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의 소견 담은 진단서는 효력없나(?)… 부족한 판단했던 한화손보

한화손보, 진단서에 ‘점막고유층 침범’ 기재돼 있음에도 제자리암으로 인정

한화손보 “진단서 작성의, 임상병리 전문의 아니었기 때문” 주장

해당 진단서, 임상병리 전문의 의견 그대로 반영… 법원 “진단서, 효력 있다” 판결

한화손해보험이 보험금 지급을 청구한 피보험자에게 진단서를 발급한 의사가 전문의가 아니었고, 제자리암이라며 정당한 보험금 지급마저 거부한 것으로 밝혀졌다. (사진=한민철 기자)
한민철 기자

한화손해보험이 암 보험금 지급을 축소하다 패소한 어처구니없는 사연이 최근 밝혀졌다. 한화손해보험은 피보험자가 종합병원에서 종양 제거수술을 받았고, 이후 전문의로부터 암에 해당한다는 임상병리 조직결과 검사지를 통해 진단서를 발급받았음에도 보험금 전액 지급을 거부했다. 진단서를 발급한 의사가 전문의가 아니었고, 피보험자의 경우는 일반 암이 아닌 제자리암이라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학계와 감정의 그리고 양측의 의견을 꼼꼼히 종합한 법원의 판단은 이와 달랐다.

중년의 여성 L씨는 지난 2015년 3월경 한화손해보험(이하 한화손보)의 암 보험상품에 가입했다.

이 상품은 현재 한화손보 측에서 판매를 중지한 상태로, 피보험자가 암과 기타 피부암, 갑상선암, 제자리암 또는 경계성 종양으로 진단이 확정됐을 때 2000만원의 암 진단비를 보험금으로 지급하는 내용의 특약을 담고 있었다.

여기서 ‘유사암’으로 분류되는 기타 피부암과 갑상선암, 제자리암, 경계성 종양의 확진의 경우 2000만원의 보험금의 10%, 즉 200만원만을 지급하게 돼 있었다.

또 암으로 확진을 받고 그 치료를 직접적인 목적으로 수술을 받았을 때, 암 수술비로 400만원의 보험금을 지급하는 특약도 포함하고 있었다.

그렇게 이 보험금 유지하고 있던 L씨는 가입 5개월이 지난 2015년 8월경 J종합병원에서 대장 내시경 검사를 하던 중 의사로부터 체내 용종(茸腫)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용종이란 쉽게 말해 암으로 발전되기 전 단계에 발생하는 종양으로 발견 즉시 제거수술을 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L씨도 의료진의 권유로 곧바로 대장용종에 대한 절제술을 받았다. L씨의 용종 수술을 담당했던 J병원 전문의 B씨는 그의 조직 검사를 시행한 뒤, 임상병리 조직결과 검사 결과지에 ‘선암(腺癌, Adenocarcinoma), 결장 내 위치, 크기는 8×5×3㎜, 점막고유층을 침입’이라고 기재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로부터 약 8개월 후인 지난해 4월 L씨는 자신의 담당의사인 C씨로부터 당시 자신의 병명에 대해 ‘상세불명의 결장에 의한 악성신생물(C18.9)’이라는 진단서를 발급받게 됐다.

여기서 악성신생물이란 암의 다른 말로, 한국표준질병 사인분류의 악성신생물 분류표 내 질병코드 C18.9은 대장암에 속했다.

이에 L씨는 제거한 용종이 단순한 종양이나 유사암이 아닌 암에 해당하며, 한화손보에 가입했던 암 보험상품의 보험금 지급사유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전문의 B씨가 작성한 임상병리 조직결과 검사 결과지 및 C씨가 발급해준 진단서 등을 첨부해, 한화손보 측에 암 진단금 및 암 수술비 총 2400만원의 보험금을 청구했다. 그러나 얼마 뒤 한화손보로부터 L씨의 통장에 입금된 보험금은 210만원이었다.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 210만원이라는 보험금에 대해, 한화손보 측은 L씨의 용종이 점막 고유층만을 침범했을 뿐 점막하층 또는 점막근층을 침범하지 않아 ‘제자리암’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유사암으로 분류되며, 약관상 암 진단비 2000만원의 10%의 해당하는 보험금밖에 지급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오히려 지급해야 할 금액에서 10만원을 덧붙였으니, L씨가 자신들에게 고마워해야 한다는 꼴이었다.

당연히 L씨는 고마움은커녕 강력히 반발할 수밖에 없었다. J병원 전문의 B씨가 수술 후 작성한 자신의 임상병리 조직결과 검사지에는 종양이 점막고유층을 침범했다고 적시돼 있었고, 이는 분명 제자리암이 아닌 암에 해당한다고 반박했다.

특히 담당의사 C씨가 발급해준 ‘상세불명의 결장에 의한 악성신생물(C18.9)’이라는 내용의 진단서 역시 대장암이 명백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때문에 약관대로 나머지 2190만원의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한화손보 측은 L씨의 주장에 그가 J병원에서 제거한 종양이 대장암 또는 제자리암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떠나서, 의사 C씨가 작성한 진단서의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대응논리를 들고 나왔다.

