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1년 후 경제 성적표, 文 정부 성패 달려…혁신 성장 기틀 마련”

“국민이 부여한 골든타임 1년 남아…1년 후 경제 성장 위해 혁신 성장 필수”

“임기 내 ‘일감 몰아주기’라는 말 없어지고 ‘일감 나눠주기’ 관행 정착되길”

“공정거래법 개정은 재벌 개혁 위한 수단 아냐…시스템 구현이 공정위 역할”

“1조원 대 과징금 퀄컴 비견하는 사건 다루고 있어”… 구글 겨냥?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임기 2년차를 맞이해 향후 공정위가 가야 할 방향과 과제를 밝혔다.

지난 19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현 정부 공정거래정책 1년의 성과와 과제’ 세미나 기조 강연에서 김 위원장은 “현 정부 경제정책의 세 축인 소득주도 성장, 혁신 성장, 공정 경제가 같은 속도로 하나의 세트로 맞물려 돌아갈 수 있도록 만들겠다”며 “이 가운데 혁신 성장을 위한 생태계 구현의 주도적인 역할을 공정위가 맡아야 한다”고 밝혔다. 향후 공정위가 혁신 성장을 위한 기틀 마련에 총력을 다할 뜻을 내비친 것이다.

김 위원장은 앞으로 1년을 문재인 정부 성공의 골든타임으로 규정했다. 그는 “지방선거 이후 많은 분들이 국정 동력이 커졌다고 얘기하지만 경제 정책 측면에서 국민들이 현 정부에 부여한 시간은 길어봐야 1년밖에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내년 이맘때 즈음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현 정부는 굉장히 큰 위험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고 개혁에 박차를 가할 뜻을 밝혔다.

김 위원장은 시장 지배적 사업자의 남용 문제에 대해서는 소기의 성과가 있을 것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는 “시장감시국에서 여러가지 사건을 하고 있고 이 중 위원회 안건으로 상정한 사건도 있다”며 “퀄컴 제재와 비견되는 결과를 낼 수 있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 지배적 지위를 이용해 모바일 게임업체나 이동통신사에 압력을 행사한 구글과 애플을 지칭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으로 인한 대기업의 우려에 대해서도 한 마디 했다. 김 위원장은 “공정위가 공정거래법만으로 재벌개혁을 하겠다고 자임해서는 안 된다고 오랫동안 주장했다”면서 “재벌개혁을 위한 법률적 수단, 사적 규제수단으로 공정거래법 개정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다. 개정안이 발표되면 시민단체에서 비판을 더 할 것”이라며 재계의 우려를 일축했다.

“1년 후에 국민이 체감하는 성과 만들지 못하면 文 정부 위험 직면”

김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 경제 정책인 소득주도 성장·혁신성장·공정경제, 세 가지 축 가운데 혁신 성장을 위해 공정위가 앞장설 뜻을 밝혔다. 그는 “공정위는 공정경제는 물론이거니와 경쟁 주체자로서 미래의 새로운 경쟁, 혁신의 생태계를 만들어내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맡아야 한다”면서도 “혁신 성장을 이루기 위한 수단과 기반들은 많은 이해관계자들의 반대에 부딪힐 수 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 소득주도 성장은 현 정부 지지자들의 성원을 받을 수 있는 반면, 혁신성장을 위한 규제 개혁은 현 정부 지지자들로부터 비판받을 수 있는 요소가 많다는 것이다. 가령 현재 국회에 계류돼 있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 개혁입법은 현 정부 지지자들과 지금의 여당이 과거에 반대했던 법안들이기 때문이다.

험난한 과정이 예상되지만 김 위원장은 총대를 맬 뜻을 분명히 했다. 그는 “오만한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경쟁 당국의 책임을 지고 있는 제가 (혁신 성장을 위한) 과제의 상당부분을 담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혁신 생태계를 확보하기 위해 한국 경제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내는 것이 공정위의 본연의 역할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혁신 성장을 위한 개혁에 속도를 가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 시간을 들었다. 그는 “현 정부 임기가 4년 남았지만 1년 동안 국민들의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현 정부는 큰 위험에 직면할 것”이라며 “1년 후 경제 성적표, 특히 일자리 측면에서 성과를 만들어내려면 소득성장뿐만 아니라 혁신 성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은 현 정부 경제팀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며 경제성장을 위해 혁신 성장이 필수적임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현 정부는 촛불혁명으로 탄생했고 국민 한분 한분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것이 현 정부의 책무다. 그러나 정책 자원은 제한돼 있기 때문에 국민들이 요청하는 모든 것을 정책으로 다 담을 수 없다”며 “지지자들이 반대할 수 있는 정책을 어떻게 우선순위로 배치하고 일관되게 집행할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공정거래법으로 재벌개혁 못해…시스템 구축할 것”

공정위는 38년만에 공정거래법을 전면 개정할 준비를 하고 있다. 재계에서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과도하게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공정거래법 개정은 결코 재벌개혁을 위한 법적 기반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라며 “기본적으로 이해당사자들 사이에서 사적 자치에 의해 해결되는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것이 오히려 경쟁당국의 본연의 역할이어야 하고 공정위가 공정거래법만으로 재벌개혁을 하겠다고 자임해서 안 된다고 오랫동안 주장했다”고 재계의 우려를 일축했다.

