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랑은 심한데 선장 장기간 부재

행장 공석 5개월…정부, 외부인사 고려

노조 “정치인ㆍ관료 출신 낙하산 안돼”

은행 발전시킬 수 있는 전문금융인 필요

올해 ‘좋은 은행’ 순위 13위로 하위권

수협은행 행장 공백이 다섯 달 이상 이어지고 있다. 행장 공백이 길게 이어지고 있는 이유는 정부가 선호하는 행장 후보와 수협중앙회가 지지하는 후보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수협중앙회에선 강명석 수협은행 상임이사 같은 내부 인사가 행장을 맡아야 한다고 보고 있다. 반면 정부는 중량급 인사가 수협은행 행장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수협은행 노조에선 9월 26일 성명을 발표하고 정치인ㆍ관료출신의 관리형 낙하산 인사를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노조가 내놓은 성명서를 읽어보면 반드시 내부 인사가 행장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고 있다. 꼭 내부 인사가 아니더라도 수협은행을 발전시킬 만한 인사라면 수용하겠다는 뜻을 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정부 VS 수협중앙회 ‘견해차’

수협은행의 전(前) 행장은 이원태 전 행장이었다. 그의 임기는 올해 4월 12일까지였다. 지금은 정만화 수협중앙회 비상임이사가 행장 직무대행으로 일하고 있다. 행장 자리가 다섯 달 이상 비어 있다는 얘기다.

본래 수협은행은 2월 20일 행장추천위원회(행추위)를 만든 이후 1차 공모와 재공모를 진행하고 차기 행장 후보자를 선정하려 했다. 그렇지만 후보자를 3명으로 압축한 이후로 최종 행장 후보자를 뽑지 못하고 있다.

행추위 구성 이후 2번 공모하고 여러 번 회의를 했지만 행추위 위원 간 생각이 달라 차기 행장을 뽑지 못했다.

행추위는 정부 측 사외이사 3명과 수협중앙회 추천 2명으로 구성돼 있다. 정부는 외부 인사를 원하는 반면 수협중앙회측은 내부 인사를 원한다. 수협은행 규정을 보면 행추위는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행장 최종 후보를 결정한다.

정부 측이 원하는 인물이 수협은행 행장이 되려면 수협중앙회 측 행추위원 한 명이 정부 편을 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수협은행은 27일 은행장추천위원회(행추위)를 열고 차기 행장 선정에 대해 논의했다. 이날 행장 추천위원회에서는 후보자를 재공모하기로 결정했다.

재공모기간은 9월 28일부터 10월 12일까지로 5영업일간이다. 후보자 면접일은 다음달 18일로 예정돼 있으며 종전 지원자도 지원할 수 있다.

행장 선임이 늦어지고 있는 가운데 수협은행 노동조합은 ‘수협은행장 추천위원회에 강력 요구한다’라는 제목의 성명을 26일 내놓았다.

노조는 “지금이라도 행추위가 열린다고 하니 환영할 일이지만 수협은행장으로 은행·금융전문가가 아닌 정치인ㆍ관료출신의 관리형 낙하산을 염두에 두고 짜맞춰진 각본에 의한 재재공모를 위한 회의가 아닌지 심히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8년 동안 비 금융 관치 낙하산의 폐해를 우리는 톡톡히 경험했다”며 “수협은행의 경영인이 아닌 관리인으로서, 은행장을 경험하러 왔던 인사들은 조직의 발전이나 미래를 준비하기보다는 현상 유지에 급급했다”고 지적했다.

또 “그 결과 조직에는 활력이 떨어지고 타성에 젖고 무사안일주의가 팽배하는 등 수협은행은 모든 것이 위축됐다”며 “그러면서 우리는 급변하는 금융환경 속에서 미래를 준비해야 했지만 오히려 점점 뒤처져만 갔다”고 평가했다.

