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백한 사고사(死)를 질병사라니… 비닐하우스 수리 작업도 ‘농작업 재해’

NH농협생명 보험상품 가입자 A씨, 비닐하우스 수선 작업 이후 2년 만에 사망

‘농작업 재해’가 사인(?)… 농협생명 “이미 설치된 시설 수리, 신축 및 증·개축 아냐” 주장

법원 “A씨의 사망, 농작업 중 재해 사망 맞아” 판결

NH농협생명의 황당한 보험금 축소 지급 사연이 공개됐다. (사진=연합)
한민철 기자

고인 그리고 그의 가족들을 두 번 울린 NH농협생명의 황당한 보험금 축소 지급 사연이 뒤늦게 밝혀졌다.

NH농협금융지주 내 두 번째 자산규모를 자랑하는 NH농협생명은 다른 금융계열사에서도 그렇듯이, 주로 농업인들에게 특화된 상품을 개발·제공한다.

특히 농협생명은 지난 2012년 3월 농협중앙회의 공제부문에서 분할돼 설립된 계열사다. 때문에 주요 보험상품이 농협 조합의 출자금을 자본으로 하며, 가입자의 보험사고 시 공동 출자금에서 보험금을 지급하게 된다.

공제보험은 일반 보험과는 다르게 대체적으로 농협 조합원 또는 관계인으로 가입 자격이 제한돼 있다. 다만 보험료와 수수료가 상대적으로 낮은 반면, 보장금액은 높다는 장점이 있다.

이번 사건의 A씨가 가입했던 농협생명의 보험도 이런 농업인 고객에 특화된 공제형식의 보험상품이었다.

지난 2008년 경기도에 위치한 한 농업대학을 졸업한 남성 A씨는 이후 고향인 충청남도 부여로 귀경해 농사와 건설업체 현장근로자 일을 했다.

A씨는 육체노동을 주요 업무로 하다 보니 보험의 필요성을 느끼게 됐고, 지난 2011년 5월경 NH농협생명의 한 공제보험 상품에 가입했다.

A씨가 가입한 이 보험상품은 앞서 언급한 대로 농업인들에 특화된 특약이 담겨 있었다. 일반적인 사망보험금을 ‘유족위로 보험금’이라는 이름의 특약으로 설정했고, 보험금 지급사유는 ‘농작업 중 재해로 사망 시’ 그리고 ‘농작업 중 재해 이의의 재해로 사망 시’ 등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구체적으로 피공제자(피보험자)가 농작업 중 재해로 사망했다면 5000만원을, 농작업 중 재해 외의 재해로 사망했을 경우 500만원의 유족위로 보험금을 수익자에 지급한다는 특약 내용이었다.

그렇게 A씨는 농협생명의 해당 보험상품을 1년여 간 유지하던 지난 2012년 4월 낮, 평소 자신이 고추농사를 위해 관리하던 비닐하우스에 들러 하우스 내 고무바를 수선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고무바가 끊어지면서 A씨의 후두부를 강타했다.

잠깐의 충격에 쓰러진 A씨는 별다른 조치도 없이 집으로 향했고, 이후 자택에서 잠을 자던 중 새벽에 호흡 이상 및 의식소식 상태로 어머니로부터 발견됐다.

A씨의 어머니는 즉시 구급차를 불렀고, 새벽 3시경, 그는 근처 대학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

병원으로 실려 간 A씨의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당시 A씨는 응급실에서 왼쪽 측두골의 폐쇄성 골절 그리고 머리 내 열린 상처가 없는 경막위 출혈이 의심된다는 진단을 받았다.

이 상태에서 더 이상 방치된다면 생명에 지장을 받을 수 있는 상태였고, 결국 A씨는 더 큰 병원으로 옮겨져 두개감압 개두술, 쉽게 말해 두개골을 열어 뇌출혈을 제거하는 수술 등을 받았다.

이후 A씨는 요양병원으로 옮겨져 꾸준한 치료를 받았지만, 안타깝게도 서른 살 무렵인 지난 2014년 3월경 유명을 달리했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A씨에 대한 슬픔이 어느 정도 수습된 2015년 3월경, A씨가 지난 2011년 5월 가입했던 농협생명의 보험에 대한 법정상속인은 보험금 청구에 나섰다.

A씨의 자녀이자 법정상속인인 B씨 측은 A씨의 사망이 2012년 4월 낮의 비닐하우스에서 농업 관리로 인해 발생했다고 판단, 보험 특약 중 ‘농작업 중 재해로 사망 시’의 유족위로 보험금에 해당하는 5000만원을 청구했다.

그런데 농협생명 측은 A씨의 사망이 농작업 중 재해로 사망한 경우가 아니라고 판단, B씨 측에 ‘농작업 중 재해 외의 재해로 사망했을 경우’에 해당하는 500만원의 유족위로 보험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하고 이를 통지했다.

