非유턴차에 ‘통행 우선권’ 몰랐나(?)

유턴차, 시야확보 부족∙차선 침범 등에 노출… 안전주의 의무 보다 요구돼

비유턴차에 ‘전방주시 의무 태만’ 논리 내세운 손보사

과실비율 낮추려는 의도였나… 법원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해

한민철 기자

유턴 차량은 다른 차량의 정상적 통행을 우선시한 뒤 유턴 진출을 할 의무가 있다. 여기 자사와 자동차보험을 체결한 차량이 이를 위반한 채 유턴 과정에서 사고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 차량의 전방주시 의무를 탓한 한 손해보험사가 있다. 그러면서 상대방 차량의 보험사로부터 구상금 청구 소송이 제기됐고, 이 보험사는 법원으로부터 자사의 그 어떤 주장도 인정받지 못한 채 패소 판결을 받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자동차 운전 시 문제없이 유턴(U-Turn)을 할 수 있는 경우는 크게 세 가지다.

우선 중앙선 바로 오른쪽에 놓인 1차로에 유턴 표시가 있어야 한다. 또 정면 삼색신호등 옆에 유턴 모양의 표시와 함께 ‘좌회전 시’, ‘보행 신호 시’ 등의 문구로 유턴이 가능한 경우를 가리키는 표지판이 붙어 있다면 유턴을 할 수 있다. 물론 삼색신호등 옆에 유턴 모양의 표지판만 있더라도 유턴이 가능하다.

보통 이 세 가지 경우를 숙지하고 있다면, 사고 걱정 등의 문제없이 유턴을 할 수 있다. 다만 교차로에서의 유턴을 하려는 운전자는 사고 가능성에 보다 신중을 기해야 한다.

유턴을 기다리는 운전자의 정면으로부터 3시, 9시 방향에서 각각 좌회전과 우회전을 통해 진출하려는 차량들과 해당 운전자가 유턴을 하면서 차선이 겹치며 접촉사고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 3시와 9시 방향에서 진출한 운전자들은 비교적 시야 확보에 어려움이 없고 차선 침범으로 사고를 유발할 가능성은 낮다.

반대로 유턴 차량은 운전자의 시야가 순식간에 180도 돌아가는 만큼, 정확하고 빠른 시야 확보가 쉽지 않다.

또 유턴과 함께 중앙선 건너편의 1차로에 들어가는 과정에서 다른 차선을 침범하지 않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교차로 상 좌회전 및 우회전으로 진출한 차량들과 사고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아진다.

도로교통법 제18조 제1항에서는 ‘차량의 운전자는 다른 차량의 정상적 통행을 방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 차량을 운전해 유턴해서는 안 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교차로 상 유턴 차량은 사고 유발의 가능성이 높고 유턴과 동시에 좌회전 또는 우회전을 통해 유턴 방향에 진출하려는 다른 차량의 정상적 통행을 방해할 수 있기에, 유턴 운전자는 진출에 있어 후순위적인 입장에 놓일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경우에 따라 유턴 차량은 교차로 상 좌회전 또는 우회전으로 유턴 방향에 진출하려는 차량보다 감속해 이들을 먼저 보내는 등 안전주의 의무에 보다 철저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렇게 교차로 상 유턴 차량의 안전주의 의무가 우선시 됨에도 불구하고, 일부 자동차 보험사들은 이 경우 사고가 발생했을 때 좌회전 또는 우회전으로 진출한 차량의 전방주시 의무를 탓하며 과실비율을 최대한 낮춰보려고 하는 곳도 있다.

국내 유명 손해보험사인 C사의 경우가 그랬다. 자사의 자동차 종합보험에 가입한 유턴 차량이 정상 신호에 따라 진출하던 다른 차량의 통행을 방해하지 않아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접촉사고를 일으켰다.

이후 C사는 이 비(非)유턴차량이 전방주시를 제대로 하지 않아 사고에 기여했다는 핑계를 대며 책임을 축소하려 했던 것으로 최근 밝혀졌다.

사건은 지난해 3월의 어느 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저녁 8시를 넘긴 시각, A씨는 자신의 차를 몰고 광주광역시 광산구의 한 지하차도의 지상에 설치된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교차로에서의 유턴을 하려는 운전자는 사고 가능성에 보다 신중을 기해야 한다. (사진=연합)
A씨는 사거리 교차로에 들어가기 직전 1차로에 정차한 뒤 유턴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해당 1차로의 지면에는 좌회전이 가능하다는 표시만 있을 뿐 유턴표시는 없었지만, 정면 삼색신호등 옆에 유턴 모양의 표지판이 걸려 있었다. 때문에 유턴이 가능한 도로는 분명했다.

