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한 논리’로 재해사망을 질병사망으로 둔갑

소비자에 유리한 약관해석 마저 무시했던 신한생명

가입 때는 ‘고객 우선’, 보험금 줘야 할 때는 ‘보험사 최우선’

신한생명 패소 판례, 재해사망·질병사망 관련 보험 분쟁 겪는 소비자에 좋은 지침

한민철 기자

신한생명이 재해가 아닌 질병으로 사망했다는 이유로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다가 법원으로부터 패소 판결을 받은 사연이 밝혀졌다. 이번 법원의 판결이 가입할 때는 고객우선을 외치지만 보험금 지급 시에는 소송까지 끌고 가려는 일부 보험사들의 행태에 경종을 울리며, 사망보험금 관련 보험사와 분쟁을 겪는 소비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목소리다.

K씨는 지난 1999년 1월경 신한생명의 한 보험상품에 가입했다. K씨가 가입한 해당 보험상품은 일반사망보험 그리고 재해(상해) 시 입원비를 지급하는 등 흔한 보장내역의 특약을 담고 있었다.

K씨는 꾸준히 신한생명 보험상품의 가입을 유지해 오던 중 지난 2015년 11월 식사를 하는 도중 의식을 잃고 말았다.

그는 가족들의 신고로 긴급 출동한 119구조대에 의해 심폐소생술을 받았지만, 의식이 돌아오지 않자 인근 대학병원으로 후송됐다.

병원 기록에 따르면, K씨는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이미 의식이 없었고 성대에는 음식물이 걸려 있었다. 때문에 음식물이 목에 걸려 발생한 기도폐쇄 증상이 사고의 원인으로 추정됐다.

그렇게 K씨는 이 대학병원에서 계속해서 입원치료를 받았지만, 안타깝게도 한 달 후인 2015년 12월 뇌사로 유명을 달리했다.

망인 K씨에 대한 입원과 사망 그리고 장례 절차 등을 수습하면서 그의 가족들은 K씨의 보험계약 관련 내용을 살펴봤다.

가족들은 K씨가 1999년 1월에 가입한 신한생명 보험상품에 피보험자는 K씨이며 사망 시 보험수익자가 그의 상속인인 자신들에게 돌아간다는 계약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다.

구체적으로 K씨가 1999년 당시 가입했던 신한생명 보험상품은 일반재해사망보험금으로 ‘피보험자(K씨)가 휴일에 교통사고 이외의 재해로 사망’하는 경우 5000만원을 지급하도록 돼있었다.

또 재해입원보장 특약 중 휴일응급치료자금으로 ‘피보험자가 휴일에 재해로 4일 이상 입원했을 때’ 1회당 30만원을 그리고 재해입원급여금으로 ‘피보험자가 재해로 4일 이상 입원했을 때 3일 초과 시’ 하루 당 5000원을 지급해야 했다.

이어 재해입원특약 중 재해입원급여금으로 ‘피보험자가 재해로 4일 이상 계속 입원해 3일 초과 시’ 하루 당 역시 5000원을 지급하는 특약 내용이었다.

K씨의 사망 원인은 음식물이 목에 걸려 일어난 기도폐쇄였고, 그가 사고를 당해 병원에 실려 간 날은 일요일 즉 휴일로 앞서 언급한 신한생명 보험상품 특약 상 보험금 지급 조건에 부합했다.

이에 K씨의 상속인들은 신한생명에 해당 특약대로 일반재해사망 보험금 5000만원과 재해입원보장 특약에 따른 휴일응급치료자금 30만원, 재해입원보장 특약에 따른 재해입원급여금 및 재해입원 특약에 따른 재해입원급여금 각 14만원 등 총 5058만원의 보험금 지급을 신청했다.

그러나 신한생명 측은 K씨의 사망에 대해 자체 조사를 한 뒤 보험금을 줄 수 없다며 K씨 상속인들에 통보했다.

신한생명이 K씨의 상속인들에 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다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K씨의 사망원인이 ‘재해’가 아닌 ‘질병’이었고, 그가 사고로 병원에 실려 간 날은 휴일이 맞지만 사망한 날은 화요일이었기 때문에 특약 상 보험금 지급 조건의 어느 경우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다.

신한생명 측은 우선 K씨의 사망이 갑작스럽게 일어난 것이 아닌 과거 질병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K씨가 지난 2006년경 발병한 뇌병변장애로 인해 평소 보행 등 일상생활에 매우 심각한 장애가 있었고, 2014년경부터는 약을 삼키는 데 어려움을 겪는 ‘삼킴장애’로 건강상태가 악화돼 있었다는 설명이었다.

이에 K씨의 건강상태와 사망 당시 고령의 나이를 비춰봤을 때 2015년 11월 식사 도중 음식물이 목에 걸려 의식을 잃은 것도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설령 식사 중 음식물이 기도에 걸려 호흡곤란을 일으켜 의식을 잃었을지라도 K씨의 사망의 결정적 요인은 사고가 아닌 삼킴장애였고, ‘질식에 의한 불의의 사고 중 질병에 의한 삼킴장애’는 재해사망보험금 지급 사항에서 제외한다고 덧붙였다.

