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정부 기조 맞춰 기업들 정규직 전환 속속 발표

금융공기업은 역행 중…무기계약직ㆍ소속외인력 합치면 발표보다 4배 많아

문재인 대통령이 ‘비정규직 제로’를 공언한 가운데 기업들이 앞 다투어 정부 정책 기조에 속속 동참하고 있다.

가장 먼저 움직이는 쪽은 통신업계다. SK브로드밴드는 자회사를 6월 중으로 설립해 5200명의 서비스 기사를 직접 고용하는 형태로 정규직화하는 계획을 내놓았다. LG유플러스는 협력업체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작업을 하고 있다. 72개의 LG유플러스 협력업체들의 직원 2500여 명 중 일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지난해부터 진행 중이다.

공공부문도 비슷한 기류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산하 41개 공기업과 공공기관의 비정규직 및 간접고용 직원 3만여 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서울시는 5년간의 진통 끝에 별도 설립한 재단을 통해 서울시 통합 민원상담서비스인 다산콜센터 상담사 등 450명 전원을 정규직화했다.

금융권도 마찬가지다. 씨티은행은 최근 일반사무직원과 창구직원 300여명을 연내에 정규직으로 일괄 전환하겠다고 밝혔고, IBK기업은행도 무기계약직인 창구 담당 직원 3000여명의 정규직화를 추진하고 있다. 기업은행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정규직 전환 TF팀을 구성하고 작업을 진행해 왔다.

반면, 금융공공기관은 정부 정책 기조에 역행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비정규직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거나 ‘소속외 인력’을 늘려 비정규직 비율을 낮추는 형태의 고용을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공기관 경영정보공개시스템(알리오)에 따르면 올 1분기 주요 금융공공기관 7곳(예보ㆍ신보ㆍ기보ㆍ캠코ㆍ주금공ㆍ산은ㆍ수은)의 전체 임직원(1만1741명, 비정규직 소속 외 인력 포함) 가운데 비정규직(476명)은 4.05%다. 각 공공기관별로 살펴보면 주금공 12.32%, 예보 12.11%, 수은 5.38%, 산은 3.28%, 신보 2.84%, 기보 1.61%, 캠코 0.59% 순이다.

그러나 소속 외 인력을 포함시키면 공공기관 7곳의 비정규직 비중은 15.94%(1871명)로 껑충 뛴다. 간접고용 비정규직의 규모를 포함할 경우 캠코 33.48%, 주금공 26.62%, 수은 20.51%, 예보 18.53%, 산은 9.63%, 신보 8.21%, 기보 8.13% 등으로 크게 늘어난다. 소속 외 인력은 공공기관이 직접 고용하지 않고 파견·용역·사내하도급 등의 형태로 타 업체(용역업체ㆍ파견업체) 소속이면서 해당 기관에 근무하는 비정규직을 일컫는다. 공식발표보다 4배가량 많은 수치다.

이 가운데 산업은행의 경우, 작년 정규직보다 무기계약직 신규채용이 더 많아 도마에 오르고 있다. 공공기관 경영정보공개시스템(알리오)에 따르면 산은은 작년 정규직은 60명 신규채용한데 비해 무기계약직은 62명을 채용했다. 여기에는 비정규직으로 2년 근무 후 자동으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인원은 제외된 숫자다. 산은의 2016년 무기계약직 인원은 119명으로 2015년(59명)에 비해 2배가량 증가했다. 무기계약직을 제외하더라도 2017년 1/4분기 기준 산은의 비정규직은 114명, 소속외 인력은 221명에 달한다. 알리오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산은 정규직 1인당 평균 보수액(실적수당, 성과급 등 합산)은 약 9330만원, 무기계약직은 약 4398만원으로 정규직 임금의 약 50% 수준이다.

산은의 62명 무기계약직 신규채용은 일자리 창출로 보기는 어렵다는 시각이 많다. 수년 동안 차량운행 용역계약을 맺고 파견 직원 형태로 고용하던 하청업체 소속 운전기사들을 무기계약직으로 바꾼 것이기 때문이다. 이 또한 회사의 자발적인 조치는 아니다. 한 운전기사가 파견근무 문제로 소송을 제기하자 1심 판결이 나오기 전 서둘러 62명을 정규직이 아닌 무기계약직 형태로 채용했기 때문이다. 산은과 차량운행 용역계약을 맺은 하청업체 소속 직원 3명은 산은에 고용의무이행 등 소송을 제기했고 1심 승소 판결을 받았다. 이들은 2~4년간 산은에 파견근무했다. 파견근로자법에 따라 사용사업주는 2년이 경과한 시점부터 직접고용의 의무가 발생한다. 산은은 1심 패소 후 곧바로 항소해 재판 절차가 진행 중이다.

산은 측은 “당시 퇴사한 상태였던 운전기사(원고)를 공기업으로서 근거 규정 없이 임의로 채용하면 정부 기관 감사에서 지적될 수밖에 없다. 명확한 근거 규정을 마련하기 위해 법원의 판단을 구하는 것이며 이후 확정 판결이 나오면 이에 따를 것이다”고 밝혔다. 이어 “비정규 계약직이던 창구 텔러 직원을 금융업계에선 선제적으로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등 비정규직 해소에 앞장서 왔던 만큼 이번 사안에 있어선 억울한 부분도 있다”고 해명했다.

정규직을 늘리는 것 대신에 무기계약직이나 소속외 인력을 늘리는 금융공기업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많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공공부문의 정규직화 모델은 민간부문 정규직화 모델의 시금석이 된다”며 “고용안정과 합당한 처우개선이 병행되는 양질의 정규직화 모델을 만드는 것이 최우선 과제가 돼야 한다. 다양한 간접고용 비정규직 고용형태까지 아우르면서 상시·지속업무 정규직 채용 및 전환 원칙을 지키는 정규직화 모델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산은 임원들의 처사도 도마에 올랐다. 파견업체 비정규직인 운전기사들에게 개인적 심부름을 시킨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한 임원은 이들에게 구두를 닦아오라는 잔심부름부터 아들의 입대 장소까지 운전을 요구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다른 임원은 주말에 운전기사를 불러 개인 용무를 보기도 했다. 용역 계약서에는 임직원 출퇴근과 영업 관련 차량 운행으로 업무가 한정되어 있지만 용역업체 비정규직인 운전기사들로서는 요청이 있으면 거부하기 어려운 현실이라는 것이 운전기사들의 하소연이다. 이에 산은 측은 개인 차량이 없어 부득이하게 개인적으로 운전을 부탁한 것이고 흔치 않은 일이라고 해명했다.

한편, 산은 회장의 교체설도 솔솔 나오고 있다. 산은 회장은 지난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후보캠프에서 금융인 1365명의 박 전 대통령지지 선언을 이끌어내 박근혜정부 출범 주역으로 꼽힌다. 2013년 박 전 대통령이 재단 이사로 재직했던 영남대에서 경제학과 특임 석과교수로 있다 지난해 2월 KDB산업은행 회장 자리에 올랐다.

허인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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