A씨가 유턴을 기다리는 도중, 교차로 상 그의 정면으로부터 3시 방향에는 B씨가 운전하던 차량이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A씨는 삼색신호등이 적색으로 바뀌자 유턴을 시도했고, 앞서 좌회전 신호를 받은 B씨의 차량은 A씨가 유턴하는 방향으로 진출했다.

새로운 도로에 먼저 진입한 쪽은 B씨의 차량이었고, A씨 차량이 유턴을 통해 뒤를 따랐다. 그러면서 A씨의 차량 앞 범퍼는 B씨의 차량 뒤 휀다를 충격하면서 접촉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사고로 B씨의 차량은 심하게 손상됐고, B씨는 자신의 차량에 대해 자동차 종합보험을 체결한 보험사로부터 수리비 명목으로 600만원 상당의 보험금을 지급받을 수 있었다.

B씨 차량의 자동차 종합보험사는 향후 과실비율을 따져보면서, B씨 차량이 사고 당시 교차로 상에서 정상신호에 따라 좌회전을 했고 단지 A씨가 이를 발견하지 못한 채 갑작스러운 유턴을 시도하며 접촉사고를 일으켰다고 판단했다.

이에 당시 사고는 유턴 차량의 운전자가 다른 차량의 정상적 통행을 막은 채 유턴을 시도해 발생한 만큼, A씨의 일방 과실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A씨 측 차량에 대해 자동차 종합보험을 체결한 C사가 B씨 측 차량의 보험사가 B씨에 지급한 600만원을 변제할 책임이 있다는 설명이었다.

반면 C사 측은 B씨가 전방을 제대로 주시하지 못한 채 적절한 방어운전 조치를 취하지 못한 과실이 있다며, A씨의 책임이 제한돼야 한다고 반박했다.

결국 소송까지 가게 됐던 B씨 측 보험사와 A씨 측 보험사인 C사 사이의 법적분쟁에서 법원은 최근 B씨 측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도로교통법 제18조에 따라 유턴 차량은 다른 차량의 정상적 통행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정상적 신호라는 조건 하에 유턴 차량에게는 안전주의 의무가 우선적으로 주어지며, 다른 차량 즉 이 사건에서 교차로 상 좌회전을 통해 A씨 차량의 유턴 방향으로 진출하려 했던 B씨 차량을 안전하게 보낸 뒤 A씨 차량의 유턴이 가능하다는 의미였다.

특히 증거로 제출된 사고 당시 블랙박스 영상 등에 따르면, B씨 차량은 좌회전 순간 정상신호에 따랐고 이동 속도 역시 과속에 해당하지 않았다.

이런 조건과 함께 A씨 차량이 B씨 차량의 정상적인 통행을 방해했다는 판단이었다.

이 사건 재판부는 “A씨가 유턴 직전 B씨 차량을 미리 발견해 일시정지 하거나 감속했다고 보이지 않는다”라며 “당시 사고는 신호에 따라 좌회전을 해서 진입하는 차량이 있는지 살펴, 이 차량의 정상적 통행을 방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 유턴해서는 안 될 의무가 있는 A씨 차량의 일방 과실로 발생했다고 봄이 타당하다”라고 판시했다.

무엇보다 B씨가 당시 좌회전으로 새로운 도로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A씨 차량이 유턴할 것이라는 점을 인지했다고 할지라도, A씨 차량에는 B씨 차량의 정상적인 통행을 우선적으로 도울 의무가 있었다.

이에 재판부는 B씨 역시 A씨 차량이 유턴 도중 일시 정지 또는 감속해 자신의 차량이 완전히 지나갈 때까지 기다릴 것으로 신뢰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결국 C사는 법원으로부터 패소 판결을 받으며, B씨 측 자동차 보험사에 구상금으로 600여만원의 보험금을 변제해야만 했다.

신호위반 없이 그것도 교차로 상이라는 조건에서 유턴 차량이 다른 차량의 정상적 통행을 우선시한 뒤 유턴을 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C사 측은 먼저 새로운 도로에 진출한 비유턴 차량이 전방주시를 태만히 했다는 황당한 주장을 펼친 셈이었다.

향후 운전자의 유턴과 관련된 과실에 있어 보다 신중을 기해야 하며, 운전자들 역시 유턴에 관한 도로교통법 상식을 숙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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