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투자자 적극적 주주활동…기업 경영 지속가능성 제고한다

최근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가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 도입을 공식 결정하면서 재계가 술렁이고 있다. 국내 주식시장에서 최대 큰손으로 통하는 국민연금이 투자 대상 기업에 대한 주주권을 적극 행사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국민연금을 시작으로 다른 연기금과 자산운용사들에게도 점차 확산돼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스튜어드십 코드 시대의 개막은 향후 자본시장에서 어떤 파급효과를 가져올까.

스튜어드십 코드는 공식적으로 ‘기관투자자의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으로 정의된다. 언뜻 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이다. 보다 쉽게 풀이하면 연기금,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자들이 투자 대상 기업에 대해 주주로서 의결권을 포함해 적극적인 권리를 행사하는 원칙과 기준을 담은 지침을 말한다.

영어로 스튜어드(Steward)는 집사를 뜻한다. 집사가 주인의 재산을 충실하게 관리하듯이 투자자의 자산을 위탁받아 운용하는 기관투자자들이 투자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적극적인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게 스튜어드십 코드의 기본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국내에서 스튜어드십 코드 제정이 구체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4년 11월 당시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스튜어드십 코드 제정 방침을 공표하면서부터다. 이후 2015년 3월 금융위원회가 중심이 된 1차 스튜어드십 코드 제정위원회가 구성됐다. 여기에는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한국금융투자협회, 자본시장연구원,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자산운용업계, 해외 기관투자자 등 민·관 유관기관이 함께 참여했다. 1차 위원회는 2015년 12월 코드 제정안 초안을 발표했다.

2016년에는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빠지고 민간 중심으로 재편된 2차 스튜어드십 코드 제정위원회가 출범했다. 2차 위원회는 코드 제정을 위해 자산운용업계, 보험업계, 재계, 학계, 시민단체, 국회입법조사처, 의결권자문사 등이 참여한 간담회를 4회 개최하고 공청회 등 공개적인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 2016년 12월19일 마침내 ‘한국 스튜어드십 코드’를 공표하기에 이른다.

금융위기 이후 서구 국가들이 선구적 도입

스튜어드십 코드는 2010년대 들어 세계 각국에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했다.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가 세계를 휩쓸고 난 후 기관투자자들이 자본시장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확산된 것이 중요한 배경 중 하나다.

영국과 캐나다가 2010년 스튜어드십 코드를 선구적으로 도입했고, 이후 네덜란드·스위스·일본·이탈리아·홍콩·대만·브라질·싱가포르 등이 잇달아 스튜어드십 코드 대열에 동참했다. 유럽연합(EU), 세계지배구조개선네트워크(ICGN) 등 국제기구도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했다.

한국 스튜어드십 코드 제정에 일부 관여했던 한 전문가는 “기관투자자가 주식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지만 ‘수탁자 책임’ 활동에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 왔다”며 “그런 점에서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관투자자들의 수탁자 책임을 담보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 된다”고 말했다.

실제 스튜어드십 코드를 먼저 도입한 외국에서는 적지 않은 효과를 보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일례로 2014년 일본에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된 이후 기관투자자가 전체 운용자산의 45%를 보유한 ‘재팬 인게이지먼트 펀드(The Japan Engagement Fund)’가 적극적인 주주활동을 펼쳐 총 운용자산 규모가 40% 이상 증가했다는 보고도 있었다. 이는 기관투자자의 적극적인 주주활동이 투자 대상 기업의 가치를 향상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일종의 연성규범(Soft Law)이다. 따라서 강제성이 없으며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기관투자자들의 자율 준수를 토대로 효력을 발휘한다. 이번에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결정한 국민연금도 스스로의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한국 스튜어드십 코드는 자산소유자(Asset Owner·연기금, 보험사 등)와 자산운용자(Asset Manager·자산운용업체 등) 등 기관투자자가 적용 대상이다. 단, 국내 상장기업의 주식을 보유한 경우에 한한다. 또 이상의 조건에 해당되는 기관투자자의 주주활동을 지원하는 의결권자문사와 투자자문사 등도 한국 스튜어드십 코드에 참여할 수 있다.

국내 상장주식 보유한 기관투자자 대상

스튜어드십 코드는 크게 원칙(Principle)과 지침(Guidance)으로 구성된다. 원칙은 스튜어드십 코드의 핵심이고, 지침은 이 원칙을 구체적으로 적용하는 과정에서 방향성을 제시하는 세부적인 권고사항이다.

기관투자자는 기본적으로 운용자산을 맡긴 고객·수익자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할 책임이 있다. 현행 자본시장법에도 선량한 관리자로서 충실하게 자산을 운용하도록 기관투자자의 책임을 명시한 규정이 있다. 기관투자자의 책임은 오늘날 복잡한 자본시장 구조에서 더욱 커진다.

이런 점을 감안해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관투자자가 주주로서 투자 대상 회사의 중장기 발전을 추구함으로써 고객과 수익자의 이익을 도모할 책임을 진다는 ‘수탁자 책임’을 확고한 원칙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기관투자자는 타인의 자산을 맡아 운용하는 자로서 투자 대상 회사에 대한 점검이나 이사회와의 대화 같은 기본적인 운용 책임을 다해야 할 뿐 아니라 필요한 경우에는 주주로서의 권리를 적극 행사할 필요도 있다. 이 같은 활동을 통해 기관투자자는 궁극적으로 고객과 수익자의 중장기적 이익 증진에 부합하는 수탁자 책임을 다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스튜어드십 코드에 참여하는 기관투자자의 수탁자 책임 활동은 단지 고객과 수익자의 중장기적인 이익 제고에만 부합하는 것은 아니다. 좀 더 시야를 넓혀 보면 자본시장의 투명성과 신뢰도를 끌어올리는 동시에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을 뒷받침하는 역할도 한다는 것이다.

