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규제 칼날에 떠는 대형 복합쇼핑몰과 아웃렛

文 대통령 공약→국정기획위→공정위가 방점 찍어

신세계 스타필드, 임대업자로 등록해 유통업 영위해

“소비자 편익 고려” VS “사각지대 파고든 대기업 규제”

공정거래위원회가 유통업계 갑질 근절을 위한 첫 걸음을 내디뎠다. 공정위는 지난 13일 ‘유통분야 불공정거래 근절대책’을 발표하면서 기존보다 대폭 강화된 제재 조치를 발표했다. 공정위는 그간의 법·제도와 집행체계가 대형유통업체의 불공정행위 억제, 납품업체 피해구제와 권익보호에 충분치 않았다고 진단하면서, 이를 개선하기 위해 ▦ 대규모유통업법 집행체계 개선 ▦ 납품업체 권익보호를 위한 제도적 기반 강화 ▦ 불공정거래 감시 강화 및 업계 자율협력 확대 등 3대 전략과 15개 실천과제를 추진하기로 했다.

실천과제 중에는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납품업체 종업원 사용 시 대형유통업체의 인건비 분담의무 신설, 대규모유통업거래 공시제도 마련 등 다양한 제도 개선방안이 포함되었다. 공정위는 또 매년 중점 개선분야를 선정해 점검·관리하며, 현재 조사가 진행 중인 가전·미용 전문점에 이어 TV홈쇼핑, SSM(대형슈퍼마켓) 등 분야의 문제점도 개선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공정위 발표에서 눈에 띄는 점은 법의 사각지대에 있던 복합쇼핑몰과 아울렛 입점업체를 대규모유통업법 보호대상에 포함시켰다는 것이다. 현행 대규모유통업법은 소비자에게 직접 상품을 판매하는 ‘소비업자’(retailer)만 규제하고 있다. 때문에 복합쇼핑몰과 아울렛에 입점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은 법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있었다.

공정위가 겨냥한 곳은 ‘매장 임대업자’로 등록돼 있지만 사실상 유통업을 영위하고 있는 복합쇼핑몰과 아울렛이다. 구체적으로 임대매장에서 발생한 소매업 매출액이 연간 1000억 원 이상 인 곳 또는 매장면적이 3000㎡ 이상인 점포를 통해 소매업을 하고 있는 곳이다.

文 대통령 공약에서 시작해 공정위가 방점 찍어

법의 사각지대에 있던 복합쇼핑몰과 아울렛을 규제 대상으로 포함시킨 배경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영향이 크다. 문 대통령은 지난 19대 대선 후보 당시 “대기업이 운영하는 복합쇼핑몰을 대규모 점포에 포함해 입지 및 영업을 제한하겠다”고 공약했다. 대선 공약 9순위 ‘골목상권·농산어촌’에 들어간 이 규제사항은 도시계획단계부터 쇼핑몰의 입지를 제한하고 매월 공휴일 중 2일을 의무휴업일로 지정하는 내용도 함께 들어갔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영업을 보장한다는 취지였다.

당시 다른 대선 후보들 모두 비슷한 내용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복합쇼핑몰을 월 2회 의무휴일 대상에 포함시키고 대규모 점포의 골목상권 출점 규제 강화를 약속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대규모 점포 상권영향평가 대상 지역 확대 ▦등록제인 대규모 점포 개설을 허가제로 변경을 약속했고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대기업의 골목상권 진입 관련 지자체의 사전 규제를 강조했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 역시 도시계획 단계부터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입장을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복합쇼핑몰 규제 관련 법안은 대선 전부터 국회 차원에서 많이 논의됐다. 20대 국회 개원 이후 발의된 관련 법안은 여야 포함해 30개에 가까울 정도다.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형마트와 SSM이 개점할 때 상권영향 평가를 의무적으로 실시하도록 했고 같은 당 홍익표 의원은 도시계획단계에서부터 대규모 점포의 입지를 사전 제한토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자유한국당 이현재 의원은 유통기업이 직접 작성해서 객관성과 신뢰성이 떨어졌던 상권영향평가를 전문기관에 맡기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은 도시계획 단계부터 대규모 매장 용도로 허용한 지역에만 쇼핑몰 출점을 허용하고, 매장면적 1만㎡을 초과한 대규모 점포 개설을 제한할 수 있는 중소유통상업보호지역을 지정하는 개정안을 내놓았다.

