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감독 앞두고 당국ㆍ재계 기싸움

오는 7월 시행 앞둔 ‘금융그룹 통합감독 제도’에 기업들 미온적

삼성ㆍ현대차ㆍ한화ㆍ교보생명ㆍ미래에셋ㆍDBㆍ롯데 통합감독 대상

금융위ㆍ금감원 수장, 연일 금융그룹 전향적 자세 요구

전담 조직 신설한 곳은 미래에셋뿐…향후 문제 불거질 가능성


금융당국의 대기업을 향한 압박의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오는 7월 ‘금융그룹 통합감독 제도’ 시범 시행을 앞두고 통합감독 대상 7개 그룹이 미온적인 모습을 보이자 구체적 사례까지 제시하며 해결책 제시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지난 20일 “금융개혁에 속도를 올리겠다”고 발언한 데 이어 유광열 금융감독원 원장 대행은 25일 7개 그룹 대표자를 불러 모아 “통합감독제도는 그룹의 지속가능한 경영을 위해 필요한 제도인 만큼 금융그룹 스스로 그룹위험 관리를 강화할 수 있는 역량을 제고해야 한다”며 적극적인 태도를 요구했다. 유 대행은 이날 특정 기업의 리스크 사례를 거론하며 자리에 참석한 기업 관계자들을 움찔하게 했다. 당국 고위 관계자가 사례들을 일일이 열거하는 식의 경우는 이례적이라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금융당국의 ‘금융그룹 통합감독 제도’ 도입 압박이 무색하게도 감독 대상 7개사들은 전담 부서조차 만들지 않는 등 수수방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당국 “동반부실 사태 미연에 방지하려는 것”…기업들 부담 ↑

당국이 ‘금융그룹 통합감독 제도’를 도입하려는 이유는 금융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는 그룹의 위험을 분산시키기 위해서다. 아울러 금융계열사를 통한 일감몰아주기 및 자금조달 감시 기능도 포함된다. 삼성·현대차·한화·교보생명·미래에셋·DB·롯데 등 7개 그룹이 통합감독 대상이다.

당국은 이를 위해 지난해부터 제도를 정비해왔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 1월 ‘금융그룹 통합감독 업계·전문가 간담회’에서 “금융그룹 통합감독제도는 금융회사와 감독당국 모두에게 처음 가는 길”이라며 “금융당국은 모범규준 법제화 등 입안단계는 물론 제도운영 과정에서도 업계와 지속 소통하며 일방적 규제부과가 아닌 모범관행을 정립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최 위원장은 또한 “금융그룹 통합감독제도는 금융그룹을 지켜내는 약이 될 것이다. 당장의 규제가 입에 쓸 수 있겠지만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를 부탁한다”며 금융그룹을 독려했다.

지난 4월 3일에는 금감원이 ‘금융그룹 통합감독 모범규준’ 초안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을 보면 대표회사는 감독대상 금융그룹 지정시 함께 지정되며 지배구조상 최상위 금융회사 또는 자산·자기자본이 가장 큰 주력 금융회사가 맡게 된다.

대표회사는 감독대상 금융그룹을 대표해 그룹 위험관리에 관한 제반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 대표회사 이사회를 최상위 의결기구로 규정, 이를 보좌할 그룹 위험관리기구도 지정토록 했다. 금융그룹의 건전성 확보를 위해 자본적정성, 내부거래 및 위험집중, 위험관리 상황 등을 정기적으로 평가해 그 결과를 감독당국에 보고하고 시장에 공시해야 한다.

주요 보고ㆍ공시사항은 그룹차원의 통합 자본적정성, 통합위험요인 및 관리계획, 지배구조 현황, 그룹계열사간 내부거래 비중 및 주요 내부거래 현황 등이다.

