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 부품교체&책임보험금 지급’ 사고인데, 경미하다고(?)

경미한 자동차 사고, 사고로 단순 복원수리만 수행할 경우

복원수리+부품교체+책임보험금 지급 사유 발생, 경미한 사고 벗어나

메리츠화재, ‘경미하지 않은 자동차 사고’ 조건 전부 갖춘 차량 사고에 황당한 판단

경미한 자동차 사고에 대해 오판해 책임보험금 변제를 거부한 메리츠화재의 사례가 밝혀졌다. (사진=연합)
한민철 기자

‘경미한 자동차 사고’에 대해 명확한 판단을 내리지 못한 채 책임보험금 변제를 회피한 메리츠화재(대표 김용범)의 사례가 최근 밝혀졌다.

차량 간 접촉사고가 났을 때 운전자들은 자신들이 가입한 자동차(또는 운전자)보험사에 연락해 사고접수를 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렇게 자동차 사고로 인해 보험처리를 하게 된다면, 그 사고의 규모나 횟수, 과실 비율에 따라 향후 운전자들이 납부하게 될 보험료가 더욱 늘어날 수 있다.

단순히 차량 외부가 긁혔거나 운전자가 약간의 두통 및 기타 통증을 호소하는 등 ‘경미한’ 수준의 사고라면, 보험처리로 인해 할증될 보험료보다 사고 당사자들 간 개인적 합의로 지출되는 금액이 더 낮을 수 있다.

이에 사고 운전자들 중에는 보험처리를 하지 않고 사고 당사자 간 개인적 합의로 마무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데 이 개인적 합의에는 다소 복잡한 문제가 생긴다. 바로 경미한 사고가 과연 어느 정도까지인 것이냐는 점 그리고 사고 당사자 간의 과실 비율과 합의금을 어떻게 책정하느냐의 부분이 그것이다.

어떤 사고 운전자들은 단순히 외관의 긁힘 현상만을 경미한 사고로 보고, 차량 도색을 위한 금액만을 합의금으로 주고받을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사고로 신체 일부에 찰과상이 생긴 것을 경미한 것으로 보고, 병원 진료비 및 약값 정도를 대략적으로 판단해 합의금으로 제시할 수 있다.

물론 개인적 합의를 보고 사고 현장을 떠난 뒤 차량에서 추가로 다른 사고 흔적을 발견할 수도 있다. 또 사고 당시에는 느끼지 못했지만 후유증으로 인해 나중에 사고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기도 한다.

그만큼 경미한 수준의 사고란 운전자들이 판단하기에 적절하지 못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보험처리를 통해 보험사들의 몫으로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문제는 보험사들과 자동차 정비업체들마저도 이 경미한 사고의 기준에 대해 일관된 판단을 내놓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보험소비자들이 그 경미한 사고의 정의와 사례에 대해 한 발 앞서 숙지할 필요성도 있다는 의미다.

보험개발원 자동차기술연구소에서 명시하고 있는 경미한 사고로 인한 자동차의 손상이란 크게 자동차 외관의 코팅막이 벗겨지거나, 코팅막과 함께 도장막(색상)이 함께 손상이 간 경우 그리고 긁힘이나 찍힘으로 범퍼소재 일부에 손상이 난 경우가 있다.

이런 경미한 사고로 인한 차량 손상의 경우, 차량의 부품을 교체할 필요가 없이 단순 복원수리로 마무리되는 것이 보통이다.

다만 사고로 인해 발생한 손상이 향후 차량의 기능과 안전성 및 내구성 등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판단이 선다면 이는 경미한 수준을 벗어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때는 단순히 차량 복원뿐만이 아닌, 범퍼 등 부품의 교체를 통한 수리까지 진행하게 된다.

경미한 수준의 자동차 사고는 단순히 사고로 인한 차량의 손상 정도를 판단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 시행령’에 따라 운전자 등이 자동차 사고로 책임보험금을 지급 대상에서 규정하는 상해를 입게 됐다면, 이는 상해에 따르는 대인배상이 필요 없는 경미한 사고와는 다른 그 이상의 사고로 바라봐야 한다는 의미다.

차량 부품교체와 운전자 타박상의 결과를 초래한 교통사고는 경미한 수준을 벗어났다고 봐야 한다. (사진=연합)
정리해 보자면, 자동차 사고로 인해 차량의 복원수리뿐만 아니라 안전 및 내구성을 위한 부품교체까지 필요한 상황이자, 해당 사고 차량의 운전자가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 시행령’에 따른 책임보험금 지급 내용의 상해를 입었다면 이는 결코 경미한 사고로 볼 수 없다는 설명이다.

안타깝게도 경미한 사고의 정의에 대해 오해하는 보험사들의 사례가 여전히 있는 만큼, 선량한 보험소비자들이 이 경미한 사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면 향후 피해를 볼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

차량 부품교체&타박상 겪은 운전자, ‘경미한 사고’ 수준 벗어나

지난 2016년 말 A씨는 늦은 시간까지 술을 마신 뒤, 대리운전을 불러 자신의 차와 함께 귀가를 서두르려 하고 있었다.

당시 A씨 차량의 대리운전사인 B씨는 해당 차를 운전해 경기도 용인시 인근을 지나고 있었다. 늦은 시간으로 도로에 차량통행이 많지 않았던 만큼, B씨는 신호를 위반한 채 한 아파트 앞 교차로를 지나치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이 교차로에서 신호에 따라 좌회전을 시도하고 있던 C씨 차량이 B씨가 운전하던 차와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양측은 사고 현장에서 각자 차량의 자동차종합보험 계약을 체결한 보험사에 사고접수를 요청했다.