문 대통령 당선 이후 정부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지난 7월 '100대 국정과제'를 통해 내년부터 복합쇼핑몰에도 대형마트 수준의 영업제한을 가하기로 했고 같은 달 산업통상자원부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소상공인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복합쇼핑몰에 칼을 들었다. 기존의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에만 적용되던 월2회 의무휴업을 복합쇼핑몰로 확대하고, 상업보호구역이 새로 도입돼 대규모점포의 출점도 제한하기로 한 것이다. 다만 규제 여부와 대상은 지자체가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지자체의 자율권에 운명이 걸려 있었던 복합쇼핑몰 입장에서 최근 발표된 공정위 발표는 강도가 더욱 높은 셈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 공약이 ‘도시계획단계부터 입지를 제한해 대규모 점포 진출 억제’였다는 점에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단체들은 공약이 다소 후퇴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태다.

복합쇼핑몰은 왜 포함됐고 어떤 곳이 해당되나

공정위는 복합쇼핑몰과 아울렛 입점업체를 대규모유통업법 보호대상에 포함하면서 단순히 매장을 빌려주고 정해진 임차료(정액임차료)를 받는 대규모 점포는 제외시켰다. 대신 ▦상품판매액에 비례하는 임차료(정률임차료)를 수취하거나 ▦입점업체와 공동 판촉행사를 실시하는 복합쇼핑몰을 겨냥했다. 운영사와 입점업체가 공동으로 할인 등의 판촉행사를 진행하면 상품판매액은 증가할 것이고 결국 운영사의 수익을 극대화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과정에서 수반되는 판촉 비용을 입점업체가 부담하는 경우는 관례처럼 행해져 왔다. 입점업체 입장에서는 매달 내야하는 임차료에 판촉 비용까지 떠안아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렸던 셈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현행 대규모유통업법은 유통업체가 소매업자인 경우에만 적용된다. 롯데와 현대백화점이 운영하는 아울렛은 한국표준산업분류상 대형종합소매업으로 분류, 이미 대규모유통업법 적용 대상이다. 하지만 사각지대가 있었다. 부동산 개발 및 임대업으로 등록한 신세계 프리미엄 아울렛과 스타필드 등은 적용 대상에서 벗어나 있었던 것이다.

현재 신세계그룹의 부동산 개발·공급업체인 신세계프라퍼티는 스타필드를 운영 중이다. 지난 6월에는 신세계프라퍼티 170만 주를 이마트가 978억 원에 인수해 신세계프라퍼티 지분 100%를 보유한 상태다. 이 과정을 통해 실질적으로 스타필드를 운영하는 주체를 이마트로 해석할 수 있다. 등록은 임대업자로 실상은 유통업체라고 볼 수 있는 셈이다. 신세계 프리미엄 아울렛은 미국 사이먼프로퍼티그룹과 합작 설립한 신세계사이먼이 아울렛 사업을 하고 있다.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신세계프라퍼티와 신세계사이먼 모두 부동산업으로 표기돼 있다. 문제는 이들에 입점한 업체들이 운영사로부터 부당한 상황에 놓였을 때 대규모유통업법 규제 대상이 아니라 보호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지난해 문을 연 스타필드 하남은 일평균 방문객 수는 평일 기준 5만여 명, 주말 기준 10만여 명으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 곳의 상반기 매출은 530억 원을 기록해 1000억 원 이상의 연매출도 기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4월에 문을 연 신세계사이먼 시흥 프리미엄 아울렛은 오픈 후 한 달간 누적 방문객 수가 약 150만 명으로 여주, 파주, 부산 프리미엄 아울렛 오픈 당시 보다 약 5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주 프리미엄 아울렛의 지난해 방문객 수가 850만 명인 점을 고려할 때, 시흥 프리미엄 아울렛의 연간 방문객 수가 1000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오픈 첫해 목표매출액을 3000억 원으로 잡고 있을 정도다.

사업 호조로 인해 신세계프라퍼티는 투자를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스타필드 하남과 스타피드 코엑스에 이어 최근 스타필드 고양을 오픈했다. 신세계프라퍼티 측은 스타필드 고양의 오픈 1년차 목표 매출을 6500억 원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밖에 신세계프라퍼티는 청라, 안성, 창원 등 전국적으로 복합쇼핑몰 개장을 준비 중이다.