금융감독원은 그룹 위험관리체계, 금융그룹 자본, 내부거래·위험집중, 동반부실위험 관리 적정성 등 금융그룹의 그룹위험 현황 및 관리 실태를 정기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금융위는 그룹위험 관리실태가 취약한 금융그룹에 대해 위험관리 개선조치를 권고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1단계로 적정 수준에 미달되면 출자·자금거래 중단 등을 포함한 경영개선계획을 수립하되 이를 이행하지 않거나 금융시장 안정을 저해할 소지가 있으면 금융그룹 명칭 사용을 중지하고 동종금융그룹으로의 전환을 권고한다.

금융당국은 지난 3일 발표한 모범규준을 오는 7월부터 우선 적용한다. 하반기에는 금감원이 7개 주요 금융그룹의 모범규준 이행상황과 그룹위험 실태평가를 위한 현장점검을 실시할 예정이다. 이를 토대로 올해 안에 ‘금융그룹 통합감독법’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당국 질타에도 손 놓고 있는 금융그룹…미래에셋만 전담조직 신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물론 금감원이 제도 도입의 고삐를 죄고 있지만 금융그룹은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지 않다. 당국 관계자는 “7월부터 시행되는 모범규준에 대한 인식이 당국과 동떨어져 있다. 믿는 구석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며 “손을 놓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금융그룹의 태도를 지적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제도의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라며 “통합감독 시스템이 제대로 도입되기 위해서는 법안 통과가 필요하다는 점도 현재 그룹들이 고려하고 있는 사안”이라고 밝혔다.

‘금융그룹 통합감독법’은 그룹에게 ‘발등의 불’이다. 해당 법안의 큰 줄기가 출자 고리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사업적·재무적 연관성을 떨어뜨리거나 해당 위험을 흡수할 수 있도록 자본을 추가로 적립하도록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분야에 경험이 없거나 부족한 이들이 금융계열사 등기임원으로 오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시범 시행을 불과 두 달 앞둔 상황이지만 그룹들은 미온적일 정도로 대응을 하고 있지 않다. 전담조직을 설치한 곳이 미래에셋 단 1곳뿐이기 때문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미래에셋 금융그룹의 대표회사인 미래에셋대우는 최근 그룹위험관리팀을 신설했다. 금융그룹 통합감독의 대표적인 타깃으로 분류되는 미래에셋은 가장 먼저 전담 조직을 설치했다. 미래에셋대우 그릅위험관리팀은 조직 구성 초기 단계다. 리스크관리본부 이재용 이사가 팀장을 맡았으며 직원은 5명이다.

미래에셋을 제외한 나머지 6개 금융그룹은 전담 조직 신설 없이 기존 기획이나 리스크관리(RM) 부서에서 업무를 맡고 있다. 각 그룹 대표회사별 담당 부서는 삼성생명 계리RM팀, 한화생명 경영기획팀, 현대캐피탈·롯데카드 리스크관리팀, DB손해보험 전략혁신팀, 교보생명 전략기획팀이다. 하지만 이는 향후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4일 금감원이 발표한 금융그룹 통합감독 모범규준 초안에는 금융그룹은 독립된 그룹 위험관리부서를 운영하고, 담당 직원은 다른 업무를 겸직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지난 25일 유광열 금감원 원장 대행(수석 부원장)이 ▦그룹자본의 적정성 ▦위험관리의 적정성 ▦지배구조 등 그룹리스크 유형과 사례를 꼭 집어 얘기하며 압박의 수위를 높인 이유다. 유 대행은 “그룹 차원의 관심이 부족하다. 대표회사와 계열사 간 인식 차이도 큰데다 조직과 인력도 부족한 것으로 파악됐다”며 “그룹의 부실 위험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체계를 조기에 구축할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고 통합위험관리체계를 구축할 것을 요구했다.

금융당국의 압박과 견제에도 금융그룹들이 행동에 나설지는 미지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금융그룹이 계열사간 출자와 내부거래 등 다양한 그룹위험을 자체적으로 측정·평가해야 한다지만 사실상 당국의 상시 감시 속에서 사업을 운영해야 한다는 뜻”이라며 “각 그룹마다 내부에서 풀어야 할 실타래가 만만치 않다. 아울러 법제화까지 넘어야 할 산은 많다”며 상황을 주시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허인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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