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 경제 로드맵 빨리 발표해 시장에 비전 제시해야”… 재벌개혁은 “법대로”

“추경은 경제 활력 방아쇠 역할, 정책과 연동해 파급력 극대화시켜야”

“김상조 공정위원장, 그만한 콘텐츠가진 인물 없어… 文의 훌륭한 선택”

“국민혈세 투입된 SOC로 돈 버는 재벌들, 각성해야”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재벌 개혁 없이 경제민주화도, 경제성장도 없다”며 재벌에 대한 강력한 개혁 의지를 지속적으로 밝혀왔다. 당선 이후에는 ‘재벌 저격수’ 김상조 한성대 교수를 공정거래위원회의 수장으로 임명하면서 ‘공정위 바로 세우기’에 돌입한 모습이다. 실제로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 공약이자 공정위가 독점하고 있는 전속고발권의 단계적·선별적 폐지를 천명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또한 재벌개혁에 강한 목소리를 내온 장하성 서울대 교수를 청와대 정책실장에 임명하며 후보 시절부터 이어왔던 개혁 기조를 이어나갈 뜻을 분명히 했다.

전문가는 현 상황을 어떻게 바라 볼까. 대기업의 경영 실태를 지속적으로 분석해 온 정선섭 재벌닷컴 대표는 “문재인 정부가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로드맵을 이른 시일 내에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야 기업이 움직일 수 있다는 의미다. 정 대표는 또한 “재벌경제의 독선과 불법, 탈법에 대한 규제를 하지 못하면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라며 “편법적 대물림을 포함한 소유구조 규제, 황제적 기업경영 방식 차단, 불공정거래 행위 규제 등 3가지 문제를 해결한다면 시장에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단언했다.

쉽지 않은 문제라면서도 정 대표는 공정거래위원장의 역할에 주목했다. 그는 “세계적으로도 잘 갖춰있다고 평가 받는 우리나라 공정거래법만 제대로 집행하면 일정 부분 재벌 개혁 목표가 달성될 것”이라며 “현재의 비정상적인 시장구조가 만들어진 데에는 지금까지 공정위가 적당히 눈 감고 넘어간 측면도 있다”고 밝혔다. 정 대표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활동에도 기대를 걸었다. 그는 “김 위원장은 기업의 문제점과 의표를 꿰뚫고 있는 사람이다. 그 정도 수준의 기업 이해도와 콘텐츠를 가진 사람은 찾기 힘들다”면서 “문 대통령의 훌륭한 선택이었고, 적어도 공정위가 기존 시장 질서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오리라 기대한다”고 밝혔다.

재벌 총수와 대주주 일가족의 상장, 비상장 주식 보유 현황은 물론 일감 몰아주기, 사내유보금 등 대기업의 불공정 행태를 계량화해 알려온 정 대표를 통해 문재인 정부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재벌개혁 등 다양한 의견을 들어봤다. 다음은 정 대표와의 일문일답.

-정부가 국회에 요청한 추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추경은 지금 상황에서 중요하다. 사실 작년 하반기에 실행했어야 하는데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지연된 측면이 있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국회에서 빨리 매듭지어 집행되는 것이 급선무다.”

-이번 추경의 핵심은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이지만 야당의 비판도 있다.

“2000만 명 정도의 노동자 가운데 공공부문은 많아야 500만 명 수준이다. 민간부문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이 경제 활성화에 더 도움되지만 이를 위해서는 경제가 살아나야 한다. 고육지책으로 공공부문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다. 11조 원을 투입한다 해서 실업률 하락 효과는 크지 않다. 하지만 공공기관에 직접 자금을 투입해 경제 활력을 불어넣는 방아쇠 역할을 할 수 있다. 일부 고름이 있는 곳에 매스로 도려내 병이 번지는 것을 차단하는 효과다. 중요한 것은 11조원 투입 효과를 증폭시킬 수 있도록 후속 정책을 어떻게 끌고 나가느냐다. 이 과정이 없으면 돈을 버리는 꼴밖에 안 된다.

-이번 추경에 아쉬운 점은.

