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금 - 1억원=순수협찬금… BC카드 ‘갑질(?)’ 산정방식

BC카드 지난 2015년 행사, 중국인 관람객 2만명 이상 유치 목표 달성 실패

BC카드, 중국인 관람객 유치 맡았던 업체에 배상금 등 청구

법원, 위약금 산정 방식에서 ‘형평에 맞지 않는’ 부분 발견

협찬금에서 1억원이나 행사 위해 사용했던 BC카드… A사의 순수 협찬금은(?)

BC카드가 한 중소기업과 협력계약을 맺으며 '부당하고 과한' 위약금 요구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한민철 기자)
한민철 기자

BC(비씨)카드(사장 이문환)가 한 중소기업에 ‘부당하고 과한’ 위약금을 요구했지만, 최근 법원으로부터 위약금에 대한 감액 판결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BC카드와 이 중소기업 사이에 맺어진 계약 내용에는 위약금 산정 방식부터 계약금 지불 액수까지 다소 형평성에 맞지 않는 부분이 상당수 발견됐다.

민법 제398조 2항에 따르면, 손해배상의 예정액이 부당히 과다한 경우 법원은 이를 적당히 감액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재판 결과 재판부가 주문한 손해배상액이 부당히 과다하다고 판단된다면, 패소한 측은 감액을 요청할 수 있고 재판부도 여러 사정을 고려해 이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여기서 감액을 결정짓는 중요한 조건은 바로 ‘부당히 과다하다’라는 부분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대법원이 지난 2000년 12월 8일 선고한 판례(사건번호 2000다35771)는 이에 대해 자세히 적시해 주고 있다.

당시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손해배상 예정액이 부당히 과다한 경우라 함은 채권자(승소자)와 채무자(패소자)의 각 지위, 손해배상액을 예정한 동기, 예상 손해액의 크기, 거래관행 등 모든 사정을 참작해야 한다.

특히 경제적 약자의 위치에 있는 채무자(패소자)가 법원이 정한 손해배상 예정액을 지급한다면, 일반 사회관념에 비춰 부당한 압박을 가해 공정성을 잃은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법원은 변론종결 시점을 기준으로 이런 모든 사정을 고려해 손해배상의 예정액이 부당하게 과다한지 여부 내지 그에 대한 적당한 감액 범위를 판단할 수 있다.

앞선 대법원 판례에도 제시돼 있지만 재판 결과 손해배상 예정액의 감액이 이뤄지면, 보통 패소자가 승소자보다 경제적으로 약자인 경우가 흔하다.

물론 아무리 경제적 약자라고 할지라도 상대에게 물질적∙정신적 손해를 입힌 부분에 있어 패소자들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야 한다.

다만 손해배상 예정액을 감액하는 과정에서 과연 어떤 점이 ‘부당히 과다’했는지를 제대로 살펴본다면, 패소자에게만 모든 잘못을 묻지 말라는 목소리도 나올 수 있다.

사실 법원이 정한 손해배상 예정액을 경제적 약자인 패소자가 지급하는 행위가 ‘압박 또는 공정성을 잃은 결과를 초래’해 그 금액을 줄이는 결정을 내리는 것이라면, 당초 승소자와 패소자 간 합의한 손해배상 조건 자체가 패소자에 불리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들 승소자와 패소자 사이의 법적분쟁이 발생하기 이전, 양측이 금전적 관계를 맺으며 정한 약정에는 향후 패소자가 손해배상 예정액의 감액을 주장할 수밖에 없을 정도의 다소 불공정한 조건들을 있을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국내 신용카드 업계의 선두 기업인 BC(비씨)카드의 지난 2015년 사례가 그랬다. 당시 도급자의 지위인 BC카드 측은 자사가 주최한 행사의 일부 업무를 한 중소기업에 맡기는 계약을 맺었다.

BC카드는 이 회사가 계약 내용대로 일을 완료하지 못하자 배상금 및 지연손해금을 청구했고, 법원은 최근 BC카드 측의 승소 결정을 내렸다.

이 중소기업은 법원이 주문한 BC카드에 대한 손해배상 예정액이 지나치다며 이에 대한 감액을 신청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BC카드와 이 중소기업이 맺은 행사 업무에 관한 계약 내용이 BC카드 측에 유리한 채 다소 공정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이 중소기업이 일을 제대로 완료하지 못했던 부득이한 사정에 대해 BC카드 측은 충분한 고려를 하지 않은 채, 사실상 상대방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부당하고 과다한 손해배상을 요구한 것으로 보이는 정황까지 드러났다.

