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자대위, 지난 소멸시효도 따라오는 것 몰랐나(?)

보험금 소멸시효 기산점, 사고발생 후 3년

더케이손보, 피보험자로부터 손해배상청구권 양도받고 피의자에 구상금 청구 소송 제기

사고발생 후 3년이 훌쩍 지난 시점에 제기된 소송… ‘기초보험상식’ 소멸시효 몰랐나(?)

소멸시효를 둘러싼 더케이손해보험의 황당한 패소 사례가 뒤늦게 밝혀졌다. 사진은 더케이손해보험 종로구 율곡로 본사. (사진=한민철 기자)
한민철 기자

더케이손해보험(대표 황수영)이 소멸시효 만료가 이미 오래 전에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일반인에게 구상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가 최근 패소한 사연이 뒤늦게 밝혀졌다.

자동차보험에 가입된 운전자가 교통사고를 일으켜 누군가에게 인적·물적 피해를 끼친다면, 피해자는 상법 제724조 제2항에 따라 피의자인 운전자의 자동차보험사에 해당 사고로 발생한 손해에 대한 보험금을 직접 청구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자동차보험사는 피해자에게 모든 보상이 이뤄지기 전까지 피의자 측에 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다.

만약 그 피해자 역시 교통사고 피해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보험에 가입된 상태라면, 교통사고 피의자 측 자동차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하는 것보다 자신이 가입한 보험사로부터 해당 손해에 대한 보험금을 지급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피해자에 보험금을 지급한 보험사는 상법 제682조 ‘제3자에 대한 보험대위’ 법 규정에 따라, 그 피해자가 피의자 측에 가지는 법률상의 손해배상청구권을 취득하게 된다.

상법 제682조에서는 제3자(피의자)의 행위로 인해 보험계약자(피보험자·피해자)에 손해가 발생한 경우, 보험계약자 측에 보험금을 지급한 보험자(보험사)는 그 지급한 금액의 한도 내에서 제3자에 대한 보험계약자 측의 손해배상 권리를 취득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피해자가 피의자 측에 가질 수 있는 손해배상의 권리가 보험자대위에 따라 피해자 측 보험사에 이전되면서, 당연히 이 보험사는 자신들이 피해자에 지급한 보험금에 대한 구상권을 피의자 측에 청구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이 상법 제682조의 법 규정에는 간과하기 쉬운 조건이 한 가지 있다. 대법원의 지난 1999년 6월 11일 선고(사건번호 99다3143) 내용에는 그 조건이 무엇인지 자세히 적시돼 있다.

해당 대법원 판례에서는 상법 제682조로 보험계약자(피보험자·피해자) 등의 제3자(피의자)에 대한 권리가 동일성을 잃지 않고 보험계약자 측 보험사에 이전되면, 보험사가 취득하는 채권의 ‘소멸시효 기간 및 기산점’ 역시 보험계약자가 제3자에 대해 가지는 채권 자체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나타나 있다.

보험사뿐만 아니라 피보험자도 알아야 하는 필수 보험상식 중 하나인 보험금 청구권의 소멸시효는 상법 제662조에 따라 보험금 지급 사유에 대한 사고가 발생한 날로부터 3년이다.

앞서 언급한 소멸시효의 기산점이 ‘사고가 발생한 날’이 되는 이유는 민법 제766조 제1항에도 명시돼 있지만, 피해자나 그의 법정대리인이 손해 및 가해자를 알게 된 시점부터인 만큼 원칙적으로 사고 발생일이기 때문이다.

이는 자동차보험 관련법에서도 더욱 명확히 제시하고 있다. 실제로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의 제41조에서는 구상금 등의 청구권을 3년간 행사하지 않으면 시효로 소명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시 말해 보험자대위에 의해 보험사가 얻게 되는 보험계약자 측의 손해배상채권에는 소멸시효 기간까지 포함된다. 그 소멸시효는 보험사가 권리를 양수하면서 향후 3년이 남은 것이 아니라, 보험계약자 측이 사고로 인해 제3자에 권리를 가지면서 지나간 기간까지 전부 적용해 3년이라는 의미였다.

만약 피해자인 보험계약자와 피의자인 제3자 간 사고 발생일이 2018년 1월 1일이라면, 보험사가 보험계약자 측으로부터 제3자에 대한 손해배상채권을 받는 순간부터 새롭게 3년의 소멸시효가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때문에 보험사는 3년의 소멸시효가 완성되는 2021년 1월 1일까지는 무조건 제3자에 채권 통지와 추심을 마쳐야만 한다.

안타깝게도 이 부분을 잘 파악하지 못한 채 소멸시효가 만료 됐음에도 보험사에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소멸시효 만료 이후에도 보험자대위권을 행사하려는 보험사 역시 존재한다.

한국교직원공제회가 설립해 자동차보험으로 유명한 더케이손해보험의 사례가 그랬다. 민법상 손해배상채권의 소멸시효가 완료된 시점에서 구상금 청구에 관한 소송을 제기했고, 결국 법원으로부터 그 청구권의 기각 판결을 받았다.

이로 인해 보험사로서 기본적으로 따져 봐야 할 소멸시효의 기산점에 대해 철저히 파악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더욱 납득하기 힘든 점은 이 사건 소송의 1심 재판부가 더케이손해보험 측의 승소 판결을 내리며 소멸시효 만료 부분에 대해 간과했을 정황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사고발생 4년 넘긴 뒤 피의자에 구상금 청구 소송 제기한 더케이손보

남성 K씨는 2010년경 더케이손해보험(이하 더케이손보)의 한 자동차종합보험 상품에 가입했다.

