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 가시화된 대북 경제협력…이끄는 공기업 뒤따르는 사기업은?

남북 철도 사업, 유력 1순위…유엔 안보리 제재에 빠져 있어

도로 인프라 사업도 재개 가능성 높아…문산-개성 고속도로 착공?

철도 테마주 대아티아이·대호에이엘, 도로 테마주 SG·스페코 각광

대북 사업 진행했던 범 현대그룹, 다시 기지개 켤 수 있나

이번 판문점 선언은 ‘비핵화’에 방점이 찍혀 있었기 때문에 경제협력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은 제시되지 못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공동번영을 이룩하기 위해 10·4 선언에서 합의된 사업들을 적극 추진해 나가며 1차적으로 동해선 및 경의선 철도와 도로들을 연결하고 현대화해 활용하기 위한 실천적 대책들을 취해 나가기로 했다”며 인프라 정비를 우선적으로 진행할 것으로 명시했다.

앞서 2007년 10.4 남북선언에서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빠른 시일 안에 개성공업지구 1단계 건설 및 2단계 개발 착수 ▦문산-봉동간 철도화물수송 시작 ▦통행·통신·통관 문제를 비롯한 제반 제도적 보장조치 조속히 완비 ▦개성-신의주 철도, 개성-평양 고속도로 공동 이용을 위한 개보수 문제 협의·추진 등에 합의한 바 있다.

철도와 도로 등 운송 인프라 분야가 이번 남북 정상회담에서 직접 언급되면서 해당 산업을 담당하고 있는 공기업 및 사기업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러한 기대감이 반영되면서 관련 기업에 대한 주가도 들썩이는 형국이다. 아울러 대북 관련 사업을 진행했던 현대그룹의 행보도 관심사다. 현대그룹은 대북사업 전면 중단 이후 여러 요인이 겹치면서 자산규모가 12조 원대에서 2조 원대로 급감했다. ‘북한’을 지렛대 삼아 날아오를 기업들의 귀추가 주목되는 상황이다.

유엔 제재 포함되지 않은 철도…경협 1순위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그동안 철도 시설 개선에 대한 의지를 꾸준히 보여 왔다. 김 위원장은 2016년 신년사에서 이례적으로 ‘철도 현대화’를 명시했고 삼지연선(혜산-삼지연) 확장 공사 진행과정을 수시로 보도하며 선전한 바 있다. 올해 신년사에서도 “철도 운수 부문에서 수송 조직과 지휘를 과학화, 합리화해 현존 수송능력을 최대한 효과 있게 이용하며 철도의 군대와 같은 강한 규율과 질서를 세워 열차의 무사고 정시 운행을 보장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김 위원장이 철도를 강조하는 이유는 북한의 가장 잘 발달된 운송수단이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철도의 수송 분담률은 여객의 74%, 화물의 90%에 달한다. 도로는 각각 24.9%, 6.1%에 불과하다. 그러나 속도는 평균 시속 15~50km에 그치고 있는 상황이다. 김 위원장도 이를 의식한 듯 남북정상회담에서 “평창동계올림픽에 갔다 온 분들이 평창 고속열차가 다 좋다고 하더라. 남측의 이런 환경에 있다가 북에 오면 참 민망스러울 수 있겠다”고 솔직하게 밝히기도 했다.

철도가 남북 협력의 마중물이 될 확률이 높은 이유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안보리 결의에 공공인프라는 제외돼 있다. 남한의 철도 산업을 담당하고 있는 코레일의 오영식 사장이 지난 2월 취임 일성에 남북 철도 협력을 언급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동해선과 경의선 철도 연결 및 현대화가 판문점 선언문에 명문화되면서 담당 기관인 코레일은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이미 코레일은 지난 3월 초 남북 철도 연결 사업을 전담하는 ‘남북 대륙 사업처’를 신설하며 동해·경의선 운행 재개를 위한 실무 작업을 벌여왔다. 코레일에 따르면 경의선은 2008년까지 화물차가 다녔기 때문에 긴급 점검 및 보수 작업이 이뤄지면 바로 열차가 다닐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동해선의 경우 고성 제진~강릉 구간 및 북측 구간 신설 사업에 약 6~7년 가량 걸릴 것으로 보고 있어 동해선이 완전히 연결하기까지는 시간이 다소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철도연)도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다. 현재 한국·중국·유럽 철도는 표준궤(1435mm)이고, 러시아철도는 광궤(1520mm)로 궤도의 폭이 85mm의 차이가 있다. 한국철도가 러시아 철도를 지나가려면 바퀴를 갈아 끼우거나 환승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이미 철도연은 러시아 국경에서 환승, 환적, 바퀴 교환이 필요 없는 궤간가변대차를 개발했다. 지난달 18일에는 러시아철도연구원과 철도 연구개발 및 기술협력 증진을 위한 MOU를 체결하는 등 대륙철도 호환성을 증대시키기 위해 발 빠르게 대응 중이다.