“계량적 예측 모델이 없었다는 점이다. 인수위가 없는 상황에서 급하게 출범했다는 점은 이해하지만 좀 더 정확한 수치를 제시하며 다른 산업에는 어떤 효과를 낼 수 있는지 등의 설득력 있는 예측 모델을 내놨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추경은 돈만 퍼부었지 결과가 어떻게 되든 아무 상관없었다. 국민들이 추경에 대한 믿음이 없는 이유다. 논리적으로 국민을 설득시키면 빨리 추경안을 통과시키라고 국민들이 국회를 압박할 것이고 국회도 지금처럼 질질 끌지 못할 것이다. 앞으로라도 국가 예산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시급하게 해야 할 정책은.

“국민경제가 살아날 수 있다는 기대가 담긴 로드맵을 빨리 제시해야 한다. 경제는 실물이 움직이는 문제이기는 하지만 심리적인 면도 중요하다. 경제가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으면 오늘 조금 어려운 것을 참을 수 있다. 그러나 앞날이 어둡다고 판단되면 당장 오늘부터 힘들어질 수 있다. 미래가 어두운데 기업들에게 투자하라고 압박하는 것도 난센스다. 반면 기업들은 불확실성이 크다는 이유로 돈을 5년째 쌓아놓고만 있다. 사내유보금은 700조원에 육박하는 상황이다. 이중 일부가 주식시장으로 흘러 들어가면서 주가만 오르고 있다. 이는 거품에 불과하다. 금융시장에서 수익을 남길 곳이 없으니 기업들은 자꾸 자산운용에만 몰두하게 되는 것이다. 개인 역시 마찬가지다. 현재 등록된 총 사업자 수 688만 명 가운데 부동산 임대업자가 154만 여명으로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임대업이 고용을 창출할 수가 있나. 다들 수익성만을 노리고 있다. 자본가가 자본소득만을 추구하는 사회는 활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가 이런 구조를 개선해 고용효과가 큰 제조업, 서비스업에 활기를 불어넣어줘야 한다. 그러려면 투자가 어떤 기대효과를 가져올지 정부차원에서 로드맵을 빨리 제시해야 한다.”

-현재 경제상황의 가장 큰 문제점은.

“우리 경제는 급속하게 압축 성장을 하는 과정에서 경제력 집중 현상이 심화됐다. 이른바 소득 양극화 현상이다. 동시에 중산층이 얇아졌다. 실제 경제에서 소비주도는 중산층에서 일어난다. 상류층으로 올라가려는 의욕이 강해 소비욕구가 강하기 때문이다. 반면 상류층은 소비가 정해져 있다. 그런 상황에서 소득 재분배 문제는 굉장히 중요하다. 하지만 경제는 제로섬 게임이다. 총량은 일정한 상황에서 누가 얼마만큼 갖고 가느냐다. 지금은 소수의 부자가 끊임없이 부를 축적하고 있으며 약탈경제가 심화되고 소비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을 완화하기 위해 상법, 공정거래법 등 경제 관련 법을 만들었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구조였다. 아무리 문재인 대통령이 외쳐본들 제도와 시스템, 의식을 바꾸지 않으면 중산층이 다시 늘어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그런 부분들을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그만한 콘텐츠가진 인물 없어”

-김상조 교수가 공정거래위원장으로 취임한 후 공정위에 대한 관심이 크다. 이유는 뭔가.

“공정거래위원회가 하는 일을 먼저 살펴봐야 한다. 공정위는 경제 참여자들이 공정하게 시장경쟁을 할 수 있도록 견제와 규제를 담당하고 있다. 시장의 독과점 위치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집단에 대한 규제가 핵심이다. 주 타깃은 대규모 기업집단이다. 대규모 기업집단에 대한 시장에서의 우월적 시장 남용을 규제하고 공정한 시장 경쟁 질서를 유지하게 하는 일을 하고 있다. 공정위 수장을 임명하는 과정이 이처럼 부각됐다는 점은 그만큼 대규모 기업집단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많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김 위원장이 주목받는 이유는 뭔가.

