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 계열사 물갈이 시작…이경섭 농협은행장 ‘연임 덫’, 서기봉 농협생명대표 ‘먹구름’

행장 연임 전례 없어 교체 가능성 높아…오병관·이창호 거론

서기봉 농협생명, 실적 저조ㆍ국감 지적에 연임 어려울 듯

NH농협손보, 손보사 유일 실적 감소…이윤배 대표 거취는?

김용환 농협금융지주 회장, 검찰 수사로 남은 임기 못 채우나

농협금융 계열사 CEO들의 인사이동이 본격 시작됐다. 이경섭 NH농협은행장의 임기가 다음달 31일 만료되면서 농협금융지주가 차기 은행장 인선에 돌입한 것이다. 여기에 올해 초 취임한 서기봉 NH농협생명 대표와 고태순 NH캐피탈 대표도 내달 임기 1년 만료를 앞두고 있다. 이윤보 NH손해보험 대표은 내년 1월말 임기가 종료될 예정이라 농협금융지주는 농협은행장을 포함한 4곳의 CEO 선임 절차에 들어갔다. 계열사 4개사의 수장들이 한꺼번에 교체될 가능성도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농협금융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는 지난 20일 서울 서대문 본사에서 첫 회의를 갖고 자회사 4곳(농협은행·농협생명·농협손해보험·농협캐피탈)의 CEO 선임 작업에 착수했다. 임추위는 지난 24일 2차 회의부터 140여 명의 후임 농협은행장 인사 풀(pool) 가운데 적격자를 심사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27일 3차 회의에서는 최종 후보군을 확정할 방침이다.

농협금융 임추위는 민상기 서울대 명예교수를 위원장으로 전홍렬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 정병욱 변호사 등 3명의 사외이사와 오병관 농협금융 부사장, 유남영 비상임이사(정읍농협 조합장) 등 2명의 사내이사로 구성돼 있다. 다만 오병관 농협금융 부사장이 후보군으로 포함됨에 따라 향후 임추위에는 오 부사장을 제외한 4명의 이사만 참여한다. 이들 임추위원은 차기 은행장 후보들 가운데 1명을 최종 추천하고 이를 100% 지분을 보유한 농협중앙회에 보고해 최종 선임한다.

NH농협금융은 3분기까지 누적으로 7000억 원 이상의 순이익을 기록하며 올해 연간 목표인 6500억 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상반기 조선·해운업 부실을 한 번에 털어내는 빅배스(Big bath·대규모 손실처리)를 단행해 2013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으나, 하반기 흑자전환에 성공한 이후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실적을 따져보면 계열사 간 희비가 엇갈린다. 순이익 초과 달성의 견인차는 농협은행이다. 농협은행이 3분기 누적 당기순이익 5160억 원을 달성했지만 타 은행 계열사의 실적은 감소했다. 비은행 계열사인 NH투자증권의 비이자이익이 성장해 목표를 초과한 것일 뿐이다. 실적이 저조한 생명, 손해보험의 계열사 대표는 거취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농협은행의 수장인 이경섭 행장은 역대 최대 실적에도 불구하고 연임 전례가 없어 교체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상태다.

이경섭 농협은행장, 역대급 실적 기록…연임 전례 없어

이경섭 농협은행장의 취임 첫 해 실적은 좋지 않았다. 2016년 6월 반기 결산에서 마이너스(-) 3495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고, 9월 결산에서는 당기순이익 적자폭을 줄였지만 여전히 마이너스(-) 618억 원으로 2분기 연속 적자라는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이에 이 행장은 같은 해 10월 사의를 표명하기도 했다. 이 행장은 살아남았지만 부행장 11명 가운데 9명이 교체되는 등 농협은행은 시련의 연말을 보냈다.

올해 실적은 상전벽해 수준으로 개선됐다. 농협은행은 올해 상반기 기준 영업이익 6371억 원, 당기순이익 3600억 원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 2012년 은행 출범이후 사상 최대 반기 실적이다. 빅배스(대규모 부실채권정리)를 실시하는 등 체질 개선이 성공적으로 이뤄진 덕분이다. 이 행장은 한 때 8조 원에 달했던 조선·해운업 위험 노출액(익스포저)을 3조원 까지 줄였다. 3분기 누적 당기순이익은 5160억 원으로 당초 목표 순이익 4750억 원을 3분기 만에 달성했다. 농협은행은 출범 이후 경영목표를 달성한 사례가 없었다. 은행 측은 연말까지 5700억 원을 달성하겠다는 입장이다.

올해 성적표를 자세히 살펴보면 이자이익은 3조3727억 원으로 전년 상반기 대비 8.4% 증가했고 수수료 수익은 4424억 원으로 7.4% 늘었다. 대출자산과 예수금은 각각 207조2000억 원과 201조원을 기록했다. 고정이하여신비율은 1.12%(추정치), 충당금적립율은 70.04%로 전년 말 대비 각각 0.24%p, 13.11%p 개선됐다. 순이자마진(NIM)은 1.77%로 전년말 대비 0.04%p 개선됐다. 고정이하여신비율, 대손충당금 적립률, 여신 연체율, 순이자마진(NIM) 등 대부분의 지표가 지난해 말 대비 개선됐다. 특히 여신연체율은 0.52%로 역대 최저 수준이다.