향후 양측의 보험사들은 당시 B씨의 신호위반 과실이 사고 원인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고, C씨 차량의 과실비율은 없거나 매우 적다는 점에 동의했다.

당시 사고로 단순 타박상을 입은 C씨 그리고 그의 차량에 동승하고 있던 D씨는 자동차종합보험사로부터 상해로 인한 책임보험금(대인배상Ⅰ) 60만원을 지급받았다.

C씨는 통증과 두통, 어지러움 증세를 호소했고, D씨 역시 어깨와 목, 무릎 부위에서 통증을 느끼는 등 사고 후유증도 남겼다.

특히 C씨의 차량은 당시 사고로 앞 범퍼가 손상되며 약 200만원의 수리비가 발생했고, A씨 차량도 앞 범퍼 커버 교환 등으로 80여만원의 수리비 견적이 나오게 됐다.

그만큼 당시 사고는 단순히 차량 외관의 긁힘 또는 색상 손상 따위의 경미한 수준이 아니었던 것이 분명했다.

C씨 차량과 자동차종합보험계약을 맺고 있었던 보험사는 당시 A씨 차량 운전자의 과실로 발생한 사고로 인해 C씨 및 D씨에 60만원의 책임보험금을 지급했다는 이유로, A씨 차량의 자동차종합보험사인 메리츠화재해상보험(이하 메리츠화재)에 해당 책임보험금 상당을 변제해 달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메리츠화재 측은 자사가 해당 책임보험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며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당시 사고가 경미한 접촉사고에 불과했고, 이는 C씨와 D씨에게 치료를 요하는 상해가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입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 책임보험금이 지급된 점은 자사 메리츠화재의 의사에 명백히 반하는 만큼 책임보험금을 청구에 응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결국 메리츠화재를 포함한 양측 보험사 간의 엇갈리는 입장은 구상금 청구 소송으로까지 번져 법원의 판단으로 넘어 갔다.

최근 법원은 A씨 그리고 C씨의 차량 간의 당시 사고를 경미한 접촉사고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하며, 메리츠화재 측이 상대방 보험사의 구상권 청구에 응해 책임보험금을 변제해야 한다는 결론 내렸다.

이 사건 재판부는 사고로 인해 발생한 C씨와 D씨의 증상보다, 차량의 사고 정도와 수리비에 대해 먼저 주목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C씨의 차량은 사고로 앞 범퍼가 손상돼 정비업체로부터 200만원 이상의 수리비가 청구됐고, A씨 차량도 범퍼 커버 교환으로 자기부담금 30여만원을 제외하고 80만원 가량이 수리비로 지출됐다.

이는 당연히 보험개발원 등에서 제시하는 경미한 손상의 정의 즉 ‘차량의 기능과 안전성을 고려했을 때 부품교체 없이 외관상 복원이 가능한 정도’를 뛰어넘은 수준이었다.

이에 재판부 역시 경험칙에 비춰봤을 때 당시 사고를 절대 가벼운 접촉사고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특히 당시 사고로 C씨와 D씨가 입은 타박상은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 시행령’ 별표 제1호의 14급에 제시된 ‘사지의 단순 타박상’에 해당했다.

재판부는 이것이 비록 동시행령 별표 제1호에서 제시하는 급수들 중 가장 경한 정도에 속하지만, 메리츠화재 측 주장처럼 경미한 접촉사고에서 비롯된 상해는 아니라는 지적이었다.

실제로 사지의 단순 타박상과 같이 14급에 포함되는 상해에는 ‘수족지 관절 염좌’, ‘방광과 요도, 신장, 간 등 내부장기 손상으로 수술을 시행하지 않는 상해’ 등이 있다.

이 14급의 상해로 인해 책정되는 책임보험금의 한도는 50만원으로, 이런 책임보험금이 따르는 상해를 불러일으킨 사고는 결코 경미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의미다.

결국 메리츠화재 측은 C씨 측 자동차종합보험사의 구상권 청구에 응해 60만원의 책임보험금 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을 수 있었다.

당시 사건은 자동차 사고로 인한 보상에 있어 비교적 소액이라고 할 수 있는 60만원의 지급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상당수의 운전자 심지어 보험사들도 즉각 판단을 내리기 힘든 ‘경미한 사고’에 대해 법원이 보다 명확한 기준을 제시했다는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었다.

자동차 접촉사고의 당사자들 간 해당 사고가 경미하다고 느껴질지라도, 차량의 사고 정도가 안전성 등을 고려했을 때 부품교체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온다면 이는 결코 경미한 사고가 아니라는 점을 반드시 숙지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김용범 메리츠화재 대표. (사진=연합)
특히 사고로 인해 운전자가 치료를 요하지 않는 단순한 타박상만을 입었다고 할지라도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 시행령’ 별표 제1호에 따라 책임보험금 50만원 한도의 금액이 책정되는 만큼, 이 역시 절대로 경미하다고 판단해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다행히 앞서 언급한 사례에서 C씨의 경우 자동차보험사가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해 줬다.

그런데 만약 차량과 차량 간 접촉사고가 아닌 단독 추돌사고를 겪은 운전자가 사지에 타박상을 입었고 차량 범퍼가 안전을 위해 교환이 필요할 정도였음에도 불구하고, 앞선 메리츠화재 측의 경우처럼 이를 경미한 사고로 규정하는 자동차보험사를 만난다면 향후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한 채 사고로 인한 고통을 그대로 떠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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