신한생명 측은 “K씨의 당시 건강상태에 비춰봤을 때 음식물이 목에 걸려 호흡곤란을 일으킨 점은 경미한 외부요인에 해당한다”라며 “결국 K씨는 재해로 사망했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특히 신한생명은 K씨가 특약 상 휴일재해사망에 해당하기 위해 그가 휴일에 사망했어야 하는데, 2015년 11월 사고 발생 시기가 일요일로 휴일이었을 뿐 사망한 12월 당시는 화요일로 휴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휴일재해사망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K씨의 상속인들은 이런 신한생명의 주장을 받아드릴 수 없었다. 사고 당시 병원 측 진료기록 등에 K씨의 사고 원인이 음식물이 목에 걸려 발생한 호흡곤란이라는 부분이 명백히 남아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신한생명이 K씨가 음식물이 목에 걸려 사고를 당했다는 것부터 믿지 않는 태도였기 때문에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신한생명 측이 K씨에 대해 삼킴장애가 있다고 했지만, 질병을 앓고 있었고 음식물을 삼키는 데 다소 불편을 겪고 있을 뿐 장애는 아니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결국 양측은 합의를 볼 수 없었고, K씨 상속인들은 신한생명을 상대로 보험금 지급에 관한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 “K씨 사망원인, 재해가 분명”… 소비자에 유리한 약관해석도 무시했던 신한생명

법원은 신한생명 측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으며, K씨 상속인들의 손을 들어줬다.

이 사건 재판을 맡은 서울중앙지방법원은 K씨의 사망이 재해가 명백하며, 휴일 사망 여부 역시 약관 내용이 고객에게 유리하게 해석돼야 한다는 점 등을 들어 K씨 상속인들의 주장이 옳다고 판단했다.

우선 법원은 K씨가 사고 발생 당시, 음식물이 입에서가 아닌 성대에서 발견됐기 때문에 그가 음식물을 ‘삼킨 후’ 쓰러져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K씨에 대한 응급센터기록지에서 주진단이 ‘심정지’라고 명시돼 있어 심정지에 대한 심폐소생술 처치가 있었고, 병원의 입퇴원요약지의 진단명에 ‘질식’ 그리고 주진단명이 ‘뇌사’로 기재돼 있었다.

또 K씨의 사망진단서에 직접 사망원인이 ‘질식’이라고 명시돼 있던 점을 비춰봤을 때, 그가 쓰러져 병원으로 후송된 후 계속 의식불명 상태에 있다가 종국적으로 뇌사로 사망했고 질식으로 사망한 것이 명백하다는 판단이었다.

때문에 법원은 K씨가 질병이 아닌 예상치 않게 일어난 재해로 사망했다는 점에 신빙성을 높여줬다.

법원은 신한생명이 주장하는 K씨의 병력에 대해서도, 신한생명 측이 보험금 지급을 최소화하기 위해 ‘누가 보더라도 비합리적이었지만’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K씨의 사망원인을 해석했다는 점을 보여줬다.

법원은 신한생명이 K씨의 병력을 비춰봤을 때 질식은 경미한 외부요인에 불과하고 삼킴장애가 있었으므로 그의 사망을 재해로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질식이 직접 원인이 돼서 사망했기 때문에 이를 경미한 외부요인이라고 볼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심지어 법원은 신한생명 측이 K씨가 삼킴장애가 있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동의하지 않았다.

법원은 K씨가 음식물을 삼키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진단을 받은 후 병원에서 구강운동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따라말하기와 노래부르기 등 재활훈련을 꾸준히 했지만, 별도로 삼킴장애로 볼 만한 다른 치료를 받은 내역이 없는 등 그가 삼킴장애가 있었다고 볼 만한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때문에 K씨가 질병 또는 장애가 아닌 재해로 사망한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법원은 또 다른 쟁점인 K씨의 휴일 사망여부에 대해서도 K씨 상속인 측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물론 신한생명 측의 입장대로 K씨가 재해를 입은 날은 휴일이지만, 사망한 날은 휴일이 아니라고 밝혔다.

다만 특약 내용의 ‘휴일에 재해로 사망했을 때’의 ‘휴일’의 표현에 대해 ‘재해로 사망했을 때’를 모두 수식하는 것 또는 ‘사망’만을 수식하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지만, 문구의 위치상 ‘재해’만 한정 수식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정리하자면 ‘휴일에 재해로 사망했을 때’라는 특약 상 문구 해석을 두고, K씨 상속인 측의 ‘휴일에 일어난 재해’로 사망했다는 주장 그리고 신한생명의 ‘휴일에 사망’했다는 주장 중 전자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설명이었다.

법원은 “약관의 뜻이 명백하지 않은 경우 고객에게 유리하게 해석해야 한다”라며 “K씨가 휴일에 발생한 재해로 인해 사망한 이상 비록 사망한 날은 휴일이 아니더라도 휴일사망보험금 지급요건은 충족된다”고 판결했다.

결국 법원의 판결로 신한생명 측은 K씨 상속인들이 신청한 보험금과 지연손해금까지 모두 지급해야 했다.

이번 사례는 일부 보험사에서 계약자의 재해나 상해를 원래부터 앓던 질병이라고 우기며 보험금 지급을 회피해왔고, 이에 정당히 받을 수 있는 보험금을 받지 못했던 소비자들이 향후 현명하게 대응할 수 있는 좋은 지침이 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법원의 판단대로 약관이 고객에게 유리하게 해석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번 신한생명의 사례는 재해로 유명을 달리한 고인 측의 주장을 믿지 않고 소송까지 끌고 갔던 점에 대해 경종을 울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가입할 때는 고객 우선을 외치지만, 보험금을 지급해야 할 때는 자신들의 주장이 최우선이라고 일관하는 이들 보험사들의 행태에 소비자들이 더 이상 억울함을 겪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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