한화손보는 “(C씨가 작성한) 진단서 등은 해부병리 또는 임상병리 전문의 자격증을 가진 의사에 의해 발행된 진단서가 아니다”라며 “이에 약관상 암으로 진단이 확정됐다고도 볼 수 없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L씨는 한화손보 측과 정당한 보험금을 지급해 달라며 갈등을 겪어 왔고, 결국 지난해 4월 보험 소비자와 대형 손해보험사 간 암보험을 둘러싼 소송전이 시작됐다.

법원 “다수 또는 학계 의견을 따르지 않았다고 해서 진단서 잘못됐다 할 수 없어”

보통 제자리암 등의 유사암과 구분되는 일반적인 암이란, 한국표준질병 사인분류의 악성신생물 분류표 중 질병코드 C44 및 C73에 해당하는 질병을 제외한 것을 말한다.

L씨가 가입한 한화손보 보험상품의 약관 상 ‘소화기관의 악성신생물’을 대상 질병으로 하며, 질병코드 C15에서 C26까지가 이에 포함된다.

또 이 계약에서 제자리암은 한국표준질병 사인분류의 제자리신생물 분류표에서 정한 ‘기타 및 상세불명의 소화기관의 제자리암종’을 대상질병으로 하며, 질병코드 D01이 해당했다.

특히 암과 제자리암의 진단확정은 해부병리 또는 임상병리 전문의 자격증을 가진 자에 의해 내려져야 한다. 이는 조직검사와 미세 바늘흡인검사 또는 혈액검사에 대한 현미경 소견을 기초로 해야 한다.

만약 이런 진단이 이뤄지지 않았을 때는 피보험자가 암으로 진단 또는 치료를 받고 있음을 증명할 수 있는 문서화된 기록 등이 있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법원은 L씨의 경우에 앞서 언급된 암의 진단확정 및 이를 증명할 기록 등이 모두 갖춰진 경우에 해당한다며, 지난달 L씨 측의 손을 들어줬다.

이 사건의 판결을 담당했던 서울중앙지방법원 측은 별도의 감정의를 통해 L씨의 진료기록 감정 촉탁 결과 그리고 사실조회결과 등의 자료를 수집 및 검토했다.

우선 감정의는 2015년 8월 L씨에게 발견됐던 대장용종은 한국표준질병 사인분류 및 미국합동암 위원회(ACJJ)의 기준에 의하더라도 ‘질병코드 C18.9가 아닌 D01’, 즉 제자리암이자 행동양식 분류번호 ‘/2’에 해당한다고 평가했다.

법원도 이런 감정의의 평가는 일부 동의했다. 재판부는 감정의가 L씨의 종양을 D01으로 평가한 것에 대해 ‘점막의 고유층’에 국한된 선암은 정상 소재의 암종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한국표준질병 사인분류 및 국제질병분류 상으로도 제자리암으로 분류할 수 있다는 견해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실제로 대한병리학회 소화기병리 연구회의 지난 2006년 및 2008년 논문 발표 후, 국내 의료계에서 ‘점막의 고유층’에 국한된 선암은 정상 소재의 암종으로 분류한다는 견해가 다수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장의 경우, 점막의 고유층을 침범한 종양에 대해 제자리암으로 보지 않는 견해가 여전히 다수를 이루고 있었다. (사진=연합)
다만 재판부는 이번 사건의 경우처럼 ‘대장’에서 생기는 암에 대한 기존 학계의 의견 및 의료진의 판단을 보다 종합적으로 고려했다.

재판부는 “대장의 경우, 점막의 고유층을 침범한 종양에 대해 여전히 행동양식 분류번호 ‘/2’가 아닌 ‘/3’를 부여하는 경우가 다수 있다”라며 “이를 통해 L씨의 진단의 C씨가 진단서에서 이 사건 종양으로 ‘C18.9’로 평가한 것으로 보이며, 그가 다수 또는 학계의 의견을 따르지 않았다고 해서 진단서 내용이 잘못됐다고 단정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아무리 다수의 의견이 L씨의 종양을 제자리암으로 평가하고 있을지라도, 대장에서의 종양에 대해 기존 학계에서는 이를 제자리암과는 다른 행동양식 분류번호를 부여하는 경우 역시 다수라는 설명이었다.

또 C씨에 대해서도 그가 다수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았다고 해서 L씨를 대장암이라고 진단한 것을 잘못됐다고 할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한화손보, 전문의 의견 반영된 진단서라는 점 몰랐나(?)

비록 다수의 의견을 따르지 않은 C씨의 판단을 존중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한화손보 측도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부분은 있었다.

한화손보 측이 C씨가 해부병리 또는 임상병리 전문의 자격증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L씨에 발급해준 ‘상세불명의 결장에 의한 악성신생물(C18.9)’이라는 진단서가 이 사건 보험지급에 대한 증거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면, 이 역시 이들의 입장을 고려해 볼만한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한화손보에는 안타깝게도 재판부는 이런 주장 역시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한화손보 측이 ‘착각’을 했다는 점을 보여주며, 이들에게 안타까움 보다 민망함을 안겨주는 꼴이었다.