계약 자체만으로 본다면, 문제될 것 없었던 BC카드

BC카드는 지난 2015년 여름, 국내에서 개최한 한 대형 행사에 메인 협찬사로 참여했다. 당시 이 행사에는 유명 한류 연예인들이 공연을 펼칠 예정이었고, 행사에 ‘한‧중 문화 교류의 장’이라는 테마로 상당수 중국인 관광객들의 유치를 목표로 내걸고 있었다.

BC카드는 당시 행사에 참가한 중국인 관광객들이 자사와 제휴를 맺고 있던 중국 유니온페이(은련카드) 카드로 결제할 경우, 이를 매입하고 그 매입 수수료를 얻는 수익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그만큼 BC카드 입장에게는 행사에 중국인 관광객 유치가 보다 절실한 것이 사실이었다. 때문에 행사에는 중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투어 상품도 내놓고 있었고, 행사 현장에서 판매하는 대부분의 상품들은 BC카드 그리고 유니온페이 카드로만 결제가 가능하도록 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얄궂게도 당시 국내에는 메르스(중동 호흡기 증후군) 사태로 중국인들을 포함한 외국인 관광객들이 급감했고, BC카드 나름대로 행사에 대한 불안 요소의 여지가 있었다.

중국인 관광객 2만명 이상을 유치하지 못한 것은 A사의 귀책이었지만, BC카드 측이 제기한 위약금 산정 방식에는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사진=BC카드 보도자료)
이에 BC카드 측은 행사 개최 10여일을 앞두고, 각종 행사 기획과 전시 프로모션 사업을 전문으로 하는 A사와 중국인 관광객 유치를 주 목표로 하는 협찬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두 회사가 맺은 계약 내용 중에는 A사가 투어 상품 등과 연계해 행사에 최소 2만명 이상의 중국인 관광객을 유치하는 것을 보장한다는 조항이 담겨 있었다.

A사가 행사에 2만명 이상의 중국인 관광객 유치에 실패한다면, BC카드 측에 배상금을 지급하게 돼 있었다.

BC카드는 총 협찬계약금을 선급금과 잔금으로 반씩 나눠 A사에 지급하기로 했다. 만약 2만명 이상 유치 실패로 인해 발생한 A사의 배상금이 잔금 미만일 경우, 2만명 미달 비율만큼 잔금 내에서 지급하기로 했다. 또 유치 실적이 매우 저조해 배상금이 잔금을 초과할 경우, 역으로 A사가 BC카드 측에 배상금을 추가로 납부할 의무도 있었다.

계약 체결 후 불과 10여일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A사는 중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노력했고, 행사가 끝난 결과 아쉽게도 중국인 관광객 약 6900명의 유치 실적을 얻을 수 있었다.

얼마 후 A사는 BC카드 측에 협찬계약대로 잔금 지급을 청구했지만, BC카드 측은 이를 거부했다.

BC카드 측은 오히려 A사가 목표 기준치인 2만명에 한참 미달하는 6900여명만을 모집했기 때문에, 산정한 총 배상금액에서 A사가 지급을 요구한 잔금 액수를 공제한 나머지 금액과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자사 측에 지불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사실 당시 BC카드의 주장은 A사와 체결한 계약 내용에 위배되는 부분이 전혀 없었다.

BC카드 측은 도급인의 입장에서 A사에 협찬금을 지급하고, A사는 수급인으로서 BC카드의 행사에 중국인 관광객 유치, 브랜딩 영역 제공, 행사 현장 판매 부스에서 BC카드와 유니온페이 카드만으로 결제하도록 하는 시스템 제공 등의 용역을 제공할 의무가 계약상 명시가 돼 있었다.

물론 불과 10여일 만에 2만명 이상의 중국인 관광객을 행사에 유치한다는 부분 역시 BC카드가 강제한 것이 아닌, A사가 먼저 BC카드 측에 행사에 중국인 관광객이 4만명이 방문할 예정이라는 내용의 제안서를 제출하면서 협의가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무엇보다 계약 체결 직전에도 A사는 중국인 관광객 2만명 모집에 대한 공문을 BC카드 측에 보내겠다는 취지의 의사를 밝혔고, 2만명 모집을 달성하지 못할 경우 자사의 배상책임을 명확히 한 뒤 두 회사가 계약서에 사인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결론적으로 A사가 행사에 중국인 관광객 2만명 이상을 유치하지 못한 것은 자사 귀책사유가 분명했다.