그러면서 “공정위가 일을 하고자 할 때 얼마만큼 절차적 투명성을 확보하고 피조사기업 등의 방어권을 보장할 것인가, 절차법을 21세기 상황에 맞게 현대화하는 것이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의 보다 핵심적인 과제”라며 “오히려 한 달 후 발표될 개정안 내용을 보면 기업 옥죄기라는 비판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저의 친정격인 시민단체에서 비판이 더 많이 나올 것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수년간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일감 몰아주기에 대해서는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김 위원장은 “경제학자로서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구축하는 사적재산권을 보호하고 사적자치의 권리를 존중하는 것은 제 신념이다. 동시에 그 위에 공정경쟁의 기반이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한국 경제에서 일감몰아주기는 공정경쟁을 훼손하고 있다. 국민 대다수가 종사하고 있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영역에서 새로 혁신이 출연할 수 있는 기반을 붕괴시키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최근 진행한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논란이 된 비주력·비상장 계열사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김 위원장은 “기본적으로 문제 삼은 부분은 주력사업이 아닌 비상장인 상태에서 대주주 일가가 다수 지분을 보유하면서 계열사들의 일감 몰아주기로 이익을 얻고 관련 분야의 경쟁을 저해하는 공정거래를 해치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몇 가지 업종을 예시로 들며 비상장 계열사가 많은데 각 그룹에서 이런 업종을 왜 해야 하는지를 설명해 주시고 왜 대주주 일가가 보유해야 하는지 설명해 달라고 했다”며 “이게 시장과 사회에 납득이 안 된다면 다른 방안(매각·계열 분리)을 고민해 달라는 취지로 말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일감 몰아주기’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첫째 소망”이라며 “임기가 마무리될 때는 ‘일감 나눠주기’, ‘일감 개방’이 우리사회의 거래 관행으로 자리 잡도록 만드는 것이 가장 큰 희망사항”이라고 밝혔다.

“퀄컴 사건에 비견될 만한 사건 다루고 있어”…구글? 애플? 업계 촉각

이번 세미나에서 또 하나 관심이 모아지는 발언은 ‘퀄컴 사건’이었다. 김 위원장은 “재벌 개혁이 주목받고 있지만 시간이 흐르고 난 다음 교과서에 남는 사건들은 카르텔과 같은 사건”이라며 “직원들에게 긴 호흡으로 가자고 독려한다”며 퀄컴 사건을 언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사건으로 시장 경쟁을 제한했다며 퀄컴에 역대 최고 과징금인 1조311억 원을 부과했다. 공정위 역사상 단일 사건으로는 최대 규모의 과징금이었다.

김 위원장은 “시장 감시국에서 여러 가지 사건을 하고 있고, 이 중 위원회 안건으로 상정한 사건도 있다”며 “퀄컴 제재와 비견되는 결과를 낼 수 있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해당 사건이 무엇인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세계 최대 IT기업 중 하나인 구글과 애플의 시장지배력 남용 행위 여부를 지칭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과거 김 위원장은 구글과 애플 등 IT 플랫폼 사업자들이 독점적 시장 지배력을 바탕으로 법 위반 행위가 있는 지 여부를 들여다보고 있다고 수차례 밝힌 바 있다.

업계에서는 특히 구글이 김 위원장의 사정권에 들어온 것 아니냐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공정위는 올해 초 국내 모바일 게임 개발과 유통 업체들을 상대로 ‘모바일 게임 유통플랫폼 공정거래 실태 조사’를 했다. 취임 1주년 간담회에서도 구글의 게임 플랫폼 시장 지배력 남용 혐의 조사와 관련해 “아직 구체적으로 말할 단계는 아니지만 2년차 (과제) 중 한 부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날 김 위원장이 발표한 혁신 경쟁 촉진을 위한 추진 방향에서도 혁신경쟁저해행위 근절을 위해 온라인 플랫폼 등 시장선도자의 독점력 남용행위에 대한 감시를 철저히 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15일 충북대 한국경쟁법학회 하계학술대회에서는 “퀄컴이 공정위 심판정에서 6번 심의를 했는데 절차상 하자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것들을 해소하다 보면 구글은 더 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애플도 공정위에 미운 털이 박혀있다. 지난 4월 공정위는 애플코리아가 이동통신사에 광고비와 무상수리비용을 떠넘기는 등 불공정행위가 있었다는 의견을 확정하고 심사보고서를 애플코리아 측에 발송했다. 심사보고서에서는 과징금과 시정명령을 부과해야 한다는 의견이 들어 있다. 업계에 따르면 과징금 단위가 1000억 원대에 이를 수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의 판단은 애플코리아가 2009년 아이폰 국내 출시 이후 통신업체들의 아이폰 광고 제작과 사용, 매장 내 아이폰 진열 등 세세한 사안까지 관여하면서 광고비 국내 통신업체에 떠넘겨 왔다는 입장이다. 국내 통신3사는 지난해 11월에도 아이폰8, 아이폰X 출시에 맞춰 이들 제품 디자인과 기능을 홍보하는 내용의 TV 광고를 시작했지만 모두 통신사가 비용을 댄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 측은 또 이동통신사에 아이폰 무상수리 비용을 부담하도록 하거나 대리점에 판매대 설치 비용을 전가하고, 아이폰 주문 시 일정 수량 이상을 구매하도록 조건을 내세웠던 것으로도 알려졌다. 이에 공정위는 애플코리아가 시장에서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이통사에 구입 강제, 이익제공 강요, 불이익 제공 등 거래상 지위 남용행위를 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는 애플 측의 소명을 듣고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지을 전망이지만 애플의 행태는 해외에서도 유명한 터라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허인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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