이 상품에는 자동차 상해 특약이 포함돼 있었고, 이는 K씨와 그의 배우자 및 자녀들이 무보험차량에 의해 교통사고를 당했을 경우 약관상 지급기준에 의해 보험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여기서 무보험차량은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상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책임보험 외에 자동차종합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은 차량을 말한다.

그런데 지난 2012년 4월 어느 날 K씨의 자녀는 귀갓길에 도로를 무단횡단했고, 그 과정에서 교통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K씨의 자녀에 사고를 낸 사람은 B씨였고, 그는 자신이 아닌 A씨 소유로 등록된 차량을 운전 중이었다.

당시 B씨가 사고를 낸 A씨 소유의 차는 손해보험사인 D사의 책임보험에만 가입됐고, 종합보험에는 가입돼 있지 않은 무보험차량이었다.

A씨는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 제3조에 따라 이 사건 차량의 운행자였고, B씨는 해당 차량을 직접 운전하며 사고를 일으킨 사람으로서 당시 사고는 두 사람의 공동불법행위에 해당했다.

K씨 측은 자녀의 사고가 자신이 가입한 더케이손보의 자동차종합보험 상품의 약관상 자동차 상해에 대한 보험금 지급 사례에 속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에 더케이손보 측에 보험금을 청구했고, 정상적으로 지급받을 수 있었다. 더케이손보는 곧바로 A씨와 B씨의 책임보험사인 D사에 대인배상 한도액만큼을 구상금으로 지급받았다.

보험금 지급에 있어 소멸시효 기간은 상식 중의 상식이다. (사진=연합)
피보험자인 K씨의 자녀가 보험금을 지급받은 만큼, 더 이상 A씨와 B씨의 K씨 자녀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은 없어졌다.

다만 앞서 언급한 상법 제682조에 따라 더케이손보는 K씨 자녀가 A씨·B씨에 가졌던 법률상 손해배상청구권을 취득할 수 있었다.

이에 더케이손보 측은 자사가 K씨 자녀 측에 지급한 전체 보험금에서 K씨 자녀가 무단횡단으로 교통사고 발생에 기여한 과실비율 부분 그리고 자신들이 D사에 구상해서 받은 금액을 공제한 나머지 손해배상액을 A씨·B씨 측에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에 관련 소장이 접수돼 본격적으로 소송이 시작된 시기는 지난 2016년 7월이었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교통사고 피해·피의자와 이들의 보험사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매우 일반적인 구상금 청구 소송으로서 전혀 문제 삼을 부분이 없었다.

이에 이 사건의 1심 재판을 맡았던 재판부는 A씨와 B씨 측에 패소 결정을 내리며, 더케이손보 측 청구금액 및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런데 A씨와 B씨는 1심 재판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며 항소했다. 항소 요지는 K씨 자녀의 과실비율이 지나치게 낮게 책정됐거나, 더케이손보 측 청구금액에 납득할 수 없어서도 아니었다. 두 사람의 항변은 바로 ‘소멸시효’에 향했다.

A씨·B씨는 이 사건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면서 더케이손보 측의 구상금 청구가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책임의 소멸시효 기간인 3년이 경과한 후 제기됐다고 주장했다.

때문에 더케이손보 측이 자신들에 대한 손해배상채권은 소멸시효가 완료가 돼 애당초 행사할 수 없었다는 입장이었다.

소멸시효는 이미 오래 전 만료됐음에도 제기된 소송

앞서 언급한 대로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상 구상금 등의 청구에 대한 소멸시효 기간은 3년으로, 그 소멸시효의 기산점은 보험사가 보험자대위에 따라 손해배상채권을 얻게 되는 때부터가 아닌 보험계약자(피보험자)의 사고 발생일이다.

정리해 보자면 B씨가 A씨의 차량을 몰고 K씨의 자녀에 사고를 낸 날은 2012년 4월경이었다. 이때가 사고 발생일이며 소멸시효의 기산점이었다.

그런데 더케이손보가 A씨·B씨 측에 이 사건 구상금 청구 소송을 제기한 시점은 지난 2016년 7월로, 사고 발생일로부터 무려 4년 3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난 후였다.

당연히 이는 대법원 판례, 상법과 민법,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 어느 법적 측면에서 보더라도 명백히 소멸시효가 만료된 후 제기된 소송으로서 기각 사유에 해당했다.

최근 이 사건 항소심 판결을 내린 재판부는 “K씨 자녀는 사고 발생일인 2012년 4월에 그 손해 및 가해자를 알았다고 보이므로, 더케이손보 역시 그 무렵 그 손해 및 가해자를 알았다고 봐야 한다”라며 “이 사건 소송이 그로부터 3년이 경과한 2016년 7월 제기됐고, 그렇다면 더케이손보의 A씨·B씨에 대한 손해배상채권은 소송 제기 무렵 이전에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라고 밝혔다.

이에 더케이손보 측은 항소심에서 패소 판결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번 사례는 보험자대위에 의해 보험사가 보험계약자(피보험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을 양도받았을 때, 이에 대한 소멸시효는 보험계약자가 가지고 해당 손해배상청구권을 가지고 있던 시점까지 모두 포함해야 한다는 점을 제대로 보여줬다는 설명이다.

무엇보다 소멸시효에 대해 보다 더 잘 알았어야 했던 보험사가 구상금 청구에 대한 소멸시효가 한참이나 지난 상태에서 보험의 소멸시효에 대해 잘 모르는 일반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는 점에 있어, 더케이손보 측은 이에 대한 반성과 비판을 피해갈 수 없다는 지적이다.

한민철 기자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