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 명단에 오른 에너지 공사 사장 운명은?

양대노총 선정 적폐 기관장 10인에 석유공사, 가스공사 사장 올라

김정래 석유공사 사장 “노조는 적폐…끝까지 간다”

이승훈 가스공사 사장, 압박 끝 사퇴 “자리에 연연 안해”


문재인 정부 내각 인선이 사실상 마무리되면서 청와대가 공공기관장 물갈이에 나설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알리오)에 따르면 올해 기준 공공기관은 공기업 35곳, 준정부기관 89곳, 기타 공공기관 208곳 등 총 332곳에 이른다. 이 가운데 현재 기관장이 공석이거나 하반기에 임기가 만료되는 기관은 30여 곳이다.

통상 새 정부가 들어서면 청와대는 공공기관장 일괄사표를 제출받아 공공기관의 수장을 바꾸는 작업을 진행해 왔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문재인 정부는 “인위적인 물갈이는 없다”는 입장이지만 “국정철학을 공유하지 않는 인사들은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국민에 대한 예의"라며 이전 정권에서 임명됐던 기관장들에게 일종의 신호를 줬다.

이런 가운데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지난 18일 “공공대개혁을 위한 적폐기관장 사퇴촉구 기자회견”을 열어 10곳의 기관장들에게 사퇴를 요구했다. 양대노총은 “이번에 발표한 10인의 명단은 1차일 뿐”이라며 10인 이외에 추가로 명단을 발표할 뜻을 분명히 했다.

이번에 공개된 명단 가운데 에너지 공기업은 한국석유공사와 한국가스공사 등 2곳이 포함됐다. 이 두 공사는 사장 임명 과정에서부터 잡음이 일어났으며 부임 이후에도 논란의 중심에 선 기관들이다. 현재 김정래 한국석유공사 사장은 사퇴할 뜻이 전혀 없음을 분명히 했고 이승훈 한국가스공사 사장은 지난 20일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두 공사에서는 지금까지 어떤 일들이 벌어져 왔으며 논란이 되고 있는 이유에 대해 들여다봤다.

金 “노조가 적폐” VS 勞 “적폐청산 1호”

2016년 2월에 임명된 김정래 한국석유공사 사장은 임명 과정부터 논란이 있었다. 석유공사 임원추천위원회에서 20여 명의 지원자들을 뒤로 한 채 “적격자가 없다”며 재공모에 나섰고 이에 지원한 2명 중 김정래 사장이 재공모 일주일 만에 임명됐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당시 김 사장을 임명을 놓고 낙하산 인사라는 뒷말이 무성했다. 현대그룹에서 1976년부터 40여 년간 근무했던 김 사장은 주형환 당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서울대 경영학과 선배이자 이명박 전 대통령과 현대건설에서 함께 일한 이력을 갖고 있다. 석유공사와는 큰 인연이 없는 셈이다.

취임 이후 김 사장은 경영관리, 기획예산 등 주요 보직 4곳에 자신의 측근을 특혜 채용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내부 감사결과 이들 중 몇몇은 전화로 면접이 이뤄졌고 면접 기록도 남아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감사실에서는 채용 후보자들의 경력증명서, 학력증명서 등 증명 서류가 감사가 이뤄진 작년 9월까지 구비되지 않고 있어 “규정을 위반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채용절차의 부적정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 밖에 김 사장은 울산사옥 매각 당시 투기 자본 특혜 의혹, 출장시 최고급 호텔 숙박 등 크고 작은 비판에 직면했다. 최근에는 사내전산망에서 노조게시판을 폐쇄하고 메일을 무단 삭제했다며 노조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이에 노조 측은 지난 4일 고용노동부에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촉구했고 지난 18일부터 고용노동부 울산지청에서 특별근로감독을 실시 중이다. 노동계에서는 2주 만에 특별근로감독이 진행된 상황에 대해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반응이다. 보통 노조 측에서 특별근로감독을 촉구할 경우 노동부는 사측에 관련 내용을 파악한 후 노사간의 합의를 유도하는 경우가 많다. 빠르게 감독이 실시된 데 대해 한 관계자는 “노사간의 이견이 그만큼 크다는 증거”라고 분석했다.

노조 측의 지속적인 반발과 퇴출 공공기관장 명단에 이름이 오르자 김 사장은 자신의 SNS에 입장을 밝혔다. 그는 지난 18일 “국가에 기여해 보자는 순수한 의도로 어려움에 처한 석유공사 사장에 부임했다”며 “그 결과 1년 반 만에 10대 적폐기관장으로 선정됐다”고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이어 “과거의 관행을 바꾸고 공사에 도움되는 일을 하며 개혁하자는 노력에 저항하며 과거와 자신을 뒤돌아 보지 않는 그들(노조)이 적폐가 아닌가 한다”며 “인격 살인에 해당하는 사장 흠집내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하는 그들(노조)의 행위에 가끔은 섬?할 때도 있다”고 노조를 강하게 비판했다.

김 사장은 그러면서 “석유공사 사장의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적폐와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해보려고 한다”며 사장직에서 물러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공교롭게도 김 사장은 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이 시작된 지난 18일 카자흐스탄으로 해외 출장을 떠났다.

노조 측은 본지 통화에서 “김 사장은 박근혜 정부의 대표적 낙하산 인사”라며 “MB정부 시절 부실 해외자원개발로 망가진 공사는 김 사장에 의해 남아있는 자산들마저 부실 매각될 위험에 처해 있다. 김 사장의 퇴출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며 퇴진 운동을 이어갈 뜻을 밝혔다.

경영실적 부진과 일방적 성과연봉제 강행한 李, 결국 사퇴

김정래 사장과 함께 에너지 공기업 퇴출 명단에 오른 이승훈 한국가스공사 사장은 임기를 1년 앞두고 결국 사퇴를 결정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산자부 산하 공공기관장으로 사표를 제출한 건 이 사장이 처음이며 ‘적폐 기관장 10인 명단’에 오른 인사 중에서도 1호다.

이 사장은 "새 정부가 들어서면 인사와 관련해 항상 시끄럽다. 재신임을 받지 못하면 산업부 관리는 물론 노조도 나를 자리에 연연하는 사람으로 생각할 것"이라며 "이달 초 서면으로 사표를 냈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임명 초기부터 낙하산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지난 2010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싱크탱크였던 "국가미래연구원" 창립 발기인으로 참여했고,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2013년부터 국무총리실 녹색성장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았던 경력 때문이다.

이 사장 퇴진은 이미 예견된 수순이었다는 견해도 많다. 저조한 경영평가 실적 때문이었다. 가스공사는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3년 연속 D등급을 받았고 이 사장은 작년에 기획재정부로부터 ‘경고 조치’를 받았다. 경고 조치 2회를 받을 경우 해임 건의 대상에 오른다.

일방적 성과연봉제 도입도 논란을 빚었다. 가스공사는 노조와의 합의 없이 이사회의 의결만으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기관 중 하나다. 문재인 정부가 최근 성과연봉제 폐기를 선언하면서 이 사장의 입장이 난처해진 것도 사실이었다.

이 사장의 유임을 점치는 의견도 있었다. 지난 6월 문재인 대통령 방미 당시 에너지공기업 수장 가운데 유일하게 포함돼 미국을 방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사장은 노조의 반발과 적폐 기관장 명단에 선정되는 등 심적 부담으로 결국 사장직을 내려놨다.

노조 측은 본지 통화에서 “가스공사에 대한 관심과 전문성은 물론 노사관계에 대한 이해도를 갖춘 인물이 부임해 현 상황을 함께 타개하기를 기대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허인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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