노조가 행추위에 요구한 것은 3가지다. 노조는 기본적으로 새 행장은 정치인ㆍ관료 출신 관리형 낙하산 인사가 아니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행추위가 행장 후보들이 금융 전문성, 풍부한 은행 경험, 소통·화합 능력, 수협 조직 이해도, 대외활동 능력 등 수협은행장으로서 갖추어야 할 자격조건을 가지고 있는지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는 것이 노조의 첫 번째 요구다.

두 번째 요구는 수협은행, 수협중앙회뿐만이 아닌 한국 수산업, 어업인의 발전과 미래를 위해 적합한 인재를 선임해 달라는 것이다. 세 번째 요구는 노동조합을 경영의 파트너로 인정하고 상생할 수 있는 후보자를 선임해 달라는 것이다.

노조는 “더 이상의 논란을 없애고, 수협의 안정을 위해서라도 이번 행추위에서 모든 것을 마무리해 수협은행이 하루 속히 제자리를 찾을 수 있게 해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이어 “정부와 금융당국이 자기들 입맛에 맞는 정치인·관료출신의 관리형 낙하산 인사를 떨어뜨리기 위한 형식적인 재재공모라면 우리는 금융노조와의 연대 속에 강력한 투쟁으로 맞설 것을 강력 경고한다”고 덧붙였다.

전문성 있는 경영자 필요

그러나 금융권에선 수협은행 행장 선임이 훨씬 연기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재공모를 실시하고 있는데다 행추위 위원들 간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수협은행 상위 기관인 해양수산부, 금융위원회 등의 기관장 인사가 끝나 수협은행 행장 선임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IMF위기 이후 정부는 수협은행에 공적자금 1조1581억원을 넣었다. 따라서 정부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지만 수협은행 내부에선 관료 출신 행장을 꺼리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금융권에선 수협은행이 발전하려면 정말 탁월한 은행 경영자가 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수협은행은 올해 상반기 1196억 원의 세전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이는 사상 최대 실적이다.

그렇지만 아직 수협은행은 갈 길이 멀다. 은행권 경쟁이 날로 격화되고 있고 경제 환경이 악화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올해 7월 4일 금융소비자연맹이 발표한 2017년 ‘좋은 은행’ 총괄 순위를 보면 수협은행은 종합순위 13위였다. 16개 은행 중 13위로 하위권에 머무른 것이다.

수협은행은 안정성에서는 4위였고, 건전성은 9위였다. 그렇지만 수익성은 15위, 소비자성은 14위에 그쳤다.

금융전문가들은 전반적으로 관료 출신이 수협은행 행장을 맡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은행 경영에 전문성을 갖고 있고 수협은행 관련 분야에도 식견이 있는 인물이 수협은행 행장이 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원장은 “정부가 지분(공적자금 투입)이 있어서 자기 취향에 맞는 인물을 수협은행 행장을 시킨다는 것은 과거의 논리”라며 “지금까지 수협은행의 이런 행태는 관료들에 의한 선임이나 지배가 지금의 수협은행의 경쟁력을 만든 원인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가 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경영 자율성은 최대한 보장하고 평가와 제재는 엄하게 하는 감독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며 “수행자와 감독자를 자기가 하겠다고 하는 것은 경쟁력 확보 측면에서 보면 후진적인 인사 방향이 아니겠느냐”고 물었다.

조 원장은 “새 정부라면 새로운 철학을 가져야 하고 인사의 원칙을 제대로 확립해야 한다”며 “정부 편 회사 편이 아니라 수협은행이란 금융사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기준과 실행을 제시해서 성과를 거둘 수 있게 하는 감독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상일 한국기술교육대 산업경영학과 교수는 “일반 시중은행의 경우 경영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이 수장이 되는 것이 필요하다”며 “수협은행의 경우 정책금융기관이므로 수협은행 관련 분야에 대한 식견이 중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곽호성 기자

사진 설명 : 수협은행이 입주해 있는 수협중앙회 빌딩 (사진=수협은행 제공)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