주식시장에서는 고속열차와 지하철 열차를 제작하는 현대로템, 철로 관련 제품을 생산하는 대아티아이 등이 각광을 받고 있다. 대아티아이는 철도신호제어 시스템을 국산화, 철도교통관제시스템을 수주 및 완공한 회사다. 지난해 기준 부채비율이 41.3%로 무차입 경영 등으로 재무구조가 안정적이라는 점도 투자자들의 관심 요인 중 하나다.

철도차량의 골격 및 외관을 구성하는 철도차량용제품을 생산하는 대호에이엘도 관심 종목이다. 대호에이엘의 경우 지난 3거래일 동안 유가증권 시장에서 약 71%가 급등하며 투자경고 종목으로 지정 예고되기도 했다. 이밖에 철도 자동차 시스템을 공급하는 푸른기술, 철도 검수장비를 생산하는 정밀기계장치 기업인 에코마이스터 등의 주가가 폭등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에 거래소는 남북 경협주에 대해 투자주의 종목 지정을 통해 주식시장을 안정화시키려 하고 있다. 이경민 대신증권 마켓전략실 팀장은 “남북 평화체제가 확립된 후 경제협력이 가시화돼야만 한국 경제와 증시에 긍정적 변화가 생길 것”이라며 신중론에 무게를 싣기도 했다.

문산에서 개성 가는 길 먼저 뚫리나…도로공사, 준비 박차

대북 철도 사업을 코레일이 주도적으로 준비하고 있다면 한국도로공사는 도로 인프라 구축 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통계청이 2017년 발표한 북한의 주요 통계지표에 따르면 2016년 말 기준 북한의 도로총연장 길이는 2만6176km로 남한 10만8780km의 4분의 1 수준이다. 고속도로 길이는 774km로 남한 4438km의 6분의 1가량이고 고속도로를 제외한 도로포장률은 10% 남짓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도로 관련 특정 지역은 언급되지 않았다. 그러나 10.4 남북선언에 포함된 개성-평양 고속도로를 비롯해 문산-개성 고속도로 건설이 추진된 바 있어 이들 도로에 대한 공사가 우선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미 평양에서 신의주를 잇는 국도가 있는 상황에서 앞서 언급한 고속도로가 이어진다면 차로 부산에서 신의주까지 주행이 가능하다. 앞서 국토부는 지난 2015년 문산-개성 고속도로 사업을 추진했으나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논의가 중단됐다.

도로공사는 이미 사전준비에 나선 상태다. 지난 3월 이강래 한국도로공사 사장은 기자간담회에서 “통일 이후는 정부정책이 중요한 만큼 관련 상황에 대비할 수 있도록 모든 준비를 다할 것”이라며 “도로관련 분야는 북한 업무를 담당하는 전문가들과 관련 자료를 많이 갖추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이 사장은 “개인적으로 북한을 평상시에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고 본다”며 사업 진행에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김대중 정부 시절 국정원 기획실장과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내는 등 북한 사정에 대해 밝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도로공사는 문산-개성 고속도로 건설 재개 등 북한과의 협력을 위해 남북 접경지역에 도로를 놓은 전담조직(TF)을 설치해 준비하고 있다.

관가에서는 오영식 코레일 사장과 이강래 도로공사 사장이 잔뼈가 굵은 정치인 출신이라는 점에서 여건이 조성된다면 사업 진행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하는 눈치다.

주식시장에서는 도로유지보수, 공항, 항만시설 등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핵심자재인 아스콘 사업을 하고 있는 SG가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SG는 지난달 27일부터 지난 2일까지 3거래일 동안 주가가 56.83% 올랐다. 같은 기간 코스닥 지수가 0.95% 하락했다. 남한과 북한 도로를 연결했을 때 수혜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 주가 상승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같은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스페코 역시 10~15% 가량 급등하고 있다. 고규격 가드레일, 강성차등형 DS 가드레일, 교량용 강재방호책 등을 생산하는 다스코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다스코는 DS가드레일 등 국토부로부터 성능인정을 받은 신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범 현대가 기지개 켜나…현대건설·현대아산ㆍ현대로템 장밋빛 전망

