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안 내고, 보험계약 많으면 보험사기(?)… 소비자 상처 준 판단

보험사-보험소비자 사이 민법 제103조 근거한 소송 자주 일어나

겉으로 드러난 부분만 봤을 때 보험사기 의심됐던 보험소비자들

롯데손보, 보험계약 체결 경위·보험료 연체 여부 등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나

정당한 보험금을 지급받은 보험소비자를 보험사기로 간주해 소송을 제기했지만, 두 차례나 연이어 패소한 롯데손해보험의 사례가 밝혀졌다. (사진=한민철 기자)
한민철 기자

롯데손해보험이 정당한 보험금을 지급받은 보험소비자를 보험사기로 간주해 소송을 제기했지만, 연이어 법정패소한 사례가 밝혀졌다.

대한민국 민법 제103조 ‘반사회질서의 법률행위’는 법률행위의 목적인 권리의무의 내용이 선량한 풍속 및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되고, 그 행위를 받아들인다면 사회질서에 큰 위해를 가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무효로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해당 법률은 보험사와 보험소비자 간 분쟁에서도 자주 거론된다. 보험소비자가 자신의 경제적 여력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보험상품에 가입했거나, 가벼운 상해를 입었음에도 장기간 병원에 입원한 뒤 고액의 보험금을 요구하는 등 보험금 부정 취득이 의심된다면, 보험사는 민법 제103조에 근거해 소송을 제기하기도 한다.

앞서 언급한 보험금 부정 취득이 의심되는 사례는 흔히 ‘보험사기’로 밝혀지고 있다. 우리 사법부는 이런 보험사기를 저지른 이들에게 보험금이 지급된다면, 사행심을 조장함으로써 사회적 상당성을 일탈하게 될 뿐만 아니라, 합리적 위험의 분산이라는 보험제도의 근간을 해친다고 바라보고 있다.

무엇보다 이들의 이런 행위로 다수의 선량한 보험소비자들의 희생이 초래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보험계약을 민법 제103조에 따라 선량한 풍속 및 기타 사회질서에 반하므로 무효라고 판결하고 있다.

때문에 보험사는 법원 판결로 보험사기를 저지른 것으로 밝혀진 보험소비자에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거나 이미 지급한 보험금을 부당이득금으로 반환받을 수 있다. 또 보험사는 해당 보험소비자에 보험계약 해지까지 통보할 수 있다.

최근 날이 갈수록 지능화돼 가고 있는 보험사기에 법원은 절대 관대한 판결을 내리지 않고 있다. 확증 또는 직접적 증거가 없더라도 정황상 보험금 부정 취득이 의심된다면, 이를 보험사기로 판단하고 있다.

실제로 대법원은 지난 2005년 7월 28일 판결(사건번호 2005다23858)에서 “보험계약자가 보험금을 부정 취득할 목적으로 다수의 보험계약을 체결했는지 관해 이를 직접적으로 인정할 증거가 없더라도 보험계약자의 직업 및 재산상태, 다수의 보험계약 체결 경위, 보험계약의 규모, 보험계약 체결 후의 정황 등 제반 사정에 기해 그와 같은 목적(보험사기)을 추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런 법원의 엄격한 잣대에 민법 제103조가 보험사에만 유리하게 해석된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이에 법원은 아무리 보험사기에 대한 판단에 정황상 근거를 중요시한다고 할지라도, 보험소비자가 보험계약을 체결하기까지 보다 세밀한 부분을 종합한 뒤 민법 제103조 위반 및 보험사기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

이는 보험소비자가 단순히 여러 건의 보험계약을 체결하고 있거나, 보험료를 납부할 수준의 경제적 사정 또는 직업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보험사기로 볼 수는 없다는 의미다.

그 보험소비자가 가입한 보험상품들의 유사성 그리고 보험료 연체 이력 여부, 그에게 보험료를 대납할 수 있는 친족들의 경제적 사정 등 여러 제반 사정을 신중히 따져봐야 한다.

물론 일부 보험사들은 이 부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보험소비자의 행위를 보험사기로 몰아 무리한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도 있다.

만약 법원이 보험사에게 패소 판결을 내린다면, 이들 보험사들은 무고한 보험소비자를 보험사기범으로 취급한 ‘갑질’ 또는 보험금 지급을 회피하려는 ‘꼼수’라는 비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최근 법원 판결을 통해 밝혀진 롯데손해보험(이하 롯데손보)의 사례가 그랬다. 롯데손보는 지난해 자사 보험가입자에 민법 제103조 등을 근거로 기존에 지급한 보험금 반환 및 이들과의 보험계약 무효 등에 관한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법원은 이 사건 보험가입자의 보험계약이 보험금을 부정하게 취득할 목적의 반사회적 질서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며 롯데손보의 패소 판결을 내렸다.

법원 “가입 보험건수 중요한 것 아냐”… 주목할 부분은 ‘보험료 연체 이력’

롯데손보와 법적분쟁을 벌였던 이는 광주광역시에 거주하던 A씨 등이었다. A씨는 지난 2010년경 계약자와 피보험자를 자신으로 하는 롯데손보의 한 보험상품에 가입했다.

