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

<커버(1)> 한국 기업들의 ‘지배구조’ 현주소

상장회사 78%가 B등급 이하 취약한 수준 머물러

현대차ㆍSKㆍLGㆍ롯데 그룹 등 소유ㆍ지배구조 개편안 추진

  • 한국 기업들의 지배구조는 점차 개선되고 있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과제도 안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기업지배구조 수준은 어디까지 와 있을까. 최근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상장회사와 금융회사(비상장회사 포함) 930곳에 대한 지배구조 등급을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이에 따르면 한국 기업들의 지배구조는 점차 개선되고 있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과제도 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지배구조(Corporate Governance)는 통상적으로 기업의 의사결정 시스템, 이사회와 감사의 역할과 기능, 경영자와 주주의 관계 등을 총칭하는 포괄적 개념이다. 기업지배구조에는 주주 권리, 이사회 책임, 이해관계자 권리, 회계감사 제도 등 다양한 요소가 포함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 1999년 ‘OECD 기업지배구조원칙(OECD Principles of Corporate Governance)’을 제정한 바 있다. 선진국들이 대거 회원으로 가입한 OECD가 기업지배구조에 관한 원칙을 제정한 것은 바람직한 기업지배구조를 갖추는 것이 곧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점을 방증하는 것이다. OECD는 2015년 G20(주요 20개국)과 공동으로 기업지배구조원칙 개정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OECD 기업지배구조원칙은 주주자본주의에 바탕을 둔 영〮미식 기업지배 모델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이미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우수한 기업지배구조가 기업 경쟁력의 원천이자 장기적인 경제성장의 기본요건이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나아가 자본시장의 국제화가 진전되면서 기업지배구조에 대한 국제규범의 필요성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한국 기업들도 글로벌화 진전으로 세계 각국에 투자하거나 외국 자본의 투자를 받기도 한다. 건전한 기업지배구조를 갖춰야 지속 가능한 성장이 가능한 시대가 된 것이다.

1999년 처음 등장한 ‘모범규준’

우리나라 기업들이 기업지배구조라는 개념을 처음 접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말이다. 1999년에 ‘기업지배구조 모범규준’이 제정〮발표된 것이 중요한 계기가 됐다.

그때는 우리나라가 외환위기의 한복판을 헤쳐나가고 있던 시기다. 이른바 ‘대마불사’ 신화가 깨질 만큼 대기업들도 줄줄이 무너지던 때다. 국내 기업들의 취약한 재무구조가 외환위기라는 외부 변수 때문에 백일하에 드러난 것이다. 사실 당시 기업들이 잇달아 도산한 것은 허약한 재무상태가 직접적인 원인이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올바른 기업지배구조가 정립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국내에서는 2000년대 이후 ‘기업지배구조 개선’이 시대적 화두로 떠올랐다. 특히 기업지배구조 모범규준은 국내 기업지배구조 관련 제도를 선도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일부 기업들도 모범규준을 가이드라인으로 삼아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자발적인 노력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기업 경영의 투명성도 점차 제고되고 자본시장의 신뢰도 역시 적잖이 향상됐다.

하지만 아직 국내 기업들의 기업지배구조는 만족할 만한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게 전반적인 평가다. 문재인 정부의 주요 국정과제 중의 하나가 기업지배구조 개선이라는 점이 이를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지난해 말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2018년 경제정책 방향을 브리핑하면서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주주의결권 행사를 확대하고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연기금,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자들이 기업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의결권 행사지침)를 연기금부터 도입해 민간 부문으로 확산을 유도해나가겠다”는 방침을 선언한 바 있다.

여기에는 중요한 함의가 담겨 있다는 분석이다. ‘주주의결권’ 강화가 핵심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적은 지분을 가진 오너가 기업 경영을 쥐락펴락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과정에서 소액주주 등 다른 많은 주주들의 이익이 훼손되는 사례도 자주 발생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최근 일부 기업 오너들의 갑질 등 일탈행위가 잇달아 불거지면서 해당 기업의 이미지 추락은 물론 주가 하락 사태까지 빚어진 점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문재인 정부 ‘주주의결권’ 강화 나서

이런 ‘오너 리스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다수의 주주들이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는 게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는 바로 그런 맥락에서 주주의결권 행사 확대를 유도해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는 것이다.

과거 ‘재벌 저격수’로 불렸던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행보도 국내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관련해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그는 지난해 6월 취임 직후부터 기회가 있을 때마다 대기업집단을 향해 자발적인 소유〮지배구조 개선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일관되게 던져왔다. 김상조 위원장의 행보는 문재인 정부의 강력한 재벌개혁 정책 기조를 나타내는 메시지로 읽히고 있다.

실제 문재인 정부의 대기업집단 소유ㆍ지배구조 개선 정책은 일정한 결실을 맺고 있다. 일례로 5대 그룹 중에서 현대자동차그룹, SK그룹, LG그룹, 롯데그룹 등 4개 그룹이 소유ㆍ지배구조 개편안을 추진 중이다. 또 6대 그룹 이하에서도 현대중공업그룹, CJ그룹, LS그룹, 대림그룹, 효성그룹, 태광그룹 등 6개 그룹이 소유ㆍ지배구조 개편 대열에 동참하고 나섰다.

하지만 아직 국내 기업들의 지배구조는 개선의 여지가 산적해 있다고 보는 게 맞을 듯하다. 최근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일반 상장회사와 금융회사를 포함한 총 930개사를 대상으로 평가〮발표한 ‘2018년 지배구조 등급’ 현황을 살펴보면 한국 기업들의 기업지배구조 현주소가 잘 드러나 있다.