스튜어드십 코드 제정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면 투자 대상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과 효과적인 위험관리, 중장기 성장 도모를 통해 투자자의 중장기적인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은 물론이고 한국 경제와 자본시장의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스튜어드십 코드가 기업 경영에 과도한 간섭을 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기관투자자가 투자 대상 기업의 고유한 경영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결정하자 정부가 국민연금에서 투자한 기업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감 놔라 배 놔라’ 식으로 흔들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경영권 침해 우려에 “경영 간섭 아니다”

하지만 한국 스튜어드십 코드 해설서에는 “수탁자 책임 활동이 투자 대상 회사의 일상적인 경영에 대한 간섭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명시돼 있다. 또 “고객과 수익자의 이익을 위해 최선인 경우에는 주식 매각을 고려할 수도 있다”고 돼 있다.

기관투자자는 중장기적 주주가치를 훼손하거나 지속가능성을 저해하는 경영행위가 발생하면 자산을 맡긴 고객을 위해 적극적 주주활동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이런 비정상적인 경우를 제외한 일상적인 경영사항이나 의사결정에 대해서는 투자 대상 회사의 경영진과 이사회에 맡기는 편이 경영 효율성 면에서 바람직하다는 설명이다.

2016년 한국 스튜어드십 코드가 공표된 이후 자발적으로 참여 의사를 밝힌 국내외 기관투자자는 현재까지 수십 곳에 달한다. 특히 국내 최대 기관투자자인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공식화하면서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교직원공제회 등 여타 연기금도 조만간 뒤를 따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또 자산운용사들도 대거 스튜어드십 코드에 참여할 준비를 마쳤거나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바야흐로 국내에서 스튜어드십 코드 시대가 활짝 열리고 있다. 국내 상장기업들의 경영 풍토와 시스템, 나아가 자본시장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윤현 기자

<박스1> 한국 스튜어드십 코드 ‘7대 원칙’ 살펴보니

지난 2016년 12월 처음 공표된 한국 스튜어드십 코드는 7대 원칙을 담고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 제정위원회는 기관투자자들에게 투자 대상 회사의 중장기적인 가치 향상과 지속 가능한 성장을 추구하고 고객과 수익자의 중장기적인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7대 원칙을 준수하도록 하고 있다. 7대 원칙은 다음과 같다.

1. 기관투자자는 고객, 수익자 등 타인 자산을 관리·운영하는 수탁자로서 책임을 충실히 이행하기 위한 명확한 정책을 마련해 공개해야 한다.

2. 기관투자자는 수탁자로서 책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실제 직면하거나 직면할 가능성이 있는 이해상충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에 관해 효과적이고 명확한 정책을 마련하고 내용을 공개해야 한다.

3. 기관투자자는 투자 대상 회사의 중장기적인 가치를 제고하여 투자 자산의 가치를 보존하고 높일 수 있도록 투자 대상 회사를 주기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4. 기관투자자는 투자 대상 회사와의 공감대 형성을 지향하되, 필요한 경우 수탁자 책임 이행을 위한 활동 전개 시기와 절차, 방법에 관한 내부지침을 마련해야 한다.

5. 기관투자자는 충실한 의결권 행사를 위한 지침·절차·세부기준을 포함한 의결권 정책을 마련해 공개해야 하며, 의결권 행사의 적정성을 파악할 수 있도록 의결권 행사의 구체적인 내용과 그 사유를 함께 공개해야 한다.

6. 기관투자자는 의결권 행사와 수탁자 책임 이행 활동에 관해 고객과 수익자에게 주기적으로 보고해야 한다.

7. 기관투자자는 수탁자 책임의 적극적이고 효과적인 이행을 위해 필요한 역량과 전문성을 갖추어야 한다.

<박스2>기관투자자가 취할 수 있는 추가적인 주주활동

‘한국 스튜어드십 코드 해설서’에 따르면 기관투자자는 투자 대상 회사와의 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려가 남는다면 우려사항의 중요도, 자본시장 상황, 투자 대상 회사의 태도, 내부 역량 등 여러 조건을 고려해 스스로 정한 범위에서 추가적인 주주활동을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다음은 기관투자자가 취할 수 있는 추가적인 주주활동의 예시다.

▨보다 심도 있는 판단을 위해 필요한 정보·자료 추가 요청

▨회사의 입장, 향후 계획 등을 묻는 질의서 전달

▨이사회(의장), 선임사외이사 또는 경영진과의 회의 추가 개최

▨우려사항에 관한 입장, 회사에 대한 요청사항 등을 담은 의견서 전달

▨주주총회에서의 적극적인 발언과 토론

▨주주총회 안건에 대한 반대 투표 의사와 그 사유의 사전·사후 공시

▨이사·감사 후보 추천을 포함하는 주주제안 또는 다른 주주의 주주제안에 참여

▨주주총회 소집 청구 또는 다른 주주의 청구에 참여

▨보도자료 배포 등 공개적인 의견 표명

▨소송 제기·참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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