실적 개선 덕분에 농협은행은 지난 7월 금융소비자연맹이 발표한 ‘2017년 좋은 은행’ 순위에서 전년보다 6단계 상승한 종합순위 5위를 달성하기도 했다.

이 행장은 지난 3분기 실적을 평가하는 자리에서 “지난해까지의 역경을 딛고 더욱 건강하고 튼튼한 은행으로 거듭나고 있다”며 “2020년에는 국내 3대 은행으로 도약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지난해 말 대비 300% 이상 증가한 놀라운 경영 성과에 힘입어 이 행장의 연임을 예상하는 목소리가 있다. 하지만 2012년 농협의 신경분리(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의 분리) 이후 농협은행장의 연임 사례가 없다는 점에서 교체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김용환 농협금융지주 회장은 최근 한 언론인터뷰에서 “지난 2년 반 동안 리스크 관리시스템 등 제도적 측면은 충분히 강화했다고 본다”며 “차기 행장으로 오는 사람은 이제 글로벌과 영업을 통한 수익성 확장 등 좀 더 적극적이고 크게 볼 수 있는 인물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밝혔다. 행장 교체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는 발언이다.

오병관·이창호 등 행장 후보군 급부상 중

유력한 행장 후보 중 한 명은 오병관 농협금융지주 부사장이다. 1986년 농협중앙회에 입사한 오 부사장은 지점장, 금융구조개편부장, 농협금융 기획실장 등 요직을 두루 경험했다. 김주하 전 행장과 이경섭 현 행장이 모두 농협금융지주 부사장을 거쳤다는 점에서 오 부사장의 행장 선임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오 부사장은 단일 최대주주인 농협중앙회의 김병원 회장과 친분이 돈독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박규희 농협은행 부행장도 후보자로 거론된다. 1986년 농협중앙회에 입사해 오 부사장과는 입사 동기인 박 부행장은 농협대를 졸업하고 안동대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농협은행에서 기업고객 부장과 경북영업본부장을 역임한 뒤 2016년 부행장으로 승진했다. 지난해 말 김형열 부행장과 함께 유이하게 유임된 부행장으로 기업금융 전문가로 꼽힌다. 그는 여신심사본부 부행장을 맡아 농협은행 부실을 줄이는데 기여했고 올해는 기업투자금융 부행장으로 농협은행의 약점으로 꼽히는 기업금융을 확대하는데 공을 세웠다. 특히 최근에는 마케팅부문장까지 겸임하면서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최근 정치권과 인연이 있는 인사들이 금융권 수장으로 속속 자리를 잡으면서 현 정권과 관련 있는 인사들도 언급되고 있다. 그 가운데 한 명은 이창호 농협 부산지역본부장이다. 1987년 농협중앙회에 들어온 이 본부장은 참여정부 시절인 2005년 농어촌비서관실 행정관으로 청와대 파견을 나간 이력이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노무현 정부와의 인연 덕분에 언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금융지주보다는 중앙회 내부에서 거론되고 있는 후보인 듯하다”고 말했다.

김병원 중앙회장의 의중도 관심이다. 농협금융지주는 “신경분리 이후 농협중앙회는 농협금융지주 인사에 관여하지 않고 있다”고 밝히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중앙회장의 영향력은 여전하다는 평가다. 때마침 김 회장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유남영 비상임이사(정읍농협 조합장)이 임추위에 합류하면서 유 이사가 김 회장의 뜻을 위원들에게 전달할 것으로 예상하는 시각이 우세하다.

농협금융 관계자는 “현직 조합장이기 때문에 중앙회장과의 가교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도 “하지만 사외이사가 다수인 3명을 차지하기 때문에 객관성과 공정성은 최대한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서기봉 농협생명 대표, 연이은 실적 저조에 교체 가닥

올해 초 취임한 서기봉 NH농협생명 대표는 내달 임기 1년 만료를 앞두고 있다. 농협금융지주가 ‘자회사 CEO 임기 2년’이라는 전통을 깨고 지난해 인사부터 임기를 1년으로 단축했기 때문이다. 1년 후 성과에 따라 재신임을 물어 성과 중심주의를 도입하겠다는 취지였다.

서기봉 대표의 연임은 현재 불투명한 상황이다. 실적이 업계 평균에 미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협생명의 3분기 당기순이익은 951억원(농업지원사업비 부담 전 1123억원)으로 지난해보다 17.7% 감소했다. NH농협생명의 영업이익 증가율은 업계 평균보다 0.99%p, 당기순이익은 25.95%p 낮은 상태다.

농협생명의 자산 규모는 삼성생명(253조3426억 원), 한화생명(108조7706억 원), 교보생명(94조0469억 원)에 이어 4번째로 큰 규모다. 그러나 당기순이익는 업계 11위로 지난 1분기(업계 10위)보다 1단계 하락한 상태다. 자산규모 업계 23위인 라이나생명(자산규모 4조678억)의 당기순이익(1363억 원)보다도 적다.