이는 상해 및 질병 입원비와 간병비 등을 보장하는 장기 보험상품 중 하나였다. A씨는 가입 후 얼마 뒤 해당 보험계약 상 계약자를 자신에서 형제인 B씨 명의로 변경했다.

보험가입 약 4개월 후 A씨는 병원에서 어깨 염좌 등 상해 진단을 받고 보름 넘게 입원치료를 받았다. 이후 지난 해 1월까지 급성위궤양과 손 골절, 근막통증증후근 등 각종 상해 및 질병으로 약 25회에 걸쳐 460여 일이나 병원에 입원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A씨는 롯데손보에 가입했던 보험상품의 상해 및 질병 입원비 등 특약에 따라 2500여만원의 보험금을 지급받을 수 있었다. 또 그는 당시 가입을 유지 중이던 다른 보험사의 보험계약을 통해서도 6000여만원의 보험금을 타냈다.

그런데 향후 밝혀진 바에 따르면, A씨와 B씨는 롯데손보의 보험가입 이전부터 수년 동안 과세관청에 재산세와 소득세를 신고·납부한 적이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A씨의 직업은 일용직 근로자로 한해 약 1000만원에서 3000만원까지 그리고 B씨는 사업소득으로 한해 약 3000만원에서 8000만원까지 수입금을 다양하게 신고했다.

이에 롯데손보 측은 A씨에 대한 기존 보험금 지급건고 관련해 의문을 제기했다. A씨의 세금 납부 이력과 함께 그가 자사 보험계약을 비롯해 이와 보장내용 등이 유사한 타사의 보험상품에 다수 가입돼 있다는 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특히 롯데손보 측은 A씨 등이 재산상태에 비춰 매월 납입해야 할 보험료가 과다했고, 객관적으로 입원치료가 필요한 상해나 질환이 아니었음에도 장기간 입원하며 상당한 액수의 보험금을 수령한 점을 지적했다.

이에 A씨가 롯데손보로부터 보험금을 지급받은 행위는 민법 제103조에 따라 선량한 풍속 및 기타 사회질서에 반해 무효이기 때문에, 해당 보험금은 부당이득이며 롯데손보 측에 이를 반환해야 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사실 겉으로 드러난 부분만을 봤을 때 A씨의 입원치료는 ‘과다하다’는 판단이 나오기 충분했다.

무엇보다 A씨의 납세 이력이 불명확하며 재산상태도 일정치 않았음에도, 다수의 보험상품에 가입된 점 그리고 그가 당시 가입 중이던 보험상품들의 보장내용이 유사했다면 부당한 보험금 취득이 의심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사건을 담당한 재판부는 롯데손보 측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우선 재판부가 향후 파악한 사실에 따르면, 롯데손보의 주장 중 잘못된 부분이 있었다. 롯데손보 측은 A씨가 당시 자사 보험상품을 비롯해 가입을 유지 중이던 다른 상품들의 보장내용이 유사하다고 밝혔다.

당시 A씨가 가입한 롯데손보의 보험상품에는 상해 및 질병 입원일당 등의 특약을 담고 있었지만, 그가 동시에 가입 중이던 다른 보험상품에는 운전자보험과 기타 상해보험 등 다양한 보장내역이 실려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재판부가 집중한 부분은 A씨가 소득세 및 재산세 신고·납부 이력이 없었고 동시에 4건의 보험계약을 유지 중이었던 점과는 관계없이, 그가 매월 납부하던 총 보험료가 재산상태에 비춰 과연 지나쳤냐는 것이었다.

재판부가 확인한 A씨를 피보험자로 하는 보험계약들의 매월 총 납입 보험료는 약 30만원이었다. 이중 롯데손보에 대한 보험료는 월 5만원에 불과했다.

A씨가 매월 수입이 고정치 않았기 때문에 월 30만원의 보험료 역시 과다하다고 생각할 여지도 있지만, 롯데손보 측은 한 가지를 간과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바로 A씨의 ‘보험료 연체 이력’이었다. 재판부는 그의 보험료 연체 이력이 ‘전혀 없다’는 점을 근거로, A씨가 재산상태와 보험계약 건수에 비해 과다한 보험료를 지출하고 있다고 의심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특히 재판부는 A씨가 롯데손보의 보험계약에 이르기까지 어떤 경위가 있었는지를 살펴봤다.

만약 A씨가 보험사기를 의도해 계약을 하게 됐다면, 누군가의 권유나 강요가 아닌 제발로 보험가입을 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데 A씨는 당시 롯데손보의 설계사였던 친척의 요청으로 이 사건 보험상품에 가입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만큼 스스로가 이 사건 보험가입에 적극적인 태도였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보험사기를 의도한 가입이라는 의심에 대한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었다.

무엇보다 A씨가 일용직 근로자로서 향후 상해와 질병의 우려가 높았던 만큼, 그가 가입한 롯데손보 보험상품의 상해 및 질병 입원비 등과 관련된 특약 내용은 가입의 필요성이 있었다는 판단이었다.