신세계 측은 “이미 기존 대규모유통업체와 같이 입점업체와의 계약이나 영업환경을 조성해서 운영하고 있다”면서 “향후 공정위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일부 소요가 발생할 수도 있겠지만, 대규모유통업법에 적용된다고 해서 크게 변화가 생길 것은 없다”는 입장이다.

“소비자 편익 고려” vs “사각지대 파고든 대기업 규제”

공정위는 개선방안을 발표하면서 박선숙 국민의당 의원이 발의한 대규모유통업법 개정안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박 의원은 작년 12월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신세계 사이먼이 프리미엄 아울렛을 운영하면서 입점업체와 계약을 할때 주로 임대을 계약관계(정률 임차료 의미)를 맺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임대을 계약관계는 대규모 유통업법에 명시된 거래 방식이다. 대규모유통업자가 납품업체가 납품한 상품을 자기 명의로 판매, 상품판매 후 일정률이나 일정액의 수수료를 공제한 판매대금을 납품업자에게 제공하는 거래다.

정부 당국은 올 연말까지 해당 법안의 국회 통과를 비롯해 복합쇼핑몰을 유통산업발전법상 의무휴업 대상에 포함하는 법 개정 작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동반성장과 골목상권을 보호하자는 명분에서다. 차질 없이 진행된다면 복합쇼핑몰은 내년부터 대형마트와 같이 월 2회 의무휴업을 실시해야 한다. 유통업계도 이 같은 정책을 사실상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하지만 의무휴업과 관련해 여전히 갑론을박이 진행 중이다. 복합쇼핑몰과 아울렛을 운영하는 대기업들은 휴일 매출이 평일의 2~3배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월2회 공휴일 의무휴업 시행 시 매출과 이익 타격은 5~10%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대비책 준비에 분주한 대형 유통업체들은 복합쇼핑몰이 지닌 고용창출 효과, 그리고 상생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점을 들어 규제에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지난달 26일 “복합쇼핑몰이 1개 설치될 경우 4000명의 고용창출 효과가 있다”면서 “지역과 상생하는 다양한 방안들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타필드를 운영하는 신세계프라퍼티 측도 저자세로 정부 반응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임영록 신세계프라퍼티 대표는 17일 스타필드 고양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상생 없는 기업은 영속할 수 없다는 게 신세계 철학”이라며 “스타필드 고양은 지역 주민자치회나 요식업협회, 가구협회, 재래시장상인회 등 많은 파트너와 대화하고 협의를 통해 문을 열 수 있었던 만큼 사회적 책임을 다해 나가겠다”고 상생 의지를 분명히 했다. 스타필드 고양은 지난해 12월 지역 소상공인을 위해 특례보증재원 10억원을 출연하는 등 상생을 강조한 바 있다.

대형 쇼핑몰을 이용하는 고객들의 볼멘소리도 있다. 대형 쇼핑몰을 한 달에 2번 정도 이용한다는 30대 직장인 “서점, 영화관, 마트 등 볼거리, 먹거리가 한 곳에 모여 있어 시간을 보내기 좋다”면서 “의무 휴업을 해서 문을 닫는다 해도 지역 시장에는 가지 않을 것”이라고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이런 이유를 들어 일부에서는 “소비자의 선택권과 편익을 고려하지 않은 채, 명분만 앞세우는 정책이다. 경기 침체에 허덕이는 내수 경제를 진작시키기 위해 유통산업을 지원할 필요도 있다”고 항변하고 있다.

한 복합쇼핑몰 관계자는 “입점 업체 가운데 중소기업이나 영세 상인들이 운영하는 점포도 상당수 있다”며 정부 정책이 과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중소기업과 영세 상인을 볼모로 규제를 피해가려는 꼼수라는 지적도 많다.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팀장은 본지 통화에서 “대기업들은 유통산업발전법망을 교묘하게 이용해 사업을 확대하고 수익을 창출해왔다. 공익적 차원에서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권 팀장은 “입점을 해놓고 규제를 하는 것보다 독일처럼 도시계획 등 건설단계부터 상권과 분리시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피해를 최소화시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허인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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