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면상 혈관종 따른 뇌출혈 몰랐나… 보험상품 출시하기만 하면 그만(?)

현대라이프, 뇌내출혈 진단 받은 피보험자에 뇌출혈 관련 보험금 지급 거부

의료기관 진단 결과에 보다 합리적 반박도 없이 ‘해면상 혈관종’ 주장

법원 “의료기관 진단 결과, 경험칙 반하거나 합리성 결여 문제 없어” 판단

피보험자에 뇌출혈 진단을 내린 의료기관의 판단을 받아들이지 않은 채 관련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다 법정패소한 현대라이프생명보험의 사례가 밝혀졌다. 사진은 현대라이프생명 서울 여의도 본사. (사진=한민철 기자)
한민철 기자

현대라이프생명보험(대표 이재원)이 피보험자의 뇌출혈 보험금 청구에 대한 지급을 거부하다 최근 법정 패소한 사실이 밝혀졌다. 현대라이프생명은 피보험자에 뇌출혈 증상이라는 진단을 내린 의료기관의 판단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해면상 혈관종이라고 반박했다. 물론 현대라이프생명의 이런 주장은 법원으로부터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피보험자에 대한 의료진의 진단기록을 꼼꼼히 파악하지 못한 채 보험금 지급 거부를 한 것이라는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질병으로 인한 보험금 지급에 있어 보험사와 보험소비자 간 분쟁이 많이 발생하는 사유는 암이었다.

실제로 지난 2013년 소비자보호원의 발표에 따르면, 보험금 지급 관련 분쟁에서 암보험이 무려 90%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 암은 보험사 측이 보험금 지급 심사를 하는 과정에서 100%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 쉽지 않은 질병이다.

암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커지고 전이되는 특성을 가진 만큼, 최초 발병 부위를 둘러싼 의견 충돌이 일어날 수 있고, 정확한 발병 시기 또한 맞아떨어지는 판별을 해내기 어렵다.

또 암이 보험계약에 있어 보장하는 내용도 다양하고, 암 특화 보험상품까지 출시되며 가입자들도 상당한 만큼 보험금 지급에 대한 분쟁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동안 암보험 지급 관련 분쟁이 법정분쟁으로까지 번지는 사례가 많았고, 이 다양한 사례에 대한 사법부의 현명한 판례가 쌓여 지침을 제시해주고 있는 만큼, 기존과 같은 치열한 분쟁은 비교적 줄어든 상태다.

그런데 암보다 증상에 대한 판단이 쉽고 특화된 보험상품도 거의 없는 수준임에도, 이에 대한 보험금 지급을 둘러싸고 보험사와 소비자 간 분쟁이 잦은 질병이 있다. 바로 뇌출혈이다.

뇌출혈은 3대 질병이라고 말하는 암과 뇌졸중, 급성심근경경색증 중 뇌졸중의 영역에 속한다.

흔히 뇌출혈과 뇌졸중이 같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뇌출혈은 뇌졸중에 포함된 질병이다.

한국표준질병 사인분류표에서도 뇌출혈의 질병코드는 I60에서 I62까지 그리고 뇌졸중은 I60부터 I66까지로 분류된다.

그만큼 뇌졸중보다 보험계약상 보장범위가 좁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뇌출혈은 뇌 안의 혈관이 터지는 뇌일혈(뇌내출혈)과 뇌 내부 지주막 아래에서 생기는 지주막하출혈 그리고 비외상성 머리 내 출혈 등 쉽게 말해 뇌 내부의 혈관이 터지는 일부 증상이 해당한다.

반면 뇌졸중은 앞서 언급했듯이 뇌출혈의 증상을 포함한다. 나아가 질병코드 I63부터 I66에 속하는 뇌경색증 그리고 기타 뇌경색증을 유발하지 않은 대뇌동맥(또는 뇌전동맥)의 폐쇄 및 협착 등의 질병을 말한다. 다시 말해 뇌출혈이 발생하기 전 혈관이 막히거나 좁아졌을 때의 증상들을 의미한다.

특히 뇌출혈은 뇌졸중보다 발병률이 현저히 낮은 질환이다. 일반적으로 뇌혈관 질환 내에서 뇌출혈의 발병률은 10% 미만이지만, 뇌졸중의 그것은 무려 60%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뇌출혈은 보장범위가 좁고 발병률이 낮은 질환인 만큼, 이로 인한 보험금 지급 사례를 찾는 것은 다른 질병에 비해 쉽지 않다.