“소수 재벌기업 집단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은 90%, 소유 자산으로 보면 30% 정도 차지하고 있다. 다른 말로 절대적 위치에 있는 소수 재벌기업 집단을 규제했을 때 대한민국 경제의 90%를 공정하게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공정거래위원장의 자리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역대 공정거래위원장 중 생각나는 이름이 있는가. 생각나지 않는 이유가 다 있다. 김 위원장에게 개인적으로 큰 기대를 걸고 있는 이유는 기업이 어떤 행태를 하고 있고 기업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꿰뚫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교수이기 전에 그 정도 수준의 기업 이해도와 콘텐츠를 가진 사람을 찾기 힘들다. 공정거래위원장으로 임명되기까지의 우여곡절을 보면 물밑에서 얼마나 많은 반대가 있었는지 알 수 있지 않는가. 그런 점에서 문 대통령이 훌륭한 선택을 했고 적어도 공정위가 기존 시장질서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어떻게 공정위를 이끌어 가야 한다고 보는가.

“공정거래법만 제대로 적용하면 된다. 김 위원장이 경제검찰의 수장이 됐다 한들 얼마나 큰 힘을 갖겠나. 공정거래위원장이 됐다고 재벌을 망가트리지도 못하고 그럴 이유도 필요도 없다. 그저 법대로만 집행하면 된다. 법을 어길 경우 강력하게 규제를 가하는 일 밖에 없다. 지금까지는 이러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한민국은 재벌공화국’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들었던 것이다.”

-이전과 다르게 강공드라이브를 걸면 기업들이 반발하지 않겠는가.

“엄연히 법이 존재함에도 기업들이 잘못을 저질렀을 경우 그동안 작동하지 않았을 뿐이다. 단서조항들이 문제이긴 하지만 우리나라 공정거래법은 세계적으로도 잘 갖춰진 법이다. 하도 기업들의 나쁜 행태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반발한다면 나쁜 짓을 많이 했다는 것을 자인하는 꼴이다.”

-김 위원장이 공정위에서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이라 보는가.

“공정거래법을 제대로 집행해서 기업구조를 개혁하는데 역할을 맡았으면 한다. 기업구조 개혁은 재벌개혁으로도 볼 수 있다. 핵심은 3가지다. 첫째는 편법적 대물림을 포함한 소유구조 규제다. 경제 참여자들의 박탈감을 유발하는 편법 증여 등을 막아야 한다. 둘째는 황제적 기업경영방식에 벗어나게 해야 한다. 기업들이 상법, 공정거래법 등 관련법이 정한 규정대로 경영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기업 경영은 전문경영인, 이사회, 주주총회, 감사, 사외이사가 운영, 견제, 감시하는 시스템으로 이뤄져야 한다. 한 사람에게 집중돼 있는 것은 불안 요소가 크다. 세종대왕을 만나면 나라가 부강하고 연산군을 만나면 나라가 망하는 이치랑 같고 오너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회사가 좌지우지되는 기업이 많은 나라는 상당한 리스크를 안고 있는 것이다. 법에 맞게 시스템대로 운영되면 기업의 지속가능성도 높아진다. 세 번째는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한 규제다. 재벌들이 시장 질서를 무너뜨리면서 무한확장에 나서면 경제력 집중과 경제 생태계의 파괴라는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세 가지 모두 법에 규정돼 있다. 법대로 하면 된다.”

-기업들은 한국에서 사업하기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한국에서 정 사업하기 힘들면 외국으로 나가 한 번 해보라고 반문하고 싶다. 썩어도 준치고 미워도 고향이다. 사업하기 힘들다면서 유보금은 왜 늘고 있는가. 유보금은 자본잉여금과 이익잉여금을 합친 것이다. 변동사항이 거의 없는 자본잉여금과는 달리 이익잉여금은 단기 순이익에 따라 달라진다. 단기 순이익이 적자면 유보금은 줄어든다. 이익을 남기니까 유보금이 늘어나는 것 아니냐. 물론 유보금이 당장 사용가능한 현금자산은 아니라는 기업 주장도 이론적으로 맞다. 억울하면 기업은 유보금이 어디에 사장돼있는지 내역을 공개하면 된다. 실제로 투자 부동산, 매도가능주식에 들어간 돈도 다 유보금에 포함되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걸 당장 쓸 수 있는 현금이 아니라고만 할 것이 아니다. 늘어난 유보금 구성 중 경제의 선순환적 역할을 할 수 있는 투자 자산으로 활용할 부분이 많다. 그것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하는 것이 기업의 책무다.