‘판문점 선언’ 이후 남북 경협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면서 재계에서는 과거 대북 사업에 깊숙이 관여했던 범 현대그룹의 행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그 가운데 ‘판문점 선언’에 언급된 철도와 도로 관련 현대건설, 현대로템, 현대엘리베이터 등 범 현대가 기업들의 앞날이 주목되는 상황이다. 대북사업을 전담했던 현대아산의 2대 주주인 현대건설은 1997년 북한 신포지구에서 착공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원전 사업의 시공 주관사를 맡은 경험이 있다. 이밖에 평양 유경 정주영체육관, 금강산 면회소, 개성공단지구 직업훈련센터 및 폐수종말처리시설, 남북 경제협력 협의사무소 숙소 등을 약 7000억 원 규모의 건설 사업을 수행했다. 특히 남북 경협의 경우 민간 사업과는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북한에서 수차례 공사 경험이 있는 현대건설이 이점을 발휘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안나 골든브릿지 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지난달 30일 “이번 남북정상회담 및 북미정상회담의 최고 수혜 섹터는 건설섹터가 될 것”이라며 “관계 개선시 도로, 철도 등 인프라 투자의 시작이 가장 먼저 이뤄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그는 “건설업종 전체적으로 같은 움직임을 보이겠지만 현대건설의 경우 북한 내 공사 경험(금강산 개발, 개성공단, 체육관, 경수로 사업 등)이 가장 많기 때문에 당장 그 수혜는 현대건설을 중심으로 가게 될 것으로 판단한다”고 덧붙였다. 현대건설 측은 상황을 관망하고 있지만 경협이 구체화될 경우 사업에 뛰어들 계획으로 알려졌다.

개성공단 운영과 금강산 사업을 진행했던 현대아산이 긴 부진의 터널에서 탈출할지 여부도 관심사다. 현대아산은 지난 2000년 북한의 대외 경제 협력을 담당했던 조선아시아태평화평화위원회로부터 7개의 SOC 사업권을 획득한 바 있다. 그 당시 현대아산에게 주어진 7개 사업권은 ▦금강산관광지구 토지이용권 ▦금강산관광지구 관광사업권 및 개발사업권 ▦개성공업지구 토지이용권 ▦개성공업지구 개발사업권 ▦개성관광사업권 ▦백두산관광사업권 ▦SOC개발사업권 등이었다. 최소 30년 이상 운영할 권리도 보장받았다. 재계에서는 현대아산이 북한에 지불한 금액이 최소 5억 달러(약 5350억 원)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현대아산의 상황은 좋지 않다. 2008년 박왕자씨 피살 사건으로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면서 사업이 중단된 현대아산은 1000명이 넘던 직원이 현재는 157명에 불과하다. 80%가 넘는 직원들이 사세가 기울면서 회사를 떠났다. 당시 대북 업무를 맡았던 직원들도 상당수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그 사이 현대아산의 지난 10년간 누적 영업손실은 2000억 원에 달하는 수준이다. 협력기금 등의 정부의 지원이 필수적인 상황이다.

업계에 따르면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경색된 남북관계가 풀리자 현대그룹은 올 초부터 현대아산을 중심으로 사업 재개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그룹이 본격적인 행보를 보일 시점은 오는 8월경으로 예상되고 있다. 남북이 합의한 8.15 광복절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계기로 북측과 대북사업 재개에 대한 의견 등을 나눌 기회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대북사업을 진두지휘했던 고 정몽헌 회장의 15주기에 맞춰 8월 방북을 추진할 계획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그룹 측은 빠르면 내년 봄을 전후해 사업 재개가 이뤄질 것을 희망하고 있다.

또 다른 범 현대가인 현대로템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현대로템이 남북 경협의 대표적 수혜주로 떠오르는 이유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고속철도 차량과 장거리 여객 및 운송용 철도 차량 제작 경험을 갖춘 기업이기 때문이다. 증권가에서는 현대로템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공존한다. 황어연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지난 2일 “남북 철도 연결 기대감으로 최근 일주일 동안 주가가 33.8% 상승했다”며 “북한 핵심 철도 사업 개발비는 23조 5000억 원으로 추산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철도차량 발주액은 총 사업비 30%로 추정하면 7조 1000억 원으로 예상한다”며 “현대로템은 연간 1조원 수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황 연구원은 그러면서 현대로템의 적정 시가총액을 본업가치 1조 6000억 원과 남북 경협에 따른 기업가치 상승 효과를 합산해 2조 3000억 원이라고 추정하는 등 밝은 전망을 내놨다.

반면 정동익 KB증권 연구원은 지난 3일 “남북 철도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더라도 계획이 구체화하고 철도 차량 발주가 나오기까지 최소 5년 이상이 걸릴 것”이라며 신중한 투자를 주문했다. 아울러 정 연구원은 “군사적 긴장 완화나 군축협상 등으로 발전되면 현대로템은 K2 전차와 차륜형 장갑차 등을 생산하는 방산부문에서 부정적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며 대북 철도사업이 현대로템에서 마냥 호재가 아닐 수도 있다는 분석도 제시했다.

장밋빛 전망이 증시 상승에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지만 넘어야 할 산은 많다. 5월 중으로 예정된 북미회담에서 확실한 결과물이 도출돼야 하는 최우선 선결 조건에 유엔 대북 제재 해제도 필수적이다. 이어 가을로 예정된 남북 정상회담에서 구체적인 로드맵이 나와야 경협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허인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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