때문에 소비자들이 뇌출혈로 인한 보험금 지급을 청구했을 때, 질병에 대한 보험사 측의 구체적이고 정확한 판단이 서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결국 보험사 측은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고 이는 보험사와 보험소비자 간 보험금 지급을 둘러싼 분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현대라이프생명보험(이하 현대라이프)의 사례가 그랬다. 피보험자가 의료진으로부터 명백한 뇌출혈 진단을 받았고 관련 서류를 제시하며 뇌출혈 보험금을 청구했음에도, 이를 거부했다.

현대라이프 측은 피보험자의 경우가 뇌출혈이 아닌, 뇌출혈이 일어나기 전 이를 유발하는 질병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당시 피보험자에 대한 의료진의 진료 기록 상 뇌에서 출혈이 일어났다는 증거가 명백히 있었다. 이에 현대라이프 측은 뇌출혈에 대한 명확한 판단이 결여된다는 의심을 살 수밖에 없었다.

뇌출혈 같아 보이지만, 뇌출혈 아닌 ‘해면상 혈관종’

이번 사건의 당사자인 여성 A씨는 지난 2014년 여름 현대라이프의 질병 보장 보험상품에 가입했다.

이는 성인들이 걸리기 쉬운 질병인 급성심근경색과 말기신부전증 등에 대한 진단자금을 보험금으로 지급하는 상품으로, 보장하는 질병 중에는 뇌출혈도 포함돼 있었다.

이 보험상품은 구체적으로 한국표준질병 사인분류에서 제시된 뇌출혈에 해당하는 질병을 의료법에서 정한 정식 의료기관의 의료진으로부터 진단확정을 받는다면, 피보험자에게 최초 1회에 한해 6000만원의 진단자금을 지급하는 특약 내용 등을 담고 있었다.

현대라이프 측은 이 보험상품의 뇌출혈 관련 부분에 있어 ‘외상성 두개 내 출혈’과 ‘혈관성 치매’는 보험금 지급에 해당하는 증상으로 보지 않았다.

특약상 뇌출혈로 인정하는 질병은 앞서 언급했듯이 지주막하 출혈(질병코드 I60)과 뇌내출혈(I61), 기타 비외상성 머리 내 출혈(I62) 등이었다.

A씨는 이 보험상품의 가입을 유지한지 2년이 지난 2016년 말 어느 날, 갑작스럽게 심한 두통을 느끼고 응급차에 실려 병원에 가는 일이 벌어졌다.

심상치 않은 증상에 불안했을 A씨는 곧바로 주변 대학병원에 찾아가 두통 증상에 대한 진료를 받았다.

A씨는 K대학병원 측으로부터 ‘(주상병) 상세불명의 뇌내출혈’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여기서 주상병(主傷病)이란 환자가 입은 주된 질병 또는 상처를 말한다. 쉽게 말해 A씨의 주된 질병, 즉 두통의 병명은 뇌내출혈이라는 의미였다.

K대학병원은 의료법 제3조에서 규정한 국내 정식 의료기관이었고, A씨를 검진한 의료진 역시 뇌출혈을 진단하기에 합법적이며 충분한 자격 요건을 갖춘 상태였다.

현대라이프생명 보험상품의 약관 상 뇌출혈 관련 부분. (사진=한민철 기자)
또 뇌출혈을 진단하는 과정에서 병력·신경학적 검진과 함께 뇌전산화 단층촬영과 기타 뇌출혈을 판결하기 위한 과학적 검사도 이뤄졌다.

다시 말해 A씨는 지난 2014년 가입한 현대라이프 보험상품의 뇌출혈 관련 특약 상 보험금 지급 사유가 완벽히 갖춰진 상태였다.

이에 A씨는 뇌내출혈이라는 진단이 확정되자마자 현대라이프 측에 보험계약에 따른 뇌출혈 진단자금을 청구했다. 물론 보험금 청구를 위한 필요 서류도 제대로 제출했다.

그런데 현대라이프의 지급 심사는 무려 3개월이 넘게 걸렸고, 사측은 해를 넘긴 지난해 2월경 최종적으로 A씨에 대한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다.

현대라이프 측은 A씨에 대한 질병이 ‘해면상 혈관종’에 해당할 뿐, 뇌출혈에 속하지 않는다는 판단이었다.

해면상 혈관종(Cavernous Angioma)은 혈관기형의 하나로, 근육층과 탄성층 없이 단일 혈관 내피 세포층의 모세혈관이 해면체(Cavernous) 모양, 즉 벌집형으로 생긴 종양을 의미한다.

