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시효 중단∙갱신에도 소송… 채무변제 압박용(?)

민사 금전 채권, 소멸시효 만료 기간은 10년

10년 사이 소멸시효 중단 가능

D은행, 소멸시효 중단하는 사유 중 ‘채무승인’ 제대로 파악 못했나

민사상 금전 채권에 대한 소멸시효 중단의 사유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채무자에 무리한 소송을 제기한 국내 대표은행의 사례가 밝혀졌다. *사진 속 은행은 기사 속 은행과 관련 없음. (사진=연합)
한민철 기자

민사상 금전 채권에 대한 소멸시효 중단의 사유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채무자에 무리한 소송을 제기했고, 결국 최근 법원으로부터 소 제기에 대한 기각 판결을 받은 D은행의 사례가 밝혀졌다. 그 과정에서 국내 대표은행 중 한 곳으로서 기본적으로 숙지해야 할 민법상 원칙을 파악하지 못했고, 채무자에 무리한 소송으로 채무 변제를 압박했다는 의심을 받을 수 있는 정황이 드러났다.

A라는 사람이 B라는 사람을 상대로 10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법원에 제기했다고 가정해보자.

두 사람의 재판에서 “B는 A에게 1000만원을 배상하라”라는 A 측 승소 취지의 판결이 내려졌다면, A에게는 B로부터 1000만원을 받을 수 있는 금전 채권이 발생한다.

그런데 A에게는 안타깝게도 B로부터 1000만원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변제가 완벽히 마무리될 때까지 주어지지는 않는다. 민법 제162조 제1항에 따라 법원의 승소 판결에 따른 민사상 채권은 10년 간 행사하지 않으면 그 소멸시효가 완성된다.

이는 곧 A의 B로부터 1000만원을 받아낼 수 있는 권리는 법원 판결이 확정된 후 10년의 기간으로 한정되며, 쉽게 말해 1000만원을 전부 받고 싶으면 10년 내에 받아내라는 의미다.

이 민사 채권의 소멸시효는 청구 종류에 따라 단기로 정해지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 10년이 적용된다.

또 여기서 재판부가 채무자(B)에 지급을 명령한 금액이나 이에 상당한 채권에는 단순히 채권자(A)가 청구한 금액 또는 기타 재산뿐만 아니라 여기에 따르는 이자(지연손해금)와 소송비용도 포함된다.

그런데 아무리 법원 판결로 승소해 청구금액과 이에 대한 이자 및 소송비용에 관한 채권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앞서 언급했듯이 10년이 지나면 채권자는 법률상 더 이상의 채권을 상실하게 된다.

만약 패소한 채무자가 변제 능력이 되지 않거나, 채권 지급을 이행할 의사가 없어 소위 ‘배 째라’라는 태도로 10년을 버틴다면 채권자는 원래 청구금액마저 받지 못한 채 권리를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런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한 민법상 법 조항도 마련돼 있다. 바로 소멸시효의 중단이다.

민법 제168조에 따라 채권자는 재판상 청구나 압류‧가압류‧가처분, 채권자의 화해 신청, 채무자승인 등의 이유로 채권의 시효가 완성되기 전에 소멸시효를 중단시킬 수 있다.

때문에 일반적으로 채권자는 소멸시효 만료일이 다가왔음에도 채무자로부터 금전 채권을 변제받지 못했다면, 이전 승소판결을 받았던 때의 소와 동일한 청구의 민사소송을 제기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때는 채권자의 재판상 청구에 해당함으로 소 제기와 동시에 소멸시효가 중단된다.

이처럼 10년 내에 소멸시효가 중단된다면, 민법 제178조에 따라 시효중단 전까지 경과한 기간은 포함하지 않고 중단사유가 종료된 때부터 새롭게 소멸시효가 진행된다. 재판상 청구로 인해 중단된 시효는 해당 재판의 판결이 확정된 때부터 역시 새롭게 시작된다.