농작물 재배시설의 신축 및 증·개축 중 일어난 사고인가

5000만원의 무려 10분의 1 수준인 500만원의 보험금을 일방적으로 지급받은 B씨 측은 강력히 반발할 수밖에 없었다.

B씨 측은 A씨가 사고 당시 농작물 재배시설, 즉 비닐하우스에서 시설 신축 및 증·개축 등의 보강작업을 하고 있었고, 도중 고무바가 끊어지며 후두부를 타격받는 재해가 발생해 사망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때문에 ‘농작업 중 재해로 사망’의 경우로 볼 여지가 충분히 있다며, 농협생명이 5000만원의 유족위로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반면, NH농협생명은 농작물 재배시설의 신축 및 증·개축 등의 작업 도중 발생할 재해에 대해 B씨 측과는 다른 해석을 내놨다.

농협생명 측은 아예 새롭게 시설을 설치하는 것이 아닌, 이미 설치돼 있던 비닐하우스의 보수 또는 수리만으로 농작물 재배시설의 신축 및 증·개축으로는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A씨가 이미 설치돼 있던 비닐하우스의 끈을 고정하는 행위를 하는 도중 사고를 입은 것으로, 마치 그가 비닐하우스 신축 및 증·개축 등의 설치작업을 하는 도중 고무바에 머리를 맞았다는 식으로 사실관계가 왜곡된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농협생명 측은 A씨가 의료기관에 이송된 이후 그의 상태에 대해 기록된 부분에 대해 주목했다.

농협생명 측은 “(A씨의) 구급활동일지에 사고발생 유형이 사고 ‘부상’이 아닌 ‘질병’이었고, 진료 기록부에서 A씨의 사고 그리고 B씨 측이 주장하는 비닐하우스 작업과의 관련성이 확인되지 않는다”라며 “더구나 (A씨의) 사망진단서에는 직접 사인이 (재해가 아닌) 질병에 의한 사망인 ‘악액질(惡液質)’로 명시돼 있었다”라고 밝혔다.

B씨 측과 농협생명은 절대로 서로의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A씨가 사고 당일 비닐하우스에서 하우스 내 고무바를 수선하는 등의 행위가 과연 농작물 재배시설의 신축 및 증·개축으로 볼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양측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는 상황에서 결국 법원의 몫으로 판단이 넘어가게 됐다.

농협생명, A씨의 사망원인이 명백한 재해인데 질병이라니…

지난해 1월경 서울서부지방법원에 접수된 이번 사건은 항소심까지 이르는 치열한 법정공방 끝에 최근 B씨 측이 일부 승소했다.

B씨 측은 1심과 항소심 재판부 모두에서 사실상 승소했다. 사실 1심 재판부의 판단은 아주 간단했다.

농협생명의 주장처럼 이미 설치돼 있던 비닐하우스에 대한 보수 작업이 농작물 재배시설의 신축 및 증·개축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해석할만한 구체적인 근거가 없다는 설명이었다.

때문에 A씨가 비닐하우스에서 시설과 관련된 작업을 하고 있던 중 재해를 당해 사망에 이른 것을 명백하므로, 이를 ‘농작업 중 재해로 사망’의 경우로 봐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의외로 싱겁게 결론이 난 1심 재판부의 판결에 대해 농협생명은 이의를 제기, 더욱 법적증거를 보강해 항소심에 임했지만 오히려 역효과를 낳았다.

이 사건의 항소심 재판을 담당했던 서울서부지방법원은 원심과 같은 판결을 유지하면서, 농협생명 측의 항소를 기각했다.

항소심 재판에서는 A씨의 사고 당시 그와 같이 비닐하우스 일을 하고 있던 C씨가 증인으로 채택돼 증인신문이 이뤄졌다.

항소심 재판 내용 및 C씨의 구체적인 법정증언에 따르면, A씨의 사고 당시 상황 및 의료기관으로 옮겨진 이후의 사실은 농협생명이 기존에 판단하고 있던 것과는 다른 부분이 상당했다. 앞서 언급한 대로 농협생명 측은 A씨의 사고 이후 구급활동일지에 사고발생 유형이 ‘질병’으로 비닐하우스 작업과의 연관성이 확인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쉽게 말해, A씨가 새벽에 의식장애 상태로 발견된 것에 대한 주요 원인이 재해가 아닌 원래부터 앓고 있었거나 갑자기 생긴 질병이었다는 설명이었다.

때문에 ‘농작업 중 재해로 사망’이라는 특약 내용에 있어서, 농작업이라는 부분도 인정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재해 역시 아니었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A씨가 사고로 이송된 당일 새벽에 작성된 구급활동일지에는 그의 증상에 대해 ‘통증’, ‘외상’, ‘의식장애’ 등의 내용이 기재돼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송된 인근 대학병원에서 ‘왼쪽 측두골의 폐쇄성 골절 및 머리 내 열린 상처가 없는 경막위 출혈이 추정된다’라는 진단을 받았다.

