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신문 한 마디도 없었던 검찰

‘침묵한’ 檢, 이화경 부회장에 초범임을 참작해 집행유예 구형

‘초범’(?)… 검찰은 2011년 이화경 부회장의 입건유예 사실 몰랐나

이화경 부회장, 재판부에 사드문제·오리온의 중국매출 비중 거론하며 선처 호소

검찰이 이화경 오리온 부회장에게 집행유예를 구형했다. 아쉽게도 검찰 측은 반대신문 한마디도 없이 초범임을 참작 사유로 정했다. (사진=연합)
한민철 기자

검찰이 회사 소유 미술품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는 이화경(61) 오리온 부회장에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구형했다.

27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1단독(부장판사 황기선) 심리로 열린 이화경 오리온 부회장에 대한 두 번째 공판에서 검찰은 이 부회장이 초범이라는 점 그리고 피해가 회복된 점을 참작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이화경 부회장 측은 지난달 30일 첫 번째 공판에서 검찰 측의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하며 증거채택 부분에 모두 동의한 바 있다.

이런 입장은 두 번째 재판에서도 변함이 없었다. 이날 진행된 피고인 신문에서 이화경 부회장은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하고 깊이 반성 하는가”라는 변호인의 질문에 “네”라고 답변했다.

특히 이화경 부회장은 지난 2015년, 오리온이 쇼박스와 미술품 임차계약을 체결해 자신의 사무실에 전시·보관해 놨던 1억 7400만원 상당의 미술품인 장 뒤뷔페(Jean Dubuffet)의 ‘무제(Untitled)’를 남편 담철곤(62) 오리온 회장의 성북동 자택에 반출한 경위에 대해서도 횡령의 의도가 전혀 없었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화경 부회장은 “(미술품을 보관했던 회사) 사장실에는 담배도 피우고 해서 환경자체가 그림에 좋지 않으니 제 방 사무실로 옮기면 어떻겠냐고 했고, 그래서 제 방 사무실에 뒀던 것”이라며 “집 창고 정리를 하다가 붙일 만한 그림이 눈에 띄었는데, 무제를 집에 가져오게 됐다”라고 증언했다.

원래 이 부회장은 무제를 집으로 가져 오면서 해당 미술품에 대한 관리를 책임지던 오리온그룹 계열사 쇼박스의 유 모 대표와의 협의를 통해, 미술품 반출에 따른 임대차 계약을 새롭게 하거나 사용료를 지급해야 했다. 그런데 이런 절차 없이 회사 미술품이 ‘집 창고를 정리하던 참에’ 이 부회장 자책으로 옮겨진 것이었다.

이에 대해 이 부회장은 “유 대표가 영화제 출장으로 통화가 되지 않아서 집으로 가져온 다음 이야기 하는 것을 잊어버렸다”라고 설명했다.

이화경 부회장은 이 미술품이 오리온 소유인 것을 자신이 인지했고, 이후 총무팀장에게 매뉴얼대로 미술품 반출에 대한 업무처리를 지시해야만 했지만 그러지 못한 점에 대해서도 반성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화경 부회장은 역시 회사 자산으로 구입해 오리온 양평연수원에 보관하고 있었던 고가의 미술품인 마리아 페르게이(Maria Pergy)의 ‘트리플 티어 플랫 서페이스 테이블(Triple tier Flat-surfaced Table)’이 지난 2014년 2월경 자택으로 반출된 경위에 대해서도 문제의 소지가 있었다는 점에 대해 인정했다.

그는 당시 지인으로부터 자택 빈 공간에 테이블을 놓는 것이 어울리겠다는 조언을 들었고, 이번에는 유 대표에게 해당 테이블을 연수원으로부터 옮겨달라고 요청했다.

물론 이 부회장은 유 대표에게 테이블 반출을 지시하면서 임대차 계약 체결이나 사용료 지불 등의 조치가 있어야 했지만, 이를 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서도 잘못을 인정했다.

또 이 테이블을 반출하는 대신에 가품을 연수원에 뒀던 이유에 대해 진품을 몰래 보유하거나 반출을 숨기기 위한 의도가 아니었다고 밝혔다.