정리해 보자면 채권자가 소멸시효 만료가 다가왔을 때 나머지 금전 채권을 변제받기 위해 채무자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면 해당 소멸시효를 정지된다.

어차피 앞선 판결에서 같은 청구 취지 및 이유로 승소 판결을 받았고, 이에 대한 채권 지급에 대한 소송을 다시 제기하는 것이라면 역시 법원으로부터 승소 판결이 내려질 수밖에 없다. 이를 통해 소멸시효를 다시 10년 연장시킬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원칙적으로 승소 확정판결 이후 같은 상대방에게 같은 청구이유로 소를 제기할 수는 없다.

다만 10년의 소멸시효 만료가 임박했음이 명백하다면 이와 같은 소 제기가 가능한데, 소멸시효를 중단시킬 수 있는 사유를 오해한 채 황당한 소송 남발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국내 대표은행 중 한 곳인 D은행의 사례가 그랬다. 소멸시효가 이미 중단돼 새로운 소멸시효가 진행된 사유가 있었던 것도 인지하지 못한 채, 이미 자신들이 승소 확정판결을 받은 재판 상대방에게 같은 청구이유로 소를 제기했다가 법원으로부터 ‘부적법하다’라며 기각 판결을 받았다.

D은행, ‘상당 부분 변제→채무승인→소멸시효 중단’ 몰랐나(?)

D은행은 지난 2008년 2월 K씨를 상대로 제기한 대여금 청구 소송에서 법원으로부터 승소 판결을 받았다. 당시 법원은 K씨에게 약 1억여원의 청구금액에 대해 기간별로 달리 적용되는 이자까지 합산한 금액을 D은행 측에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다음 달인 2008년 3월 중순경 소송 당사자들 간의 이의제기 없이 이 판결은 확정됐다. 이어 D은행 측은 곧바로 이 대여금 사건의 집행력이 있는 판결 정본에 따라, K씨의 급여 등에 대한 채권 압류 및 추심을 실행했다.

그렇게 D은행 측은 2008년 11월부터 2010년 8월까지 K씨로부터 수십차례에 걸쳐 4400여만원을 추심받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남은 금액은 본래 청구금액 1억여원에서 4400여만원을 뺀 나머지인 5600여만원이라고 오해할 수 있겠지만, 이 나머지 금액과 그동안의 기간별 이자 그리고 소송비용을 합산해 아직 K씨가 D은행에 변제해야 할 금액은 약 1억원이 남은 상태였다.

K씨는 지난 2010년 9월경 판결 확정에 따른 대여금에 대한 원리금 채무 및 이자 등에 대한 변제 명목으로 8000여만원을 D은행 측에 지급했다.

이후 나머지 금액에 대한 변제가 이뤄지지 않은 채, 지난 2008년 3월 판결 확정에 대한 10년의 소멸시효 만료 기한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D은행 측은 지난해 11월 K씨를 상대로 기존에 추심했거나 그가 변제한 8000여만원을 제외하고 남은 지연손해금의 지급을 구하는 지급 명령을 신청했다.

물론 K씨는 당시 이 지급 명령에 따른 경제적 능력이 되지 않았고, 이에 대한 이의신청을 했다.

결국 D은행 측은 올해 초 K씨를 상대로 법원에 대여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채무자가 당장의 변제 의사가 없음을 밝혔음에도 소송을 제기한 것은 사실상 소멸시효 중단 및 갱신의 목적의 소송이었다.

최근 법원은 D은행 측의 청구 소송을 ‘부적법하다’는 이유로 각하하는 판결을 내렸다. D은행 측이 지난해 11월 K씨를 상대로 지급 명령을 신청한 사유인 소멸시효 만료의 임박이 타당하지 않다는 이유였다.

