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질병 유발 물질’ 되나…WHO 등재 가능성

전문가 “요즘 게임들은 중독성 강해, 질병 될 수도”

게임산업협회 “의학ㆍ심리학계 게임 장애 결론 없어”

“게임 이미지 개선 위한 적극적 홍보 필요”

한국게임산업협회(게임산업협회) 앞에 ‘어려운 게임’이 나타났다. 게임산업협회가 극복해야 할 어려운 게임은 세계보건기구(WHO)의 게임중독 질병 등재 결정을 막는 것이다.

다만 다음달 21일부터 26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에서 개최되는 WHO 2018 총회에 ICD-11 개정판이 안건으로 상정되지 않아 게임중독의 질병 등재 결정이 1년 간 연기됐다.

세계 게임업체들은 WHO의 게임중독 질병 등재를 막기 위해 전력을 다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게임업체들이 WHO의 게임중독 질병 등재를 막으려는 주요 이유는 게임업체가 과몰입 예방이나 치유에 돈을 내는 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게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더욱 나빠지는 것도 문제다.

게임중독 질병 등재 찬성 주장

게임업계 인사들은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등재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현실성이 없다고 보고 있다. 특히 이들은 게임중독이란 표현을 ‘게임 과몰입’이라는 표현으로 바꿔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중독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순간 질병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게임업계 인사 A씨는 “게임이 해로운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며 “게임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은 극히 일부”라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이해국 가톨릭대 정신과학교실 교수는 게임업계의 주장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 교수는 “최근에 출시되는 게임은 과거 게임에 비해 중독성이 강하다”라며 “한국에서 처음 등장한 부분유료화(Free-to-Play)게임이 대표적 사례”라고 말했다.

부분유료화 게임의 특징은 소프트웨어를 무료로 주지만 그 대신 게임 내 아이템을 현금 판매한다. 부분유료화 게임의 경우 사람들이 꾸준히 아이템을 사야 돈을 벌 수 있다. 그래서 게임의 중독성을 우려하는 이들은 게임사들이 중독성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 내고 사행성 요소까지 게임에 집어넣었다고 보고 있다.

또 게임 과몰입 어린이나 청소년들을 정신질환자로 낙인찍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이 교수는 “그런 주장은 무책임한 이야기”라며 “신체 질환이든 정신 질환이든 발병하면 치료를 받아야 하며 낙인이 실제로 있다면 정신건강 문제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없애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게임중독 질병 등재 반대 주장

게임업계 인사들은 전 세계에서 온라인‧모바일‧콘솔 등 여러 가지 방식으로 게임하는 이용자들이 약 20억 명에 달한다고 이야기한다.

이들은 게임 이용자들 중에는 더욱 열정적으로 게임을 즐기는 이들이 있지만, 이것은 다른 문화콘텐츠를 즐기는 경우에도 자연스럽게 생기는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게임산업협회는 “의학계나 심리학계에서도 게임 장애에 대해서는 명확한 결론을 내린 바 없다”며 “정신질환 관련 기준이 되는 DSM에서는 게임 장애와 관련해 ‘인터넷 게임 장애는 정식 장애로 간주하기 이전에 더 많은 의학적 연구와 경험이 요구된다’고 명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WHO의 최근 움직임이 게임 장애와 관련된 과학적 의문을 해소할 수 있는 명확한 데이터에 기반하고 있는지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며 “게임 장애를 과학적으로 입증하기 위해서는 임상적 실험을 통한 데이터로 이를 뒷받침할 수 있어야 하고 대상 그룹을 이루는 구성원이나 해당 그룹의 모집 과정이 타당한지도 검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게임업계 인사들은 WHO의 국제질병분류 11차(ICD-11) 초안에서 게임 장애를 ‘다른 일상생활보다 게임을 우선시해 부정적인 결과가 발생하더라도 게임을 지속하거나 확대하는 게임행위의 패턴’이라고 정의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게임에 대한 통제 기능 손상, 삶의 다른 관심사 및 일상생활보다 게임을 우선시하는 것, 부정적인 결과가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게임을 중단하지 못하는 것까지 3가지가 장애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진단기준이다.

게임산업협회는 “과연 이러한 정의와 진단기준으로 20억 명이 일상적으로 즐기는 문화콘텐츠를 ‘질병’으로 분류할 수 있는지 상식적 차원에서 검토가 필요하다”며 “과학적 엄밀성이 부족한 자의적 판단에 따라 단순히 게임을 좋아하는 이용자들이 ‘게임 장애’ 질환을 갖고 있는 것으로 분류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주장했다.

게임업계에서는 게임 산업 종사자들이 ‘질병 유발 물질 생산자’가 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지나친 게임 이용은 질병”

그렇지만 유우경 한국온라인게임중독예방연구소 소장은 “지나친 게임 이용은 질병”이라고 말했다.

유 소장은 “게임중독의 질병 분류를 찬성한다”며 “게임은 다른 약물과 달리 누구나 손쉽게 접할 수 있는 매체의 특성을 갖고 있다 보니 주의를 요하지 않으면 지나친 이용에 빠져들 수 있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따라서 지나친 게임이용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지나친 게임이용은 질병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것을 주지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유 소장은 WHO가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하려는 것이 객관적인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므로 중단해야 한다는 게임업계의 주장에 대해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지나친 게임 이용에 따라서 일상생활의 정상적 수행이 어려운 이들이 있으며, 특히 청소년들과 청년들 중 다수는 지나친 게임 이용으로 인해 정상생활을 하지 못하거나 포기한 이들이 많다는 부분에서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실제로 게임에 지나치게 빠져들어 헤어 나오기 어려운 이들이 많이 있으므로 근거 부족 등으로 논란을 부추기기보다는 지나친 게임 이용에 따른 부작용이 있는 현실을 고려한 접근과 그에 따른 적절한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게임업계에서 나서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조언했다.

게임업계의 WHO의 ICD-11 초안의 진단기준으로 20억 명이 즐기는 게임을 ‘질병’으로 분류할 수 있는지 검토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게임을 이용하는 이들은 방치해선 안 된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유 소장은 “게임업계에선 게임이 대다수가 즐기는 문화콘텐츠이기 때문에 질병으로 분류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하지만 이러한 문제 제기는 지나친 게임 이용에 따른 부작용의 최소화를 위해 게임 장애 혹은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하자는 논의를 바꾸려는 시도라고 볼 수밖에 없다”며 “지나치게 게임을 이용하는 이들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그 개인뿐만 아니라 가정 및 사회적으로 크나큰 손실이기 때문에 주의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게임산업협회는 한국인터넷기업협회 등과 협력해 WHO의 게임 질병화 시도에 공동 대응해 나갈 계획이다.

그러나 게임업계 일각에선 게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좋지 않아 게임업계가 앞으로 점점 어려운 상황에 빠져들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최근 있었던 확률형 아이템 논란도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강화에 영향을 줬다.

게임 전문가들은 이런 때일수록 게임산업협회가 홍보를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홍진표 상명대 대학원 게임학과 전(前) 겸임교수는 “미국이나 일본도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있었지만 캠페인이나 홍보를 통해 긍정적인 인식으로 돌려놨다”며 “게임산업협회가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불식할 수 있는 캠페인을 했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곽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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