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주파 절제술’에 대한 대법원 판결, 라이나생명만 몰랐나

라이나생명, 고주파 절제술이 수술이 아니라며 소비자와 항소심까지 끌고가

재판부 “라이나생명 약관, 추상적이라 고객 우선 약관해석 원칙에 위배” 지적

수년 전부터 ‘고주파 절제술은 수술’이라고 판결한 우리 법원… 라이나생명은 도대체 왜(?)

고주파 절제술이 수술에 해당한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내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해 소비자와 소송전을 벌였던 라이나생명의 사례가 뒤늦게 밝혀졌다. (사진=한민철 기자)
한민철 기자

수년전 고주파 절제술을 수술로 볼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내려졌음에도, 이를 수술이 아니라며 소비자에 보험금 지급을 거부했던 라이나생명의 사례가 뒤늦게 밝혀졌다. 라이나생명은 항소까지 하며 정당한 보험금 지급을 원했던 소비자를 몰아붙였지만, 법원으로부터 최종 패소판결을 받았다.

‘고주파 절제술’은 고주파를 이용해 갑상선 결절(혹, 종양) 등을 치료하는 시술이다. 이는 마취 후 메스(수술용 칼)를 통해 개복한 뒤, 혹 또는 종양을 꺼내는 전통적 외과 수술법과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고주파 절제술은 종양 내부에 1㎜ 굵기의 바늘을 삽입해, 일정한 주파수로 진동하는 교류 전류를 이용해 바늘 끝에서 마찰열을 발생시킨다. 이후 90도에서 100도까지 올라간 열을 통해 바늘 주변의 종양을 태워 괴사(壞死)시키는 방식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전통적 외과 수술법이 갑상선 결절을 수술로 제거하는 것과는 다르게, 고주파 절제술은 이를 체내에 그대로 남겨둔 채 열로 태워 그 세포·조직을 없앤다.

고주파 절제술은 전통적 외과 시술법에 비해 당연히 시술에 따라 환자가 느끼는 고통이 적으며, 마취가 필요 없다는 장점도 있다.

또 절개로 인한 흉터가 목에 남지 않는다. 무엇보다 갑상선 부위도 같이 제거하는 기존 외과 시술법과는 다르게, 갑상선을 그대로 두고 그 안의 혹 또는 종양만을 태우는 것이므로 갑상선 기능 이상의 우려도 없다.

이처럼 고주파 절제술은 다양한 장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갑상선 부위 암 또는 결절 수술에 있어 널리 쓰이고 있다.

그런데 고주파 절제술이 그만큼 자주 사용되는 만큼, 이에 대한 보험금 지급을 둘러싸고 보험사와 피보험자 간의 갈등도 많이 생기고 있다.

보통 보험사들의 보험약관에서는 ‘수술’에 대해 ‘기구를 사용해 생체를 절제 또는 절단’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때문에 절제 또는 절단이 없는 고주파 절제술을 과연 수술의 영역에 포함시켜 수술급여금의 보험금 지급 대상이 되는지의 여부를 두고 최근까지도 보험사와 피보험자 간 갈등을 빚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라북도 익산에 사는 A씨의 사례가 그랬다. A씨는 지난 2012년 말경 라이나생명의 한 질병보험 상품에 가입했다. 이 상품은 주요 성인질환으로 인한 입원비와 수술비, 간병비 그리고 5대 장기이식에 따른 수술비 등을 보장하는 특약을 담고 있었다.

보다 구체적으로 약관 내용을 살펴보면, 보험기간 중 피보험자가 갑상선 장애를 포함하는 제2형 성인주요질환으로 진단이 확정되고 그 치료를 직접적인 목적으로 수술을 받는 경우 수술 1회당 200원의 보험금을 지급하게 돼 있었다.

그 외 제1형 또는 제3형 성인주요질환의 경우 수술 1회당 성인주요질환 수술급여금을 지급한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특히 여기서 수술이라 함은 의료기관에서 의사에 의해 제1형 또는 제3형 성인주요질환으로 인한 치료를 직접 목적으로 필요하다고 인정받은 경우다.

