 아베 총리가 솔선해 말레이시아 및 싱가포르 총리들과 만나 외교적 우호 관계 형성 및 사업 파트너로서 역할을 하고 있고, 말레이시아 현지 지원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유일호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 말레이시아 육상대중교통위원회 하미드 위원장과 만나 고속철도사업에 대해 논의했다.

또 최근에는 최정호 국토교통부 2차관이 사업 수주지원 활동을 위해 말레이시아 현지에 나가 주요 인사들과 해당 사업에 대해 논의했고, 국토부 차원에서 해외건설 프로젝트 진행 및 외교정책에 대한 내용을 담은 서한을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에 보내는 등 수주확보 지원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정부 부속기관의 대표뿐만 아니라 국가의 수장이 나서 세일즈 외교를 펼치는 만큼 우리나라보다 더욱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물론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014년 12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 참석해 나집 총리 및 리셴룽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며 해당 사업에 참여를 요청,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는 최순실 게이트와 탄핵 정국으로 인한 사실상의 국정마비 상태로 대통령이 말레이시아 총리 등과 만나 세일즈 외교 활동을 펼친다는 것은 불가능한 실정이다.

만약 정국불안이 장기화될 경우 내년 후반기 입찰 시기까지 외교적 측면에서 일본보다 유리한 입지에 설 수 없는 것도 마찬가지다.

현지에서의 홍보적 차원에서도 부족한 점은 여전히 남아있다. 말레이시아에 사업수주를 위한 홍보관을 마련했고 인력도 파견했지만, 겨우 1명으로 JR규슈와 JR히가시니혼의 사례보다 파급력 있는 홍보가 이뤄지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특히 이번 사업의 수주전에서 일본만큼 강력한 경쟁상태인 중국이라는 벽이 앞을 가로막고 있어 수주 가능성을 더욱 불안하게 하고 있다.

중국 측은 ‘다른 나라가 고속도로 건설에 5년을 필요로 한다면, 우리는 1년이면 충분하다’며 ‘신속·저비용’의 수주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실제로 중국은 언론보도를 통해 일본 규슈의 신칸센은 1km당 건설비용이 2억 8000만 위안(한화 약 487억원)에 달하지만, 중국은 1km당 1억 2000만 위안(약 203억원)밖에 들지 않는다며 가격 경쟁력이 월등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결국 여러 악조건과 월등한 경쟁국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우리나라는 사업수주 낙찰국가 발표에서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다.

수주 성공에 녹록치 않은 현실… 관건은 ‘기술력’

한국철도시설공단 측은 해당 사업의 수주 전쟁에 있어 비교적 유리한 상황은 아니라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수주권을 반드시 따내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특히 기존 턴키 방식에서 분할 방식으로 계약조건이 바뀌면서 이에 발 빠르게 대응하며 새로운 전략을 짜고 있다는 입장이다.

한국철도시설공단 관계자는 “말레이시아 고속철도사업권을 수주하기 위한 타 국가와의 경쟁에서 정확히 승산이 어느 정도라도 말할 수 없지만, 일본과 중국 등 선진국이 경쟁에 참여를 하고 있기 때문에 녹록한 상황이 아닌 것은 맞다”라며 “그래도 워크숍 개최 등을 통해 준비를 잘 하고 있고, 분리된 사업 중 한 가지 이상은 꼭 할 수 있다는 목표를 세우고 수주 활동을 해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분할 방식의 사업 계획이 우리나라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만약 한국철도시설공단의 목표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전략실패를 넘어 돈 문제에 대한 지적도 나올 수밖에 없다. 워크숍 개최, 현지 홍보관 개설 및 인력 파견 등 이 사업의 수주를 위한 전반적 활동의 비용은 공기업의 예산으로 지출되기 때문이다.

그만큼 사업수주에 실패했을 때 돌아가는 예산낭비에 대한 화살이 향할 수 있고, 현대로템 등 회원사들의 지원 역시 물거품이 돼 후폭풍이 생길 수 있다는 설명이다.

국회 국토위원회 관계자는 “말레이시아-싱가포르 고속철도사업 수주에 있어 외교적 노력이 경쟁국가에 비해 부족하다는 점을 관계부처에서 충분히 인지하고 정국이 혼란한 만큼 더욱 분발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아무리 외교적인 홍보를 할지라도 결국 고속철도 수주의 승자는 보다 안정성이 있고, 제대로 된 인프라를 제시하는 곳이기 때문에 기술적 차원에서 개발 및 홍보를 더욱 적극적으로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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