이에 A씨가 사고 당시 질병이 아닌 골절 및 출혈이 발생할 정도의 상당한 충격을 받아 외상을 입었을 가능성이 더 높다는 판단이었다.

특히 A씨의 사고 당시 같이 비닐하우스에서 작업을 하고 있던 C씨는 이 사건 항소심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해 “A씨가 비닐하우스에 기존에 설치돼 있던 고무바를 잡아당겨 강하게 조이는 작업을 했다”라며 “A씨가 고무바가 끊어져 넘어지자 머리에 조금 혹이 나왔는데, (혹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괜찮다’라고 했다”라고 증언한 것으로 나타났다.

재판부는 이런 C씨의 증언이 “(A씨가) 사고 당일 오후에 비닐하우스 고무바를 수선하던 중 고무바가 끊어지면서 머리를 맞았고, 줄이 끊어져 넘어졌다고 말했다”라는 A씨 어머니의 진술과 일치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뜬금없는 ‘질병’ 의혹 제기한 농협생명 주장, 받아들이지 않은 법원

이 사건 항소심 재판부는 앞서 언급했듯이 농협생명 측이 제기한 A씨의 ‘질병’ 등의 주장에 대해서도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사고 무렵 A씨의 나이는 20대 후반에 불과했고, 당시 그는 농사일을 하거나 건설현장에서 일용직으로 근무하면서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라며 “A씨가 그의 어머니로부터 의식불명 상태로 발견되기 전까지 그에게 별다른 기왕증, 그리고 농작업 외의 다른 원인으로 머리에 골절과 출혈이 발생할 정도의 질병·외상을 입었던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심지어 B씨 측이 A씨에 대해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신청한 사실조회 회신결과에 따르면, 그는 사고 이전에 머리의 외상이나 뇌출혈 등과 관련된 진료를 받은 내역이 전혀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오히려 A씨는 사고로 대학병원에서 응급수술을 받은 직후 ‘뇌압조절 실패 시 사망가능성 높음’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이후 사망 시 뇌출혈 후유증, 기타 마비성 증상이 원인이 된 악액질이 직접 사인으로 밝혀졌다.

때문에 A씨가 기존부터 앓아온 질병 등이 아닌, 사고 당일 비닐하우스의 고무바를 수선하는 작업을 하는 중 머리를 다쳐 사망에 이른 것이 분명하다는 판단이었다.

이어 재판부는 이 사건의 최대 쟁점인 A씨의 사고 당시 비닐하우스 작업이 농작물 재배시설의 신축 및 증·개축에 포함되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명쾌한 해석을 내려줬다.

결론적으로 재판부는 A씨의 당시 행위가 농업을 목적으로 하는 작업이었고, 농작물 재배시설과 농작물 보관창고 및 축사의 신축 그리고 증·개축 등에 해당하는 경우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비닐하우스 고무바를 수선하는 작업이 농업을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 농작물 재배시설의 신축 및 증·개축 등의 작업에 해당하는지 바라보면, 고추농업을 하는 비닐하우스를 수선하는 작업은 농업을 목적으로 하는 작업에 해당한다”라며 “원래 비닐하우스는 농작물 재배시설이며, 보험약관 상 ‘신축 및 증·개축 등’이라고 규정한 것은 농작물 재배시설의 신축이나 증축, 개축에 작업을 한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당시 A씨의 비닐하우스 수선 작업을 농작물 재배시설이 본래의 기능을 다할 수 있도록 돕는 행위로서, 농협생명의 주장과는 전혀 다르게 A씨의 작업을 신축 및 증·개축 등에 포함시키지 않아야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의미였다.

특히 농협생명은 해당 보험약관에서 농작업에 포함되지 않는 경우를 별도로 규정했는데, 비닐하우스 또는 농작물 재배시설을 수선하는 작업은 농작업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별도로 명시하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지난 2011년 7월 28일 대법원이 선고한 판결내용(2011다30147 등)처럼 약관의 내용이 명백하지 못할 때는 고객에게 유리하게 해석해야 하는 만큼, 비닐하우스 보수작업도 약관 상 농작업에 포함해야 하는 것이 옳았다.

결국 농협생명은 항소심에서도 법원의 패소판결을 받아들여야 했다. 농협생명 측은 B씨 측에 지급한 500만원을 제외한 채, 5000만원의 유족위로금에서 나머지 4500만원 그리고 지연손해금까지 물게 됐다.

서기봉 NH농협생명 대표이사 사장. (사진=NH농협생명 제공,연합)
이번 사례는 A씨의 사고 및 의료기관으로에 이송 당시 상황에 대한 농협생명의 부족한 판단이 일을 키웠다는 점에 있어서 소비자들의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특히 아무리 농협생명의 보험상품이 가입자가 납부해야 할 보험료와 수수료가 낮고 보험료 대비 보장액이 높다는 장점이 있더라도, 이런 분쟁에서의 아쉬운 판단이 소비자, 아니 우리 농민들에게 ‘지나친 압박’이라는 부정적 인식을 키울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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