사실 법원의 이 판단은 선뜻 납득할 수 없는 측면이 있었다. D은행과 K씨 사이의 대여금 청구 관련 판결이 확정된 것은 지난 2008년 3월이었고, 지급 명령을 신청한 시기는 지난해 11월로 10년의 소멸시효 만료까지 약 4개월 남짓한 시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법원의 이런 판단의 사유는 매우 타당했고, 오히려 D은행 측이 과연 소멸시효 중단 방법에 대해 명확히 파악하고 있는지 여부에 대해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었다.

대법원이 지난 2006년 4월 14일 선고(2005다74764)한 판결 내용에 따르면, 본래 확정판결로 승소한 당사자가 이전 소송의 상대방에게 승소 판결을 받았던 청구와 같은 이유로 소송을 재차 제기한다면 이는 권리보호의 이익이 없어 부적법하다.

지난 2008년 3월 확정판결로 승소한 D은행이 이전 소송의 상대방인 K씨에게, 자신들이 승소 판결을 받았던 청구 이유인 대여금 청구로 재차 소송을 제기한다면, 이는 원칙적으로 법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단지 대법원의 예외적 경우에 대해서도 판시했는데, 확정판결에 기한 채권의 소멸시효 만료 기간인 10년의 경과가 임박했음이 분명하다면 그 시효중단을 위한 소의 제기는 받아들일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렇다면 이 사건 재판부의 D은행이 제기한 소 기각에 대한 판단은 당시 D은행의 K씨에 대한 채권의 소멸시효 만료 기간 10년의 경과가 임박하지 않았다는 의미였다.

이 사건 재판부는 앞서 2010년 9월경 K씨가 변제한 8000여만원의 대해 채무승인을 한 것이 명백하며, 이를 통해 소멸시효가 중단돼 이때부터 다시 10년의 소멸시효가 진행된다고 결론 내렸다. 때문에 변경된 소멸시효 만료 시점은 2020년 9월이라는 설명이었다.

앞서 언급한 대로 민법상 소멸시효 중단의 사유에는 이번 D은행의 사례처럼 재판상 청구와 함께, 압류‧가압류‧가처분, 채권자의 화해 신청, 채무승인 등이 있다.

대법원의 지난 1970년 3월 10일 선고(69다401) 내용에 따라 채무자가 채무를 일부 변제하거나 담보를 제공하는 것 역시 채무승인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2010년 9월경 K씨가 나머지 금전 채권 중 상당 부분인 8000만원을 변제한 것도 채무승인으로 볼 수 있어, 이때 지난 2008년 3월부터 진행된 소멸시효 중단됐고, 채무승인이라는 소멸시효 중단 사유가 종료된 K씨가 8000만원을 변제한 이후 시점부터 다시 새로운 소멸시효가 시작될 수밖에 없었다.

이번 법원의 판결로 D은행이 채무자의 변제가 상당 부분 이뤄졌다면 소멸시효가 중단돼 새롭게 진행된다는 사실을 모른 채 채무자를 소송으로 압박했다는 비난이 제기될 수밖에 없었다. (사진=연합)
결국 D은행은 법원으로부터 올해 1월의 K씨에 대한 대여금 청구 소송에 대해 기각 판결을 받았다.

이번 사례에서 중요한 점은 D은행이 법원으로부터 소 제기에 대한 기각 판결을 받은 부분이 결코 아니었다.

D은행은 그동안 수없이 많은 대여금 청구 소송으로 인한 채권 추심을 해왔음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무자의 변제가 상당 부분 이뤄졌다면 소멸시효가 중단돼 새롭게 진행된다는 사실을 설마 모른 채 이번 일이 발생한 것이라면, 채무자의 입장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었다.

채무자 K씨는 시간을 두고 변제할 의사가 있었고 이를 위해 상당 부분 변제를 실행했다. 반면 채권자 D은행이 이로 인한 소멸시효의 중단 및 갱신이 발생했는지도 파악도 못한 채 변제를 서두르려 했다.

이는 채무자를 지나치게 압박하고, 국내 대표은행이 기초적 민법에 밝지 않아 착오를 겪기 쉽다는 우려를 낳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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