주로 뇌간부나 두개강 내에서 발생하며, 출혈을 동반해 그것이 뇌까지 번지면 간질발작과 두통 등의 증상을 유발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는 상태가 더 악화되면 뇌출혈과 구토, 실명에까지 이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해면상 혈관종은 주로 출혈을 동반하기 때문에 뇌출혈 관련 보험금 지급사유에 해당하기 쉽다.

무엇보다 보험사 측이 피보험자의 해면상 혈관종이 선천성 혈관기형이라는 문제로 고지의무 위반을 주장하거나 특약상 선천적 장애에 따른 보험금 지급 제외 대상에 포함시킬 수 있다.

선천선 혈관기형이라면 질병코드 Q28.3에 속해 역시 I60에서 I62과는 관련이 없다.

때문에 현대라이프 측은 A씨의 증상이 뇌출혈이 아닌 해면상 혈관종에 따른 출혈일 뿐이므로, 보험금 지급이 면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A씨는 이에 강력히 반박했다. K대학병원에서 의료진들이 자신의 병명에 대해 뇌내출혈이라고 진단해 확정해준 만큼, 보험금 지급사유가 명백하다는 입장이었다.

결국 양측은 원만한 합의가 이뤄지지 못했고, A씨는 현대라이프를 상대로 보험금 청구에 관한 소송을 제기했다.

해면상 혈관종에 따른 뇌출혈, 결국 뇌출혈로 봐야…

이번 사건의 재판을 맡은 법원은 지난달 A씨의 손을 들어줬다. A씨의 승소 판결을 내리기까지 그 판단은 어렵지 않았다.

재판부는 A씨가 진단확정을 받은 K대학병원이 아닌, 다른 대학병원에 사실조회를 신청해 A씨의 진료기록에 대한 감정촉탁을 의뢰했다.

그 결과 A씨가 K대학병원에서 ‘상세불명의 뇌내출혈’ 진단을 받았을 당시 그리고 이로부터 일주일 후 그의 CT 영상에서 종양의 크기가 작아진 것이 확인됐다. 때문에 뇌출혈을 일으킨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특히 A씨가 초기 응급실에 내원했을 때 CT 내용을 분석했던 의료진이 뇌출혈에 해당한다는 합당한 소견을 냈고, 이를 통해 A씨 역시 K대학병원에서 뇌출혈과 관련해 보다 심증적인 진단을 받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재판부는 초기 A씨의 증상이 해면상 혈관종 증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이후 급성 뇌출혈이 발병한 것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A씨는 급성 두통으로 응급실을 내원한 병력이 있고, CT 상 뇌출혈에 합당한 소견이 있었다”라며 “A씨에 부여될 수 있는 진단코드는 Q28.3C(대뇌해면기형)뿐만 아니라, I61.8(기타 뇌내출혈)인 사실이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대학병원 의료진의 진단확정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현대라이프 측의 태도는 우리 대법원의 판례에 다소 벗어난 점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대법원이 지난 2007년 2월 22일 선고한 판결(사건번호 2004다70420)에 따르면, 감정인의 감정결과는 그 감정방법 등이 경험칙에 반하거나 합리성이 없는 등의 현저한 잘못이 없는 한 이를 존중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법원은 A씨의 증상을 해면상 혈관종에 따른 뇌출혈로 판단하며, 결국 현대라이프생명 측은 A씨에 뇌출혈 진단자금을 지급해야만 했다. (사진=연합)
즉 현대라이프 측은 자신들의 해면상 혈관종 판단이 옳고, K대학병원 의료진의 진단이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의료진의 진단이 감정방법에 있어 문제가 있거나 합리성이 현저히 결여되는 등의 부분을 들어 논리적 반박이 필요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역시 받아들이지 않으며 A씨 진료기록에 대한 감정촉탁 결과가 경험칙에 반하거나 합리성이 없는 등 현저한 잘못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결국 현대라이프 측은 A씨의 보험금 청구가 있은 지 무려 약 1년 6개월 후인 지난달 중순에서야 법원으로부터 보험금 지급 명령을 받을 수 있었다.

물론 A씨는 정당히 받아야만 했던 보험금을 1년 6개월여 간 받지 못한 채, 아픈 몸을 이끌고 법정다툼까지 진행해 나갈 수밖에 없었다.

이번 사례를 통해 현대라이프는 해면상 혈관종인지 뇌출혈인지 여부를 명확히 구분해 낼 준비가 돼있지 않음에도 뇌출혈에 특화된 보험상품을 내놓았다는 비난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이에 향후 이런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뇌출혈에 대한 보험금 지급 심사에 보다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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