재판부는 “A씨가 입원 횟수가 잦고 기간도 길어, 증상을 다소 과장해 적정 입원기간을 넘어 입원치료를 받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라며 “A씨는 입원치료의 사유 및 병명 등에 관한 의료기관의 입원확인서 등을 첨부해 보험금을 청구했고, 롯데손보도 이를 바탕으로 독자적인 심사를 거쳐 보험금을 지급한 것인 만큼, A씨가 별다른 질병이 없음에도 허위로 입원했다거나 그 입원기간이 과다했다고 볼 수 있는 객관적인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롯데손보 측도 A씨로부터 제출받은 증빙자료를 토대로 보험금 지급이 타당하다고 판단해 지급이 이뤄진 것인 만큼, A씨의 보험계약과 보험금 청구 및 수령 행위가 민법 제103조에 따라 사회질서에 반한다고 볼 수 없다는 설명이었다.

같은 달·같은 지법·유사한 소송건에서 또 패소한 롯데손보

롯데손보는 A씨 측과의 소송에서 패소 판결을 받은 뒤 약 일주일 뒤, A씨와 소송건을 진행한 같은 지법 그리고 그와 유사한 사건에서 또 패소 판결을 받았다.

다른 사례의 당사자인 C씨는 지난 2009년 말, 롯데손보의 장기 보험상품에 가입했다. 이 상품은 앞선 A씨의 사례와 같이 상해 및 질병 입원비 등을 주요 보장 내용으로 하고 있었다.

C씨는 해당 보험상품에 가입하면서 피보험자와 사망 외 수익자를 자신의 가족인 D씨 명의로 설정했다.

해당 보험계약이 체결된 후 2년이 지난 2011년 12월경, D씨는 요추 염좌로 병원에 입원한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 1월까지 기억상실증과 위염, 두통 등의 질병으로 약 40차례에 걸쳐 570여일이나 병원 입원치료를 받았다.

당시 D씨는 다른 보험사들 두 곳에서도 롯데손보에 가입했던 보험상품과 유사한 보장성 보험계약을 유지 중이었다.

이에 D씨는 입원치료로 인해 이들 보험사들로부터 8000여만원의 보험금을 지급받았고, 이중 롯데손보가 지급한 보험금은 약 4000만원으로 비중이 높았다.

그런데 당시 D씨는 최초 입원치료를 받았던 2011년 연 소득액이 10여만원에 불과했고, 다음해에는 5만원 가량으로 사실상 무소득자에 가까웠다. 특히 D씨는 수년째 소득신고 및 재산세 납부 사실이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롯데손보 측은 기존에 D씨에 지급한 보험금에 대한 이의를 제기했다. A씨의 사례와 같이 D씨가 롯데손보 보험계약을 비롯해 이와 보장내용 등이 유사한 다른 두 건의 보험계약을 체결한 상태였고, D씨의 월 납입 보험료가 그의 재산 상태에 비춰 과다했다는 판단이었다.

무엇보다 객관적으로 입원치료가 필요한 질환이 아니었음에도 장기간 입원치료를 받아 과다한 보험금을 수령, 이 행위는 민법 제103조에 따라 무효이기 때문에 보험금을 반환해야 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김현수 롯데손해보험 대표. (사진=롯데손보)
그러나 법원은 이번에도 롯데손보 측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D씨의 세금 납부 내역과는 상관없이 역시 보험료를 연체없이 정상적으로 납부해 왔기 때문에, 그에게 보험료 지급 여력이 없었다고 보기 힘들다는 판단이었다.

무엇보다 D씨가 당시 무소득자에 가까웠던 것은 사실이지만, D씨 그리고 C씨 서로가 각각 자신들의 명의의 부동산을 매수해 소유해 오고 있던 만큼, 꾸준하고 일정한 수입은 없더라도 보험료를 납부할 경제적 여력이 되지 않음에도 보험사기를 목적으로 보험에 과다하게 가입했다고 볼 수 없다는 설명이었다.

이 사건의 담당했던 재판부는 “D씨가 피보험자인 보장성 보험은 롯데손보와의 보험계약 체결 무렵 두 건에 불과하고, 롯데손보와의 보험계약 체결 이후 다른 보험계약을 체결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적 간격이 있었다”라며 “롯데손보와의 보험계약이 체결되고 약 2년이 경과한 후 처음으로 질병을 원인으로 입원치료를 받은 점을 비춰볼 때, C씨와 D씨가 보험금을 부정하게 취득할 목적으로 롯데손보와 보험계약을 체결했다고 평가하기 어렵다”라고 밝혔다.

결국 롯데손보 측은 패소했지만, 정당한 보험금을 받았던 보험소비자들을 보험사기로 몰아 깊은 상처를 안겼음이 분명했다.

보험사기를 뿌리 뽑고 엄격하게 바라봐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보험소비자에 민법 제103조에 따른 보험사기 관련 소송을 제기하기 전에 보다 철저한 확인 과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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