법원 “BC카드가 제시한 위약금 산정방식, ‘형평에 안 맞아’”

A사가 BC카드 측에 잔금 지급을 요구하자, 두 회사는 결국 법정분쟁까지 가게 됐고, 치열한 법정공방 끝에 최근에서야 그 결론이 나왔다.

법원은 두 회사의 계약상 중국인 관광객 2만명 이상 모집 실패에 대한 A사의 귀책사유를 인정했다.

또 두 회사가 맺은 계약 역시 A사가 BC카드의 강요 등으로 인해 부득이한 거래를 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다시 말해, 계약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는 의미였다.

다만 법원은 BC카드가 청구한 A사의 손해배상 예정액에 대해서는 BC카드 측과는 다른 입장을 밝혔다.

앞서 A사는 자사에 이번 사건에 대한 귀책사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BC카드 측에 지급해야 할 배상액이 부당히 과다해 감액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A사 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산정된 위약금에서 절반을 감액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BC카드 측이 요구한 손해배상 예정액이 ‘부당히 과다’하다는 점을 인정했기 때문이었다.

우선 당시 재판부는 자본금 440억원 규모의 대기업인 BC카드와 자본금 1억원 규모의 중소업체인 A사 사이에서 BC카드 측이 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에 있는 부분에 주목했다.

이런 경제적 지위를 전제로 두고, 두 회사 간 위약금 약정에 따른 손해배상 예정액의 지급이 경제적 약자의 지위에 있는 A사에 부당한 압박을 가해 공정성을 잃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지적이었다.

사실 당시 두 회사 간 계약 조건을 면밀히 살펴보면, 어떤 경우를 생각해 볼지라도 BC카드 측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측면이 있었다.

재판부가 판단한 두 회사 간 위약금 약정의 산정방식에 따르면, 만일 A사가 행사에 중국인 관광객을 한 명도 유치하지 못할 경우, A사는 계약에서 정한 협찬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한 채 오히려 BC카드 측에 1억원에 가까운 손해배상금을 지출해야 했다.

반면 BC카드는 중국인 관광객이 행사에 오지 않더라도 A사로부터 위약금(배상금)을 지급받아 손실을 일부 만회할 수 있었다. 또 행사에는 중국인뿐만 아니라 내국인과 기타 외국인 관람객들도 참석할 수 있었고, 이들의 카드 결제로 인한 독점적 혜택 등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은 충분히 있었다.

이에 재판부는 두 회사가, 엄밀히 말해 BC카드 측이 ‘갑’으로서 제시한 위약금 산정방식이 “형평에 맞지 않는다”라고 판시했다.

재판부의 말대로 BC카드에만 유리한 채 형평에 맞지 않는 부분은 또 있었다. 사실 두 회사가 계약을 체결하며 BC카드가 A사 측에 지불하기로 한 총 협찬계약금액은 ‘순수 협찬금’이 아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언급했듯이 총 협찬계약금액은 선급금과 잔금으로 지불하기로 돼 있었는데, 이중 무려 1억여원은 BC카드의 행사를 위한 설치비용 등으로 사용됐고, 이를 제외한 나머지 금액만 A사 측에 순수 협찬금으로 지급하려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A사에 인권비 등 용역대금으로 사용돼야 할 계약금 중 상당수가 BC카드 행사의 설치비용 등 기타 부대비용을 위해 지출됐다는 의미였다.

무엇보다 당시 목표 기준에 미달하는 인원을 모집할 수밖에 없었던 A사의 부득이한 사정까지도 이번 판결의 주요 고려 대상이었다.

이문환 BC카드 사장. (사진=연합)
재판부는 당시 A사가 행사 개최를 10여일 앞두고 갑작스럽게 계약을 체결해 계약조항에 대해 면밀한 검토를 하지 못했던 점, 2만명 이상의 중국인 관광객을 행사에 유치하는 일이 현실적으로 A사 혼자만의 힘으로 될 것이 아니었다는 점 그리고 당시 메르스 사태뿐만 아니라 위안화 평가 절하와 북한의 미사일 도발 등으로 인한 외적 변수가 갑자기 생겨 중국인 관광객 유치가 더욱 어려워진 점 등을 충분히 고려했다.

역으로 이런 A사의 당시 부득이했던 상황을 깊게 고려하지 못한 채 감액 전 손해배상액을 요구한 BC카드 측에게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었다.

이번 사례를 통해 손해배상 예정액 감액을 둘러싼 분쟁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계약 단계에서 보다 수급자의 경제적 상황에 감당할 수 있고, 합리적 수준의 위약금이 산정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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