의사들이 기구를 사용해 생체에 절단 및 절제 등의 조작을 가해야 하며, 흡인(吸引)이나 천자(穿刺) 등의 조치 및 신경 차단은 수술에서 제외한다고 정의하고 있었다.

또 입원비의 경우 피보험자가 제1형 또는 제3형 성인주요질환으로 진단이 확정되고, 그 치료를 직접적인 목적으로 4일 이상 계속 입원했을 때, 1형부터 3형까지 각각 6만원, 4만원, 2만원의 입원일당을 지급하게 돼 있었다.

그렇게 2년이 넘게 라이나생명의 해당 보험상품의 계약을 유지해 오던 A씨는 지난 2015년 초, 병원에서 갑상선 건강 검진을 받은 뒤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된다.

당시 A씨는 갑상선 좌측 중부 종괴에 대한 조직검사를 받은 결과, ‘갑상선의 악성 신생물’ 즉 갑상선암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또 A씨의 갑상선 우측 종부 종괴에 대한 세침 흡입세포검사 결과에서는 ‘기타 비독성 고이터’라는 진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갑상선종 또는 갑상선 비대증으로 불리기도 하는 비독성 고이터(Goiter)는 갑상선이 악성 종양도 없이 커지는 질병이다. 환자의 목 부위가 비정상적일 정도로 심하게 부풀어 오르게 하며, 시급한 수술이 요구된다.

이에 A씨는 곧바로 갑상선 우측 종부 종괴에 발생한 기타 비독성 고이터를 치료하기 위해, 2015년 4월부터 총 8회에 걸쳐 고주파 절제술을 받았다. 도중에 보름 간은 입원치료를 받기도 했다.

라이나생명 “고주파 절제술은 수술 아냐”… 보험금 지급 거부

A씨 측은 고주파 절제술과 입원치료를 하면서 그동안의 보험가입 내역을 살펴봤고, 지난 2012년 가입한 라이나생명의 질병 보험상품의 특약이 이번 치료에 따른 보험금 지급 사유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A씨 측은 약관 상 피보험자가 갑상선 장애를 포함하는 제2형 성인주요질환으로의 진단이 확정됐고, 치료를 목적으로 직접적인 수술을 받았기 때문에 1회 수술 당 200만원 보험금 지급의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또 보름 간 의료기간에서 의료진의 보호 및 관리 하에 정당하게 입원했기 때문에 제2형 성인주요질환 일당 4만원의 입원비 역시 지급받을 수 있었다.

이에 A씨는 총 8회에 걸쳐 고주파 절제술을 받았기 때문에 수술급여금 1600만원 그리고 보름 동안의 입원비 60만원의 보험금을 라이나생명에 청구했다.

그런데 A씨는 계좌 내 라이나생명으로부터 들어온 보험금 내역을 보고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라이나생명 측은 A씨에 입원비 60만원을 지급했지만, 수술급여금에 대해서는 청구금액과 무려 1400만원이나 차이 나는 200만원만을 지급했기 때문이다.

라이나생명 측은 A씨의 고주파 절제술이 그가 가입한 보험상품의 약관상 수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라이나생명의 보험약관에는 ‘기구를 사용해 생체에 절단 및 절제 등의 조작을 가해야 하며, 흡인이나 천자 등의 조치 및 신경 차단은 수술에서 제외한다’고 명시하고 있었다.

반면 A씨가 받은 고주파 절제술은 1㎜ 굵기의 바늘을 종양 내부에 삽입해 주파수로 그 바늘 주변에 열을 발생시켜 종양을 괴사시키는 치료방법으로 ‘전통적 외과 수술’과는 차이가 있다는 입장이었다.

때문에 라이나생명 측은 A씨가 받은 고주파 절제술은 약관 상 정의하는 수술이 아닌 시술에 불과하며, 원칙적으로 수술급여금을 지급할 의무도 없지만 200만원을 지급했다는 주장이었다.