단지 지인이 가품을 만들어 줄테니, 테이블을 반출하는 대신 그것을 연수원에 두라고 조언해서 가품 제작을 의뢰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무엇보다 양평연수원은 외부인의 접촉이 많아 테이블이 오염되거나 상처가 가기 쉬웠고, 이곳 연수원에 둔 가구들 대부분이 가품이 많았다는 입장이었다.

초범이라 참작(?), 검찰은 2011년 입건유예 사실 몰랐나

오리온 측 변호인들은 이 부회장이 현재 문제가 된 미술품 등을 원래대로 반환했고, 반출된 기간 동안 사용료를 변상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또 현재는 이 부회장이 8억원 상당의 개인 소유 미술품 30여점을 오리온 그룹 측에 무상으로 대여·전시하고 있다며, 지난 일을 반성하고 있고 이후 미술품 관리규정을 더욱 엄격하게 지키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해당 미술품의 소유주인 오리온이 이화경 부회장에 대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처벌 불원서’를 제출했고, 오리온 그룹 해외법인 해외 거래처에서도 이 부회장에 대한 선처를 요구하는 탄원을 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담철곤 오리온 회장. (사진=연합)
이화경 부회장은 “담철곤 회장이 피고인(이화경)이 관리하던 미술품과 관련해 고발돼 남편이 어려움에 처했다는 것을 알고 미안해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나”라는 변호인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또 “피고인의 잘못을 깊이 반성하며 앞으로는 그룹과 관련된 업무를 엄정하게 처리하겠다고 다짐 하는가”라는 질문에도 동의했다.

피고인 측의 혐의에 대한 소명이 모두 끝난 뒤, 이제는 검찰 측의 반대신문만이 남았었다.

그러나 검사 측은 피고인에 대한 반대신문을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채, 검사 측 의견을 말해달라는 재판부의 요구에 “피고인이 초범이고 피해가 회복된 점을 참작해 피고인에 대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다”라고 간단히 말한 뒤 검사 측 의견을 모두 끝냈다.

이날 재판에서 검사 측이 반대신문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점은 ‘아주 이례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지만, 더욱 의아했던 점은 바로 이화경 부회장을 ‘초범’이라는 이유로 형량을 참작했다는 것이었다.

사실 지난 2011년 5월경 담철곤 회장이 비자금 조성 의혹으로 구속기소됐던 시기, 검찰은 이번처럼 미술품 횡령 혐의를 받고 있던 이화경 부회장에 대해 자금의 출처가 담철곤 회장의 계열사이며 담 회장이 구속기소된 점 등을 참작해 입건유예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입건유예는 경·검찰이 유죄를 인정하지 않지만, ‘범죄혐의’가 분명히 있고 단지 입건할 필요가 없어 내리는 조치다.

때문에 이날 재판이 끝난 뒤 이 부회장이 같은 혐의로 유죄 처분을 받은 전과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엄밀히 말해 같은 범죄혐의를 받고 입건이 유예된 만큼 그를 초범이라서 참작한다는 검찰 측 판단에 납득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특히 만약 이화경 부회장이 아닌, 오리온 일반 직원들이 회사 미술품 등을 자신의 집으로 무단으로 반출했다면 과연 검찰이 같은 구형을 내릴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목소리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화경 부회장은 재판 중간에 어머니 이관희 여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 잠시 울먹거리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면서 자신의 실수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한다는 점을 반복했다.

이 부회장은 피고인 최후 진술에서 “(미술품을) 몰래 가지고 오려고 했거나 고의로 영구히 보관하려 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만큼은 꼭 말씀드리고 싶다”라며 “지금 오리온은 중국사 매출이 큰데 사드문제로 어려움을 받고 있다. 선처해주시면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고 국가경쟁 발전을 위해 열심히 일할 것을 약속드린다”고 밝혔다.

이화경 부회장에 대한 선고는 다음 달 27일에 이뤄질 예정이다. 선고 전 마지막 공판에서 이화경 부회장은 설마 자신이 우려했을 수도 있겠지만, “괜찮았고, 실수하지 않은 채” 신문을 마쳤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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