이에 따르면 일반 상장회사는 전체 평가 대상 중에서 78%가 ‘B등급’ 이하의 취약한 지배구조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지배구조 수준이 우수한 A+등급과 A등급 기업이 전년 대비 다소 증가한 것은 긍정적인 지표로 볼 수 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측은 “전반적으로 이사회 운영 관행이 개선됐고 사외이사 전문성 강화, 이해관계자 소통 확대 등 지속가능경영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며 “하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국내 상장회사들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더욱 요구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지배구조 등급이 상승한 기업의 핵심 요인으로 ▦기업지배구조 자율공시제도 도입 확대에 따른 지배구조 관련 공시 개선, ▦이사회 의장 독립성 강화, ▦감사위원회 설치 확대 및 감사기구 운영 개선 등을 꼽았다.

반면 지배구조 등급이 하락한 기업들은 ‘심화평가’에서 감점을 받은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주목할 것은 사외이사가 장기간 연임하고 있는 88개사가 무더기로 감점을 받았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사외이사가 장기 재임하면 오너와 경영진을 효과적으로 감시하는 게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점을 평가한 것이다.

이밖에 주주명부 열람 및 등사 청구, 임시주주총회 허가 신청, 검사인 청구 등 소수 주주권과 관련한 법적 분쟁이 발생한 기업들도 감점을 피해갈 수 없었다는 설명이다.

자산총액 2조원 기준의 비밀

한 가지 눈길을 끄는 것은 자산규모 2조원을 기준으로 그 이상인 기업과 그 미만인 기업들의 지배구조 수준이 매우 상반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지배구조 등급 발표에 따르면 자산규모 2조원 이상 기업의 경우 지배구조가 양호한(B+등급 이상) 기업 비율이 68.5%를 기록한 반면 2조원 미만 기업의 경우 지배구조가 취약한(B등급 이하) 기업 비율이 86.7%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 규모가 클수록 지배구조 수준이 높고, 반대로 작을수록 지배구조 수준이 낮은 것이다.

여기에는 한 가지 중요한 원인이 숨어 있다. 현행 상법은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인 상장회사에게 사외이사 선임, 위원회 운영 등에 관해 더 높은 수준의 지배구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현행 상법에 따르면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인 상장회사는 사외이사를 최소 3인 이상 선임하는 동시에 이사회의 과반수를 차지하도록 구성해야 한다.

또한 사외이사를 위원장으로 하는 감사위원회를 설치해야 하며,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를 운영할 의무도 갖게 된다. 아울러 주요 주주 등 이해관계자와의 거래 시에는 이사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도록 돼 있다.

반면 자산총액 2조원 미만의 상장회사는 사외이사를 최소 1인 선임하는 한편 이사회의 1/4 이상을 차지하도록 구성하면 된다. 또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 및 감사위원회를 설치할 의무도 지지 않는다. 자산총액 2조원 이상 기업에 비해 훨씬 법적인 규제가 덜한 셈이다. 이 때문에 기업지배구조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개선의 필요성을 덜 느끼고 있다는 풀이도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다만 자산총액 2조원 미만 기업 중에서도 감사위원회 설치 확대,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 설치 확대, 사외이사 선임 확대 등 법적인 의무사항과 관계없이 자발적으로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적극적 조치를 취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기업지배구조와 관련된 법적 의무사항을 준수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발적으로 지배구조를 선진화해 나가는 것이 궁극적으로 기업가치 제고에 도움이 된다”며 “특히 상장기업들은 자본시장에 참여하는 불특정 다수의 투자자로부터 평가를 받기 때문에 지배구조 개선이 선택이 아닌 필수의 문제”라고 말했다.



<박스> 기업지배구조 모범규준도 진화한다

기업환경 변화 따라 ‘촘촘한 그물망’

국내 상장기업들에게 지배구조에 관한 가이드라인 역할을 하고 있는 ‘기업지배구조 모범규준’은 지난 1999년 처음 제정됐다. 이 모범규준은 2003년 1차 개정에 이어 2016년 2차 개정을 거쳤다. 국내 기업 환경 및 자본시장의 변화와 국내외 지배구조 관련 제도 개선 동향을 반영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2016년 기업지배구조 모범규준 개정 때 반영된 부문별 주요 개정사항은 다음과 같다. 먼저 주주 부문에서 ▨내부거래 및 자기거래에 관한 내부통제장치의 마련 및 거래내역의 공시 권고, ▨주총 안건별 찬반 비율 및 표결 결과의 공개 권고, ▨전자투표제에 대한 설명 추가 등이다.

또 이사회 부문에서는 ▨주요 경영진에 대한 보수정책과 보수의 공시, ▨최고경영자 승계 정책의 마련 및 공개 권고, ▨리스크 관리정책의 마련 및 운영 권고, ▨상법에 도입된 집행임원제 반영, ▨이사회 기능에 ‘기타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정책의 수립’ 추가 등이 중요한 대목이다.

감사기구 부문에서는 ▨감사기구 산하에 감사기구를 보좌하고 실무를 담당하는 내부감사부서의 설치 권고, ▨외부감사 관련 법제적 변화 반영 등이 눈에 띄는 개정사항이다. 이해관계자 부문에서는 ▨공정거래 관련 정책의 마련 및 공시, ▨근로자의 삶의 질 제고를 위한 기업의 노력 촉구 등이 주목할 만하다.

마지막으로 시장에 의한 경영감시 부문에서는 기관투자자 항목을 별도 중(中)항목으로 신설한 점이 눈길을 끈다. 기존 ‘정부 및 관련기관에 대한 권고사항’에 기관투자자에 대한 내용이 있었지만, 기관투자자 역할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는 추세를 반영해 별도 항목으로 신설한 것이다. 이는 기관투자자에게 투자 대상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을 통한 기업가치 제고 노력을 촉구하는 의미를 띠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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