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교통법상 범죄행위 사실 몰랐나

흥국화재 포함한 대부분 보험사, 보험금 지급제한 사항 중 ‘형법상의 범죄행위’ 포함

흥국화재, 음주운전 사고 낸 피보험자에 ‘형법상의 범죄행위’라며 보험금 지급 거부

법원 “음주운전, 형법상 아닌 도로교통법상 범죄행위”… 흥국화재 패소 판결 내려

음주운전을 형법상 범죄행위로 판단해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던 흥국화재의 사례가 밝혀졌다. (사진=한민철 기자)
한민철 기자

음주운전을 형법상 범죄행위에 해당한다고 착각한 채, 이를 보상하지 않는 손해라며 보험금 지급을 거부한 흥국화재(대표 권중원)의 사례가 뒤늦게 밝혀졌다. 법원은 음주운전이 형법상 범죄행위에 속하지 않는다고 판결하며, 흥국화재 측에 피보험자가 청구한 정당한 보험금을 지급하라고 주문했다.

각 보험사들의 상해입원의료비 특약은 피보험자가 보험기간 중 우연한 외래의 사고로 신체에 상해를 입고, 병원 또는 한방병원(한의원) 등에 입원해 치료를 받는 경우 보험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보험가입 시 대부분의 보험설계사들이 고객에 강조해 설명하고 있고, 보험가입자들과 피보험자들이 상식적으로 알고 있듯이, 피보험자의 고의에 의한 상해의 경우 특약상 보험사는 상해입원의료비 지급을 할 의무가 없다.

이는 보험사들이 약관 내에 ‘보상하지 않는 손해’ 또는 ‘지급제한 사항’이라는 이름으로 제시하고 있는 부분이다.

보통 피보험자의 자해와 자살, 자살미수, 폭력행위 그리고 상해를 원인으로 하지 않는 신체검사나 예방접종 등의 경우 보험사들은 상해입원의료비를 지급하지 않도록 약관을 정하고 있다.

이 보험금 지급제한 사항 중에는 피보험자의 ‘형법상의 범죄행위’도 포함되는데, 여기서 피보험자와 보험사 간의 오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흔히 범죄행위라고 하면 보험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형법상’이라는 조건을 앞에 붙인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모든 범죄행위가 형법에만 포함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형법상 범죄행위란 살인죄, 상해죄, 폭행죄, 공무원의 뇌물공여죄, 강간·추행죄, 무고죄, 과실치사죄 등을 말한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이 형법상 범죄행위로 인식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형법으로 분류하지 않는 행위 또한 존재한다.

예를 들어, 마약 투약 행위의 경우 엄밀히 형법상이 아닌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향정신성 의약품 관리법)’이라는 특별법에 속한 범죄행위로 다루고 있다. 또 밀수출 행위 역시 형법이 아닌, ‘관세법’에서 이에 대한 범죄행위와 처벌을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 또 한 가지의 ‘애매한’ 범죄행위가 있다. 바로 음주운전이다. 음주운전에 대해 형법상 범죄행위로 흔히 생각할 수 있지만, 이는 엄연히 도로교통법 제44조에서 규정하고 있다.

그 벌칙 역시 도로교통법 제148조의2 2항에서 명시하고 있으며, 혈중 알코올 농도에 따라 6개월 이하에서 3년 이하의 징역형 또는 300만원 이하에서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이 내려질 수 있다.

법률적 상식으로 가볍게 생각하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형법상 범죄행위로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은’ 범죄행위들로 인해 보험금 지급을 둘러싸고 피보험자와 보험사 간의 분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흥국화재, 음주운전이 형법상에 해당한다고 착각했나

흥국화재해상보험(이하 흥국화재)의 지난 2015년 사례가 그랬다. 최근 법원의 판결을 통해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흥국화재 측은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일으킨 자사의 피보험자에 대해 형법상 범죄행위로 인해 생긴 손해라고 주장하며 보험금 지급을 거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사건의 구체적 경위는 이랬다. 중년의 남성 A씨는 지난 2008년경 흥국화재의 한 장기보험상품에 가입했다.