농협생명은 지난 국감에서도 논란의 대상이 됐다. 농협생명이 취급하는 농업인안전재해보험이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농업인안전재해보험은 농작업 중 발생하는 농어업인과 농어업근로자의 부상·질병·장해 또는 사망을 보상하는 보험상품으로 산업재해보험 가입 대상에서 제외된 농어업인을 보호하고 생활안정 및 사회안전망 제공차원에서 개발된 상품이다. 그러나 농업인안전재해보험의 영업이익율이 지나치게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10월 김종회 국민의당 의원은 “농협생명보험이 취급하는 전체 보험의 영업이익률이 1%대인 반면, 농업인안전재해보험 영업이익률은 지난해 19.27%나 된다”면서 “사회안전망 제공이라는 목적에 배치되는 것으로 폭리를 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에 따르면 농협생명보험의 전체 영업이익률은 2012년 1.18%, 2016년 1.31% 등 1%대다. 반면, 농업인안전재해보험 영업이익률은 2012년 5.83%에서 2015년 6%대로 뛰었고, 지난해는 19.27%까지 급상승 했다. 최근 5년4개월 동안 최고 15배 많은 폭리를 취한 셈이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금은 39억 원에서 4배가 넘는 159억 원으로 늘어났다. 이 보험은 매출액(보험료)의 50%가 국고로 지원된다는 점에서 농협생명 전체 영업이익률과 같은 수준이었을 때 지난 5년4개월 동안 333억 원 절감되는 셈이다.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는 서기봉 대표의 선임이 애초부터 잘못됐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서 대표 내정 당시 그가 농협은행에서만 일했고 보험 관련 경력이 없어 보험업에 관련된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 바 있다. 낙하산 인사가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왔다. 서 대표는 전남 구례 출신으로 농협중앙회 광주금융사업부 부본부장도 맡아 전남 나주 출신인 김병원 농협중앙회장과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당시 농협금융 측은 “서 대표는 신경분리 이전에 은행 지점에서 일하면서 보험업무도 일부 취급했기 때문에 보험 관련 전문성이 아예 없다고 볼 수는 없다”고 해명한 바 있다.

NH손보 실적 하락…이윤배 대표 연임 가능성 반반

손해보험 업계는 자동차·실손보험료 인상 등으로 올해 실적이 크게 개선됐다. 내년 3월 임기가 만료되는 양종희 KB손해보험 대표, 박윤식 한화손해보험 대표, 김현수 롯데손해보험 대표, 김정남 DB손해보험 대표, 김용범 메리츠화재 대표 등 5명의 손보사 CEO들은 취임 첫해보다 크게 개선된 영업 실적을 내놓은 상태다. 사상최대 실적을 기대하고 있는 손보업계 CEO들의 호실적은 연임에 청신호로 작용될 것으로 보인다.

이윤배 NH농협손보 대표의 상황은 다르다. 유일하게 실적이 줄어든 것이다. NH농협손보는 올해 3분기 영업이익 232억 원, 당기순이익 167억 원을 기록하면서 이 대표가 취임했던 2016년보다 영업실적이 각각 20.8%, 22.7%씩 감소했다. 성과중심주의를 내세운 농협금융이 이 같은 성적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이목이 집중되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올해 실적이 다소 줄었으나 정책성보험에서 손해율이 일시적으로 높아진 결과”라는 분석도 내놓아 연임을 예상하는 목소리도 있다.

NH농협캐피탈은 올해 3분기 누적기준 376억 원의 영업이익과 285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기대비 각각 27.0%, 25.6% 증가한 수치다. 올해 초 CEO로 선임되면서 1년 임기를 부여받은 고태순 대표의 연임이 예상된다. 다만 김병원 중앙회장과 같은 전남 출신인 고 대표의 농협은행장 선임 전망도 조심스럽게 나오는 터라 상황이 급변할 가능성도 있다.

김용환 금융지주 회장, 거취에도 관심 쏠려

올 4월, 1년 연임에 성공한 김용환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의 조기 낙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김 회장은 금융감독원 채용비리 사태에 휘말려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금감원에 지인 자녀의 필기시험 합격을 청탁한 인물로 지목됐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금감원 수석부원장 출신으로 지인을 통해 인사 청탁에 나선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은 지난달 25일 중구 농협금융지주 본점의 김 회장 집무실과 자택, 수출입은행 본사 등 8곳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하는 등 수사의 속도를 높이고 있다.

2015년 4월 농협금융 회장으로 취임한 김 회장은 처음으로 임기를 다 채웠을 뿐아니라 최초로 연임에 성공했다. 탁월한 위기관리능력과 경영능력을 높이 평가받았다.

검찰 수사에 대해 농협금융지주는 “회사 관련 채용 의혹이 아니라서 따로 입장을 낼 것은 없지만 김 회장이 그동안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고 적극적으로 부인을 해온 입장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검찰 수사가 계속 이어질 경우 오래 버티기 어려울 것”이라며 “남은 약 5개월 임기를 앞두고 불명예 퇴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허인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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