C씨의 진단은 그가 개인적으로 공부한 내용에 따라 내린 것이 아닌, 바로 L씨가 대장용종 절제 수술 후 그에 대한 임상병리 조직결과 검사지를 작성했던 전문의 B씨의 의견을 사실상 100% 반영한 결과였다. B씨는 당연히 임상병리 전문의 자격증을 가진 의사였다.

재판부는 “L씨가 진료받은 J병원의 임상병리의 B씨가 실시한 조직검사 결과를 기초로 임상병리조직 결과지를 작성했다”라며 “이 결과지를 토대로 L씨의 담당의사인 C씨가 상세불명의 결장에 의한 악성신생물이라는 최종진단을 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본래 의사들이 진단서를 만들 때, 자신의 전문분야가 아닌 검사 결과에 대해 다른 의사의 진료기록이나 결과를 통해 최종 진단서를 작성한다는 점은 지극히 상식적인 부분이었다.

때문에 C씨가 해부병리 또는 임상병리 전문의 자격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임상병리 자격을 가진 전문의 B씨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해 작성한 진단서는 비전문의 C씨의 개인적 의견이 아닌 전문의 B씨의 의견까지 담긴 종합 진단서였다.

당연히 전문의의 판단이 들어간 진단서이며, L씨가 암 진단 또는 치료에 대한 문서화된 기록으로서 보험금 청구를 위해 한화손보에 제출할 수 있었다.

재판부는 “병리전문의의 판정 결과를 토대로 최종 진단서를 발급한 이상, 그 의사가 해부병리 또는 임상병리 전문의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한화손해보험 약관의 기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볼 수 없다”라며 “해부병리 또는 임상병리의 전문의에 의해 암 등의 진단확정이 내려진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라고 밝혔다.

박윤식 한화손해보험 대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전문의의 소견이 충분히 반영된 진단서는 전문의 자격을 갖춘 의사가 발급한 진단서와 동일하게 본다는 점을 관련 부서에 충분히 숙지시켜야 한다는 지적이다. (사진=연합)
무엇보다 L씨의 경우가 암에 해당하는 것은 종양의 ‘점막고유층 침투’ 여부였다. 앞서 언급한 대로 J병원 전문의 B씨는 L씨에 대한 임상병리 조직결과 검사지에 ‘점막고유층을 침입’이라는 점을 기재했다.

한화손보 측의 약관에는 암과 제자리암의 분류기준으로 한국표준질병 사인분류의 분류기준과 그 용어만을 인용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표준질병 사인분류에서는 ‘침윤 또는 침범이 없는 상피내에 있는 암’을 제자리암으로 규정하고 있다.

L씨의 경우 그의 종양이 상피내에 머물러 있지 않았고, 점막하층까지 침범하지 않았을 뿐 대장 내 점막층의 상피세포층을 넘어 기저막을 뚫고 점막고유층을 침범했음이 명백했다.

때문에 재판부는 L씨의 경우가 상피에서 발생한 암종이 점막고유층을 뚫고 침윤한 것으로, 그 자체로 ‘침윤 파괴적 증식’의 특징을 가진다고 판단했다.

참고로 암 보험에서 ‘침윤 파괴적 증식’이 일어난 암을 중대한 암으로 지정을 하고 있다. 그만큼 L씨가 한화손보로부터 제자리암이 아닌, 암으로서 보험금을 지급받아야 할 사유가 명백하다는 설명이었다.

결국 한화손보 측은 재판부로부터 자신들의 주장이 한 가지도 받아들여지지 않으며, L씨에게 나머지 보험금 2190만원 그리고 지연손해금까지 지급하게 됐다.

이번 사건은 암 보험에서의 전문 용어 그리고 일반적인 암과 유사암에 대한 구분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보험 소비자들에게 좋은 지침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또 대장에서의 종양의 경우는 다른 곳에서의 경우와 다르게 암 여부를 판단할 수 있으며, 점막고유층 침입이 제자리암과 중대한 암을 구분하는 주요 부분이라는 점도 보여줬다.

특히 이번 사건은 지난 2013년 약관 조항이 다의적으로 해석돼 명확하지 않은 경우 ‘고객에게 유리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결을 법원이 제대로 인용한 사례였다.

한화손보 측의 약관대로 진단서 등을 전문의의 의견에 한정짓고 전문의 B씨의 의견을 반영한 C씨의 진단서가 다툼의 여지가 생길 수 있지만, 약관을 고객에게 유리하게 해석해야 하는 만큼 L씨의 손을 들어주는 게 당연하다는 설명이다.

물론 한화손보가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정당한 보험금의 지급을 회피했고, 결국에는 소송까지 끌고 가서 패소한 이번 사연을 두고 보험 소비자들의 따가운 눈초리는 피하기 힘들게 됐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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