그는 해당 보험상품의 계약자와 피보험자 및 수익자를 자신으로 설정했고, 이 보험의 특별약관에는 1억원 한도의 상해입원의료비 담보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음주운전 행위는 비록 잘못됐지만, 이는 형법상이 아닌 도로교통법상에 해당한다. (사진=연합)
또 이 보험상품의 약관에는 앞서 언급한 대로 보상하지 않는 손해로서 피보험자의 자해와 자살, 자살미수 그리고 형법상의 범죄행위라는 조건이 제시돼 있었다.

그렇게 수년간 해당 보험의 가입을 유지하던 A씨는 몇 년 전 술에 취한 채 운전을 하던 중 육교 교각과 충돌하는 교통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A씨는 만취 수준이자 면허취소 대상에 해당하는 혈중 알코올 농도 상태였고,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병원에 입원해 약 4개월 간 치료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A씨는 3000만원 이상의 병원 치료비를 납부해야 했는데, 이중 일부는 자신의 자동차종합보험 가입 보험사로부터 보험금으로 지급받아 납부할 수 있었다. 이제 잔여 치료비는 약 700여만원이 있었다.

A씨는 기존에 가입한 보험 내역을 살펴봤고, 자신이 지난 2008년에 체결했던 흥국화재의 보험상품에 상해로 입원했을 때 1억원 한도로 입원의료비를 지급한다는 특약이 있는 것을 확인했다.

이에 A씨는 잔여 치료비 700만원에 대한 보험금을 흥국화재에 청구했지만, 거절 통보를 받았다.

흥국화재 측은 A씨의 사고가 만취상태에서 음주운전을 하다가 발생한 만큼, 상해입원의료담보 약관 상 ‘피보험자의 형법상 범죄행위로 인해 생긴 손해’라며 보험금 지급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사실 음주운전이 범죄행위이긴 하지만, ‘형법상’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두고 논쟁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A씨는 흥국화재는 보험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올해 초 A씨 측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A씨가 음주운전을 일으킨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음주운전죄가 도로교통법을 위반한 범죄행위일 뿐, 형법상의 범죄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때문에 흥국화재 측의 A씨에 대한 보험금 지급 책임이 있다고 어렵지 않게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사실 이번 사건에서 쟁점의 시발점이 됐던 ‘형법상 범죄행위’와 관련해 보험업계 일각에서는 잡음이 일어왔다.

음주운전과 같은 중대 범죄행위를 일으킨 당사자에게도 해당 행위가 형법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 상식적인 수준에서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음주운전을 일으키더라도 보험금을 탈 수 있구나’라는 잘못된 인식이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모든 보험사가 특약 내 ‘형법상 범죄행위’ 대신 ‘형사처분을 받은 범죄행위’ 또는 형법과 관세법,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 등을 전부 포함시키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범죄행위’로 해당 부분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하고 있다.

물론 아직 이 부분이 모든 보험업계에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고 개정되기 전인 만큼, 현재로서는 각 보험사들이 ‘형법상 범죄행위’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한 뒤 이를 제대로 지킬 수밖에 없는 상태다.

권중원 흥국화재 대표. (사진=연합)
그런데 이번 흥국화재의 사례에서는 단순히 특약 상의 문제로만 볼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흥국화재가 음주운전이 형법상이 아닌 도로교통법상 범죄행위에 해당한다는 상식적 법률지식도 모른 채 보험금 지급을 거부했다는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만약 A씨와 같은 사례의 이전에도 음주운전을 일으킨 피보험자들 중 ‘음주운전은 형법상 범죄행위이니, 약관 상 보험금 지급 책임 없다’라고 흥국화재로부터 보험금 지급을 거절당하며, 이의 제기 없이 그냥 넘어간 이들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보험소비자들이 ‘형법상 범죄행위’에 대해 명확히 인지해야 하며, 흥국화재를 포함한 보험사들이 이번 사례와 같은 착오를 겪지 않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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