물론 A씨 측은 이에 강력히 반발했다. 우선 제2형 성인주요질환으로 진단이 확정되고 치료를 위해 수술을 받으면, 1회당 200만원을 보험금을 지급한다는 규정은 라이나생명의 보험약관에 명시하고 있었다.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 별표 5의 제5항에 따르면 ‘기타 비독성 고이터’는 제2형 성인주요질환으로 분류하고 있고, 무엇보다도 라이나생명의 보험약관에도 이를 규정하고 있다는 입장이었다. 라이나생명 측이 고주파 절제술을 수술 행위로 정의하고 있지 않지만, 분명히 기구를 사용한 시술이었고 흡인 또는 천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주장이었다.

라이나생명과 A씨 양측은 각자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소송전에 돌입했다.

라이나생명, 6년 전 대법원 판결 내용도 몰랐나

최근 항소심까지 가서 결론이 난 이 사건에 대해 법원은 피보험자의 보험금 청구가 정당하다며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이번 판결을 내린 전주지방법원은 라이나생명 측의 주장과는 고주파 절제술을 시술이 아닌 수술 행위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우선 재판부는 라이나생명 측이 정의하는 수술의 개념이 ‘기구를 사용해 생체에 조작을 가하는 것’이라는 비교적 추상적이라고 판시했다. 이 자체부터 보험사가 마땅히 해야 할 ‘약관 내용의 명확한 해석’이라는 부분을 충족시키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의 지난 2011년 7월 28일 선고 결과에 따르면, 약관의 내용은 계약 체결자의 의사나 구체적인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평균적 고객의 이해가능성을 기준으로 객관적·획일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고객보호의 측면에서 약관 내용이 명백하지 못하거나 의심스러운 경우, 고객에게 유리하고 약관 작성자에게 불리하게 제한해석을 해야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라이나생명은 고주파 절제술이 수술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정당한 보험금 지급을 거부했다. (사진=한민철 기자)
그만큼 재판부는 라이나생명 측의 ‘기구를 사용해 생체에 조작을 가하는 것’이라는 추상적 약관 내용이 고객보호 차원에서 부족한 점이 있으며, 이 부분은 약관 작성자인 라이나생명이 아닌 고객에게 유리하게 해석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런 전제 하에 고주파 절제술이 바늘을 종양 안에 삽입해 마찰열로 종양세포를 괴사시키는 치료법이므로, 이는 ‘기구를 사용’하고 ‘생체의 조작을 가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약관 해석에 있어서 작성자 불이익의 원칙에도 부합하며, A씨가 받은 고주파 절제술은 이 사건 보험계약의 약관상 수술에 해당한다고 봄이 타당하다”라고 판결했다.

이번 법원의 판결은 복잡한 과정이 없이 간단명료하게 밝혀졌다. 그런데 고주파 절제술이 수술에 해당한다는 우리 법원의 판결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이번 라이나생명의 판결 사례와는 살짝의 차이는 있지만, 지난 2011년 8월 대법원은 고주파 절제술이 수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대전지법의 1심과 2심 재판부의 판결에 대해 파기환송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당시 대법원은 “바늘을 종양 안에 삽입한 다음 고주파 영역에서 교차하는 전류로 발생하는 마찰열로 종양세포을 괴사시키는 고주파 절제술은 넓은 의미의 수술에 포함될 여지가 충분히 있다”라고 판단했다.

이렇게 이번 사례와 유사한 대법원의 판결이 내려진지 벌써 6년여가 지났고, 이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거나 인지했어야만 했던 라이나생명의 이번 패소 사례가 소비자의 보험사에 대한 불신을 키울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A씨는 법원의 현명한 판결 덕분에 라이나생명으로부터 총 8회에 걸친 수술급여금 및 이에 대한 15%의 지연손해금까지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정당한 보험금 지급을 주장한 피보험자에게 자신들이 알고 있어야 할 고주파 절제술의 수술 포함 여부를 알지도 못해 항소심까지 끌고 간 라이나생명은 A씨를 포함한 다수의 소비자들에게 실망을 안겨줄 수밖에 없었다.

특히 아직 다수의 보험 소비자들은 고주파 절제술이 수술에 해당하는지 몰라 보험금 청구를 하지 못하거나, 이를 충분히 인지함에도 고객에게 정당한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문제의 보험사들이 남아있다는 지적이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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