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물러난 권오준…차기 회장은 누구

“끝까지 이끌겠다”던 권 회장, 갑작스런 사의…이유는?

포스코 체질 개선 성공한 권 회장…정경유착에 발목 잡혔나

차기 회장에 내부 인사 4~5명 거론…OB 귀환 가능성도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18일 오전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에서 열린 이사회를 마친 뒤 나오고 있다. 권 회장은 이날 사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연합뉴스)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결국 물러났다. 지난 18일 권 회장은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에서 열린 임시이사회에 참석해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임시이사회에서 “100년 기업 포스코를 만들기 위해서는 젊고 유능한 인재가 CEO를 맡는 게 좋겠다”며 사내·외 이사들에게 자리에서 물러날 뜻을 밝혔다. 이에 사외이사를 중심으로 사의 철회를 거듭 요청했으나 권회장이 사임의 뜻을 굽히지 않아 결국 포스코는 새 수장을 뽑아야 하는 운명을 맞이했다.

사의 표명 이후 권 회장은 사내망을 통해 “이제 새로운 미래를 창조하고 한 단계 높은 도약을 위해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야 하는 중차대한 시점에 서 있다”며 “이제 이사회를 중심으로 후임 회장을 선임하는 절차가 진행될 예정이며, 저도 후임 회장이 선임될 때까지 주어진 책무를 다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4월 연임에 성공한 권 회장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교체설이 끊임없이 불거졌다. 주인 없는 기업인 포스코가 정권이 바뀌면 늘상 시달리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권 회장은 계속 포스코를 이끌어 갈 뜻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 중국 등 4차례 해외 순방 기간 동안 경제사절단 명단에서도 모두 제외되며 청와대에서 우회적으로 퇴진을 압박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외풍 속에서도 포스코는 지난해 약 4조 6000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구조조정의 효과를 봤다. 2011년 이후 최고 실적이었다. 이에 권 회장은 “앞으로도 포스코를 잘 이끌어 나갈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지만 이명박 정부 시절 자원외교 및 최순실 국정농단 연루 의혹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하며 32년간의 포스코 생활을 마치게 됐다.

“포스코 체질 개선 성공” vs “정경유착…朴 선고에서 사실로”

권오준 포스코 회장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정준양 전 회장에 이어 2014년 4월 취임했다. 당시 포스코는 하락세였다. 5조원을 자랑하던 영업이익은 2조원대로 반토막이 났고 당기 순이익 역시 4조원에서 1조원을 겨우 넘는 상태였다.

권 회장은 취임 이후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감행했다. 지난 4년간 150여 건의 구조조정을 통해 체질개선에 나선 것이다. 덕분에 매출액은 3년 만에 60조 원대로 회복했고 약 7조원 대 규모의 누적 재무개선 효과도 나타났다. 특히 지난해 비철강부문은 전년대비 100% 가까이 증가한 1조 900억 여원의 영업이익 등 총 4조 6218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연결기준 부채비율 역시 2010년 이래 최저 수준인 66.5%를 나타냈다. 30여 년간 포스코에 몸담으며 내부사정을 꿰뚫고 있는 권 회장의 과감한 결단의 결실이었다.

체질 개선과 실적 반등에도 권 회장을 따라다녔던 꼬리표는 정경유착이었다. 포스코는 정준양 회장 시절 리튬 개발 사업에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그 배후에는 MB 친형 이상득 전 의원이 있었다는 의혹이 있었다. MB 정부는 리튬을 확보하기 위해 이 전 의원을 앞세워 남미 순회를 했고 그 사업을 진행할 기업이 포스코였다는 것이다. 당시 정 회장의 지시로 포스코는 2010년 리튬추출기술 개발에 돌입했는데 이때 연구 총책임자가 권 회장이었다. 권 회장은 취임 이후에도 아르헨티나 등지에서 리튬사업을 펼쳤지만 뚜렷한 성과는 없었다.