사실 유보금 문제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다. 정부가 미래 비전을 제시했을 때 기업들의 투자가 활기를 띠는 것은 사실이다. 서로 맞물려 있는 문제다. 그러나 우리 기업들은 미래 경제가 어둡고 불확실성이 높은 데 왜 투자하라고 압박이냐고 볼멘소리를 내고 정부는 재벌들에게 유보금만 쌓아놓는다고 비판에만 열중한다. 비생산적인 논쟁이다.”

-재벌들의 일감몰아주기도 잦아들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일감몰아주기로 얻은 이익을 오너의 지배권 강화에 쓰인다고 비판하는데 나는 다른 문제를 지적하고 싶다. 기업 내부의 일감 몰아주기는 자급자족 구조 형태를 띠기 때문에 경제의 낙수효과가 없어지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렇게 되면 고용창출에 영향을 준다. 이를 테면 A기업이 자체적으로 필요로 하는 많은 자원을 외부에서 조달하거나 B기업을 활용하게 되면 고용효과가 발생된다. 한 기업 안에서 자급자족 구조를 만들면 경영 효율성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고용을 줄이게 된다. 고용 증대 효과가 거의 없다. 그래서 일감 몰아주기가 일자리 창출의 저해요인으로 작용하고 국가 경제로 봤을 때도 부정적 요인이기 때문에 해결해야 한다.”

-이번 정부는 달라진 경제 정책을 진행시킬 수 있다고 보는가.

“과거보다 약간은 달라질 수 있어도 재벌의 독선과 불법, 탈법에 대한 규제를 하지 못하면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대선 기간 동안 재벌개혁이 화두에 오른 적이 10번도 넘었다. 한 번도 이뤄지지 못했다. 국민들을 호도시키는 용어였을 뿐이다. 우선 부자들은 창고에 돈을 넣어놓고 기업들은 비생산적인 자산수익에만 열을 올리고 있고 정부는 시간만 차일피일 보내고 국회는 정쟁에만 몰두하는 행태를 빨리 벗어나는 게 시급하다. 이를 개선할 시스템을 빨리 만들어 작동시켜야 한다. 문 대통령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취임하고 재벌개혁을 포함한 '신경제 100'일 정책을 했다. 강한 드라이브를 건 셈이었다. 하지만 이건희 삼성 회장이 중국에서 “정치는 삼류, 기업은 일류”라고 했듯이 재벌들이 '두고 보자' 하면서 투자를 안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경제가 침체됐고 결국 1년 만에 청와대에서 재벌총수 불러서 칼국수 먹으면서 “잘 합시다”라며 해외투자 자유화 등의 선물을 안겨줬다. 그러면서 외환위기(IMF)가 왔다. 속도 조절이 필요한 때도 생길 것이다. 개인적으로 재벌개혁이란 용어에서 ‘개혁(Revolution)’이 아니라 ‘발전(Development)’이 맞지 않나 싶다. 재벌의 발전적 변화를 요구하는 것일 뿐이다.”

-재벌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재벌도 스스로 제 역할을 다하면서 자신들의 주장을 펼쳐야 한다. 역할도 다 하지 못하면서 괴롭힌다고 하소연하면 누가 좋아하겠나. 재벌이 한국 경제 발전에 공(功)이 크지만 격차를 심화시킨 과(過)도 크다. 재벌은 지금도 국가의 혜택을 충분히 받고 있다. 기지국과 위성이 없으면 통신사업은 어떻게 할 것이며, 고속도로가 없으면 자동차는 어떻게 팔 것인가. 다 국민의 혈세가 투입된 SOC를 활용해 이익을 창출하고 있다. 미국의 애플은 직접 SOC에 투자하며 사업을 한다는 점을 생각해봐야 한다.”

CEO 약력

1960년 8월 2일생

중앙고등학교 졸업(1979년)

고려대 경제학과 졸업(1986년)

경향신문 경제부 사회부 기자(1990년 2월~1999년 9월)

재벌닷컴 대표이사(2006년 5월~현재)

허인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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