그의 입지를 흔든 또 하나의 이슈는 최순실 국정농단 연루 의혹이었다. 의혹은 사실로 드러났다. 지난 6일 박근혜 전 대통령 1심 선고에서 재판부는 2016년 박 전 대통령이 권 회장과의 면담 자리에서 포스코의 배드민턴 팀 창단 필요성을 밝히고 더블루케이에게 매니지먼트를 맡길 것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면담 이후 권 회장이 부하에게 연락처를 주면서 협상을 지시했고 결국 포스코는 펜싱팀을 창단하고 매니지먼트를 더블루케이에 맡기는 합의가 이뤄졌다고 봤다. 한 재계 관계자는 “청와대의 요구에 권 회장이 거부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그럼에도 국정농단에 연루된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계에서는 자원외교 의혹이 커지고 있고 박 전 대통령 1심 선고에서 권 회장이 언급됐다는 점 자체가 권 회장이 부담스러웠을 것으로 보고 있다. 황창규 KT 대표이사 회장이 경찰 조사를 받는 것을 보면서 권 회장이 심리적 압박을 크게 느꼈을 가능성도 일각에서는 제기하고 있다.

차기 회장은…내부 인사 4~5명 하마평 오르내려

권 회장 사의 이후 재계는 차기 회장이 누가 될 것인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당초 포스코 안팎에서는 지난 연말부터 윤석만 전 사장의 이름이 거론된 바 있다. 윤 전 사장은 2008년 정준양 회장 선임 당시 막판까지 경쟁한 인물이다. 정민우 전 포스코 대외협력팀장은 최근 한 팟캐스트에 나와 “당시 이사회에서 윤석만 사장이 박영준한테 물러나라는 압박을 받았다고 공개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은 MB정부 시절 ‘왕차관’으로 불리고 실세 의혹이 있었다. 포스코에서 오랫동안 몸 담았고 강직한 성품의 윤 전 사장이 최근 다시 하마평에 오르기도 했다.

현재로서는 오인환 포스코 대표이사 사장, 최정우 포스코컴텍 사장, 장인화 철강2부분문장, 황은연 전 포스코인재창조원장, 이영훈 포스코건설 사장 등이 차기 회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오인환 사장은 권 회장 체제에서 2인자로 평가받았다. 마케팅본부장, 철강사업본부장 등을 거쳐 지난해 사장으로 승진했다. 권 회장이 바로 사퇴하지 않고 포스코의 CEO 후보군 발굴시스템인 ‘승계 카운슬’에 멤버로 참여한다는 점에서 오 사장의 승진 가능성을 점치는 목소리가 있다.

최정우 포스코컴텍 사장은 지난해 3월까지 포스코 최고재무책임자(CFO)로 대표이사 사장을 지냈고, 현재 포스코가 주목하고 있는 리튬 관련 음극재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영훈 포스코건설 사장도 주목할 만하다. 참여정부 시절 회장을 역임한 이구택 전 회장의 라인으로 지난 1985년 포항종합제철에 입사한 뒤 2001년 자금관리실 자금기획팀장, 자금관리실 IR팀장, 재무투자부문 재무실장·상무, 전략기획총괄부문 재무실장·상무 등을 거친 그룹 내 ‘재무통’이다. 지난해 3월 권 회장 연임 당시에도 유력한 대항마로 꼽혔던 황은연 전 포스코인재창조원장 이름도 나온다. 황 전 원장은 2016년에는 권 회장의 후임으로 물망에 올랐다가 2017년 초 권 회장이 연임되자 인재창조원으로 자리를 옮긴 뒤 지난달 퇴임했다.

외부에서는 광주출신의 포스코 사장을 지낸 김준식 전 일진제강 대표이사도 거론된다. 김 전 대표는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초등학교·중학교 동기동창으로 권 회장 때문에 포스코를 떠났다는 후문이다.

허인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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